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1. 6. 17. 09:48

삼국지(三國志) (312) 제위에 오르는 유비

 

한중왕 유비는 공명에게 자신의 염려를 털어놓았다. 그것은 지난번 대행황제의 제를 올리는 현장에서 자신에게

황제의 제위에 오를 것을 주청한 대신과 장수들은 예전부터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었고, 한중을 차지한 뒤에

새로 힘을 합친 이엄과 황권 등의 주청이 없었음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그러자 공명이 이렇게 대답한다.

"대왕의 염려를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빠른 시일내에 이엄을 한번 만나보시죠. 그들도 저희와 생각이 같을

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유비는 몸소 이엄의 사가를 찾아갔다. 

이엄이 문밖으로 달려나와 인사 한다.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

"지나는 길에 목이 말라 차를 한잔 얻어 마시러 왔소."

유비는 이곳에 온 이유를 다른 말로 돌려대며 말했다.

"드시지요."

유비는 이엄의 안내를 받아 그의 접견실로 들어가 잠시후 내온 차를 한모금 마셨다.

유비가 이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증평 몇 년이던가 ? ... 큰 가뭄이 들어 이곳의 백성들이 큰 고통으로 신음할 때, 그대가 친척들과 함께 한달

동안 애쓴 끝에 크고 깊은 우물을 파서 백성들을 구했다고 들었소. 그래서 그런지 물 맛이 좋은 것이 보통물

같지가 않구려. 그 우물에서 떠 온 것인가 보오 ?"

"주공께서도 그 일을 아십니까 ?"

이엄이 예를 표하면서 물었다. 

"그래서 차를 얻어 마시려고 온거요."

"허어 !... 신의 생각으로는 차 외에도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오신 것 같습니다만 ..."

이엄은 유비의 속셈을 반 쯤 들여다 보며 말하였다. 그러자 속마음을 들킨 유비가 이엄을 향해 진지한 어조로

말한다.

"앞으로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묻고 싶구려."

그러자 이엄이 유비의 앞으로 달려나와 절을 하며 아뢴다.

"부디, 하루속히 황위를 계승해 즉위하십시오."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엄의 앞으로 나와 그를 일으키며 말한다.

"정방(正方 : 이엄의 字), 많은 대신과 장수들이 한실을 계승하라고 하는데, 나는 박덕한 몸 인 데다가 이제

갖 촉에 온 지라 백성들에게 은덕도 베풀지 못했소. 하여, 서둘러 즉위하다면 베푼 것 없이 이익만 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오 ?"

"신의 생각은 정 반대입니다. 주공께서는 오신 지가 얼마 안 되었고, 백성들에게 내린 은덕도 적으니 더욱

서둘러 즉위하셔야지요."

"그게 무슨 말이오 ?"

"천자만이 백성들에게 더 은덕을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공께서 왕을 칭하면 촉중 장수들이 기껏해야

장군이나 주부이지만 주공께서 황위를 계승하시면 그들의 작위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왕이 우물이라면

황제는 곧 깊은 우물입니다. 어떤 백성들이 깊은 우물에서 우러나오는 마르지 않는 은덕을 마다하겠습니까 ? "

"듣고 보니, 깨우쳐 지는 바가 있구려... 좋소. 그대가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놓이는군. 비록 내키지는

않지만, 피하기만 할 수는 없지... 명을 내리겠소."

"아, 예 !"

이엄이 무릅을 꿇고 명을 수령하는 자세를 보인다.

"그대를 촉군 태수로 봉하니, 공명을 보좌해 전촉을 관장토록 하라 !"

"신, 전심 전력을 다하겠사옵니다 !"

이엄은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절을 하면서 감읍해 하였다.

                               ...

 

드디어 건안 이십육 년(서기 221년) 사월, 유비가 제위에 오르면서 촉국(蜀國)이 정식으로 개국되었다. 이어서

연호(年號)를 장무(章武)로 고쳤다. 그리고 제갈양을 승상으로 삼고 허정으로 사도(司徒)를 삼아 한나라의 정통

을 계승하였다.  

유비는 제위에 오르자, 만조 백관을 거느린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 짐이 천자로서 첫 조서를 내리오 ! 짐이 부덕한 몸으로 제위에 오르니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관운장이오. 관운장과는 도원에서 결의할 때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세했건만 불행히도 손권의 손에 모살되었소.

이제 짐은 무엇보다도 먼저 군사를 일으켜 운장의 원수를 갚아야 하겠소."

                       ...

 

황제 즉위식이 끝나고  천자가 된 유비가  내실로 들어오자 조운(趙雲)이 들어와서 간한다.

"폐하 !  폐하께서 내리신 첫 조서는 다시 고려하심이 마땅하옵니다."

"아우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 어찌 잘못된 일인가 ?"

"손권은 사사로운 원수이오나 조비는 한나라의 제위를 찬탈한 만천하의 원수이옵니다. 하오니 사사로운 원한

보다는 공적인 원수를 먼저 갚으셔야 하옵니다."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세한 아우의 원수를 아니 갚는다면, 그런 옹렬한 심정으로 어찌 천하의 정의를 실현하

겠나 ? 무슨 일이 있어도 손권을 먼저 없애고 난 뒤 조비를 멸할 생각이네." 

그때, 승상 공명이 들어오며 말한다.

"신도 조 장군의 생각과 같습니다. 공적인 원한을 먼저 갚은 후에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것이 순서입니다.

폐하 ! 부디 동오 출병을 늦추십시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유비의 태도는 극히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러자 공명은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며

아뢴다.

"폐하, 이 말만 듣고 숙고하여 주십시오.

첫째, 촉한(蜀漢)의 적은 동오가 아닌 조위(曺魏) 입니다.

둘째, 형주가 남아 있었다면 공수(攻守)가 모두 수월했겠지만, 이미 형주는 손권의 손에 들어가 버려 동오가

천하의 중심을 점령하고 있으니 공수 모두 손권이 유리합니다. 

셋째, 촉한에서 동오를 치려면 이천 리를 가야하며, 도중에 험한 수로와 계곡을 비롯해 많은 강과 산이 막고

있으니 군량을 비롯한 군수품 조달이 쉽지 않습니다. 

넷째, 동오와 교전을 하면 조비가 번성 일대에 대군을 집결시켜 놓고, 촉이 이기면 즉시 남하해 강동을 칠 것

이며, 오가 이기면 서진하여 한중을 칠 것이 분명합니다. 폐하, 촉오(蜀吳)가 교전하면  최대의 승리자는 조비

(曺丕)가 됩니다."

유비가 이 말을 묵묵히 듣고나서,

"문신(文臣)의 수반(首盤)은 승상이고, 무장(武將)의 수반은 자룡인데, 문무의 수반들이 이렇게 반대하니 잠시

늦추도록 하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너무도 계산이 서는 승상 공명의 일목요연한 득실(得失)의 간언을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손권을 쳐서 운장의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간절하였다. 그리

하여 두 사람이,

"영명하십니다 !"

하고, 말하자. 황제는 뒤를 반쯤 돌아보며 말한다.

"늦춘다고 포기하는 것은 아닐쎄. 군량과 무기를 비축해 놓고, 전선(戰船)을 건조해 때를 기다리도록 하게 !"

 

천자 유비의 결심어린 명을 받은 공명과 자룡은 순간, 아득한 표정의 얼굴이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