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1. 10. 25. 09:59

삼국지(三國志) (396) 사마의, 공명에게 쫓기다

 

공명이 세상을 뜨던 날, 하늘과 땅도 그 슬픔을 아는지 고요하기 그지 없고 달빛 조차 제 빛을 잃고 말았다. 

강유와 양의는 공명의 유명(遺命)을 받들어 감히 소리내어 울지도 못했다.

강유는 공명의 시신을 공명이 지시했던대로 큰 상자에 앉힌 후, 장졸 삼백 명으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위군의 눈을 피해 군사를 물리는 일이 급했으므로, 강유와 양의는 위연에게 은밀히 전령을 보내 후방에서

쫓아오는 적을 막도록 했다. 그리고 여러 곳에 차려진 영채를 천천히 정리하고 군사를 물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사마의는 오늘도 천문을 살피고 있다.

그런데 문득 큰 별 하나가 붉은 빛을 뿜어내더니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긴꼬리를 남기며 흘러간다. 평소

에는 없던 일이라 사마의의 눈은 저절로 그 별을 따라간다. 그 빛은 촉군의 영채 안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은은한 소리까지 내며 솟구치기를 두세 번이나 한다.

그 광경을 보고 사마의는 놀라다가 마침내는 크게 웃는다.

"드디어 공명이 죽었구나! 허허허허!"

공명의 죽음을 직감한 사마의는 기쁜 마음에 즉시 모든 군사를 이끌고 촉군을 추격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막 영채 문을 나서려는데 문득, '공명이 육정육갑(六丁六甲)의 술책을 잘 아는데, 이것 또한 공명의 계책 아

닌가? 내가 싸움에 응하지 않으니 나를 끌어내려는 수를 쓰고 있는 것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난 또 공명

의 계교에 놀아날 것이다.'

하도 공명의 교묘한 계책에 호되게 당해온 세월이 긴지라 사마의의 마음 속에 의심이 싹 튼다. 사마의는

결국 말머리를 돌려 다시 영채로 돌아간다. 그리고 하후패로 하여금 조용히 오장원에 가서 촉군을 정탐하

고 오게 한다.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위연은 영 기분이 좋질 않았다. 자신의 진채에서 잠을 잤는데, 꿈 속에서 난데

없이 자신의 머리에 뿔이 두 개가 불쑥 솟아올랐던 것이다. 잠에서 깬 후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꿈 내용을 꼽씹어보고 있는데, 행군사마 조직(行軍司馬 趙直)이 위연을 찾아왔다.

위연은 조직을 보니 반가웠다. 언젠가 조직이 주역(周易)에 능통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역리(易理)에 밝다니 내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내가 어제 희안한 꿈을 꾸었는데, 내 머리 위에 뿔

이 두 개가 돋았오. 이게 길몽인지 흉몽인지 잘 모르겠소. 해몽을 부탁하오."

조직은 위연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위연에게 해몽을 말해주었다.

"대단히 좋은 꿈을 꾸셨습니다.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린 짐승을 생각해보면 기린이 있고, 창룡(蒼龍)도 있는

데 둘 다 상서로운 동물 아니겠습니까? 이는 곧 장군께 무슨 변화가 있어 하늘로 높이 날아 오를 좋은 징조

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연은 조직이 말을 마치자마자 조직의 손을 덥썩 잡고 기뻐했다.

"크하하하! 고맙소. 공의 해몽이 들어 맞으면 후에 크게 사례하리다."

 

조직은 위연과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상서 비위를 만났다. 비위는 위연에게 공명의 부음을 전하러 가는

길이었다.

뜻밖의 만남에 비위는 반가워하며 조직에게 물었다.

"이른 시간에 어디를 다녀 오시오?"

"위연 장군의 진채에 갔다가 장군이 간밤에 별난 꿈을 꾸었다기에 해몽을 해주고 오는 길입니다."

"꿈? 무슨 꿈이었소?"

"꿈 속에서 장군의 머리 위에 뿔 두 개가 났다고 하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틀림없이 흉몽이었지만, 바른대로

말하면 섭섭해 할 것 같아서 기린과 창룡에 빗대어 좋은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비위는 위연의 꿈이 왜 흉몽인지가 궁금해서 조직에게 더 물었다.

"어째서 머리 위에 뿔이 나는 꿈이 흉몽인 것이오?"

"글자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뿔 각(角) 글자는 칼 도(刀)자 아래에 쓸 용(用)자를 쓰지 않습니까. 머리

에 칼을 쓰는 꼴이니 이 이상 불길한 꿈은 없겠지요."

비위는 조직의 해몽을 듣자 섬찟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직에게,

"위문장의 꿈 얘기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좋겠소."

하고, 당부했다.

 

비위는 조직과 헤어지고 위연에게로 향했다.

위연은 비위가 특별히 자신에게 볼 일이 있을 것이 없는데 찾아온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비위를 맞이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시오?"

"어젯밤 삼경에 승상께서 돌아가셨소. 승상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당부하신 말이 있어 전하러 온 것이오."

"승상께서 돌아가셨다고?"

위연은 크게 놀랐다. 하지만 슬퍼하는 기색이 보이지는 않았다.

비위는 이어서 말했다.

"승상께서 장군은 후방에서 사마의를 막으며 천천히 퇴군하라 하셨소. 사마의가 승상이 돌아가신 것을 모르

도록 발상도 하지 말라 하셨소. 병부(兵苻)를 가져 왔으니 군사를 움직이시오."

비위가 말을 마치자 위연이 불쑥 묻는다.

"그럼 승상의 일은 누가 맡아 보게 되는 것이오?"

위연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 비위는 바로 대답을 했다.

"승상께서는 양의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셨소. 병무(兵務)에 관한 것은 모두 강유에게 맡기셨소. 지금 가져온

병부도 양의의 명으로 가져온 것이오."

"뭣이요?"

위연이 대번에 눈이 희번덕해지며 발끈했다. 그리고 분에 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승상이 돌아가셨어도 내가 있소. 양의는 일개 장사(長史)일 뿐이오. 그리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소?

양의에게는 승상의 시신을 성도로 모시고가 장사나 지내게 하시오. 사마의의 군은 내가 맡아서 깨치면 되오.

승상이 죽었기로니 국가의 대사를 이렇게 그르친단 말이오?"

"승상의 유언이니 일단 따르는 것이 좋겠소."

위연의 우격다짐에 비위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선 좋은 말로 위연을 달랬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오히려 위연은 더 큰 목소리를 냈다.

"생각해보시오. 첫 번째 기산 출정에서 승상이 내 말을 들었으면 장안(長安)은 벌써 우리 차지가 됐을거요.

게다가 난 지금 전장군 정서대장군 남정후(前將軍 征西大將軍 南鄭侯)의 작위를 갖고 있는 몸이오. 고작 장

사 따위의 명을 따라서 뒤나 봐주란 말이오?"

강경한 위연의 태도에 비위는 살짝 한 발 물러나서 위연에게 제안했다.

"듣고 보니 장군의 말이 맞기는 하나 가볍게 움직일 수는 없는 상황이오. 괜히 잘못 움직였다가 적의 웃음만

사고 말 것이오. 내가 양의에게 이야기 해보겠소. 장군에게 병권(兵權)을 넘기도록 잘 달래볼테니 그때까지만

이라도 기다려주시오."

"기다리고 있을테니 빨리 다녀오시오."

비위가 자신의 편을 드는 말을 하자 위연은 그제야 수긍하고 비위의 제안에 응했다.

 

비위는 위연을 두고 급히 양의가 있는 대채로 돌아갔다. 

그리고 양의에게 위연과의 일을 모두 말했다. 

양의는 한숨을 크게 한 번 쉬더니 비위에게 말했다.

"승상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모두 알고 계셨소. 위연이 반드시 금방 딴 뜻을 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내가 병부를 그에게 보내 그의 마음을 떠본 것이오. 역시나 승상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소. 후방은 백약(伯約: 강유의 字)에게 맡기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양의는 강유에게 뒤를 끊게 하고 공명의 영구를 모시고 앞서 떠났다. 모든 것은 공명이 남긴 유언에 따라

절차가 진행되었다.

 

비위가 돌아간 후로 위연은 진채에서 계속 비위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소식이 없자, 마침내

마대를 시켜 대채를 살펴보고 오게 했다.

이윽고 마대가 돌아와서,

"후군은 강유가 맡고 있고, 앞서가는 군은 이미 대부분 골짜기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하고, 보고한다.

그 소리를 듣고 위연의 화가 폭발했다. 분을 어쩌지 못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구르며 악담을 했다.

"이 놈이! 하찮은 선비 주제에 나를 속여? 내 이 놈을 잡아 처참하게 죽이겠다!"

그러더니 곁에 있는 마대를 쓱 보고는,

"어떻소. 공도 나와 함께 하겠소?"

하고, 묻는다.

"저도 양의에게 원한이 있습니다. 장군을 돕겠습니다."

마대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위연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바로 진채를 거둔 후, 거느리는 군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나아갔다.

 

한편, 사마의의 지시로 공명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오장원에 갔던 하후패는 확인 결과를 사마의에게 보고

한다.

"촉군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사마의는 기회를 놓친 안타까움에 발을 구르며 소리친다.

"공명이 죽은 것이 틀림없다! 속히 촉군을 추격하라!"

서두르는 사마의를 하후패가 가만히 말린다.

"도독께서는 직접 앞에서 나서실 것이 아니라 뒤에서 천천히 오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내가 선두에 서야겠다."

"늘 신중하게 움직이시던 도독께서 왜 이번에는 이리 서두르십니까?"

"공명이 죽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제 촉군은 내 마음대로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사마의는 흥분과 기대가 섞인 눈빛으로 출동을 서두른다. 그리고 두 아들과 군사들을 거느리고 오장원으로

진군했다.

 

촉군의 영채에 다다라서 사마의의 군은 크게 함성을 지르며 영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과연 하후패의 말대

로 촉군의 영채는 텅 비어 있었다. 사마의는 본인의 눈으로 촉군이 물러갔음을 확인하자 마음이 더 급해져서

두 아들에게,

"촉군이 대군을 이끌고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가 먼저 가겠다! 너희들은 뒤쳐진 군사들을 재촉

해서 내 뒤를 따르도록 하거라."

하고, 지시하고는 서둘러 촉군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추격이 시작되고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멀지 않

은 곳에서 촉군의 모습이 보였다. 사마의는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해 있는 힘껏 촉군을 바짝 쫓았다. 그런데

갑자기 산 속에서 한 줄기 포향(砲響)이 울리고, 큰 함성 소리가 왕왕 울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마의와

그 군사들이 말을 급히 세운다. 사마의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는데 앞에 있던 촉군이 돌연 방향을 틀어

사마의 쪽으로 달려든다. 달려드는 촉군이 들고 있는 깃발에 써있는 글자는 사마의를 아연실색(啞然失色)하

게 한다.

'한승상 무향후 제갈양(漢丞相 武鄕侯 諸葛亮)'

어찌된 일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아 사마의는 눈을 부릅 뜨고서 촉군의 모습을 살핀다. 깃발이 나부끼는

그 곳에서 수십 명의 장수들이 사륜거(四輪車)를 몰고 나온다. 사륜거 위에는 사람이 앉아 있는데, 학창의

차림에 윤건을 쓰고 학우선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공명이 틀림없다. 사마의는 가슴이 철렁한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바로 지시한다.

"전군은 곧장 후퇴하라!"

사마의가 달아나기 위해 말머리를 돌리는데, 등 뒤에서 강유가 크게 외친다.

"사마의는 꼼짝 마라! 너는 승상의 계책에 걸려 들었다!"

강유가 내뱉은 말에 사마의의 뒤를 따르던 위병들은 혼비백산한다.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지고 창과 칼도

아무렇게나 내버려두고 앞다투어 도망치기에 바쁘다. 위병들이 서로 뒤엉켜 저희들끼리 밟고 밟혀 죽은 자도 수두룩했다. 

사마의는 군사들을 추스릴 틈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정신 없이 오십여 리를 달려

왔을 때, 뒤에서 장수 둘이 소리를 친다.

"도독! 진정하십시오!"

두 장수가 사마의의 말고삐를 움켜 쥐며 말을 세운다. 사마의는 그제야 멈춰서서 손으로 제 머리를 더듬어댄다.

"내 머리가 온전히 붙어 있는 것이 맞느냐?"

"안심하십시오. 촉군은 멀리 가고 없습니다."

사마의는 한숨을 크게 쉬고 가쁜 숨을 몰아 쉬다가 비로소 제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을 불러 세운 장

수 둘을 바라보니 그들은 하후패와 하후혜였다. 너무나도 크게 놀란 나머지 아군의 장수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마의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본채로 돌아왔다. 그리고 즉시 여러 장수들에게 밖으로 나가 촉군의 동정을

살피도록 지시했다. 이틀 후, 마을 토박이 백성 한 사람이 사마의에게 와서 고한다.

"촉군이 산골짜기로 몰려가는데 군사들이 목놓아 울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가 땅을 울릴 정도였고, 군중에

백기가 휘날렸습니다. 공명이 죽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사마의는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되묻는다.

"사륜거 위에 앉아 있던 것은 공명이 아니더냐?"

"살아 있는 공명이 아니라 그를 닮게 나무를 깎아서 만든 인형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마의는 일순간 기운이 빠진다. 그리고 길게 탄식을 하더니,

"아...! 나는 그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였는데 죽음도 헤아리지 못했구나! 공명과 같은 기재(奇才)가 다시 세상

에 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내 가장 큰 적수이자 가장 좋은 지기(知己)였다."

하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이 일을 두고 촉의 백성들은 '죽은 제갈양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생기기까지 하였다.

 

공명의 죽음을 확인한 사마의는 다시 군사를 이끌고 촉군을 뒤쫓았다. 적안파(赤岸坡)까지 이르렀지만 촉군

은 이미 멀찍이 물러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더이상의 추격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사마의는 군사들을

돌려 다시 본채로 향했다. 돌아오는 도중 공명이 세웠던 영채 차리를 지나치게 되었다. 사마의가 촉군의 영채

를 살펴 보니, 법식에 따라 조성되어 전후좌우가 가지런했다. 사마의는 마음 속으로 또 한 번 공명의 능력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군사들을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온 사마의는 장수들을 나누어 각처의 요충지를 지키게 한 뒤, 자신은 황제를

뵙기 위해 낙양으로 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