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1. 10. 27. 10:19

삼국지(三國志) (398) 공명이 떠나고 그 후 2

 

양의의 일행은 사마의, 위연과의 싸움을 치른 끝에 공명의 유해를 성도로 무사히 옮겨 올 수 있었다.

후주는 공명의 운구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정의 관료들과 함께 상복을 입고 성밖 이십 리까지 직접 나가 공명을 맞이했다. 후주 이하 문무백관과 백성들까지 하나같이 공명의 죽음을 슬퍼하여 온 나라가 곡성으로 가득할 지경이었다.

 

궁궐로 돌아온 후주 앞에 양의가 스스로를 결박하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폐하, 폐하의 명 없이 감히 위연의 죄를 처단하였습니다. 독단적인 행동으로 폐하께 심려를 끼쳤으니 마땅한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양의는 후주에게 죄를 청한다.

후주는 신하들에게 양의의 결박을 풀어주라고 지시한 후에 양의에게 말한다.

"경이 없었다면 승상의 영구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반역자 위연을 어떻게 없앨 수 있었겠는가? 일이 무사히 마무리 된 것은 모두 경 덕분이니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후주는 양의의 공을 인정하여 중군사(中軍師)의 벼슬을 내리고 마대에게는 역적을 죽인 공이 크다하여 그가 죽인 위연의 벼슬을 그대로 물려주었다.

 

양의는 공명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황제에게 작성했던 표문을 후주에게 올렸다.

후주는 양의가 건네는 공명의 표문을 두 손에 받아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리 없이 흘리던 눈물은 표문 읽기를 마칠 때쯤 되자 통곡으로 변하였다.

 

후주는 신하들로 하여금 공명을 위한 명당자리를 찾도록 지시했다. 옆에 있던 비위가 후주에게,

"폐하, 승상께서는 본인을 정군산(定軍山)에 묻어 달라 부탁하셨습니다. 화려한 담장, 석상 같은 것은 두지 말고 제물 또한 쓰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고, 공명의 뜻을 전했다.

후주는 공명의 뜻에 따랐다. 시월 길일(吉日)을 택하여 몸소 공명의 영구를 이끌고 정군산으로 가서 공명을 고이 묻어 주었다. 이어서 제(祭)를 지내고 공명에게 충무후(忠武侯)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공명의 묘는 평소 공명의 담백한 성품을 닮아 검소하고 소박했다. 공명의 유언을 받들어 요란한 석물 장식은 없었지만 평소 공명이 사랑하던 거문고를 본떠 만든 돌 거문고 하나만은 세워두었다.

 

후주가 공명의 모든 장례를 마치고 성도로 돌아가자마자 신하가 급한 보고를 한다.

"폐하, 변방에서 소식이 오기를, 동오(東吳) 장수 전종(全綜)이 군사 수만을 이끌고 파구(巴丘) 접경에 주둔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공명을 슬픔으로 보내고 온 후주에게 근심과 더불어 불안까지 더해진다.

후주는 모여있는 관료들을 둘러보며,

"승상께서 눈 감자마자 동오가 동맹을 져버리려는 모양이오. 어찌해야 하겠소?"

하고, 묻는다.

장완이 나와서 침착하게 말을 한다.

"신(臣)이 왕평과 장의와 더불어 군사 몇 만을 데리고 영안(永安)으로 가서 만일의 일에 대비하고 있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승상의 상(喪)을 전하러 왔다는 명목으로 사자를 동오로 보내어 그들의 동정을 파악해보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옵니다."

후주는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장완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그럼 사자로는 누가 가면 좋겠소? 우리의 뜻을 이루려면 반드시 언변이 좋고 임기응변에 능해야 할텐데..."

후주가 고민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

"소신이 가보았으면 합니다."

앞으로 나선 사람은 참군 중랑장 종예(參軍 中郞將 宗預)이다. 종예는 재주도 탁월하고 기개도 있었으므로 후주는 바로 승낙하였다.

그리하여 종예가 동오 손권에게 공명의 부음을 알리고 촉오동맹의 상황을 살피는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동오로 떠났다.

 

종예는 자진해서 동오의 상황을 살피러 나섰지만 걱정과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동오와의 동맹은 촉에게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길을 재촉하여 동오 금릉(金陵)의 궁궐에 들어선 종예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권을 비롯하여 자리를 같이 한 신하들이 모두 흰 상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예는 아마도 공명을 기리기 위함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손권에게 공손한 절을 했다.

종예가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 손권의 얼굴을 마주 보는데 손권의 낯이 굳어있다.

"그대의 주인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마침 잘 왔소."

입을 연 손권의 목소리가 무겁다.

"우리 오나라는 촉한과 한 집이나 마찬가지인데 촉주(蜀主)는 어째서 백제성(白帝城)의 군사를 늘린 것이오?"

손권의 물음에 종예가 대답한다.

"종예가 군사들과 파구에 자리를 잡으니 촉에서도 백제성에 군사를 늘려 수비를 강화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겠사옵니까?"

당당한 종예의 대답에 굳어 있던 손권의 표정이 풀어지며 미소까지 짓는다.

"경의 언변이 이전에 사신으로 왔던 등지(鄧芝) 못지 않구려."

손권의 미소와 칭찬이 더해지자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어서 손권이 말한다.

"제갈 승상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소. 소식을 들은 날부터 눈물 마를 날이 없이 지내고 있소. 승상을 잃은 슬픔에 나와 관료들은 모두 상복을 갖춰 입었소."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힘입어 종예는 단도직입적으로 손권에게 묻는다.

"그러하오면 파구에 병력을 증강시키신 까닭은 무엇이옵니까?"

"공명의 부음을 듣고 슬퍼하던 중에 가만 생각해보니 위(魏)가 취할 행동이 걱정되었소. 국상(國喪)을 틈타서 위나라가 촉나라를 침공하면 큰 일 아니오. 만약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면 빠르게 출정(出征)할 수 있도록 파구의 병력을 만여 명 늘렸소. 다른 뜻은 없으니 염려 마시오."

"감사하옵니다."

종예는 손권의 진심을 확인하고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한다.

"짐이 경의 나라와 동맹을 맺기로 하였는데, 어찌 그 의리를 져버릴 수 있겠소? 허허허!"

손권은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천자(天子)께서 소신을 보내신 것도 그저 제갈 승상의 상사(喪事)를 동맹국에게 전하기 위함이옵니다. 다른 뜻은 없사옵니다."

"촉한의 염려를 모르는 것이 아니오. 내가 동맹의 굳건함을 맹세해 보이겠소."

손권은 금으로 만든 화살을 한 대 가져오게 하더니 종예가 있는 앞에서 금 화살을 꺾으며 맹세를 한다.

"짐이 촉한과의 동맹을 배신하는 날이 오면 내 자손이 끊어질 것이다!"

그리고 사신을 뽑아서 향과 비단 등의 부의(賻儀)를 갖추어 문상을 하고 오도록 명한다. 

 

종예는 동오의 사신과 함께 성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후주에게 동오에서 손권과 있었던 일을 상세히 보고하였다. 후주는 크게 기뻐하며 임무를 잘 수행한 종예에게 상을 내리고 오나라 사신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공명의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동오와의 동맹도 확인한 후주는 드디어 조정의 인사를 개편하고 변방의 수비장들을 새로 임명하기 시작했다. 공명의 유언대로 장완(蔣琬)이 공명의 후임으로 승상 대장군 녹상서사(丞相 大將軍 錄尙書事)에 올랐고, 비위(費褘)는 상서령(尙書令)으로 장완을 보좌하여 승상부의 일을 맡았다. 오의(吳懿)는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올라 한중(漢中)의 통솔을 맡게 되었으며, 강유(姜維)는 보한장군 평양후(輔漢將軍 平襄侯)가 되어 각 방면의 병마를 통솔하고 오의와 함께 한중에 머물면서 위나라의 침략을 대비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나머지 관료들은 이전 관직 그대로 일을 하게 하여 혼란이 없도록 하였다. 이는 사람을 함부로 갈지 말라는 공명의 유언 중 하나였다.

 

인사 조정이 끝나자 양의는 서운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사마의를 따돌리고 역적 위연을 물리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공명의 운구를 옮기는 것에 큰 몫을 했던 터라 큰 벼슬과 상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욱이 자신보다 벼슬길에 늦게 들어선 장완이 승상의 자리에 오르고 본인은 그 밑에서 일을 하게 되자 상서령 비위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전군을 이끌고 차라리 위나라에 투항을 했더라면 이런 섭섭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오!"

비위는 위나라까지 운운하며 불평을 하는 양의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후주에게 양의가 했던 말을 그대로 표문으로 올렸다. 그 내용은 후주를 크게 화나게 했다.

"당장 양의를 옥에 가두어라! 곧 심문을 하고 목을 벨 것이다!"

후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곁에 있던 승상 장완이 후주에게 가만히 아뢰었다.

"폐하, 비록 양의의 죄가 크긴 하오나, 그동안 제갈 승상을 잘 보좌하여 여러 공을 세웠으니 참형만은 면해주시옵소서. 관직을 삭탈하고 평민으로 삼는 것만으로도 양의에게는 큰 벌이 될 것이옵니다."

"짐의 노여움이 가볍지 않으나, 승상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승상이 말한대로 처리하시오."

양의는 평민의 신분이 되어 한중 가군(嘉郡)으로 쫓겨났다. 그런데 쫓겨나서도 잘못을 뉘우치며 조용히 살지 못하고 후주에게 남을 비방하는 표문을 올려 후주의 화를 돋우었다. 결국 양의는 더 깊은 산골짜기로 쫓겨나게 되었고 스스로 분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자결하고 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