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신앙/오백나한

    2114 2013. 1. 9. 10:21

     

     

     

     

     

     

     

     

     

    1.  아약교진여존자(阿若陳如尊者)

    실달다(悉達多), 곧 불교의 교주 석가모니께서 정반왕(淨飯王)의 태자시절에 일심으로 세상의 일체 고난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 수행의 길로 나섰다. 부친의 만류도 그를 말릴 수가 없자 부득이 부친은 아들의 소원을 따르게 되었고 친족들 중 아약교진여를 비롯한 다섯 사람을 동행 시켰다. 그들은 먼저 저명한 수행자를 방문하고 나서 또다시 고난의 고행길을 행했다.
    오비구(五比丘)는 몇가지 설이 있으나 콘단냐(Kondanna:倧蓮如=교진여) · 아사지(Assaji:阿說示) · 마하나마(Mahanama:摩訶男) · 밧디야(Bhaddhiya:婆提) · 바파(Vappa:婆頗)다.

    호흡수련과 단식으로 고행 6년후 실달다는 얼굴이 초췌해지고 늑골이 다 드러났다. 정신적 깨달음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고행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강에서 목욕도 하고 또 목장주인의 딸 수자타여인이 주는 우유죽 공양을 받았다. 이를 본 아약교진여 등은 실달다가 타락 했다고 생각하여 그를 떠나 다른 곳으로 계속 고난의 수행을 하였다.

    그 후 실달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크게 깨닫고 부처님이 되었다. 불타가 된후 석가모니께서는 아약교진여 등의 사람들을 찾아서 불교교리와 부처의 자비를 알리고 깨닫게 하여 이 다섯사람으로 하여금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고 불교 최초로 가장 먼저 깨쳤으며, 십대 제자는 아니지만 오백나한에 들게 되었다.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 석가세존께서 나의 큰 제자인 교진여비구는 앞으로 육만 이천억의 부처님을 공양한 뒤에 성불하리니, 그 이름은 보명여래라. 고 수기를 주셨다.

     

    <증일아함경>에서 내 불법(佛法) 중에서 관인박식(寬仁博識)하여 처음으로 법미(法味)를 받은 것은 구린여(拘隣如)비구가 으뜸이다 하였다.
    초기 불교 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목련존자(目連尊子)가 250명이나 되는 수행자들을 데리고 귀의하자, 석가모니 부처님께 간청하여 히말라야산 찬단타 숲의 만다키니 호숫가로 물러나 여생을 보냈다.  그가 죽자 그에게 먹을 것을 날라주던 코끼리들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2 . 아니루존자(阿尼樓尊者)

     

    <무극보삼매경(無極寶三昧經)>권하의 기록에 의하면 불교 교주 석가모니께서 일찍이 라열지죽원(羅閱祗竹園)에 계실때 비구가 1250명, 보살이 90억명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대나무 동산에서 자연적으로 대나무꽃이 자라났는데 꽃마다 백만개의 잎이 달렸고 그 위에는 각 부처님께서 앉아 계시고 부처님 앞마다 각 보살들이 부처님께서 불교교리를 배웠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고 함께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부처가 되는 것을 교설하실 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땅에서 삼백장 떨어진 공중에 떠서 꽃향기를 내어 뿜었다. 아니루보살은 이와 같은 이유를 석가모니 부처님께 물으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그 깊은 뜻을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비단천은 본래 깨끗하다. 물을 들인 오색은 찬란하다. 비단이 깨끗한데 색 역시 깨끗하다. 두 물체의 인연은 맑고 좋은 데 있다. 색 역시 그 비단에 들지 않고 비단 역시 색에 물들지 않으나 그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두 물체는 융합되어 인연가합을 이룬 것처럼 보살이 깨끗함으로 향기롭고 그 인연이 되풀이된 것이다. 보살이 꽃향기속에 있지 않고 꽃향기도 분명히 보살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제천 및 사람들이 사념을 거두고 밝고 현명한 방법을 찾으면 곧 꽃이 보이며 또 꽃의 깨끗함으로 인연이 일어난다. 법 역시 이와같은 이치이다” 라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니루존자에게 일러 말씀하시어 아니루존자를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였다고 한다.

     

     

     

    3. 유현무구존자(有賢無垢尊者)

    무구위덕보살(無垢威德菩薩)을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찌기 여러보살들에게 세상 삶의 근심걱정을 멀리 떠나 각종 죄악의 사념이 일어날 가능성을 제거하고 불교의 계율에 따라 수행의 도리를 깨달아 해탈을 얻으라고 훈계했다.
    이와같이 그를 무구신(無垢身)이라 불었다.

    <대방광삼계경(大方廣三戒經)>에 의하면 이 보살의 위치가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의 아래라고 하지만 그분은

    보현, 문수 두 보살의 자비와 공덕을 갖추고 능히 모든 사찰에서 자신의 무량 공덕상을 나타내고 자신의 피곤도 무릅쓰며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 보살의 안계(眼界)는 깨끗하여 보이지 않는 것이 없으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지니고 계신 체의 비범한 신통이 있고, 지혜의 빛은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비추며 지나온 과거와 아직 겪지 않는 미래까지도 비춘다.
    그는 이미 만물에 은혜를 베풀며 거만하지 않으며, 오히려 마음은 맑고 고요하고 생각은 혼잡스럽지 않고 세상에 불법을 널리 알리고, 중생이 고해로부터 벗어나 피안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였다.


     

     

    4. 수발타라존자(須跋陀羅尊者)

    소발타라(蘇跋陀羅), 수밧다 라고도 한다. 

    수발타(須跋陀)의 뜻은 선하고 지혜롭다는 말이다.
    고인도의 구시나의 파라문 학자로 당시 이미 120세가 되었는데 외도를 닦아 공덕이 심히 깊었으며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明通), 여의통(如意通) 등의 5신통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사라림(娑羅林)에서 곧 열반하신다는 말을 듣고,

    외도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나에게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부처님께서 해결해 줄 것이고, 진리를 설명해 주실거라고 생각하고 급히 찾아뵈었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미리 알고 아난에게 알려 주었다.

    한밤중에 수밧다가 왔으며 부처님으로 부터 모든 법과 율은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八正道>을 듣고, 출가를 허락 받아자 곧바로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홀로 머물면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수행 하였으며

    나는 생존 조건을 다했다. 나의 청정한 범행은 완성되었다. 내가 해야 할 바는 모두 끝났다. 나는 이제 다시 윤회의 생사로 돌아가지 않는다. 라고 아라한과를 마침내 깨우쳤다.

    이렇게 해서 존자는 석가세존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대반열반경>에서 수밧다존자가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이제 세존께서 입멸하는 것을 차마볼 수 없습니다. 금일 석가세존 보다 먼저 입멸하고자 합니다.

    세존이 허락하자 수밧다존자는 火界三昧들어가 입멸한다.
    소상(塑像)은 오른손을 들었는데 얼굴은 선한 기색을 띠었다.

    이는 수발타가 불교 최고의 진리를 깨닫는 순간을 나타내고 있다. 신정(神精)의 모습이라 한다.

     


     



    5. 가유타이존자(迦留陀夷尊者)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 부처님이 부루나 존자에게 오랜 겁이 지난 후 법명(法明)이라는 이름의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를 주신 뒤, 다시 오백명의 아라한들에게 오랜 겁이 지난 뒤 보명(普明)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를 주신다. 보명불이 성불한 후 다시 다음에 보명(普明)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가 출현할 것이라고 수기를 주게 되는데 이렇게 오백명의 보명불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제자들의 이름은 우루빈나가섭, 나제가섭, 가야가섭, 가유타이, 아누룻다, 리바타, 겁빈나, 박구라, 사가타등의 오백명이다.

     

    석가모니의 생시에 6명의 스님이 늘 불교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을 했는데, 그들을 6비구라 불렀다.
    불교의 많은 계율은 이 여섯 사람 때문에 제정되었다. 가유타이는 이 6비구 중의 한 사람이었다.

    원래 석가모니의 궁중스승이었으나 후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의해 득도하였다.
    가유타의 뜻은 ‘검은 빛(黑光)’ 이다. 얼굴이 검어서 이 이름을 얻었다.

    당시 스님들은 탁발하면서 살아갔는데 가유타이는 늘 밤에 나가서 탁발을 하였다.
    하루는 흐리고 구름이 낀 밤에 한 임신부 집에 이르러 탁발을 하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자 임신부는 자기 앞에

    검은 귀신이 나타난 줄 알고 놀라서 “너는 어디서 온 귀신이냐?” 하고 묻자 가유타이가 “나는 불가의 제자인데

    탁발하러 왔소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 일로 가유타이는 큰 욕을 먹고 임신부는 놀라서 낙태를 하였다.
    석가모니께서 이 사실을 알고 계율을 세우셨는데, 출가인은 손금이 보일때 부터 해가 머리위에 올 때까지만 탁발하라고 하셨으며, 매일 한끼를 먹게 하고 오후가 지나면 쌀 한알도 먹지 못하게 하였다. 시주(施主)가 밥 먹기 전에 탁발하지 못하게 하여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였다.
    가유타이존자는 제바달다와 어울려 육근 비구로 온갖 나쁜 짓을 했다는데 나중에는 정진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석가모니 부처님의 초기의 제자이며 풍부한 불교이론을 익혔다.

     

     

     

    6. 문성득과존자(聞聲得果尊者)

    문성득과존자께서는 덕을 행하여 그 평판이 매우 좋았다.

    <지지론(地持論)>에 의하면 “말을 듣고 이치에 통달했다 하여 성문(聲聞)이라 이름하였다” 고 하며

    <대승의장(大乘義章)> 17권에 의하면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닫게 되었다고 하여 성문이라 하였다” 고 했다.

    문성득과존자는 부처님의 설법을 배움으로 널리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주저하지 않고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열반 경지에 들어갔다.

     

     

     

    7. 전단장왕존자(檀藏王尊者)

    전단니타(檀尼陀) 라고도 불렀는데 월지국(月支國)의 국왕이었다.
    불멸후 600년 마명(馬鳴)대사께서 고인도의 마갈국(摩竭國) 화씨성(華氏城)에서 설교하였는데 사람들에게

    고공무아법(苦空无我法)을 전파하고 불가의 음악 성음(聲音)을 지었다. 그 리듬이 맑고 우아하였으며 음률이

    슬프고 부드러워 성안에서 오백여명이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국왕은 이런 일이 계속되면 국가의 땅은 있어도 국민이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마명대사로 하여금 불교를 선전하고 불교음악 연주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얼마후 월지국의 전단장왕이 병사를 인솔하여 마갈국을 격패시켰다. 그리하여 마갈국왕은 마명대사에게 바루와 많은 황금을 주고 전단장왕에게 바치게 하였다.
    전단장왕은 본국으로 돌아간 후 마명으로 하여금 불교를 홍포하는 행위와 불악을 연구하는 행위등을 풀어주었다.

    마명대사는 월지국에서 중생의 이익을 위해 많은 선업을 행하였다. 전단장왕의 많은 관원과 백성들은 모두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월지국에서도 불교가 성행하여 불교를 흥하게 하고 보감하였다 하여 전단장왕은 일곱 번째의

    존자가 되었다.

     



    8. 시당무구존자(施幢無垢尊者)

    존자께서는 덕을 많이 쌓았기에 존경받았다. 소위 당(幢)인데 대나무 꼭대기에 각종 색깔의 비단천으로 장식한 장대기둥을 불전 앞에 세웠는데, 그 깃발은 중생들이 여러 악귀를 굴복시킨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시당무구존자는 불교에 귀의한 후 당깃발을 만들어 부처님법을 찬송하고 불교교리의 힘을 득취했다.
    일심 수행하고 계율을 엄격하게 준수함으로써 깨끗하고 아무것에도 물들지 않는 무구(無垢)의 경계에 도달하여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9. 교범발제존자(梵鉢提尊者)


    범파제(梵波堤), 가범파제(迦梵波堤), 우적비구(牛迹比丘)라고도 한다.
    부처님 제자로 율법 해석<해율 제일>의 최고 권위자.

    전생에 벼를 수확하다가 벼이삭 낱알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 죄로 5백생동안 소로 태어나 그 잘못한 과보를 받았다.
    사리불을 스승으로 숭상하여 후에 승려가 되어 천상의 니리사(尼利沙)라는 동산에 거주하였다.

    석가모니께서 열반하신 후 제사 가섭이 삼장(三藏)을 결집하였는데 아무도 비니장(毘尼臧)을 결집하지 못하자 가섭이 사람들을 보내어 천상에 있는 교범에게 요청하였다.

    교범은 석가존자께서 열반하셨고, 사리불이 시적(示寂)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애통해 하면서 마침내 석가모니존자와 은사를 따라가기로 결심했고, 선정에 들어가 이들을 따라 하늘에 오르니 손으로 해와 달을 잡고 몸에서는

    빛을 내며, 몸과 마음을 태우니 몸 안에서 네 줄기의 물이 흘러나와 이 물줄기가 가섭에게 이르렀다.

    네 구절 4구게가 전해왔고

    여기에 새끼 코끼리가 어미를 따라 가듯이 석사모니를 따라간다고 적혀 있었다. 또
    전생에 기러기였다는 전설인데,  그때 안왕<석가모니 전생>을 공양한 공덕으로 후세에 나한으로 태어났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우왕(牛王)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는 우적(牛跡)이라 합니다.
    옛날 오백세에 걸쳐 일찍이 우왕(牛王) 노릇을 한 바가 있어, 소에게는 무엇을 먹고 나면 되새김질을 하는 버릇이 있거니와, 그 남은 보(報)가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짝짝대고 항상 입맛을 다셨합니다.
    교범바제는 사람들의 웃음을 피하려 하는 까닭에 늘 천상에 거주하였는데 천신들은 사람과는 달리 덕이 있음을 알아보아 그 외모를 웃지 않으니 천상에 있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10. 인타득혜존자(因陀得惠尊者)


    불교경전 중에 인타라(因陀羅)라고 하는 이가 있는데 바로 이 분이다.
    인타라의 약칭은 인타이다. 불전에서 뿐만 아니라 번범어(梵語)의 제일권에 이르기를 인타달보살은 인타라달다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였고 <경덕전정록>,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마하가섭에게 넘겨주어 대대로 계승하여 왔으며 서천 인도 제24대 선조인 사자(師子)께서 제25대 선조 파사사다(婆舍斯多)에게 넘겨주셨고 이때 함께 한 부처가 나타났는데 달마달(達磨達)이라 했다.

    달마달의 제자 두 명중 한분이 인타라이다. 달마달은 계빈국 사람으로 사자존자가 죽임을 당하자 상백산에서 숨어살며 수행을 하였고 장수하였는데, 인타라가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인타라에게 4명의 유명한 제자가 있었는데 달마시리제(達磨尸利帝), 나가난제(那伽難提), 파루구다라(破樓求多羅), 파라파제(破羅波提)이다.


    인타라는 비록 선종의 직계 전법서열이 되진 못했으나 매우 존경을 받았다. ‘혜(慧)’, 곧 지혜는 불교에서 광의와 협의의 뜻으로 쓰이는데 광의로는 지혜를 말하고, 협의로는 법으로써 능히 간단하게 가려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수행하여 ‘혜’ 의 지경에 도달한 사람은 당연히 공경받을 만한 고승이다.

     



    11. 가나행나존자(迦那行那尊者)

     

    존자의 이름은 가나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문제자다.

    행나의 의미는 역경 중에서도 배운 모든 법을 잃어버리거나 간과하지 않으며 마음과 몸이 평온하여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나존자는 위의 품덕을 갖추었으므로 가나행나라고 불렀다.

    <사리불문경(舍利佛門經)> 기록에 의하면 가나존자는 비구시절 탁발하러 대림이라는 마을에 이르렀는데 기후가 돌변해 추위로 새와 짐승들이 모두 얼어죽게 되었지만, 가나는 마을사람들이 준 솜옷으로 추위를 견뎌 죽지 않았다. 가나존자는 죽음에 이르는 참혹한 곤경속에서도, 받을 것은 받고 버릴 것은 버렸으며 잠시 속의(俗衣)를 입어서 추위를 견뎠으나 불심은 전혀 동요하지 않아서 지혜가 많은 분이라 불리었다.

     

     



    12.  파소반두존자(婆蘇槃豆尊者)

    파수반두(婆藪槃豆), 파수반타(婆修槃陀), 벌소반도(伐蘇畔度) 라고도 하였는데 하늘과 세속과 친하다는 뜻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파소반두는 천제의 동생으로 천친(天親)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5세기 북인도의 부루사부나국 혹은 장안국 사람이다. 파소반두는 처음에 아유도국의 살파다부에서 출가하였는데 소승지학(小乘之學)을 배우고 대비파사론(大毘波沙論)에 정통한 후 중생들에게 널리 전하고 매일 불경의 게송을 하나씩 지어 모두 6백곡이나 되었는데 이를 <구사론(俱舍論)> 이라 했다.

    파소반두의 형 아승가(阿僧伽)는 세칭무저보살(世稱無著菩薩)인데 동생이 소승을 널리 전하여 대승을 뒤엎게 된 처지를 매우 근심하여 병이 났고 “너희가 죄가 많아 내가 병들었다” 고 말했다. 파소반두는 이것이 자신의 혀로 소승을 선전한 죄과라고 생각하고 혀를 자르려 하였으나 아승가는 “네가 네 혀로 대승을 비방하였으니 오히려 그 혀로 대승을 칭송해야 하느니라” 라고 일깨웠다.
    파소반두는 그리하여 <유식론> 등 5백부의 자작으로 대승의 교의를 넓게 논술하여 사람들이 천부론주(千部論主)라고 불렀다. 원적시의 나이는 80이었으며 후인들은 그를 일컬어 세친보살(世親菩薩) 이라 불렀다.

     

    무착보살의 친동생 세친보살 역시 대승불교에 귀의하여 <대승백법명문론>, <십지경론>, <유식삼십론>, <섭대승론석> 등을 저술하여 형인 무착보살과 함께 유식학을 집대성하였다.

    저술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유식삼십론>이라 하겠다. <유식30론>은 광범위한 유식사상을 30 게송으로 축소하여 정리한 것으로서 유식학의 핵심이 된다 할 것이다.

     

     

     

    13. 법계사락존자 (法界四樂尊者)

     

    존자의 이름은 혜사(慧思) 인데 천태지의대사 스승으로 천태종 제2대 조사이다. 

    <법화경 안락행품>을 따를 것을 주장하였는데, 즉 신안락행(身安樂行), 구안락행(口安樂行), 의안락행(意安樂行)이다.

    존자의 속성은 이(李)가이고 하남무진 상채(上蔡)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법화경>을 즐겨 읽었고 일찍이 꿈에서 보현보살의 마정계(摩頂戒) 를 받았다. 전하기를 마정계를 받은 곳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고 한다.
    15세에 출가하였으며 지혜가 뛰어나 인도 불교의 계속(戒俗)에 따라 매일 한끼씩 먹고 조용하고 적막한 사원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참선하여 도를 깨달았다.

    천태종 제1대 조사 혜문(慧文)선사로 부터 심관법(心觀法) 체득하고 <법화경>의 중요성을 깨달아 천태종 2대 선조가 됐다. 제자들을 인솔하여 남으로 다니셨는데 당시는 양원제(梁元帝)가 복멸되고 강남이 매우 혼란스러워 잠시 광주 대소산(大蘇山) 하남상성(河南商城)에 14년간 거처하였다. 명성을 사모하여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제자들이 날로 늘어났다.

    568년 제자 40여명을 거느리고 남악(南嶽) 형산에 거주하였으며 산중에서는 늘 좋은 징조가 나타났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몇 명의 천동(天童)이 두손을 드리우고 호위하였다고 한다. 진선제(陳宣帝)도 여러번 사자를 파견하여 위로하였다. 태건(太建) 9년(577), 제자들에게 “부처가 와서 나를 맞이한다” 라고 말하고 단정하게 앉은채로 열반에 들었는데 나이 64세였다.


     

     


    14. 우루빈라존자 (尤樓頻螺尊者)

    십대 제자 두타제일 마하가섭과 다른 인물이며, 가섭 3형제의 맏형으로

    우루빈라가섭(尤樓頻螺迦葉), 우류비가섭(尤留毘迦葉), 조로빈라가섭파(鳥盧頻螺迦葉波) 라고도 한다.

    중인도 마갈타국 사람으로 가섭이 성인데 빛을 품었다는 뜻이며 유래된 전설이 있다.

     

    신선이 있었는데 몸에서 나는 밝은 광채가 해와 달의  빛을 다 가리웠다고 전한다.

    우루빈라의 뜻은 모과나무이며 이것은 모과림 아래에서 도를 닦아 명성을 내었고 앞가슴이 불룩하여 모과와 비슷하다 하여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
    우루빈라는 원래 불을 섬기는 배화교 외도의 논사로 500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석가모니의 명성을 질투하여 두 동생(제26대 가야가섭존자, 제16대 나제가섭존자)과 같이 불타를 독사굴에 이르게 하였으나 독사는 불타의 법을 두려워하여 감히 해치지 못하였다. 우루빈라형제는 그때 불법의 위대한 힘을 알게 되어 제자들과 함께 귀의하였으며 일구일심으로 스님들을 공양하여 공양제일(供養第一) 이라 한다.

    석가세존께서 초전법륜과 야사및 그의 친구들을 교화후 60여명의 제자들에게 전도선언을 하시고 마가다국의 우루벨라 마을로 향하셨다. 6년간 고행하시면서 머무셨던 곳이자 깨달음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 


    <불설초분설경(佛說初分說經)>에 가섭(迦葉) 3형제가 불법에 귀의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석가세존께서 우루빈나(優樓頻羅)가섭의 처소에 이르러 머물기를 청하자 가섭은 독룡(毒龍)이 있는 곳뿐이라 하며 그 해가 클 것이라 하였지만 부처님은 그 곳에 들어가 결국 독룡을 제압하고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 위력을 보고서 불을 숭배하던 외도였던 우루빈나 가섭은 결국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제자가 된다.

    우루빈라 가섭의 다른 형제들인 나제(那提)가섭과 가야(伽耶)가섭도 형을 따라서 결국 불법에 귀의하여 제자가 되었다.
    우루빈나(優樓頻螺)는 우루비(優類毘), 우위(優爲)라하며, 목과림(木瓜林)이라 번역되고, 그리고

    나제(那提)는 하(河) 또는 강(江)이라 번역되며, 끝으로

    가야(迦耶)는 갈이(竭夷)라고도 하고 또 상(象)이라고도 하니 성(城)이라 번역된다.
    우루빈나 가섭은 500명의 권속과, 나제 가섭과 가야 가섭도 각각 300명과 200명에 이르는 자신의 권속들과 부처님에게 귀의하게 되어 부처님의 초기 교단 형성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가섭 형제의 귀불 인연을 듣게 된 왕사성의 빈비사라왕도 부처님의 4제(諦) 설법을 듣고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
    3형제 모두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서 보명(普明)여래로 수기를 받는다.
    가섭은 이외에도 마하가섭, 십력가섭등이 있다.



     

     


    15. 불타밀다존자 (佛陀密多尊者)


    인도의 저명하고 덕망이 높은 선승이며 <오문선경요용법(吾門禪經要用法)>이란 글을 지었다.
    선승에게는 다섯가지 수련방법이 있는데 안반(安般), 부정(不淨), 자비심, 관연(觀緣), 염불(念佛)이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 각 사람마다 특별한 처지를 고려하여 특별한 방법을 선택하는데 생각이 문란한 자는 안반법을 가르치고, 인간세상을 몹시 그리워하는 자에게는 부정법을 가르치며, 심히 노하고 성내는 자에게는 자비법을 가르치고, 자기의 이익만을 탐하는 자에게는 인연법을, 그리고 의기소침한 자에게는 염불법을 가르쳤다.

    불타밀다는 일상생활에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의 사고방식을 수시로 돌아보아 불교교리에 부합되게 함으로써 더욱 좌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여 나한과를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16. 나제가섭존자(那提迦葉尊者)

    날제가섭파(捺提迦葉波), 날지가섭파(捺地迦葉波) 라고도 하였다.
    중인도 마갈타국인이며, 14대 우루빈나존자 동생.

    나제는 강이름인데 이 강가에서 도를 닦아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 외도 논사로 300명의 제자가 있었다. 두 형제(제14대 우루빈라 존자, 제26대 가야섭존자)와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함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불법의 위대한 힘에 참회로서 뉘우침으로 불(佛), 선(禪), 도(道)를 깨달아 귀의하였다.

     

     

     

     

     

    17. 나연라목존자 (那延羅目尊者)

     

    나라연굴(那羅延窟) 이라고도 하였는데 과거세불(過去世佛)이며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 태어나시기 전에

    출가하여 널리 교법을 선전하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공을 세워 열반후 주지대탑(住持大塔)을 세웠다.

    <대방광불화엄경> 수소연의초 권77의 기록에 석가모니께서 제자들에게 “나연라목 등의 과거 여러 부처의 주지대탑은 현재 부처, 보살, 제자들이 의존하고 거주하는 지역이다” 라고 말했다.

    이전의 보살들은 모두 성의를 다하여 여러 보살들의 큰탑을 보호하였는데 이제 우리도 정중하고 견고하게 보존하여 현세와 내세의 제자 밑 제자의 제자들이 모두 이 탑사를 거처로 공양하고 지키게 하여 여러 부처의 교법을 잊지 않게 하였다.
    나연라목 등 여러 부처의 사탑은 사천지하(四天之下)에 두루 분포되어 있으며 불제자들은 사천지하에 거주하고 사천지하에서 널리 불법의 교리를 가르치고 전함이 마치 단비가 내리듯 온 세계를 충만시켰다.

     

     

     

     

    18. 불타난제존자(佛陀難提尊者)

    인도 가라마국인이며 성은 여구담(如瞿曇)이다. 태어날때 정수리에 육계(肉)가 있었고, 말에 막힘이 없었다.

    석가세존이 세상에 있을 때, 일찍이 제자들을 이끌고 북인도를 방문할 때, 제자 아난에게 말하길,

    가 멸한 후 300년이 지나서 불타난제라는 성인이 이곳 인간세에 내려와 불법을 널리 알릴 것이다 고 하였다.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8대 선조가 되었다.

    불타난제 존자가 처음 제7조 바수밀 존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아 출가하고 교화를 펴다가 제가국의 한 성중의 비사라의 집에 이르렀다. 그의 집 위에 흰 빛이 치솟는 것을 보고 그의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이 집에는 틀림없이 성인이 있어서 입으로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승의 그릇이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자 장자가 나와서 예를 올리고 물었다.

    “무엇을 구합니까?”

    “나는 시자를 구하노라.”

    “나에게 한 아들이 있으니 이름이 복태밀다라. 나이가 이미 50세지만 입으로는 아직 말을 못하고 발로는 아직 걸음을 걷지 못합니다.”

    “그대의 말과 같다면 참으로 나의 제자니라.”라고 하고 불타난제 존자가 그를 보니 그가 곧 일어나서 예배를 올리고 게송을 설하였다.

    “부모가 나의 친한 이가 아니니 누가 가장 친한 것인가? 모든 부처님이 나의 도가 아니니 무엇이 참다운 나의 도인가?”

    불타난제 존자가 게송으로 답하였다.

    “그대의 말이 마음으로 더불어 친하니 부모와 비교할 수 없고 그대의 행이 도와 더불어 합하니 무든 부처님의 마음이 곧 이것이니라. 밖으로 형상이 있는 부처를 구하면 너와 더불어 같이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의 본래의 마음을 알고자 할진댄 그대와 합한 것도 아니고 떠난 것도 아니니라.”

    복태밀다가 스승의 미묘한 게송을 듣고 곧 일곱 걸음을 걸었다. 불타난제 존자가 곧 그를 출가하게 하여 구족계를 주고 다시 그에게 고하여 말하였다.

    “내가 지금 정법안장으로써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결코 끊어지지 않게 하라.”

    그리고 다시 게송을 설하였다.

    “허공은 안과 밖이 없으니 미음의 이치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만약 허공의 이치를 깨달으면 이는 진여의 이치를 통달한 것이니라.” 게송을 설하여 마치고 존자는 곧 신통변화를 나타내고는 조용히 적멸열반에 드시었다.

    주나라 제24대 경왕12년 병인이었다.열반후 사람들이 사리를 받아 보탑을 지어 공양했다.

     

     

     

     

    19. 말전저가존자(末田底迦尊者)

    석가모니께서 살아계셨을 때 일찍이 제자 아난에게 “내가 세상을 열반(入滅) 후 50년이 되면 말전저가라 아라한이 장차 계빈국에서 불법을 널리 전하여 백성들을 편안케하고 불법을 널리 펼치리라” 라고 했다. 부처가 돌아가신 후 50년이 되어서 아난이 곧 열반하려는데 대지가 크게 진동하였다.

    이때 한 선인이 있어 아난의 500 제자들을 바람에 태워 그를 만나게 하였는데, 아난은 명을 쫓아 말전저가로 하여금 교주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전하게 하였고 그로 하여금 6가지 신통을 얻게 하여 모두 8가지 해탈로써 교주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시를 꼭 기억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말전저가는 부처님께서 기별하신 것을듣고 기쁜 마음으로 큰 산꼭대기에 이르러 숲 속에서 참선에 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 커다란 신통력을 나타내니, 용이 이것을 보고 깊은 믿음을 내어 원하는 것을 해드리겠노라고 청하였다. 용왕은 용궁을 바쳐 그를 거처하게 하였다.

    용왕이 거듭 청하였다. 500 나한은 언제나 저의 공양을 받을 것이며 법이 다하는 날까지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석가세존께서 하늘에 승천하신 후 세상의 신도들이 모두 친히 자기의 눈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보려고 함으로 말전저가는 신통력으로 하늘에 훌륭한 목수를 보내어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 그 신장과 용모를 보고 세상에 돌아와 나무를 깎아 초상을 만들었는데 3번이나 다녀온 후에 불상을 완성하였다.
    이후부터 민간 사원 곳곳에서 석가모니의 불상과 불교의 모든 조각상이나 그림 등을 모셨다.

     

     

     

    20. 난타다화존자(難陀多化尊者)

     

    난탁가(難鐸迦) 라고도 한다. 그 뜻은 매우 즐겁다라는 의미다. 또한

    목우(牧牛) 라고 하기도 하고 목우난타 라고도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일찍이 소를 방목하는 11가지 일을 물어 부처님의 지혜를 알아내고 출가하여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난타는 비상하게 총명하였으며 목소리도 아름답고 기묘하였고 <근본율(根本律)>의 기록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난타를 파견하여 비구니들에게 설교하였는데 그중 500 비구니가 설교를 들은 후에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고 한다.

    <살파다론(薩婆多論)> 에는 난타와 이 500 비구니의 전생의 인연을 설명하였는데 옛날에 오직 부처를 호위하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고, 중생들을 위하여 설교하였다고 하며 입멸한 후 한 왕이 우두전단탑을 세웠는데 여러 가지로 장엄하였다. 이 왕에게 500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이 탑을 공양하였다. 그 부인들이 모두 마음속에 “나는 장차 왕의 곁에서 해탈 받기를 원한다” 고 하였다. 그 왕이 바로 지금의 난타였으며 그 부인들이 지금의 500비구니이다. 본원의 인연으로써 난타로부터 해탈을 얻었다. 난타존자는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설법 하였으며 그 도에 감화된 세인들이 많았다.

     

     

     

     

    21. 우파국다존자(優波鞠多尊者)

     

    우파국다(優波鞠多), 우파굴다(優婆掘多), 우파국제(優婆鞠提), 우파급다(優波級多) 등으로 불리웠다.

    가까이에서 지켜주다, 친밀하다 라는 뜻이다.

    기원전 3세기의 사람이며,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4대 선조가 되었다.

    <아육왕경(阿育王經)>권 8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시에 예언하시기를

    “나의 열반 후 백년이 되면 우파국다라고 하는 비구가 불법을 계승하게 된다” 고 하였다.

    우파국다존자는 11살에 출가하여 20세에 도를 이루고 곳곳에서 교화했는데 마돌라국에 이르니, 대중이 구름같이 모여 보름동안 설법을 하였는데 하늘에서 꽃이 내리고, 땅에서 신들이 솟아 법을 듣고 모두 해탈을 얻었다.

    아육왕의 도움으로 당시 불교가 성행하였다. 불교계에서는 우파국다의 지혜가 높고 불법의 무한한 힘과 공덕으로 불교를 발전시켰으나, 단지 그의 신상이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낮은 편이라 무상호불(無相好佛) 이라 칭하였다.

    그는 말토라상인의 아들이었다.

    그는 스승 상나화수(商那和修)의 가르침으로 악한 마음을 멸하고 착한 마음을 수양하기 위하여 7일 낮과 밤,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여 악한 마음을 완전히 없애고 착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우파국다가 처음 상나화수 존자를 만나서 공부를 배울 때 어떻게 배웠느냐 하면, 일단 마음이 善과惡 일체제법을 공부할 때, 가만히 앉았다가 바둑의 흰 돌 한무더기 검은 돌 한무더기를  갖다놓고, 좋은 생각이 일어나면 오른쪽에 흰 돌 하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면 왼쪽에 검은 돌 하나씩. 처음에는 흰 돌 보다 검은 돌이 많았다. 처음에 착한 생각만 내어도 사실 도가 되지 못하는데 악한 생각은 번뇌로 사는 것임을 깨달았다.


    스승은 사성제를 해설하여 주었으며 들은 즉시 도를 깨달아서 법장을 넘겨받아 제4대 선조가 되었다.
    스승을 계승하여 불법을 전하였으며 아육왕(阿育王) 이 인도에서 불교를 널리 포교할 때 우파국다를 화씨성(華氏城)에 초대하여 석가모니의 성지를 두루 참배케 하고 우류만내산에 나라발이정사(那羅跋利精舍)를 세웠다.
    존자께서 법을 전하시자 바로 열반에 드시니 제자인 제다가가 석실안의 산가지를 꺼내어 쌓아놓고 불을 질러 다비하여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 이때는 주 제 30 대 평왕 31년 경자였다.



     

     

     

    22.승가야금존자(僧迦耶金尊者)

    승가야사(僧迦耶舍) 라고 하는데 지혜와 변설이 함께 탁월하여 많은 사람들을 제도했다.
    북인도 가습미라국대론사는 명리론으로 뛰어났는데, <인명입정이론후서(因明入正理論后序)>, <인명입정이론소(因明入正理論疏)>의 기록에 의하면 현장법사가 불법을 구하러 서역만리 길을 떠났을 때, 가습미라국의 법사였던 승가야사를 만났고 현장법사의 깊은 불교 학문수양을 찬탄하고 그를 위하여 상세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여 줌으로써 그동안 마음속에 담고있던 궁금증을 모두 풀어주었다.

     

    서천(인도)의 17대조사(祖師)이신 `승가나제(僧迦那提)' 께서 제자인 `승가야사(僧迦耶舍)' 와 함께 법당 주변에 있을 때 마침 바람이 불어 요령(풍경) 소리가 울리므로 스승이 제자에게 "무엇이 울리느냐?"하고 물으니 "저의 마음이 울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여, 그의 깨달음을 알아 차리고 법을 물려 주었으며, 동토(東土;중국)의 6조 `혜능(慧能)대사' 께서는 두 스님이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깃발이 나부낀다' "바람이 나부낀다" 하면서 서로 말하는 것을 보고 "그대들의 마음이 나부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승가야사는 지혜와 변설이 함께 일세에 탁월하여 많은 사람들을 제도한 분인데, 이것은 그가 출가하여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무렵의 이야기다.
    어느 날이었다. 행각을 나가 바닷가에 이르자 실로 눈부시는 아름다운 칠보 장엄한 궁전이 있었다. 승가야사는 곧 그 궁전에 가서 게(偈)를 외우며 공양을 청했다.
    『굶주림은 제일의 병이오, 행(行)은 제일의 고(苦), 이 같은 법의 진리를 알게 되면, 열반의 길을 얻으리라.』
    이때 궁전의 주인이 몸소 나와서 그를 맞아들이고 자리를 깔아 좌석을 마련한 다음,
    『아무쪼록 이리로 올라오십시오.』
    하고 정중히 접대했다. 승가야사는 그가 권하는 대로 그 궁전에 들어가서 주위의 아름다움을 휘둘러 보며 가다가 거기에 두 아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몸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목우한 침대에 각각 매달려 있었다. 그 곁에는 하나의 밥그릇이 놓여 있는데, 밥과 야채 절이 반찬을 가득히 담아 두었고, 병에는 물을 가득 넣어 두었다.
    궁전 주인은 이 먹을 것을 들고 승가야사에게 보시하며 말했다.
    『대덕이시여, 아무쪼록 이 아귀에게는 먹을 것을 주지 마십시오.』
    하고 승가야사에게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러나 승가야사는 그런 당부를 주인으로부터 받기는 했지만 아귀들의 굶주려 지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밥을 조금 덜어 주었다. 아귀는 고맙다는 듯 이것을 맛있게 받아먹더니 갑자기 검붉은 피를 토해 그것이 온 방안에 흘러서 그 아름다운 궁전을 더럽혔다.
    이것을 보고 대경 실색한 것은 승가야사였다. 곧 주인에게 이것을 물어보았다.
    『여보시오? 이 아귀는 도대체 무슨 인연으로 이처럼 참혹한 죄보를 받게 되었습니까?』
    『질문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말씀드리기도 부끄럽습니다마는 이 아귀 중에 하나는 전세에 제 자식 놈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 자식놈의 아내 즉, 제 며느리였었지요. 제가 옛날 보시를 해서 여러 가지 공덕을 쌓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 이 부부는 항상 물건을 아까와 하고 그럴 때마다 성을 내고 했기 때문에, 제가 여러 가지로 타일렀지만 항상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맹서를 했지요.
    「죄업은 반드시 악보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받았을 때는 나는 너희들과 만나게될 것이다.」하고 맹세를 했지요. 즉, 말하자면 그 인연으로 지금 이런 고뇌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승가야사가 거기를 나가니 어떤 훌륭한 당각(堂閣)이 있었다. 그 안에는 경을 읽고 좌선하는 승려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식사시간에 이르자, 죽비를 쳤으므로 많은 중들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막 식사가 끝나려고 할 때 찬이 갑자기 변해서 농혈(膿血)이 되었다.
    일동은 모두 일어서더니 서로 바리때를 가지고 머리를 때리며 일대 난동이 벌어졌다.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몸은 상처가 나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들은 크게 울부짖었다.
    『왜 먹는 것을 아까워 했다고 해서 이토록 괴로움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광경을 목도한 승가야사는 너무나 놀라워서 그 이유를 물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말해주었다.
    『대덕님, 우리들은 선세의 가섭불(伽葉佛)시대에 모두 함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거기에 한 손님으로 어떤 스님이 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노여움과 물건을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음식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 인연으로 오늘날 이런 고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승가야사는 대해를 골고루 편력 주유하여 지옥을 거의 오백이나 보았다. 그리하여 깊이 그것을 혐오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에서 업을 지으면 그것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라도 따라다닌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처럼. 누가 이것을 떼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제 방편을 써서 이것들로부터 헤어날테다.」
    하고 오래 관찰 사유한 끝에 마침내 육통삼명(六通三明)에 통달하여 아라한의 지위를 얻은 것이다.
    그때 어느 산림 속에 오백명이나 되는 선인(仙人)이 범천(梵天)의 행복을 얻으려고 고행을 닦고 있었다. 승가야사는 거기에 가서 이들을 위해 삼게(三偈)를 해설하여 불ㆍ법ㆍ승의 삼보를 찬탄했으므로 오백의 선인(仙人)들은 함께 출가하여 불도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승가야사는 널리 불사를 이루어, 교화를 마친 후 조용히 열반에 드셨다.
    <附法藏因綠傳第六>

     

     

     

     

     

    23. 교설상주존자(敎說常住尊者)

    대승불교는 수행자 자신의 해탈을 구하는 것과 동시에 자비를 베풀어서 속세의 중생들도 해탈을 얻도록 한다.

    8정도(八正道)의 제4수행법은 정업(正業)인데 이는 불법을 수행하는 사람은, 일체중생을 교화시키고 그들에게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세속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서 불교에 귀의하게 하며 극락세계에 올라가게 한다는 것이다.

    <법화경탐현기(法華經探玄記)> 권 12에 설법존(說法尊) 이 있는데, 이 존자는 동정애가 많아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들이 세속의 근심걱정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지혜로 중생들에게 불과(佛果)를 얻게 하는 원을 세웠다.
    이로써 그는 늘 인간세상에 거주하면서 중생에게 불법을 해설했다. 설법존자는 교설상주존자였다.

     

     

     

     

    24. 상나화수존자(商那和修尊者)

    상락가박사(商落迦縛娑), 사나파사(舍那婆斯) 라고도 한다.
    인도의 마돌라국(摩突羅國)인이다. 성은 비사다(毘舍多)이다.

    아난의 제자이며, 선종에서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3대 선조가 되었다.
    어머니의 탯속에서 6년만에 태어나 이내 출가하니, 몸에 걸쳤던 옷이 저절로 구조 가사가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석가세존이 이 나라에 온 후부터 시절이 좋아져서 푸른 수풀을 보면 가지가 무성하므로 아난에게 “내가 열반 후 100년이 되면 비구 상나화수가 있을 것인데 이곳에서 묘법을 부릴것이다.” 라고 했다.
    100년 후 실재 그러하였고, 제2대 선조 아난은 열반하기 직전에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상나는 범어로 <삼베옷>이라는 뜻으로 불교전설에 상나화수는 이전에 삼베옷을  걸쳐 편안한 삶을 멀리하고 중생을 위해 보시했다. 이 복력(福力)으로 오백번 태어나도 항상 이 옷을 입었고 금세에도 이 옷을 입고 태어났는데, 후에 출가자들의 법복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상나화수께서는 출가한 후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두 마리 화룡을 굴복시켜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으며 용은 거주하던곳에 범궁을 지어 보시하였다.

    셋째인 우바국다가 열일곱이 되자, 존자는 그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다. “부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이 아이는 내가 멸도한 뒤 200년에 제4조가 되어 무수한 무리를 제도하리라’ 하셨소.” 우파국다를 3년 동안 가르친 후 20살때 법장을 부여하며 게(揭)를 말하기를 “법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며 마음도 없고 법도 없도다. 마음이 아닌 것은 법이 아니다” 라는 말을 남긴 후 계빈국 남상(南象) 백산에서 은둔하였다.

    후에 우파국다를 도와서 500명의 무리를 제압하였으며, 18가지 형상으로 변화했고 화광삼매로 스스로 자신의 몸을 불 태웠다. 이에 우파국다는 사리를 거두어 범가라산(法迦羅山)에 묻었다.

    상나화수존자께서 열반에 드신 것은 주나라 제11대 선왕 23년 을미였다.

     

     

     

     

    25. 달마파라존자(達摩波羅尊者)

    달마는 법을 지킨다라는 뜻이다.
    6세기 인도의 달라비내국 건지보라성(建志補羅城)인이며 그의 부친은 이 나라의 대신이었다. 달마는 어릴 때부터 불법을 숭배하였으며 소년시절 자기집을 떠나 수백리 밖의 절로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 5에 의하면 당시 불교가 쇠퇴하여 국왕은 외도를 믿고 받들었는데 외도중 유명한 자들과 스님들을 모아 변론을 하기로 하였다.
    만약 외도론자가 이기면 불교의 유행을 금지시키게 하였다. 스님들은 위험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누구도 나서지 못하였는데 이때 달마파라가 그의 풍모와 재능으로 외도론자들을 굴복시켜 불교에 귀의시켰으며 불법을 널리 알렸다.
    달마존자는 박식하고 세상을 멀리 넓게 보아 세친보살의 학설을 총력하고 <유식론(唯識論>을 지어 대승불교 유가행종(瑜伽行宗)의 거장이 되어 인도 불교의 10대론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일찍이 인도의 최고 저명한 절 나란타사에 있던 그의 제자인 계현(戒賢)은 중국 당대 명승인 현장의 스승이었다.

     

     

     

     

    26. 가야가섭존자(伽耶伽尊者)

    갈이가섭(竭吏伽), 가야가섭파(伽耶伽) 라고도 한다.
    가야성은 코끼리성을 뜻하며 그 위치는 니연선(尼連禪)강변인데 보리도장과 가까웠다.

    <법화경>湧出品에 “여래께서 태자시절 석가궁전에서 나와서 가야성에 가려면 멀지 않았고, 도를 닦는 자리에 않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였다. 가야가섭도 계속 이 성에서 도를 닦고 있었으므로 그 명성이 있었다.

    불교의 전설에 의하면 불(火)을 숭배하는 배화교 외도론자로 2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형님인 우루빈나(제14대 존자), 나제가섭(제16대 존자)과 함께 석가모니를 해하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불법이 방대함에 깨달아 제자를 거느리고 귀의하였다.

    3형제가 거느리던 1000명의 제자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1250명의 제자들중 1000명의 제자를 차지한다.



     

     

    27. 정과덕업존자(定果德業尊者)

    존자는 선정을 통하여 일체의 공덕을 얻어서 정과덕업이라고 했다.
    많은 여러 제불 성현들을 두루 찾아뵙고 선정을 배웠으며 심성을 맑게 하고 마음의 장애와 부정한 것을 없애고 사리를 살펴 견성오도(見性吾道)했고 부처님의 참된 지혜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심지(心智)와 佛의 진지(眞智)가 하나참된 지혜를 융합시켜 만물을 비추니 자기의 속신(俗身)도 법신(法身)이 되고 마음대로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수양한 지혜와 신통력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고 무수한 공덕을 세웠다. 건립한 모든 공덕의 근원은 선정(禪定)이다 라고 한다.



     

    28. 장엄무우존자(莊嚴無優尊者)

    장엄무우존자께서는 덕을 행하여 명성을 얻었다.
    불교경전에서 <장엄>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아름답게 장식하고 존엄하게 단장한다는 뜻이다.
    존엄을 단장하는 것은 외부의 형상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내적인 품덕을 기리는 것이다. 오직 고상한 품덕을 구비하여야 비로소 진정으로 장엄한 면모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근심을 각종 걱정과 번뇌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응당 철저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론 (智度論)> 권2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악함이 바다에 빠지면 능히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는 것이다.

    장엄무우존자는 일구심 선정의 학문을 배워 자기만 세속의 세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력을 세워 중생들의 마음을 근심의 바다로부터 구원해냄으로써 그의 장엄한 면모는 바로 중생이 근심 걱정을 벗어나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이치를 알게 하려는데 있었다.



     

    29. 억지인연존자(億持因緣尊者)

    존자의 이름은 승호(僧護) 이며 사리불의 제자이다.
    <인연승호경(因緣僧護經)> 기록에 500 상인들이 불교를 숭배하고 믿어,  바다에 나가서 무역할 때 승호의 설법을 부탁했고, 바다에서 항해중인 상인들을 위해 경을 설법했는데, 바다의 용왕이 설법을 듣고 놀라서 용궁으로 승호를 초청하여 설법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승호는 용왕의 청에 따라 바다에 들어가서 용의 아들에게 <4아함경(四阿含經)>을 강론하여 주었다.
    용왕과 그의 아들은 승호를 상선까지 호송하여 육지까지 같이 왔다. 거의 해안에 도착할 때 승호는 500 상인들과 헤어져 홀로 지옥속의 갖가지 모습들을 보았으며 그후 승호는 500 신선이 있는 곳에 와서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고난에서 구해내었다.

    승호는 여래가 계신 곳에 돌아왔고 그동안 보고들은 것을 토대로 여래께서는 인연지도(因緣之道)를 설명해 주었으며 좋은 과위를 얻으려면 착한 일을 많이 해야한다고 설법하셨다. 승호는 석존의 교리를 명심하고 널리 중생들에게 해설해 주었다.



     

    30. 가나제파존자(迦那提婆尊者)

    존자의 이름을 제파보살 이라고도 한다. 남천축집사자국(南天竺執師子國) 사람이다.
    성은 비사라(毘舍羅)이다, 제파의 뜻은 하늘이며 가나의 뜻은 편목(片目) 즉 한쪽 눈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신이 허상이 아니라 도리(道理)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하여 사당에 들어가 대자재천신상(大自在天神像)의 왼쪽 눈을 파오고 또 밤이 되자 자기의 왼쪽 눈을 뽑아 신상의 눈에 넣었다. 신은 크게 경복하여 그를 사사용수(師事龍樹)에게 가라고 일러 주었다. 제14대 선조 용수는 그가 오는 것을 알고 물한 그릇을 떠놓았는데 제파는 바늘을 던지고 물에 들어 갔다. 용수는 감탄하여 “물이 가득한 그릇에 무엇이든 넣으면 넘치는 것이 이치인데, 바늘을 던지고 그걸 쫓아서 그 밑까지 들어가니 비상한 사람이다” 고 말했다. 그 후 정법안장을 그에게 넘겨줌으로 제파가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15대 선조가 되었다.

    제파는 사방으로 다니며 불법을 교화하였는데 바라국에 이르러 라후라다(羅睺羅多)를 만나 제자로 받아들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석가세존이 열반전에 일찍이 라후라다를 제2기 5백년 대주교가 된다고 예언하였다.
    당시 남인도에서 외도가 성행하였는데 제파는 외도를 규탄하고 불법을 지켰다.
    그는 숙위사(宿衛士)로서 남천축국왕을 감화시키고 불법을 믿게 하였으며 변론으로 상대를 이겨서 그들도 머리를 깍고 귀의하게 했다.
    후에 그는 라후라다에게 정법안장을 넘겨주면서 “본래 법을 전하는 사람은 해탈의 도리를 설법한다. 법은 실로 증명 할 수 없는 것이며, 끝도 없으며 또한 시작도 없다.” 라고 하고 8가지의 빛을 뿜으면서 열반에 들었다. 이를 지켜본 많은 제자들이 탑을 만들어 그를 공양하였다. 열반에 드신 것은 전한의 제4대 문제 19년 경진이었다.


     


     

     

    31. 파사신통존자(破邪神通尊者)

    본래의 이름은 발타라루지(跋陀羅縷支) 인데 뜻은 현애(賢愛)이며 서인도인이다.
    그는 사론(邪論)을 없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존자께서는 논변에 뛰어났으며 학풍은 꾸밈이 없고 순수하였으며, 계율을 엄격히 행하였으며 성품도 자비로웠다. 당시 마라파국에서는 대만파라문(大慢婆羅門) 한 명 있었는데 모든 책을 읽고 밤을 세워 각종 종교이론을 연구하였으며 그의 제자는 수천이 되었고 본국 국왕의 존경을 받았다. 백성들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 대만파라문이 불교를 비방하고 석가모니의 조각상을 모욕하였다. 발타라루지존자는 이 말을 듣고 먼길을 지나 대만파라문을 찾아가서 옳고 그름을 변론하였다. 발타라루지존자는 사리에 맞고 법에 어긋나지 않게 막힘없이 변론하였다. 반대로 대만파라문의 어조는 높았으나 도리가 맞지 않아서 패배하였다고 한다. 국법에 의하면 변론에서 패배한 자는 머리를 잘리워야 하나 존자는 그 자비심으로 마라파국 국왕에게 그 죄를 면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국왕은 죽음을 면해주었으나 명령을 내려 대만파라문이 당나귀를 타고 성을 돌게 하였으며 그의 패배를 인정하게 하였다. 파라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니 피를 토하였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 11의 기록에 의하면 존자가 파라문이 병에 걸렸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서 위로하여 주었으나 파라문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소리내어 발타라루지존자를 욕하고 대승불교를 비방하였다. 이때 하늘과 땅이 분노하여 대지가 갈라지면서 대만파라문은 땅굴로 빠져 18층 지옥의 불에 떨어졌다.

     

     

     

     

    32. 견지삼자존자 (堅持三字尊者)     

     

    三字는 즉 아미타(阿彌陀)인데, 뜻은 무량수(無量壽)이다. 세 글자의 이름을 일컫는다.
    중국 정토종도 <무량수경>, <관무량수경>과 <불설아미타경> 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는 것은 즉, 왕생정토 할 수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삼자존자는 바로 정토종의 시조혜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혜원은 진나라 때의 승려로서 속세에서의 성은 가(賈)씨이며 안문루번(雁門樓煩) 사람이다.

    초기에는 유가의 경전을 연구하였고, 21세 때 출가하여 저명한 승려인 도안(道安)을 스승으로 모시고 대승불교의 깊은 경지를 깨달았지만, 당시 병란이 발생하여 스승과 작별하고, 멀리 인도에 떠나기 위해 여산까지 갔는데 그곳의 맑고 고요한 풍경이 마음에 들어 곧 그곳에 머물렀다.

    서림사의 동문인 혜영은 동림사를 세워 혜원을 거주하게 하였다. 혜원은 123명의 스님들과 함께 함께 백련사를 결성해 무량수불상을 세워 새로운 불교운동을 했으며 미타정토법문을 창도했다. <법성론> 등의 저서가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혜원은 동림사에서 30년이 넘도록 거주하면서 영산(影山)에서 나오지 않았다.

    원적할 때에 나이는 83세였다.

     

     

     

     

    33. 아면루타존자(阿免樓馱尊者)

     

    아나율(阿那律), 아니율타(阿泥律馱), 아루타(阿樓馱) 라고도 하는데 무엇이든 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석가세존의 10대 제자로 <천안제일>이다, 감로반왕의 아들이며 석가세존의 사촌 남동생 중 한사람이다.

    석가가 성도(成道)한 뒤 고향에 돌아왔을 때 난다(석가의 이복동생), 아난다(석가의 사촌동생)와 함께 출가하였다. 정반왕의 동생인 곡반왕(斛飯王)의 둘째 아들로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를 결행할 당시에 하나뿐인 형(마하남:摩訶男) 역시 출가를 결심하던 차였다.  형과 상의 해 한 명은 대를 잇기 위해 남고 아나율 홀로 출가의 길을 떠나기로 했다.  이때 그의 어머니가 결사적으로 만류를 했다.  

    아들의 단단한 결심을 접한 어머니는 마침내 석가족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뛰어난 젊은이인 밧디야가 출가 한다면 허락해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결코 밧디야는 출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아나율 존자의 뜨거운 심신은 마침내 밧디야까지 설득해 출가 시키고야 만다. 그뿐만 아니라 주위에 가까운 이들 다섯명 마저 출가 사문의 길로 이끌게 되었고.  그 가운데는 난타와 우바리 그리고 반역으로 유명한 제바달다도 들어 있다.

    불전의 기록에 의하면 오래전 그의 밥을 벽지불(支佛)에게 준 적이 있는 공덕으로 50번 천상과 인간세상의 극진한 쾌락을 누렸고 현재 감로반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석가회상에서 도를 닦고 부처가 되신 후로 출가하여 불법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출가한 초기에는 여전히 세속의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잠이 너무 많아서 석존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았다.

    기원정사에서 훈계를 들은 후 7일동안 자지 않고 용맹정진하여 득도하였지만 실명하여 앞을 볼 수 없었다. 그 후

    천안의 신통을 지녀 천안제일이라 불리웠고, 세상과 중생들의 생사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사맛타 수행의 대가이며 색계, 무색계 4선정을 모두 끝내고 위빠사나로 넘어와서 아라한이 되었다.

    이러한 수행은 석가세존께서도 성도하실 때와 같은 수행을 하셨다.

     

    <청정도론>에서 40가지의 사마타 수행방법이 소개되고 있으며, 항상 깨끗하기를 바라지 말고 때가 있음을 볼 때마다 그냥 닦는 선정수행으로 고요함이 목표이며, 기복적인 것보다 고양된 의식을 가짐으로 공덕이 생기니 수행결과는 색계, 무색계에 태어난다고 함.

    위빠사나 수행은 지혜를 얻는 수행으로 도과를 성취하여 열반을 실현함으로 윤회가 끔남. 

    석가세존께서 열반 후 아면루타존자는 여러 제자들에게 슬픔을 위로하고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설을 전함에 있어 지극한 마음으로 노력했다. 또한 석가존자의 금관을 7일 동안 보관하여 여러 천신(天神)들에게 공양하고자 하는 소원을 만족시켰다. 7일 동안 여러 천신들은 하늘의 꽃을 들고 허공에서 돌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덕을 크게 찬양하였다.

    4니까야중 앙굿따라 니가야<증일아함경>을 아면루타존자 제자들에 의해서 부촉하여 전승하였다.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 에서 교진여비구와 같이 보명(普明)여래로 수기를 받는다.

     

     

     

     

    34. 구마라다존자(鳩摩羅多尊者)

    구마라다(矩摩羅多), 구마라다(拘摩羅多) 라고도 하였다.
    그 의미는 동수(童受), 동수(童首), 호동(豪童), 동자(童子) 이다. 북인도의 월씨국 사람이다.

    업이 삼세에 통함이 그림자가 형제를 따르는것과 같다. 善을 쌓은 집에는 경사가 있고, 惡을 쌓은 집에는 재앙이 있다는 법문을 듣고 가야사다에서 머리를 깍고 출가하여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19대 선조가 되었다.

     

    아육왕이 불교를 진실하게 믿어 궁중에 불탑을 세우고 후에 자기는 궁성의 동북 모퉁이로 이사를 가고 원래의 궁전은 고쳐서 절을 지어 구마라다를 모셨다. 절의 태각(台閣)은 높고 넓었으며 불상이 위엄있어 원근에 널리 알려졌다. 정법안장을 주면서 말하기를 “법성(法性)은 본래 생멸하지 않고 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법은 이미 얻을 바가 없거늘 어찌 결정한다 못 한다를 걱정하리요” 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갔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구마라다존자는 어릴 적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지혜를 구비하였으며 자라서는 꾸준히 배우고 생각하여 불교의 이론에 정통하였으며, 저서 또한 풍부하여 논(論)이 수십 부에 달하여 세상에 널리 전해졌다 .

    후에 소승 18부의 경량부(經量部)는 구마라다학설을 종지(宗旨)로 하고, 그를 경부조사(經部祖師)로 존중하였다.
    조소상은 손에 경문을 쓴 대나무 조각을 받쳐들고 정신을 집중하여 묵상하는 모습으로 학식이 넓고 깊이 사고하는 고승의 형상이다.

     

     

     

    35. 독용귀의존자(毒龍歸依尊者)

     

    존자의 이름은 구파라(瞿波羅) 이고 뜻은 ‘소를 기르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2에 의하면 부처님의 생시에 고인도의 나게라갈국(那揭羅曷國)에 목동이 있었는데 매일 국왕에게 치즈를 공급하였다. 한번은 치즈를 공급할 때 예의 없는 행동을 해 국왕의 질책을 받았는데, 원한을 가지고 신령에게 꽃을 바치며 기도하기를 내세에 용왕으로 변하여 경성을 쳐부수고 국왕 및 관원과 백성들을 살해하겠다고 하였다. 기도 후 돌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

    얼마 후 목동은 큰 용왕으로 다시 태어나서 나게라갈국 서남쪽 석령의 동굴에서 살았다. 동굴에서 나와 전생의 원한을 보복하려고 하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미 멀리 중인도에서 독을 품은 용의 나쁜 의도를 알고 백성들의 재난을 불쌍히 여기시고 신통력으로 동굴 앞에 왔다.
    용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보는순간 악독한 마음이 없어졌다.

    구파라는 불교에 귀의하여 불계를 받고 살생하지 않고, 불법을 보호할 것을 맹세하였다.
    석가세존께서 다시 신통력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동굴의 벽에 남겨놓고 구파라에게 “나의 그림자는 자비심을 가지는 신통력을 지녔다. 네가 분노와 독한 마음이 생겨날 때 이 그림자를 바라보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동굴벽의 불영(佛影)은 불교의 성지가 되고 구파라는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고 한다.

     

     

     

    36. 동성계수존자(同聲稽首尊者)

     

    덕을 행하여 이름을 얻었다, 소위 동성계수는 한편으로 불타의 이름과 호를 찬송하고 한편으로는 행계수례(行稽須禮)라는 뜻이다. 계수는 범어로 반탄남으로 ‘경례를 한다’ ‘예의인사’ ‘귀명(歸命)’ 등의 뜻이며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최대한 예를 표하는 것이다.

    동성계수존자는 세가지 업으로 생겼던 죄, 육근(六根)을 따라서 일어난 허물, 사악한 마음과 더러움을 일으켰던 수 많은 죄를 참회하려고 삼보를 높이고 널리 복전을 심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입에 불호(佛號)를 읊으며 신작계수(身作稽首)하여 마침내 그 많은 죄를 없애고 나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권 1소(所)에서 말한 것처럼 “부처의 깨끗함은 자비의 빛이 무궁한 것이며 이로써 계수가 세존께 귀의하였다” 고 하였다.

     

     

     

     

    37. 비라지자존자(毘羅肢子尊者)

    이름은 산도야(刪度夜) 이고 비라지는 존자의 모친이름이다, 산도야는 고인도에서 수행한 6사외도 중의 한 사람이다. 이런 연고로 그 모친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 중생의 일체 고락은 모두 과거 지난 세상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응보이며 만약 세상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지 않거나,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난 미래에는 고락의 구별이 없으며 지금 계육을 지키며 수행하여 다시태어나면 미래에는 다시 고난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의 기록에 의하면 산도야는 이르기를 해탈의 방법이 순리에 따라 자연스러우며 과거에 악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고과(苦果)의 응보를 받으면 되고 8만개의 고과를 다 받으면 자연히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고행을 주장하였으며 고행은 마치 실 구슬을 높은 산꼭대기에서 돌리면서 떨어지는 것과 같아서 그 실 구슬이 끝에 닿으면 돌지 않고 자연히 정지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많은 불교신자들은 지혜의 방법을 통하여 해탈을 얻고자 하였으며 비라지자존자 역시 고행은 심신의 무익하다고 생각하고 고행을 외도라고 하였다.

     

     

     

     

    38. 벌소밀다존자(伐蘇蜜多尊者)

    바수 이라고도 했다. 북천축국 사람이다, 성은 파라타(頗羅墮)이다.

    늘 깨끗한 의복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술그릇을 들고 거리에서 빈둥거리며 휘파람 소리를 내고 제멋대로 다녔다.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7대 선조가 되었다.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6대 선조 미차가(彌遮迦)가 이곳까지 불법을 포교하러 왔을 때

    벌소밀다는 술그릇을 들고 그 앞으로 나아가,

    “스승은 어디서 오십니까? 어디로가실 생각입니까?” 하고 물으니 미차가는

    “마음에서 오고 아무곳도 갈 생각이 없다” 고 하니 벌소밀다는 또 묻기를

    “스승은 나를 아시오? 모르시오?” 하여

     “내가 알지 못하고 알면 내가 아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미차가는 벌소밀다에게 이르기를 “나의 스승 제다가는 말하기를 ‘석가세존께서 일찍이 북인도에서 왔는데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이 나라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열반한 후 300년이면 한 성인이 있을 것인데 성은 파라다고 이름은 바수밀이며 선종선조의 제7위를 가진다’ 고 했으니 세존은 너를 기억하므로 응당 출가하여야 한다” 고 했다.

    벌소밀다존자는 그리하여 술그릇을 집어던지고 출가하여 곳곳을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며 불법을 선양하였다.

    혼자 다니면서 중생을 제도했는데 가마라국에 이르러 불타난제라는 큰 학자가를 만나,

    토론할 수 있다면 진리가 아니요, 진리라면 토론 할 수 없다. 만일 진리를 토론할려면 끝내 진리를 토론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듣고 출가하기를 원하니 머리를 깎아 출가시키고 법장을 그에게 전하면서 게송을 주었다.

    “마음은 허공과 같고, 이것 역시 허공의 법과 같으며, 허공을 깨달으면 법에 옳고 그름이 없다”

    말을 마치고 삼매에 들어갔고  그때 제석천의 무리가 몰려와 예를 갖추었다.
    벌소밀다는 삼매에서 이 무리를 보며 이르길

    “내가 법을 얻는 것은 무슨 연고가 있어서가 아니며 만일 불지를 알면 연고가 없었을 것이다” 고 하고 다시 삼매에 들어서니 열반에 이른 것이다. 주나라 제21대 정왕 19년 신미였다.
    불타난제는 정좌한 채로 7보탑에 전신을 묻혔다.

     

     

     

    39. 도제수나존자 (提首那尊者)

     

    고인도 외도의 10대 선인 중의 한 사람이고 입산하여 고행하며 도를 닦아 외도 과의를 획득하여 5가지 신통력을 지녔다.
    도제수나는 <삼미차(三彌叉)>를 편찬하여 이론의 근거로 삼았다, 삼미차의 뜻은 ‘관찰(觀察)’이고 또 25체(諦) 수련에 의하여 지혜를 얻었다.
    <열반경(涅槃經)> 권39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존자와 도제수나는 25체와 불법의 우열을 변론하였는데 도제수나는 도리에 굴복하여 불법의 넓고 깊은 것을 두려워하여 순종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깍고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후에 귀 기울여 불(佛)의 교시를 듣고 나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40. 승법야사존자(僧法耶舍尊者)

    승구야사(僧구耶舍) 라고도 한다.

    서천 인도 28대 선종(禪宗)의 전법(傳法)에 의하면 16대 선조 라후라다는 17대 선조 승가난제에게 물려주었으며 승가난제는 18대 선조 가야사다에게 넘겨주고 가야사다는 19대 선조 구마라다에게 넘겨주었다.

    한편 다른 기록에는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18대 선조가 승구야사 라고도 한다.
    <마하지관(摩河止觀)> 권 제1에서 법을 라후라에게 주었으나 라후나는 귀명서(鬼名書)를 알고 외도를 굴복했으며, 법을 승구난제에게 전하였으나 승구난제는 불경의 노래가사를 읊고 나한을 시험했다.
    법은 승구야사에게 전하였으며 승구야사는 해견성(海見城)에서 다니면서 불경의 노래가사를 불렀는데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 권 1중 하나에는 법은 승구야사에게 물려주었고 승구야사께서는 바다에 성이 하나 있는 것을 보며 먹을 것을 구하여 이르기를 “다니는 것이 제일 고생스럽고 주린 것이 첫 번째 병이며 만약 능히 법이 있음을 볼 수 있으면 열반에 이르는 길을 곧 얻는다” 라고 말하자 성의 주인이 음식을 대접하였다.
    두 귀신을 보았는데, 이전에 며느리가 인색하고 탐하여 내가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가 응보를 받는 것을 본다 라고 하였다. 다시 다른 귀신을 보니 음식을 차리고 먹은 후 그 그릇을 서로 던지니 불이 일어나 그 몸을 태웠다. 손님에게 음식을 아끼는 까닭에 이러한 고토에 이르렀다.

    승구야사는 곳곳에 다니면서 불법의 고승을 홍포한 분이다.

     

     

     

    41. 비찰세간존자(悲察世間尊者)

    존자의 법명은 차디구사, 차저구사, 비원금강(悲愿金剛).  보살지위를 얻었으며 편안히 앉아 인내하여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대지와 같고, 선정삼매에 깊이 빠져 있는 모습이 심오한 비밀을 상고함이 비밀창고와 같아서 한편으로는 지장보살(地藏菩薩) 이라 불렀다.


    그는 석가모니가 입멸한 후 미륵이 나타나기 전까지 중생의 질병과 고통을 구하였다. 

    <지장보살본원공덕경(地藏菩薩本源功德經)> 속루인천품(屬累人天品) 에 의하면 불교선조께서 차디구사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지금 도리천(刀利天)에서 백 천 만억의 헤아릴 수 없는 일체 천룡 8부 대회에 참여하였다. 세간의 중생들은 아직 해탈에 이르지 못하여 너에게 부탁하니 그들로 하여금 지옥에 빠지지 않게 하여라” 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지장보살이 서원하기를, 보도육도중생(普度六道衆生)이 극락세계에 도달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도 부처가 되기를 원한다고 맹세하였다.
    지장보살은 매일 아침 태양이 솟아오를 때면 항하사(恒河沙) 에서 선정의 수행을 하고, 선정 중에는 시방(十方) 여러 불국을 관찰하여 일체 중생을 인도하고 그들을 고난 중에서 구출해 내며 그들의 염원을 만족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평안과 즐거움을 얻게 했다.


     

     


     

    42. 헌화제기존자(獻花提記尊者)


    덕을 행한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헌화, 즉 헌화좌인(獻花座印) 이라 한다. <립인궤(立引軌)> 에 의하면 이러한 수인(手印)은 “명금강연화(名金剛蓮花)와 정혜부용(定慧芙蓉)이 합하여 수(水) · 화(火)중에 흩어져서 마치 연꽃잎과 같은데, 세상의 풍조와 번뇌에 가까이 머무르며, 여러 불보살들을 섬기고 있었다” 를 뜻하며, 제기(提起), 즉 수기(授記)이며 또 중생들이 부처님께 마음을 모아 장래에 불성을 찾고 성불하기를 반드시 따로 기억해야 할 것을 말한다.

    헌화제기존자께서는 불법의 신앙이 견정하였으며 매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헌화좌인의 언례(言禮)로 여러 불보살들에게 경의를 표시하였고 그 공덕으로 부처님으로 하여금 수기(授記)를 받아서 후에 부처님이 되었다.


     

     

     

    43. 안광정력존자(眼光定力尊者)

    이 존자는 눈빛이 번쩍이며 시방(十方)세계를 다 내다보았으며 그 눈빛이 닿는 곳마다 우매한 자에게 지혜가 생기고, 어리석은 자는 총명하게 되고, 세속의 근심걱정을 없애며, 번뇌와 분노 등 각종 난잡한 생각을 제거하여 선량한 중생들로 하여금 조용하고 깨끗하게 복과 덕의 길에 들어서게 하였다.

    안광정력존자께서는 무릇 살아있는 존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또한 능히 세상의 사악(邪惡)을 제거하여 그 번쩍이는 눈으로 악마를 처 없애며 악귀를 굴복시키고 외도를 귀의하게 하였다. 그리고 악의 흔적이 뚜렷한 자는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기며 크게 참회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철저히 깨우치게 하였다.

     

     

     

     

     

    44. 가야사나존자(伽耶舍那尊者)

     

    가야사다 라고도 하였다. 마갈타, 마제국인(摩堤國人)이며 성은 욱두란(郁頭蘭)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의 모친은 큰신(大神)의 거울을 가지고 있는 꿈을 꾸고 임신한 후 7일 만에 신체는 유리알 같이 맑고 투명하였으며 저절로 향기롭고 깨끗하였다고 한다.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18대 선조.

    서천(西天) 인도 28대 선조의 제17대 선조 승가난제는 여러 중들과 함께 이곳에 당도하였는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사람의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므로 승가난제는 “이 길에 덕스러운 바람이 있다. 성자(聖子)가 세상에 와서 석존의 교리를 계승하지 않겠는가!” 라고 하여 중생들은 산골짜기에서 찾기 시작했는데 손에 둥근 거울을 쥔 12살의 가야사다를 발견했다.

    출가 후 한번은 바람결의 구리종 소리에 승가난제가 “종소리가 울린 건가? 바람소리가 들린 건가?” 하고 물었는데 대답이 “바람소리도 종소리도 아니고 내 마음의 귀가 울린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마음은 또한 누구냐?” 하고 물으니 “다 고요하고 적막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하여 승가난제는 정법안장을 그에게 주었다.

    가야사다는 또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교화 했는데, 월씨국에 이르러서 불사를 크게 지었는데 구마라다라는 바라문은 외도의 법을 믿었으며 불법을 싫어하였다. 조사께서 그 집에 가서 인연의 법을 말씀해 주시고 또 그 아버지의 병의 원인을 말씀해 주시니 바라문이 이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조사께서 출가시켜 구족계를 주었고 도과를 증득한 뒤엔 법을 전해 주면서 게송을 일러 주셨다. “씨앗이 있고 마음의 밭이 있으니, 인연이 싹을 나게 하도다, 인(因)과 연(緣)이 서로 막히지 않으면 마땅히 윤회를 벗어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나자 몸이 솟구쳐 허공에서 18가지 변신하면서 화광삼매(火光三昧)로 자신의 몸을 태웠다. 이때가 중국 전한의 제15대  성제 14년 무신이었다.


    스님들은 사리탑을 세워 모시었다.

     

     

     

     

    45. 사저필추존자(莎底苾芻尊者)

     

    사저(莎底)는 뜻을 번역하면 길하고 상스럽다는 뜻이다.
    필추(苾芻)는 비구를 뜻한다. 석가모니께서 사위국지수의 고독원에 있을 때 새로 출가한지 얼마 안되는 비구 사저라고 하는 이가 있었는데 원내에서 여러 스님들에게 물을 끓여 목욕하게 하였다.

    <불설대금색공작왕주경(佛說大金色孔雀王經)>에 의하면 길상이 장작을 태우고 있는데 검고 큰 뱀 한 마리가 썩은 나무구멍에서 불쑥 튀어나와 길상비구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물었다. 그러자 뱀독이 혈관을 따라 온몸에 퍼져 길상의 눈동자가 풀리고 입에서는 침을 흘리며 의식을 잃었다. 아난존자가 이광경을 보고 매우 놀라 급히 석가모니 부처님께 살린 방법을 구하러 갔다. 아난은 이마를 땅에 대고 예경하며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대공작명왕주(大孔雀明王咒)있는데 그 위력이 커서 일체 모든 독, 재난, 공포, 번뇌를 없애며 세상의 일체 유정으로부터 중생들을 보호하고 안락을 누리게 한다” 라고 하며 주문을 아난에게 주었다. 아난은 주문을 받아 법에 따라 길상을 구하고 치료하였으며, 길상은 살아나서 발심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불도를 닦아 마침내 정과(正果)를 얻었다.


     

     

     

    46. 파도제파존자(波闍提婆尊者)

    파속습박 혹은 파사이 라고도 하며 본명은 난생인데 옆 비구 또는 옆 보살이라 통칭하였다. 중인도 사람이다.

    불교 전설에 의하면 파도니파는 모친의 태속에서 60년이나 있었다. 탄생 시에 그 부친이 꿈에 코끼리 등에 보좌(寶座)가 있었고 그 자리에는 명주(明珠)가 하나 있었는데 문으로 들어와 사방의 중들을 비추어서 깨어나 보니 파도니파가 막 출생하였다 한다. 

    서천(西天) 인도 28대 선조의 제9대 선조 복타밀다가 이곳에 왔을때, 그의 부친은 그를 데리고 와서 사례를 하며 “이 자식은 태속에서 60살을 먹었는데 본명이 난생이고 일찍이 한 선자(仙者)가 이 아이는 비범함으로 법기(法器)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존자를 만나 출가를 시키려 합니다” 하고 말했다.
    복타밀다는 곧 파도제파의 머리를 깎여 출가시켰다.

    파도제파는 스승을 따라 수행하며 잠도 자지 않으며 등을 침상에 붙여본지 오래되었을 정도였다.

     

    파도제파는 “진체(眞體)는 스스로 진실하며 진실을 말하기를 도리가 있다. 참으로 진실한 법을 얻으려면 끝이 없다” 라고 하며 현신으로 변하여 열반에 들어가고 자신을 태우니 많은 신도들이 각각 저고리에 사리를 담아 그 곳에 탑을 세워 공양했다.
    기록에 보면 파도제파존자는 가니색가(伽尼色迦)왕 때 일찍이 500명의 승려들과 함께 가습미라에서 제4차 불경결집(結集)을 거행하였다 한다.


     

     

    47. 해공무구존자(解空无垢尊者)

     

    존자의 이름은 무구광보살, 무구광동자 라고 하며 밀칭(蜜稱)은 이진금강(璃塵金剛) 이다.
    태장계문수원(胎藏界文殊院)에 계셨으며 문수보살의 사자(使者)였다.

    문수보살은 8명의 대동자(大童子)와 함께 하였는데 여러 동자들은 각각 문수보살의 한 가지 품행을 모두 구비하였다. 무구광동자는 문수보살의 공지(空智)를 나타냈으며 몸에 먼지가 전혀 묻지 않고 빛을 뿌렸다.
    문수보살은 일체 佛의 지혜와 덕이 같은 지혜로 무상(無相)지혜 삼매에 이르며 이 지혜 삼매는 더욱 쌓여 문수보살이 소유한 지혜는 여러 보살 중에서 지혜가 제일이라 불리었다.

    무구광보살은 문수보살의 공지(空智)사자로서 문수의 특이한 지혜로 중생의 번뇌를 끊어버리고 과거, 미래, 현재의 현명한 길과 법의 명문에 들어서게 인도하였다.

     

     

     

     

    48. 복타밀다존자(伏陀蜜多尊者)

    복태밀다(伏蜜多), 복대밀다(伏帶蜜多) 라고도 한다. 제가국(堤伽國)사람이다. 성은 비사라이다.

    불교 전설에 의하면 복타밀다는 50년이 되도록 말도 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했다.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9대 선조가 되었다.
    서천(西天) 인도 28대 선조의 제8대 선조 불타난제(佛難提)가 신도들을 거느리고 걸어서 이곳까지 왔는데 그 집 위에 흰빛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이집에 성인이 있는데 입으로 말하지 못하나 참으로 큰 그릇이고 큰길로 행하지 못하나 더러움을 접촉하여 알지 못함이다” 라고 했다.

    복타밀다가 불타난제를 보고 일어나서 예배를 할 때 불타난제가 말하기를 “부모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누가 나와 가장 가까운 이인가? 일체제불이 나의 도가 아니면 누가 최고의 도가 되겠는가?” 라 하였다.
    복타밀다가 이 말을 들은 후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
    불타난제는 그의 부친에게 “이 집 아들이 일찍부터 불도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소원 또한 컸으나 부모의 애정이 끊어지는 것을 근심하여 50년 동안 말하지 않았으므로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부친은 아들더러 출가하라고 하여 불타난제는 그에게 정법안장을 넘겨주었다.

    제9조 복타밀다존자는 많은 사람을 교화하며 두루 사방으로 다녔고 중인도에 이르렀다. 한 장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향개(香蓋)다. 한 아들을 데리고 복태밀다 존자에게 예배를 드리면서 말하였다.

    “이 아들은 모태 가운데서 60세를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태어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뜻의 난생(難生)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존자님을 만났으니 출가하게 하려합니다.” 하였다.

    존자가 곧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주는데 갈마작법을 할 즈음에 상서로운 광명이 그 자리를 비추며 사리가 37개가 쏟아졌다. 이로부터 정진을 하는데 피로함을 잊었다. 그리하여 스승 복태밀다 존자가 말하였다.

    “여래의 큰 법을 지금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그대는 잘 보호하여 기억하라.” 하시고 이에 게송을 설하였다.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으나 이름에 의하여 진리를 나타낸다. 진실한 법을 알아들으면 진실도 아니요 거짓도 아니다.이렇게  제10조 협존자(脇尊者)를 만나 머리를 깎이고 계율을 받게 하였으며 후에 서천(西天) 인도 28대 선조의 제10대 정법안장을 주면서 멸진삼매에 드시니 하늘에서 꽃을 뿌려 공양하였다. 이 때 협존자가 향기로운 장작으로 화장했고, 많은 사람들은 향유와 향단 목그릇으로 사리를 거두어 사찰을 세웠는데 나란타 절이었다. 주나라 제26대 경왕 35년 갑인이었다.


     

     

    49. 부나야사존자(富那夜舍尊者)

    서천 인도 28대 선조의 제11대 선조가 되었다.

    고인도 화씨국인이며 성은 구단이고 그 부친은 보신(寶身)이며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불교를 신봉하였다. 부나야사는 부처의 영향을 받아 불교이론과 각종 계율에 익숙하였다.

    어느 날 불교 제10대 선조 협존자(脇尊者)가 처음 화씨국에 왔을 때 제자와 같이 한 나무 밑에서 휴식하는데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여러 제자들에게 “이 땅이 황금색으로 변하면 이곳에서 한 성인이 우리 승단에 가입함을 예시한다” 고 했다.
    그러자 땅이 황금색으로 변하였는데 부나야사는 합장하고 협존자(脇尊者)에게 말하기를 “내 마음이 존자에게 가지도 못하고 멈추지도 못하여 내 마음이 안정하지 못하니 여러 부처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협존자는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부나야사를 머리 깎여 출가시켰으며 가지고 다니던 법기(法器)를 부나야사에게 주면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본래 대법장인데 오늘 내가 너에게 넘겨주니 네가 성심으로 애호하고 꾸준히 염불을 외워 신중히 후대들에게 넘겨야 한다” 라고 했다. 법을 전수한 후 협존자는 불로 자기 몸을 태워 부나야사가 불교 제11대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 후에 부나야사존자는 법장을 마명존자에게 넘겨주었다.


     

     

    50. 가야천안존자(伽耶天眼尊者)

     

    덕을 행하고 신통(神通)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불교는 눈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데,

    첫째는 육안(肉眼)으로 맨눈으로 모든 것을 봄을 일컫고, 둘째는 천안(天眼)인데 색계(色界) 천인(天人)이 소유한 눈이다. 사람들 중 선정한 사람만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능히 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혜안(慧眼)인데 성문, 연각의 2승지인(二乘之人)이다. 진공(眞空)을 비추는 무상지리(無相之理)의 지혜이다. 넷째는 법안(法眼)인데 보살의 경지인데 일체법문의 지혜를 비춘다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불안(佛眼)인데 부처님이 구비한 앞의 네 눈을 모두 가진 자이다.
    가야존자는 선정을 통하여 천안(天眼)을 얻은 분이다.

    <지도론(智度論)> 권5에 따르면 “천안은 땅으로부터 지하 6도(六道)중의 모든 물건, 가깝고도 길며 굵고도 약한 모든 색을 비추지 않는게 없다” 라고 하였다.
    이로 보건대 가야존자는 능히 어느 시기나 어떤 물체든지 비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중생들의 생사윤회(生死輪廻)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