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1. 10. 26. 12:38

삼국지(三國志) (397) 공명이 떠나고 그 후 1

 

양의는 잔각도(棧閣道) 어귀에 이르러서 비로소 공명의 죽음을 모든 군사들에게 알리고 상복으로 갈아 입도록

했다. 상복을 입은 군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땅을 치고 통곡하며 공명의 죽음을 슬퍼했다.

군사들이 서글픈 울음을 울고 있는데, 문득 산중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양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정탐꾼을 보내어 사정을 알아 보게 했다.

연기의 정체를 알아보러 갔던 군사가 곧 돌아와서 양의에게 보고했다.

"위연 장군이 잔도(棧道)에 불을 질러 길을 끊어 버리고 군사를 거느리고서 길을 막고있습니다."

양의는 설마했던 일이 벌어지자 깜짝 놀랐다. 근심에 싸여 있던 양의는 주변의 장수들에게 물었다.

"승상께서 위연이 반드시 곧 반역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역시 그 말씀이 맞나 보오. 위연이 우리가 지나

갈 길을 끊고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곁에 있던 비위가 양의의 말을 다 듣더니 이야기한다.

"위연은 아마 폐하께 도리어 우리가 반역을 도모했다고 거짓으로 주청을 올렸을 겁니다. 우리도 폐하께 표문

을 올려 위연이 반역했음을 알립시다. 위연을 없애는 일은 그 다음에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비위의 말에 강유도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한다.

"위연이 길을 막고 있다니 돌아가는 길을 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쪽으로 차산(槎山)이라는 샛길이 하나

있는데 길이 험준하긴 해도 차산으로 가면 잔도의 뒷길로 갈 수 있습니다."

비위와 강유의 말을 듣고 양의는 위연의 반역 사실을 표문으로 적어 황제에게 올림과 동시에 군사를 차산

쪽으로 나아가게 했다.

 

성도(成都)에서는 후주(後主)가 아직까지 공명의 소식을 모르고 지내고 있었다. 헌데 후주는 최근 들어 까닭

모르게 침식(寢食)이 개운치 않을 뿐더러 겨우 든 잠에서는 성도를 둘러싸고 있는 금병산(錦屛山)이 무너지

는 꿈마저 꾸었다. 금병산이 무너진 꿈을 꾼 날에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아침이 밝았다.

문무백관이 모인 조회 자리에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후주는 꿈 이야기를 꺼낸다.

"내 지난 밤 괴이한 꿈을 꾸었소. 금병산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꿈이었오. 나라에 무슨 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구려."

후주의 이야기를 듣고는 역리에 밝은 초주가 나와서 황제에게 아뢴다.

"신이 어제 밤에 천문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큰 별이 붉은 빛을 내며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승상께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폐하의 금병산 꿈도 그와 관련이 있는 징조인 듯

합니다." 

"그러한가......"

초주의 말을 들은 후주의 표정은 한층 더 그늘이 진다. 그때 공명의 안부를 물으러 갔던 상서 이복(尙書 李福)

이 돌아왔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후주는 이복을 즉시 불러들여 공명의 소식을 묻는다. 이복은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서 울며 말한다.

"승상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울음을 간신히 참고 공명이 남긴 당부의 말들을 상세히 전했다.

후주는 탄식에 탄식을 거듭하며,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 모양이구나!"

하고, 대성통곡을 한다. 그러다가 그만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용상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공명을 친아버지처럼 여기던 후주 뿐만 아니라 모든 벼슬아치와 백성들까지 공명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공명을 잃은 슬픔으로 나랏일까지 제쳐놓고 있는 후주에게 위연이 올린 표문이 도착했다. 

 

정서대장군 남정후(征西大將軍 南鄭侯) 신(臣) 위연은 황송함을 무릅쓰고 머리를 조아려 아룁니다. 승상이

세상을 떠나시자 양의와 강유의 무리가 군사들을 이끌어 반역을 했습니다. 승상의 영구를 빼앗고 적군을

끌어들이려 하기에 신이 먼저 잔도에 불을 놓아 길을 끊고 온 힘을 다해 막고 있사옵기에 삼가 표를 올려

아뢰는 바입니다. 폐하게서는 밝게 헤아려 주시옵소서.

 

신하가 소리내어 표문을 읽는 동안 후주의 얼굴에는 의아하다는 듯한 빛이 떠오른다.

표문 읽기를 마치자 후주는,

"이상하군. 위연은 용맹하기가 으뜸인 장수라 양의와 강유의 무리를 막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텐데,

왜 잔도를 태웠단 말인가?"

하고, 의심스럽다는 듯이 묻는다. 딱히 누군가 대답을 해주길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곁에서 위연의

표문을 함께 들었던 선제(先帝)의 계비(繼妃)인 오태후(吳太后)가 말을 거든다.

"선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위연은 뒷통수에 반골(反骨)이 있다고 하셨소. 공명이 그것을 알면서도 그를 계속

쓰는 것은 그의 용맹함을 버려두기엔 아까워서라고 하였지. 그러니 위연이 양의와 강유가 반역했다고 고하

는 것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될 것이오. 승상이 양의가 문관(文官)인데도 그에게 장사(長史)로서의 소임을 맡

긴 것은 그만큼 양의가 믿을 만한 자이기 때문일 것이오. 한 편의 말만 듣고 처리했다가 양의가 위(魏)로 투

항이라도 하면 어쩔 것이오? 이 일은 서둘러 결정 짓지 말고 깊이 생각해서 조처해야 하오."

그곳에 모인 관원들은 위연의 표문을 어떻게 볼 것인지 저마다 의견을 내며 논의를 시작한다. 논의가 한창

인 때, 마침 양의로 부터 급한 표문이 올라왔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모든 관원의 시선이 양의에게서 왔다는 표문에 집중된다.

후주는 곁에 있던 신하에게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표문을 읽도록 지시한다.

 

장사 유군장군(長史 緌軍將軍) 신(臣) 양의는 황공하옵게도 머리를 조아려 삼가 표를 올립니다. 승상께서

임종할 때 신에게 대사를 맡기시며, 옛 법과 제도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함부로 법과 제도를 고치지 못하

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위연으로 하여금 뒤를 끊게 하고, 강유로 하여금 그 다음 일을 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위연은 승상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을 따르지 않고, 군사들을 이끌고 먼저 한중으로 가서 잔

도에 불을 지르고 승상의 영구 마저 빼앗아 모반을 꾸미려 하고 있습니다. 변고(變故)에 서둘러 글을 올려

사실을 아뢰옵니다.

 

표문 내용을 들은 장내는 술렁인다. 후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후주를 대신하여 오태후가,

"양의의 글 내용을 모두 들으셨지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소?"

하고, 관료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잠시의 정적이 지나고, 장완(蔣琬)이 아뢴다.

"신의 소견으로는 양의가 성품이 지나치게 급하고 포용력이 다소 없으나 승상의 곁에서 큰 일을 맡긴 사람

이니 결코 반역할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위연은 평소 공을 믿고 오만하게 굴어 사람들이 그를 함부로 대하

지 못했으나, 양의만큼은 위연을 신통찮게 여겨 평소 위연은 양의에 대한 반감이 있었습니다. 양의가 병권을

모두 쥐게 되니 위연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신은 제 가족과 노비들의 목숨을

걸고 양의가 반란을 일으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증할 수 있겠지만 위연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

습니다."

장완이 말을 마치자 동윤(董允)이 일어나 말을 한다.

"위연은 스스로 공이 높음을 자랑하며 매사에 불평불만이었습니다. 위연의 곁에 있는 자 중에 위연의 불평을

듣지 못한 자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껏 조용히 지냈던 것은 승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두려워하

던 승상이 돌아가셨으니 그 틈을 타서 반란을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양의는 재주가 뛰어나 승상의

신임을 얻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 굳이 배반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장완과 동윤의 의견이 모두 위연이 반역하기 위해 거짓 표문을 올린 것이라는 것에 모아졌다.

후주는 골치가 아픈 듯 눈을 질끈 감고 미간을 좁히며,

"위연이 모반을 꾸미고 있다면 이를 무슨 수로 막아야 한단 말이냐?"

하고, 관료들에게 묻는다.

장완이 즉시 대답한다.

"승상께서는 위연이 그럴 것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을 겁니다. 반드시 양의에게 위연을 잡을 계책을

남겨 두셨을테니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것입니다. 양의가 골짜기에 진입한 것만 봐도 역시나 믿는 바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위연은 반드시 승상의 계책에 빠질테니 마음 놓고 계십시오."

 

위연과 양의의 표문이 연달아 올라오고 며칠 후, 위연의 새로운 표문이 후주 앞에 또 도착한다. 위연의 표문

은 첫 번째로 올라왔던 표문과 마찬가지로 양의의 무리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잠시 후, 또 표문이 도착하였는데 이번엔 양의가 올린 것이다. 양의의 표문 또한 이전의 표문과 같이 위연이

반역을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두 사람이 번갈아서 표문을 올려대니 조정은 함부로 그 누구의 이야기가 옳다고 판단할 수가 없었다.

혼란은 자꾸만 더해져 진실이 무엇인지 더 복잡해져만 가고 있는 와중에 비위가 성도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후주에게 들어갔다. 후주는 어서 비위를 들게했다.

"위문장(魏文長: 위연의 字)과 양위공(楊威公: 양의의 字)의 표문이 번갈아 올라오고 있는데 어찌된 일이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위연이 모반을 일으켰습니다. 양의가 제갈 승상께서 하시던 일을 임시로 보며

승상의 유언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회군하고 있는데 그것에 불만을 품은 위연이 자기의 군사를 이끌고 운구

행렬이 지나가야 할 길을 끊고 버티고 있습니다."

 

비위의 보고를 들은 후주는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고민에 빠졌다.

"승상이 떠나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후주는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결단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사태가 이러하다면 동윤에게 절(節)을 줄테니 위연을 찾아가서 좋은 말로 잘 달래 보도록 하라."

위연이 그동안 나라에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에 후주는 위연에게 기회를 한 번 주기로 한 것이다.

 

이때 위연은 잔도를 불태워서 길을 끊은 뒤에 남곡(南谷)에 자리를 잡고 양의와 강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계책을 썼다고 자평(自評)하며 곧 병권을 얻게 될 것이라고 흐뭇해 하며 있는데, 양의와 강유가 샛길

을 통해 남곡 뒤로 빠져 나가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양의는 혹시라도 한중을 잃게 될까 염려하여 하평(何平)에게 군사 삼 천을 주고 앞서 나아가게 하고, 자신

은 승상의 영구를 모시고 뒤따라 한중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남곡 뒷편에 다다른 하평은 군사들로 하여금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게 하여 위연에게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위연의 정탐병은 하평이 군사를 몰고 오

는 것을 재빠르게 위연에게 보고했다.

"양의가 하평을 선봉으로 세워서 싸움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이 놈들이!"

위연은 이를 꽉 깨물면서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군사들을 휘몰아 달려나갔다.

 

양의와 위연의 진영이 대치하고 있다.

하평이 기세가 좋게 치고 나오면서,

"역적 위연이 여기에 있느냐!"

하고, 외친다.

위연은 그에 맞서,

"양의와 한 패가 되어 역적질을 한 것이 누구인데 나를 욕하느냐!"

하고, 외치며 달려 나온다.

용장 위연 앞에서도 하평은 위풍당당하게 또 외친다.

"승상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역적질을 시작한 것이 네가 아니냐!"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채찍으로 위연의 군사들을 가리키며,

"너희들은 모두 서천사람이다. 고향에 부모, 처자식, 형제, 친구를 두었지 않느냐! 승상이 생전에 너희들을

박하게 대접하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은혜도 모르고 역적질을 돕고 있느냐? 고향으로 돌아가서 상과 벼슬이

내리기나 기다리고 있어라!"

하고, 말한다.

하평의 말에 위연의 군사 대부분이 각기 흩어져 달아나고 만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힌 위연은 당장에 칼을 휘두르며 하평을 향해 달려든다.

하평과 위연의 싸움이 시작됐다. 하평의 기세도 위연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몇 합을 싸우다가 하평은 달아

나기 시작한다.

"어디를 도망 가느냐!"

위연은 말에 채찍을 가하며 하평의 뒤를 바짝 쫓는다. 그런데 갑자기 하평의 군사들이 일제히 활을 들더니

위연에게 화살을 쏘아댄다. 빗줄기가 내리는 것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위연의 군사들은 대부분이 죽고 살아

남은 자들은 달아 나기에 급급하다. 위연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는 아군이었다가 도망가는 군사들에게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른다. 하지만 그렇게 무력으로 달아나는 군사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위연 본

인도 팔에 화살을 맞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위연의 군사들이 뿔뿔이 다 흩어진 와중에도 마대의 군사만은 위연의 곁을 지키고 있다. 위연이 의지할

곳은 마대와 마대의 군사 삼백 뿐이었다. 위연은 마대를 보고 감격에 차서,

"공이 나를 이렇게까지 도와주다니! 대사를 이루는 날에 결코 그대의 공로를 져버리지 않겠소!"

하고, 말하고는 마대와 함께 하평의 뒤를 쫓는다.

부지런히 쫓았지만 하평의 군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위연은 하평을 쫓는 것을 단념하고

얼마 남지 않은 군사나마 수습을 한 뒤, 마대에게 슬며시 제안 하나를 한다.

"함께 위(魏)에 투항하는 것은 어떻겠소?"

위연의 투항 제안에 마대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장군은 어찌 그리 슬기롭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까? 대장부로서 패업(霸業)을 도모하지 않고 이다지도 쉽게

남에게 가서 무릎을 꿇으실 작정이십니까? 장군만큼 지략과 용맹을 갖춘 사람도 없는데 실망스러운 말씀은

마십시오. 서천(西川), 동천(東川) 어디에도 장군과 맞설 수 있는 간 큰 자는 없습니다. 나는 장군과 먼저 한

중을 차지하고 서천으로 들어가서 양천까지 얻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마대의 말에 위연은 금방 마음을 고쳐 먹었다. 자기를 추켜세우는 마대의 말에 기분이 고양된 위연은 서둘러

군사를 이끌고 남정(南鄭)을 향해 달려 나간다.

 

양의와 강유는 남정성(南鄭城)에서 위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유가 성벽 위에 올라 상황을 살피

고 있는데, 멀리서 위연과 마대가 휘몰아쳐 오는 것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강유는 성의 현수교(懸垂橋)를

들어 올리고 성문을 굳게 닫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금세 성문 앞까지 도달한 위연이 성 위를 올려다 보며,

"내가 왔다! 어서 항복하라!"

하고, 기세 좋게 외친다.

 

성 안에서 위연의 군사를 지켜보던 강유는 양의를 돌아보며,

"위연의 용맹이 대단한데 옆에 마대까지 붙어 있습니다. 군사 수가 많이 남은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뭔가

계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염려의 말을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양의의 표정은 어딘가 여유가 있다.

"걱정하지 마시오. 승상께서 임종 전에 내게 금낭(錦囊) 하나를 주셨소. 위연이 배반하는 날이 오거든 주머

니를 열어 보라 하셨는데 이제 그때가 된 것 같군."

양의는 주머니의 끈을 끌러서 내용물을 꺼낸다.

주머니에서는 종이 봉투 하나가 나왔다. 봉투 겉봉에는 '위연과 대적할 때 말 위에서 이것을 열어보라'라고

적혀 있었다. 

강유는 공명의 한 글자 한 글자가 반가웠다. 강유는 기뻐하며,

"역시 승상께서는 미리 계책을 다 준비해 두셨습니다. 장사(長史)께서는 제 뒤를 따라 나오십시오. 제가

먼저 군사를 성문 밖으로 이끌어 진을 펼치겠습니다."

하고, 말한다. 

강유는 말을 마치자마자 삼천 군마를 이끌고 성문을 힘차게 열고 나간다.

공명의 계책을 비장의 무기로 가지고 있는 강유는 거칠 것이 없다. 창을 치켜들고 위연의 진영 앞에 서서

위연을 호출한다.

"역적 위연 나와라! 승상의 은혜도 모르고 너는 어찌 나라를 배반하느냐?"

그 소리를 듣자 위연 또한 기세 좋게 칼을 쳐들고 앞으로 나온다.

"넌 이 일에 관여하지 말아라. 양의나 앞으로 나와라!"

양의는 강유가 위연을 대응하는 동안 뒤에서 공명이 남긴 금낭 속 봉투를 살며시 열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리자 말을 타고 위연의 앞으로 나왔다. 양의는 손으로 위연을 가리키며 호통을 친다.

"승상께서 생전에 네 놈이 언젠가 반역을 일으킬 것이라 말씀하시며 나에게 대비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딱 맞는구나! 이 역적아! 넌 '누가 감히 날 죽이겠느냐!'라고 크게 세 번 외칠 수 있느냐? 용맹한 대장부라면

그렇게 해봐라! 그렇게 하면 내가 두말 않고 한중 땅을 내어주마!"

위연은 자신의 용맹함을 비웃는 듯한 양의의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껄껄하고 소리내어 웃는다. 

"양의, 쓸데없이 말이 많구나. 공명이 살아있을 때는 몰라도 지금의 나는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너야말

로 대장부라면 싸워서 승부를 봐야지 말장난이나 하고 있자는 거냐? 그까짓 말은 세 번이 아니라 삼만 번을

외쳐도 무서울 것이 없다."

위연은 한 손으로는 말 고삐를 힘차게 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휘둘러 보이며 기세 좋게 외친다.

"오늘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 누가 감히 나를..., 윽...!"

양의가 말한 세 번의 외침을 채 끝맺기도 전에 위연의 외침은 끝나고 말았다.

"내가 너를 죽인다!"

하고, 마대가 튀어나와 위연의 목을 그어 버린 것이다.

위연의 머리는 마대의 칼놀림 한 번으로 바닥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모두가 뜻밖의 상황에 놀라 마대를

쳐다 보았다.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마대는 상황을 설명할 필요를 느끼고 입을 연다.

"승상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비밀지시를 내리셨소. 위연이 반역할 것이니 그를 돕는 척 하다가 '누가

감히 날 죽이겠느냐' 하는 말을 위연이 하게 되면 그때 그의 목을 베라는 것이었소."

양의는 마대의 설명에 또 설명을 덧붙인다.

"승상께서 남기신 금낭 속 봉투에는 '위연으로 하여금 말 위에서 '누가 감히 날 죽이겠느냐'라는 말을 세

번 외어 보게 하라. 만사가 해결된다.'라고 적혀 있었소."

남은 군사들은 뒷일까지 생각한 공명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주가 위연을 설득하기 위해 절을 들려 보냈던 동윤이 남정에 도착한 것은 마대가 이미 위연의 목을 벤

이후였다. 강유는 마대와 군사를 합치고, 양의는 위연의 죽음을 표문으로 적어 후주에게 올렸다.

양의의 표문을 읽은 후주는,

"위연이 큰 죄를 지었으나 이미 죽음으로써 죗값은 받았으니 그 동안의 공을 생각해서 장례를 치러 주어라."

하고, 후의(厚意)를 베불었다.

 

위연의 반역을 잠재운 양의 일행은 공명의 유해를 모시고 성도로 향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