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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샨13 2010. 9. 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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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한 언어의 시인,  

    정지용 생가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39  /  043-730-3588

     

    옥천 구읍.

    아직은 옛 정취가 오롯히 남은 마을이다.

    좁은 길가 지용의 생가가 자리하며

    그 안쪽으로 정지용문학관이 자리한다.

    작은 뜨락, 작은 마당.

    그리고 시인의 삶이 있는 자리.

    음악 "향수"가 귓가에 맴도는 공간속, 정지용을 만난다.

     

    향수,

    그곳이 차마 꿈 엔들 잊힐리야..

     

    잊혀가는 고향의 정겨움을 그려낸 시인 정지용,

    그의 서정적인 싯구와 달리 그의 생애는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시인이라 불렸으며, 해방후 좌우익 대립에서는 혼돈의 시기를 거친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그는 월북 시인으로 낙인 찍혔다.

    그러던 1988년, 그의 해금이 풀리고 그의 생가가 헐린 자리에 다시 그의 집을 짓고, '지용생가'라는 이름을 붙혔다. 그 다음해, 시인 정지용흉상제막기념공연이 있던 날, 그 자리에서는 이동원, 박인수가 함께 불렀던 정지용의 시 '향수'가 울려 퍼졌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시인 정지용은 이곳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옥천 보통고등학교를 나와,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도시샤 대학을 나와 1922년"풍랑몽"을 쓰면서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시문학", "구인회"등의 문학동인과 "쿤장", "카톨릭청년"등의 편집위원등의 활동을 하였고, 모교인 휘문고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해방 후, 이화여전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문학가 동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등을 맡았다. 그러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 정치보위부에 구금 되었고 이후 그에 대한 것은 더 이상 알수가 없다.

     

    시인 정지용, 그는 140여편의 시를 남겼다.

    시의 내용들은 대부분 시인의 삶과 가깝다. 고향과 시골, 산과 바다, 도심과 동심 그리고 구원. 시인은 자신의 삶을 시적 언어로 표현해낸다.

    "정지용 시집"과 "백록담", "지용시선"의 시집이 있고, "독학독본"과 "산문" 산문집이 남아있다.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이르는 결정적 계기를 만든 시인으로 절제된 감정과 정확한 묘사는 누구나 접하든 그의 시를 듣거든 그 의도를 쉽게 알수 있건 것에 반해, 그를 친일 내지는 월북 시인이라 불리게 한 계기가 되었고 섬세한 언어를 만들어 낸 단어들은 시인의 시적감각의 정점을 알수 있는 반면, 현실을 도피하는 도피성 글로 보이게도 한다.

    그러고 보면 시란, 글이란, 쓰는 이의 몫이 아닌 받아들이는 이의 몫이 된다. 그것은 변두리 아마추어 블로그인 길손의 주변에서도 쉽게 일어 나고 있는 일들이다. 글쓴이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하여 불순한 뜻으로 비추어 내거나, 들추어 내어 교묘하게 꿰어 맞춘다. 물론, 그것이 온라인이며 1인미디어의 특징이라 하지만.. 컴퓨터 보다는 원고지와 펜촉이 익숙하던 그 시대의 악의적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무식한 돌대가리의 길손이라면 당시의 거대 미디어들이란 생각이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선구자로서 역할보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경향이 높아 보인다.

     

    혼돈의 시대를 살다간 시인, 정지용.

    그를 만나기 위해 옥천으로 향한다. 옥천의 구읍, 생기를 복원한 그 자리는 과거 옥천의 읍내자리다. 당연히 번화가였으며 마을의 유지들이 살고 있던 마을이다. 그러나 그 영화로움 보다는 지금의 하계리는 참으로 적적하다 싶을 정도로 고요하다. 그도 그럴것이 일제 강점기 경부선 철도가 구읍을 통과하게 되어 있었으나 고장의 유지들이 반대를 하여 철도는 마을을 비켜 돌아가고 구읍은 온전히 남게 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이후 구읍은 더이상 옥천의 중심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덕에 지용생가 자리는 지금도 옛 정취가 물씬 풍기니 그 풍경이 그대로 살아남아 지나는 나그네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넉넉한 정감이 살아있는 옥천, 그 속 정지용의 생가, 그리고 정지용의 삶과 문학의 세계를 만날수 있는 문학관이 2005년 5월에 세워진다. 고향, 향수의 질박함이 그대로 살아있는 마을에서 생가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들려오는 시 한수 만날수 있는 공간이 여유있어 좋다.

     

     

    지용생가

     

     

     

     

     

     

     

     

     

     

    정지용 문학관

     

     

     

     

     

     

     

     

     

     

    by 박수동 

    www.gilson.asia 

    출처 : 길손의 旅行自由
    글쓴이 : 길손旅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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