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권위역 킹제임스성경

성경 전체를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 앱으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한국어권위역’으로 검색하셔서 다운로드 하십시오.

우리는 ‘방법’을 원하나, [하나님]께서는 ‘원인’을 주십니다. – (3)

댓글 1

카테고리 없음

2018. 11. 24.

 

킹제임스성경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씀들 (8)

 

우리는 방법을 원하나, [하나님]께서는 원인을 주십니다. – (3)

 

세 번째 주제: 성도는 어떻게 하여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셔서 성도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시는가?

 

사도 요한은 자신이 성도들에게 쓴 첫 번째 서신에서, 영원한 생명이시자 그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빛이신 [하나님]을 밝히 드러내면서, 그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교통과, 성도들 간에 서로 함께하는 영적 교통을 갖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요일1:1 ~ 요일1:3)에서 요한이 말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신, 처음부터 계셨던 분, 우리가 들어왔던 분,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보아왔던 분,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왔고, 우리 손으로 만져왔던 분을,

요일1:1

(왜냐하면 그 생명께서 나타나셨으므로, 우리가 그 생명을 보았고, 또한 그 영원한 생명을 증거하여, 너희에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요일1:2

곧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분을, 우리가 너희에게 밝히 드러낸다.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역시 우리와 교통을 갖게 하려 함이다. 왜냐하면 참으로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이며, 또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일1:3

 

요한은 이 영적 교통이라는 논제에 이어, 곧바로 성도들의 죄라는 논제를 전개합니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성도들이 자신들이 지은 죄들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용서하심과, 불의한 것들로부터 깨끗하게 하심을 믿음으로 받아 가지는 것이, 성도들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통을 갖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한일서1장의 모든 구절들에 등장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we (우리)’ 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일까요, 구원받은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일까요? 사도들이 쓴 모든 서신서들의 수신자는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요한일서1장의 우리는 사도 요한을 포함한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요한일서에서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구절은 (요일1:5)입니다. ‘어둠 (darkness)’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에게서 들어,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전할 말이 이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분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요일1:5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옛 사람은 어둠 가운데서 걷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이 어둠을 성도들의 죄와 관련하여 논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요일1:5)에서 요한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한다 말하면서도, 어둠 가운데서 걸으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요일1:6

 

이어서 (요일1:8)에서 요한이 말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요일1:8

  

이어서 (요일1:10)에서 요한이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요일1:10

 

성도들이 자신들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면, 성도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신들이 지은 죄들을 시인하지 않고, 자신들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새로 태어났지만 죄들을 짓는 자신의 옛 사람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들은 죄와 상관 없다는 표정들을 하고 목을 뻣뻣하게 세우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옛 사람의 본성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죄들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새로 태어난 새 사람만을 보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죄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들을 계속 짓고 있는 아직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성도들의 옛 사람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옛 사람이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려고, 그리고 죄 지은 성도들을 변호 하시려고, 성도들이 자신이 지은 죄들을 시인하며 [하나님] 앞에 내어놓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성도들이 자신들의 옛 사람이 지은 죄들을 시인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죄들을 용서하십니다. 사도 요한이 (요일1:9)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가 지은 죄들을 시인할 때,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한 것들로부터 깨끗하게 하신다.

요일1:9

 

그리고 성도들이 죄를 짓더라도, 성도들에게는 변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고 (요일2:1)에서 말합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우리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신다.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요일2:1

 

성도들이 자신들이 지은 죄들을 시인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는 성도들이 지은 죄들을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들의 시인 없이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지은 죄들을 아직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성도들의 옛 사람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끄집어내어 용서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게 자신들의 죄들을 자신들 앞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사제들 앞이나, 목사들 앞이나, 종교 지도자들 앞에 내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만 내어 놓아야 합니다.

 

(51:1 ~ 51:4)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주의 사랑 넘치는 친절에 의하여 제게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그렇게 하셔서 풍성한 주의 사랑 넘치는 긍휼에 의하여 제 범죄들을 지워주소서.

51:1

불법에서 저를 완전히 씻기셔서, 제 죄에서 저를 정결하게 해주소서.

51:2

왜냐하면 제가 제 범죄들을 시인하므로, 제 죄가 항상 제 앞에 있기 때문 입니다.

51:3

제가 주를 거슬러 오직 주만 거슬러 죄를 지었고, 주의 눈앞에서 이 악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주께서 의로우시다고 증명 되게 하려 함이며,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주께서 명백하시다고 하려 함입니다.

51:4

 

우리가 우리가 지은 죄들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용서를 받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통이 단절된 자가 어떻게 새 사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지며 자라는 영적 성장이 가능할까요?

 

다윗이 (32:5)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합니다.

 

제가 제 죄를 시인했고, 제 불법을 숨기지 않아 왔습니다. 제가 제 범죄들을 {}께 시인하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께서 제 죄 곧 불법을 용서 하셨습니다. 셀라.

(I acknowledged my sin unto thee, and mine iniquity have I not hid. I said, I will confess my transgressions unto the LORD; and thou forgavest the iniquity of my sin. Selah.)

32:5

 

죄를 시인하는 일은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포함합니다. 우리말 성경들의 번역들로는 시제를 명확히 보기가 매우 어렵지만, 킹제임스성경으로 보면, ‘I acknowledged my sin (제가 제 죄를 시인했다.)’는 과거형 이며, ‘mine iniquity have I not hid’는 현재완료형 (현재완료의 용법 중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상태의 계속을 나타내는 용법: ‘나는 나의 불법을 숨기지 않아 왔다.’) 이고, ‘I will confess my transgressions (제 범죄들을 {}께 시인하겠습니다.)’는 미래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하여 의하여 우리의 죄를 이미 용서해 주셨으나,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 현재, 미래) 우리의 죄를 주님께 시인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용서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가져야 합니다.

 

(1:29)에서 침례자 요한이 말합니다.

 

그 다음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했다.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1:29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제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제거하셨으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가 제거되었을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끈질긴 착각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루셨으면 그 일이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셨더라도 우리가 그 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필자의 칼럼 중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루신 일들을 우리의 믿음에 의하여 일어나게 하십니다. (1) (2)’를 참조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죄들을 시인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 하시면, 우리가 자동적으로 죄의 용서를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시인하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대신 겪으시고,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 해주신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께서 해주신 용서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지은 죄들이 제거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시인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하지 않는 죄를 우리의 옛 사람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용서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시인하기까지 기다리시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시인하여 우리 앞에 둘 때에 (51:3),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께서 해주신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해주신 용서를 받아 가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 하지 않으신 것과 결과가 같습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 하시는 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원인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의한 [하나님]의 용서하셨음을 믿는 믿음과 우리가 지은 죄를 시인하는 고백은,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신 용서를 누리는 방법입니다.

 

더 나아가 성도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시인하고 용서를 받지 않을 때에, 성도는 [하나님]과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잃을 뿐만 아니라, 죄들의 용서와 함께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치료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죄들을 용서하시는 용서에는 그분께서 베풀어 주시는 치료가 항상 뒤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103:3)에서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네 모든 불법들을 용서하셔서, 그분께서 네 모든 질병들을 고치시고,

103:3

 

성경주석자 John Gill (1697 ~ 1771) 은 이 구절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불법을 용서 하시는 것과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것은 하나이며 같은 일이다.”

 

{}께서 (33:24)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그 거주민으로 하여금, 내가 병들었다.’ 라고 말하지 않게 하겠다. 왜냐하면 내가 거기 거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 불법을 용서받게 하겠기 때문이다.”

33:24

 

성경주석자 Adam Clarke (1760 ~ 1832) 은 이 구절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질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난, 곧 죄로 인한 징벌이다. 죄를 용서하시는 용서는 질병을 치료하시는 치료와 같은 것이다.”

 

(대하7:13, 대하7:14)에서 {}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않거나, 또는 메뚜기들에게 명령하여 땅을 삼키게 하거나, 또는 내 백성 가운데 역병을 보낼 때에,

대하7:13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할 때에, 내가 하늘에서 듣겠고, 또한 그들의 죄를 용서하겠고, 그렇게 해서 그 땅을 치유하겠다.

대하7:14

 

{}께는 자신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과 그들을 치유하시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25:11) (41:4)에서 다윗이 {}께 기도합니다.

 

{}, 제 불법이 큼에도 불구하고, 주의 이름 때문에 제 불법을 용서하소서.

25:11

<->

제가 말했습니다. ‘{}, 제가 주께 거슬러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긍휼을 베푸셔서, 제 혼을 치료해 주소서.

시편41:4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불법을 용서해주시는 용서혼을 치료해주시는 치료가 같은 일입니다.

(9:2 ~ 9:7)에서 [예수님]께서 중풍 환자와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보라, 사람들이 중풍으로 침상에 누운 한 사람을 그분께 데리고 왔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고,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큰 활력을 받아라. 왜냐하면 내가 네 죄들을 네게 용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9:2

이에, 보라, 서기관들 중의 어떤 자들이 속으로 말했다. “이 사람이 신성모독 하는구나.”

9: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악을 생각하느냐?”

9:4

왜냐하면 내가 네 죄들을 네게 용서하기를 원한다.’ 라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라고 말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9:5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능을 가진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서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네 집으로 가라.” 라고 말씀하셨다.

9:6

이에 그가 일어나, 자기 집으로 떠나갔다.

9:8

 

[예수님]에게는 죄들을 용서하시는 일일어나 걸어가게 하시는 일이 같은 일입니다.

 

(5:15)에서 야곱이 말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믿음을 가진 기도는 병든 자를 반드시 구원할 것이다. []께서 그를 반드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곧 그가 죄들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들이 반드시 그에게 용서될 것이다.

5:15

 

야곱은 []께서 병든 자의 죄들을 용서하시는 일은 []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는 일과 같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의 믿음을 가진 기도 (the prayer of faith)’는 병든 자를 치유해주실 것을 []께 간구하고 베풀어 주신 치유를 받아 가지는 기도 입니다. ‘믿음 (faith)’ []께서 베풀어 주시는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시인하고, 죄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성도는, ‘성도는 어떻게 하여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성도는 죄를 짓지 않겠다.’ 라고 결심하고 또 서원도 하며, 그 일이 성도에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비록 이루지 못했지만 내일부터는 더욱 우리의 온 힘을 다하여 애쓰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 기록들 어디에서도 성도 스스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어떻게 하여서 이룰까 (how to perform)?’를 먼저 생각합니다. 바울이 (7:18)에서 말합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정확히 말하면, 내 육신 안에) 조금도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선한 것을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것을 어떻게 행할지는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For I know that in me (that is, in my flesh,) dwelleth no good thing: for to will is present with me; but how to perform that which is good I find not.]

7:18

 

바울을 포함한 성도들은 선한 일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어떻게 행할지는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옛 사람 안에는 조금도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옛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도의 옛 사람은 죄들을 짓는 몸입니다. (2:11)을 봅니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서 또한 너희는, [그리스도]께서 해주신 할례에 의하여 죄들을 짓는 몸인 육신을 벗어 버림으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에 의하여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2:11

 

성도의 옛 사람은 죄가 그 안에 있는 자입니다. (6:6)을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것을, 곧 우리로 하여금 이제부터 죄를 섬기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있는 몸을 파괴 하시려고, 우리의 옛 사람을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6:6

 

성도의 옛 사람은 죄가 그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7:19, 7:20)을 봅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선한 것은 내가 행하지 않고, 반대로 내가 원하지 않는 악한 것,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다.

7:19

이제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내가 행하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고, 내 안에 거하는 죄이다.

7:20

 

그러나 바울은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how)?’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who)?’의 문제라는 것을.

 

그래서 (7:24)에서 바울은, ‘이 죽음을 가져오는 몸으로부터 누가 (who) 나를 구출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묻습니다. ‘이 죽음을 가져오는 몸 (the body of this death)’ (6:6)에서 말한 죄 있는 몸 (the body of sin)’입니다.

 

오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 나는! 이 죽음을 가져오는 몸으로부터 누가 나를 구출할 수 있겠는가?

(O wretched man that I am! who shall deliver m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7:24

 

그리고 나서 바울은 누가 (who?)’에 관하여 (8:2)에서 말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인 법이, 곧 생명을 주시는 법이신 [성령님]께서 죄와 죽음을 가져오는 법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새 언약에서 생명을 주는 법 (the law)’생명을 주시는 [성령님] (the Spirit)’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인 법이, 죄와 죽음을 가져오는 법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였기 때문이다.

8:2

 

성도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는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새로 태어난 성도의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은 죄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일3:9)에서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죄를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요일3:9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난다. 곧 누구든지 의를 행하지 않는 자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이다.

요일3:10

 

또한 새로 태어난 성도가 죄를 지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새 사람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포함시키셔서 새로 낳으시기 전에 성도의 옛 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성도의 죄 있는 몸을 파괴 하셔서 죽어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것을, 곧 우리로 하여금 이제부터 죄를 섬기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있는 몸을 파괴 하시려고, 우리의 옛 사람을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6:6

왜냐하면 죽어 있는 자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6:7

 

(2:7)의 모세의 기록을 봅니다.

 

그리고 {}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생명을 주는 숨을 그 코에 불어넣으셨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

2:7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으셨으나 죄로 인하여 타락한 옛 사람을 깨끗하게 하셔서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옛 사람의 생명과 새 사람의 생명은 전혀 다른 종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성령님]에 의하여 낳으신 생명, [하나님]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고, 옛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의 생명을 유전 받은 타락한 육신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3:3 ~ 3:7)에서 요한의 기록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말한다. 사람이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다.”

3:3

니고데모가 그분께 말한다. “사람이 나이 들었는데, 어떻게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가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가서, 태어날 수 있습니까?”

3: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말한다. 사람이 물에 의하여 태어나고, [성령]에 의하여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3:5

육체에게서 태어난 것은 육체이며, [성령]에게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3:6

내가 네게, ‘너희는 반드시 새로 태어나야 한다.’ 라고 말한 것에 놀라지 말라.

3: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옛 사람의 생명을 소멸시키시고, 새 사람의 생명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한 번에 이루셨으나, 성도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매일 매일의 삶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여 새롭게 바뀌어집니다.

 

(고후4:16)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약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겉 사람은 소멸되지만, 속 사람은 매일매일 새롭게 바뀐다.

고후4:16

 

(고전15:31) 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우리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지고 있는, 너희를 기뻐하는 기쁨에 따라 단언한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

고전15:31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옛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객관적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옛 사람을 죽어 있게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성도의 새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포함하여 새로 낳으셨다는 객관적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새로 태어난 자신의 새 사람 안에 계속 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후1:21)에서 말합니다.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고후1:21

 

 

 

사도 요한이 (요일3:6)에서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그분을 보지 못했고, 또한 알지도 못한 것이다.

요일3:6

 

매일 아침 성도가 일어날 때에, 성도는 [그리스도] 밖에 있습니다. 곧 옛 사람 안에 있습니다. 성도가 기도할 때에 비로소 성도는 [그리스도] 안으로, 곧 새 사람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전5:17)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라.

(Pray without ceasing)

살전5:17

 

기도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시간에 성도는 [그리스도] 밖에, 곧 우리 옛 사람 안에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 밖에 있습니다. 그 사이에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15:4, 15:4)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그렇게 할 때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한다.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Abide in me, and I in you. As the branch cannot bear fruit of itself, except it abide in the vine; no more can ye, except ye abide in me.)

15:4

나는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들이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의 안에 거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왜냐하면 내 밖에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I am the vine, ye are the branches: He that abideth in me, and I in him, the same bringeth forth much fruit: for without me ye can do nothing.)

15:5

 

(15:5)‘without me’를 우리말 성경들은 나 없이는또는 나를 떠나서는으로 번역하였으나, without me’(15:4, 15:5)에 세 번 나오는 ‘in me’ 대조되는 의미로서 내 밖에서는으로 번역 해야 합니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거나 [그리스도] 밖에서 아무것도 못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 사이에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들은 선을 추구한다고 그리고 영적 성장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성도들 안에서 일하셔서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들을 속이는 일이며, 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 밖에서 행하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불태워버리실 일들입니다.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15:6)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으로 내던져져서, 시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으로 던져, 태워버린다.

15:6

 

그리고 바울은 (고전3:11 ~ 고전3:15)에서 말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이미 놓여진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전3:11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장작이나, 건초나, 짚을 세울 때,

고전3:12

모든 사람 하나 하나의 일이 밝히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이 불에 의하여 밝히 드러나고, 그 불이 모든 사람 하나 하나의 일이 어떤 종류의 일인지 시험할 것이므로, 그 날이 그 일을 밝히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3:13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을 때, 그는 보상을 받을 것이다.

고전3:14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탈 때, 그는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에 의하여 받는 것 같이 받을 것이다.

고전3:15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곧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매일 매일의 삶을 기도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성도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옛 사람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후13:5)에서 권면합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너희 스스로 점검하라. 그렇게 해서 너희 자신을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 자신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다.

고후13:5

 

매일 매일의 삶에서 성도는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공급해 주시는 선한 것들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계신지, 곧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는지, 곧 새 사람 안에 거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방법을 원하나, [하나님]께서는 원인을 주십니다. 그리고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원인을 받아들여서 결과로 누리고, ‘결과를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원인을 주신다.”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신원인을 받아 가지는 것이믿음입니다. ‘믿음원인을 받아 가지는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들을 받아 가지는 유일한방법입니다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셔서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셨고, 우리의 옛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포함시키셔서 십자가에 못박으셨으며, 우리의 새 사람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포함시키셔서 새로 태어나게 하셨고, [성령님]에 의하여 우리로 하여금 새 사람 안에 거하게 하셨으며,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신 이 모든 일들을 받아들여 우리가 지은 죄들을 용서 받게 하셨고, 죄를 짓지 않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