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1. 6. 22. 12:14

삼국지(三國志) (318) 고심하던 손권의 결정

 

대청에 입시한 문무백관 모두가 진노한 주군의 찌렁찌렁한 고함소리에 몸믈 떨며 있을 때 홀연히 제갈근

(諸葛瑾)이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신이 유비를 찾아가 촉과 우리가 힘을 합하여 조비를 치도록 목숨을 걸고 설득해 보겠습니다."

 

손권이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촉의 공격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게 상책일 것 같소. 그러면 경이 수고를 해주기 바라오."

손권도 유비의 공격에 맞서 당장 마땅한 대응책을 찾을 수가 없기에 일단 허락을 하였다.

 

그리하여 문무 대신들을 모두 돌려보낸 후, 제갈근을 따로 불러 유비와의 면담을 앞둔 계략을 의논하였다.

곧바로 제갈근은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자귀성으로 유비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유비는 제갈근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의 공격을 회피해 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찾아온 것이 분명할 것인데 만나서 무엇하겠나 ?"

유비가 하도 고집을 부리므로 마량이 간한다.

"동오의 사신 제갈근으로 말하면 승상의 친형이옵고, 또 그를 만나 손권의 죄악상을 분명히 알려 줄 필요도

있사오니 한번 만나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무슨 용무로 왔는가를 알아 보는 것도 결코 해로운 일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

"음 ... 그렇다면 제갈근을 들어오게 하라."

 

제갈근은 배알의 허락을 받고 유비 앞으로 나오자 손권의 친서를 전하고 예를 표한다.

유비가 손권의 친서를 풀어보니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유황숙께 인사드립니다. 과거 여몽이 독단적인 행동으로 관 장군을 죽음에 몰아 넣었사오나 이젠 여몽이

죽었사오니 원한을 풀어 주십시오. 장 장군은 촉의 병사에 의해 변을 당한 것으로 장달과 범강을 이미 폐하

께 바쳤습니다. 폐하께서 한 나라를 계승하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사온데 어찌 한 나라를 배반한 위(魏)

가 아닌, 오(吳)를 공격하십니까 ? 폐하와의 옛정을 잊지 못하는 누이와 형양의 세 개 군(郡)을 함께 보내드

리고 촉(蜀)과 오가 다시 동맹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조비를 멸할 수 있기를 바라오니 부디 고려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유비가 손권의 친서를 접으며 말한다.

"당시, 누이를 나에게 시집 보낸 건, 형주를 빼앗기 위해서였지. 지금은 강동을 지키기 위해 또 누이를 보내

려 하는구나. 가서 전하라, 늦었다구... 보낼 필요 없다고 전하라."

"폐하께선 한 황실의 황숙이십니다. 그런데 천자를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한 역적 조비를 그냥 둔 채 강동을

토벌하는 것은 옳지 않은 처사라고 사료 되옵니다. 또, 신의 아우 공명이 오랜동안 폐하를 섬겨오기에 신은

본시부터 촉과 오의 싸움을 피하도록 노력해 왔사옵고, 오후(吳侯)께서도 관 공에게 여러차례 친교(親交)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후 조조가 오후에게 사람을 보내 관 공을 치도록 여러번 간청한 일도 있었으나 오후

는 조조의 간청을 끝끝내 거절해 왔습니다. 그러한 오후가 어찌 관 공을 살해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 관 공이

돌아가시게 된 일로 말하면, 여몽(呂夢)이 평소부터 관 공과 사이가 나빠 오후도 모르게 관 공을 살해한 것에

불과하옵니다. 오후께서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아시고 여몽을 크게 나무라셨고 여몽도 그 일로 인해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는 관 공의 원수를 갚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로 아옵니다. 그리고 장 공을 살해하고 동오로 도주

해 온 범강과 장달은 이미 귀국에 보내 드렸으니 촉과 오의 원한 관계는 모두 정리가 된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뢰올 것은 손 부인(孫 夫人)께서 항상 폐하를 그리워하시니 이번에 손 부인을 보내드림과

아울러 이미 항복한 미방, 부사인 등의 장수들과 함께 형양 3개 군(郡)을 돌려 드림으로써 양국의 의의를 가일

층 돈독히 하고자 하오니 폐하께서는 현명하신 양해가 계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러나 유비는 제갈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절한다.

"보낼 필요 없소. 짐의 아우 관운장을 죽이고 나서 그런 잔꾀를 쓴다고 속을 줄 아는가 ? 오후가 보내주지 않

더라도 내 스스로가 취할 것이니 그리 아시오 !"

제갈근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아뢴다.

"폐하께서는 어찌 대의(大義)을 버리시고 소의(小義)만 존중히 여기시나이까 ? 조비는 한실의 황제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사온데 어찌하여 조비를 쳐서 한실을 부흥시킬 생각을 아니하시고 한낱 사사로운 소의를

위해 강동을 치려고 하십니까 ? 이렇게 폐하께서 조비를 간접적으로 도와줌으로써 한실이 재기할 길을 영원

히 막으시려 하십니까 ?"

유비가 더욱 노하며 말한다.

"입을 닥치시오 ! 형제의 의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내 어찌 대의를 다할 수 있겠소 ! 짐이 그대의 아우인 공명

선생의 낯을 보아 차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니 돌아가서 손권더러 문무 백관들을 이끌고 항복하러 오라고 하

시오. 만약 그리 못하겠다면 짐의 칼을 받아야 할 것이오 !"

이렇게 말한 유비가 뒤로 돌아서니, 도저히 설득할 수가 없음을 깨닳은 제갈근은 그길로 강동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

 

유비를 만나고 돌아온 제갈근이 손권을 찾아가 유비의 완강한 거절의사를 전하였다. 그러자 손권은 실망감

이 역력한 상태로 입을 열어 말한다.

"뜻밖이오. 유비의 오만 방자함이 관우에 못지 않았다니 나의 제의를 거절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소."

 

손권이 이런 태도로 나오자 제갈근이 손권의 눈치를 보며 한숨을 쉰다. 그리곤 입을 열 듯 말듯하면서 아무

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손권이 이를 알고,

"말하시오. 자유(子瑜: 제갈근의 字), 이리된 이상, 무슨 말이든 마음껏 애기해도 좋소."

하고, 말하였다. 유비가 칠십 만 대군을 일으켜 강동으로 쳐들어 오는 상황에서 이를 물리칠 계획이 번번히

수포로 돌아가는데다가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을 받은 제갈근이 대답하기를 주저하였다. 이렇게 잠시 뜸을 들이던 제갈근이 비로서 입을 연다.

"신이 볼때, 현 상황이 긴박하니... 주공께서 조비를 천하주인으로 인정하고 강동은 신하국이 되겠다는 투항

서를 보내시면... 어떻겠습니까 ?..."

제갈근의 이 말을 들은 손권이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제갈근을 내려다 보며,

"나더러 ... 조비에 투항하고, 가업을 포기하라고 ? ..."

하고, 곧 소리를 지를 것 같은 엄한 얼굴로 되물었다. 

 

자신의 말로 주군의 심기가 크게 상한 것을 안 제갈근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권 앞에 허리를 구부린다.

"주공, 위기를 타개할 책략입니다. 그리하면 조비의 원군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유비한테 머리를 숙이느니,

차라리 조비의 신하를 청해 강동을 구하십시오."

"나는 동오의 주인이다. 내가 투항서를 올리면 내 체면은 어찌 되며, 위엄은 어찌 되나 ?"

"주공 ! .."

생각 이상으로 손권의 반발이 크자, 제갈근이 당황하며 손권의 진노를 가라 앉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손권은

그렇게 화를 내어 놓고는 막상 현실을 직시한  대답을 한다.

"그 문제는 ...숙고해 보겠소 !...."

그러자 제갈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러나갔다.

제갈근에게 충격적인 소리를 들은 손권은 결정을 하기에 앞서 , 의지를 다지기 위해 대도독을 지낸 노숙의

무덤을 찾았다.

 

노숙(魯肅)... 

그가 누구던가 ?... 강동의 오늘이 있기까지 전심 전력으로 몸과 마음을 바친 스승과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

그런 그가 살아 있었다면 손권이 과연 오늘날과 같은 위기에 맞딱뜨렸을 때, 그는 어떤 해결책을 내어 놓았을

것인가 ?

손권이 노숙의 무덤을 찾은 이유는 강동의 위기가 봉착한 현재의 상황에서 그의 존재가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죽어 땅에 묻힌 사람이 입을 열어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노신 장소(老臣 張昭)가 다가와서 말한다.

"주공, 제갈근이 조비에게 투항서를 바치고 신하됨을 청하라 하였다지요 ?"

"그렇소. 삼 대에 걸친 가업이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인가 ? ..."

손권은 암담한 기분으로 대답하였다.

"만일 ... 투항서를 보내지 않는다면 조비가 우리를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이대로 멸망하고 말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보내기만 한다면 ...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찌 그렇소 ?"

"유비가 즉위한 뒤, 천하가 삼 분 되었으니, 어느 한 축이 무너지면 천하는 붕괴 될 것이고 ... 조비도 유비처럼

천하 통일의 포부가 있는데, 어찌 유비의 침략을 좌시하겠습니까 ? 동오가 사라진다면 조위도 오래 못 가지요.

조비가 가장 바라는 것은 촉오(蜀吳)의 교전으로 공멸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동오가 멸망하는 것은 바라지 않

습니다."

"그런 이치는 나도 아오. 허나... 조비에게 투항을 ?... 너무나 굴욕적이오 ..."

 

장소가 손권의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흔들며 말을 꺼낼 순간을 탐색하였다. 우뚝 선 손권이 노자경의 비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서있자 장소가 입을 열어 말한다.

"군주의 포부는 그런 굴욕을 겪어 가면서 커집니다. "

"자포(子布: 장소의 字) ?"

"예 !..."

"사자로 누구를 보내야겠소 ?"

드디어 손권이 자존심을 접고 현실에 순응하겠다는 의사가 표시되었다.

"중대부 조자(中大夫 趙咨)는 지략이 뛰어난 자로써, 그를 보낸다면 주공의 위엄이 손상되지 않토록 하면서

우리의 의견을 잘 전할것으로 보입니다."

"좋소, 지금 즉시 투항서를 작성해서 조자를 허창에 보내시오."

마침내 손권은 고심끝에 허락을 하고야 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