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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샨13 2010. 9. 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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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날의 절집풍경, 

    장령산 용암사(長靈山 龍岩寺)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51-1 / 옥천군 문화관광과 043-730-3114

     

    젖은 길이 좋다.

    젖은 나무가 좋다.

    이미 흠뻑 젖은 바위와 이끼,

    담장 사이로 깨어난 이름모를 질긴 생명이 좋다.

    안개비 가득한 날, 절집으로의 여행은

    넉넉하고 고요하다.

    자연이 주는 빗소리와 스님의 독경소리가 좋다.

     

    용암사 전경

     

    옥천읍과 군서면, 이원면을 잇는 옥천의 명산 장령산(長靈山, 656m),

    북으로 마성산(497m)이, 남으로 대성산(705m)이 지척이고, 동남으로 월이산(551m), 서로 서대산(903m)이 자리한다. 진달래와 철쭉의 봄꽃이 좋고, 숯들은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 단풍나무가 가득하다. 장령산 휴양림으로 접어들면 소나무 군락이 등산객을 유혹하는 산이다. 골마다 계곡이 자리하여 시원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잇는 곳으로 사계절 어느때고 많은 이들이 찿는 옥천의 산이라 할수 있겠다. 장령산을 찿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으니 용암사쌍삼층석탑 앞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운해의 묘미다. 봄 가을이면 수많은 사진가들이 찿아 진을 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장령산 동쪽에 자리잡은 절집이 하나 있으니 장령산 용암사(長靈山 龍岩寺)다. 

    신라 진흥왕 2년(541년), 의신조사가 인도로 건너가 불도를 닦고 진흥왕 13년(552년)신라로 돌아와 이 곳에 절집을 짓고 용암사라 불렀으며 13년 후에 속리산으로 가 법주사를 세웠다.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지금의 모습은 천년고찰 절집의 향취보다는 고즈넉하고 넉넉한 모습이 우선이다. 본당의 마당앞에 서 있는 범종각을 빼고는 모두가 층층이 계단 위에 선다. 가람보다 더 오랜세월을 이겨온 두 문화재가 자리하니 그 중하나가 천불전의 뒤쪽 벼랑에 새겨진 마에불이다. 대웅전의 뒤로 돌아 오르면 천불전, 그 위의 미끄러운 돌길을 따라 오르면 마애불이 자리한다. 신라 56대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신라 천년사직의 무상함을 통탄하며 유랑하던 중 이곳에 머물다 떠나자, 그를 추모던 이들이 마의태자를 그리며 마애불(麻崖佛)을 조성했다 한다. 그리고 또하나의 문화재 보물 제1338호로 지정된 용암사쌍삼층석탑(龍岩寺雙三層石塔)이다. 고려때에 세워진 산천비보(山川裨補)사상에 의해 세워진 쌍탑으로 이는 산천과 가람의 쇠퇴한 기운을 복돋아 준다는 이미로 절집의 자리가 지리적으로 약하여 그것을 보해주는 역힐을 한다고 맏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쌍삼층 석탑은 보수중이다. 그래서인가 얼마전의 태풍으로 경내 앞의 배나무가 실한 열매을 달았음에도 기둥채로 뽑혀 누웠으니, 없다 할수도 없는 내려오는 전설이 되어버린다.

     

    용암사는 그 외에도 많은 사진가들이 찿는 곳이기도 하다.

    그 첫째가 용암사 마애불에서 바라보는 여명과 일출에 있다. 정동향으로 하고 있는 마애불의 앞에서 떠 오르는 장관을 담기 위함이며, 두번째로 쌍삼층석탑 앞에서 바라보이는 운해의 장관이다. 용암사 오르는 길은 주차장 앞까지 길이 나 있으나, 그 길이 험하여 오르기 쉽니 않은길로 이른 새벽, 차로 오르다가 길가에 늘어선 차를 본다면 더이상 억지 진행을 하지 말고 그 뒤에 세운뒤 조금은 걷는것이 안전하다. 무리수로 오르다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좁고 경사 심한길임을 명심하길 바라는 의미다.

     

    비오는 날,

    올 한해 유독 주말과 휴일이면 괴롭히는 이놈이 날씨는 오늘도 여전하다. 다음으로 미룰까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예까지 찿아 용암사마저도 지나치기에는 길손의 걸음이 무겁다는 생각에 빗길을 뚫고 용암사로 향한다.

    녹록치 않은 절집가는 길,

    빗길에 미끌어질대로 미끄러운 길은 버벅거림을 더해주지만, 홀라당 젖은 산야의 푸름과 초록의 내음은 한가득이다. 어느덧 구비구비 경사 깊은 길을 어렵게 오르고 나니 이내 용암사의 주차장이다. 옥천 8경중의 하나라는 일출은 고사하고라도 옥천읍내를 두고 깔리는 운해의 장관 또한 만날 겨를이 없다. 반기는 것은 넉넉한 장령산에 내려앉은 가람이고, 스러져 누운 배나무의 안타까움이고, 보수공사중인 쌍삼층석탑뿐이다. 솔잎 가지는 이슬을 머금고, 가람들은 비에 젖어 나무의 향이 더 진하게 베인다. 마애불을 향해 올라 산신각으로 내려오는 길은 이끼 잔득 머금은 숲길로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스럽다. 내려오는 돌 계단의 중간중간에 선 비석, 돌하나도 그냥 서 있는 것이 없다 저마다의 발복하는 글 담은 비석들이다.

     

    장대비 주룩 주룩 내리는 날, 절집의 분위기는 한산하고 넉넉하여 더 좋다.

    인적드문 절집의 풍경, 빗소리와 스님의 독경만이 울리는 풍경, 이는 만나본 자만이 알수 있는 기분좋은 고요함이다.

    마음 가득 담기는 넉넉한 여유의 풍성함이다.

     

     

     

     

     

     

     

     

     

     

    용암사마애불(龍岩寺麻崖佛, 도지정문화재 제17호)

    이 마애불은 용암사 뒤편 장령산(藏靈山) 바위암벽에 양각한 297㎝의 여래입상(如來立像)이다.

    화려한 연화대좌(蓮花座臺)위에 양쪽발을 약간 벌리고, 바로 서 있으며, 머리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발(素髮)로 보이며 양눈, 코, 입 등 얼굴의 형상은 매우 단정하고 자비(慈悲)가 넘친다. 얼굴은 길고 어깨까지 늘어진 양쪽 귀로 위엄과 인자함이 넘치고 있는데 법의(法衣)는 우견편조(右肩偏袒 : 오른쪽 어깨 옷깃을 한쪽으로 뜯어논 것)이다.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 태자가 용암사에 잠시 머물다 간 후, 그를 기리며 새긴 마애불로, 구름위에 둥실 떠 있는듯한 묘한 여운이 남는 마애불이다. 갓바위가 빗물과 햇빛을 막아주고 있어 그 형상이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다.

     

     

     

     

     

    용암사쌍삼층석탑(龍岩寺雙三層石塔, 보물 제1338호)

    이 두 석탑(石塔)은 같은 형태이며, 용암사(龍岩寺) 동편 탑봉(塔峯)의 자연 암반위에 나란히 서있다.

    용암사의 경내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수 있는 자리에 선 싼삼층석탑으로, 이층 기단(基檀)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각층 탑신(塔身) 옥개석의 조성수법이나 옥개 받침 등 각부의 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신라 말에서 고려 초 고려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사방의 조망권이 확보된 위치에 건립되어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사상으로 건립된 석탑 중 쌍탑으로서는 처음 확보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현재는 보수중으로 한개의 탑은 옥개석이 침몰되어 부자연스러우며, 또 하나의 탑은 기울기가 불안정하다. 그래서인가 절집을 들어서는 입구에 선 열매 가득 달린 배나무 한그루가 태풍'곤파스'를 견뎌내지 못하고 스러져 있는 모습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by 박수동 

    www.gilson.asia 

    출처 : 길손의 旅行自由
    글쓴이 : 길손旅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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