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금천 나그네 2016. 3. 15. 05:14

                     애인에게 어머니를 식모아줌마로 소개하는 자식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데....


- 남편과 사별하고 외아들과 단 둘이 살아가는 어머니에게는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자신의 인생의 전부였고 희망이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떡 장사를 하며 청춘을 그렇게 보냈다.


- 어머니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집안일은 아예 거들지 못하게 하였고, 오직 공부만 시켰다. 아들도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돕고 싶었지만 화까지 내면서 공부만 하라는 엄마의 바램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갈때까지 단 한 번도 집안일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 먹는 것도 좋은 것은 아들에게 주고 어머니는 찬물에 밥 말아 대충 때우고 돈도 버는 쪽쪽 통장에 넣어 자신을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않고 오직 자식은 신발부터 모자까지 부잣집 아이들처럼 메이커로 입히고 신겼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아들은 전라남도 동부지역에서는 명문고등학교로 이름있는 순천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 후 3년 동안 어머니의 바램에 어긋나지 않게 공부를 열심히 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서울에 있는 S대 입학하였다.

 그 동안 어머니는 5일장터에서 떡장사를 하면서도 마냥 즐거웠고, 동네사람들도 어머니를 볼 때마다 부러워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맛에 고된것도 몰랐고 아픈줄도 몰랐다. 자나깨나 자식 생각밖에 없었다.


- 서울에 있는 S대에 입학하자 지역 유지들이 장학금을 보내면서 우리 마을에 큰 인물 났다고 축하를 해주니 이 세상  모두 어머니 자신의 것인양 느껴졌다. 떡장사 하여 만든 돈은 다달이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 아들은 3년 동안 공부한다는 핑게로 시골에 두어번 내려오곤 줄곧 서울에서 지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을 상상하며 보고싶어도 꾹꾹 참고 살았다. 


- 어느덧 3년이 지나 졸업시기가 되자, 그 동안 떡장사하느라 서울에 한 번 가보지도 못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자식에게 따뜻한 떡 하나 먹이지 못한 것이 맘이 맺혀 온갖 정성을 다하여 떡을 만들어 행여 식을까봐 보자기에 싸고 또 싸서 머리에 이고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울 주소 한 장 달랑 들고 생전 처음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식 볼 생각에 들뜬맘으로 밤새 뜬눈으로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아들이 사는 곳을 어렵사리 찾아가니 아들은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아파트는 아가씨집에서 결혼을 전제로 사준 아파트였으나 어머니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나오는 아들 옆에 왠 어여쁜 아가씨가 서서 있다가 허름한 시골촌노를 보더니 의아해 하더니 어머니가 떡 보따리를 들고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자기야 누구?” 물었다. 아들이 어머니를 한 번 쳐다보고는 그 여자에게  " 응 시골에 사는 우리 집 식모 아줌마야” 하는 것이 아닌가!


- 그 순간 어머니는 현기증을 느껴 쓰러질뻔 하였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도련님 이것 받으세요.” 떡 보따리를 건너 주고는 거실에 올라가지도 않고 돌아서는 어머니의 마음은 천길만길 낭떨어지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 며칠 아들집에서 지내다가 내려온다고 했는데 이렇게 곧바로 고향에 내려가면 이웃들이 왜 이렇게 빨리 내려왔느냐고 물어볼텐데 대답할 길이 막막해서 밤중에 아무도 몰래 집에 들어가 그 때부터 아무도 만나지도 않았고 장사도 하지 않는 등 두문불출하였다.


- 이제는 떡장사 할 맘도, 살아갈 희망이 송두리채 무너져 버린 어머니는 고향에 돌아온 후 시름시름 앓다가 두달만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초상을 치르면서 아들은 한 없이 뉘우쳤지만 한 번 가신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를 식모아줌마라고 속였던 것을 알게 된 서울아가씨는 이런 남자하고는 살 수 없다며 아파트와 함께 아들 곁을 떠나버리자 아들은 여인숙방에서 어머니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3년 만에 자살하고 말았다.


- 어릴적 어머니가 자식을 가르칠 때 교과공부만 시켰지 심성이 고운 아이로 키우지 못했고 가난하지만 자신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에 대한 애뜻한 감성마져 없는 오직 자신을 위하는 것만 배우고 익혀왔던 다시 말해 극도의 이기주의자로 키웠던 어머니의 교육방법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부자집 아가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 동안 시골집 사정을 속여왔었고 어머니가 한푼두푼 떡팔아 모아 보내주는 돈을 농촌에서는 잘사는 어머니가 보내주는 용돈이라고 속였던 것인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남루한 옷차림의 어머니를 보니 애인의 어머니와 비교해 보니 너무 초라해서 식모라고 소개한 것었다. 결국 이 아들에게는 효심도 자존감도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애뜻한 정마져 없었던게 아닐까 생각이 된다.

어머니가 자식을 한석봉처럼 키우려 했는데...
어머니의 억장이 무너졌겠네요.
예로부터 잘 배운 자식은 효도 안하고
못배운 자식이 효도한다고 하지요.
자식 잘풀렸다고 자랑하지 맙시다
못배운 자식이 부모 섬깁니다.
잘배운 자식 재산 주지말고
못배운 자식에게 재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