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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거듭 태어났을까? 또는 다시 태어났을까? 아니면 새로 태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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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6.

킹제임스성경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씀들 (16)

 

성도는 거듭 태어났을까? 또는 다시 태어났을까? 아니면 새로 태어났을까?

 

성도는 다시 태어나거나 거듭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옛 사람의 생명과 새 사람의 생명은 전혀 다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옛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명입니다. 그 뒤에 아담의 죄로 인하여 부패한 생명입니다. 곧 아담의 부패한 유전자를 지니고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생명입니다. 반면에 성도의 새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님]에 의하여 낳으신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있게 하셨고, 성도의 새 사람을 새로 낳으셨습니다.

 

성도가 [성령님]에 의하여 태어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성경 기록들을 살펴봅니다.

 

요한복음 35, 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말한다. 사람이 물에 의하여 그리고 [성령]에 의하여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 (3:5) 육체에 의하여 태어난 것은 육체이며, [성령]에 의하여 태어난 것은 영이다. (3:6)>

 

성도가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성경 기록들을 살펴봅니다.

 

베드로전서 22절에서 사도 베드로가 말합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이라는 참된 젖을 간절히 원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에 의하여 자라기 위함이다. (As newborn babes, desire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that ye may grow thereby:) (벧전2:2)> 성도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들입니다. 아기들은 자라야 합니다. 새로 태어난 성도들이 말씀에 의하여 자라는 것이 영적 성장입니다.

 

로마서 64절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에 의하여 죽어 있는 자들로부터 살리심을 받은 것같이, 바로 그대로 우리로 하여금 또한 새로운 생명 안에서 걷게 하려 하심이다. (Therefore we are buried with him by baptism into death: that like as Christ was raised up from the dead by the glory of the Father, even so we also should walk in newness of life.)> 성도들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아 새로운 생명 안에서 걷는 자들입니다. 새로운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이자 새로 태어난 새 사람의 생명입니다.

 

이 구절의 ‘newness of life’는 새로운 생명 (new life)’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전치사 ‘of’의 용법 중의 하나로, ‘명사 + of + 명사의 형식으로 ‘of’ 앞의 명사가 ‘of’ 뒤의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킹제임스성경 안에서 볼 수 있는 용례들 중의 일부입니다.

the oldness of the letter = the old letter (낡은 율법조문) (5:7)

the perfection of beauty = the perfect beauty (완전한 아름다움) (50:2) (2:15)

weight of glory = weighty glory (무거운 영광) (고후4:17)

fulness of joy = full joy (충만한 기쁨) (16:11)

the circle of the earth = the circular earth (둥근 땅, 둥근 지구) (40:22)

 

요한복음 33절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말한다. 사람이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다.”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3:3)> 사람이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 (3:5),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3 3절의 ‘~ be born again’새로 태어나다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사전을 살펴보면 ‘again’의 의미에는 다시, 거듭의 뜻과 새로, 새롭게 (anew, afresh)’의 뜻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다시 한 번(once more); 다시, 새로(anew); (Daum 영한사전)

Expressing repetition of an action or fact: a further time; once more; any more; anew (새로). (Oxford English Dictionary)

Another time; once more; anew (새로). (Webster’s 1913)

once more, another time, anew, afresh (새로, 새롭게) (Thesaurus 어휘분류사전)

 

‘be born again’을 해석한 영어권 주해자들의 주해들을 살펴봅니다.

 

This change, or the beginning of this new life, is called the “new birth” (새로운 탄생) or “regeneration.” (Albert Barnes)

The new birth (새로운 탄생) which is here spoken of comprehends, not only what is termed justification or pardon, but also sanctification or holiness. (Adam Clarke)

~~~ quickened by the Spirit of God; renewed in the spirit (영 안에서 새롭게 된) of his mind; has Christ formed in his heart; becomes a partaker of the divine nature; and in all respects a new creature (새로운 창조물); and an other in heart, in principle, ~~~ (John Gill)

 

이 구절의 다른 영어 역본들을 살펴봅니다.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one be born anew,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ASV)

Jesus answered him,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one is born anew,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RSV)


따라서 ‘be born again’‘be born anew (새로 태어났다)’와 같은 뜻입니다.

 

성도는 성도의 옛 사람이 다시 태어나 또는 거듭 태어나 새 사람이 된 존재가 아닙니다. 옛 사람은 수만 번 거듭 태어나도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옛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옛사람을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포함하셔서 죽어있게 하셨고, 성도의 새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포함시키셔서 [성령님]에 의하여 새로 낳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3절에서 사도 베드로가 말합니다. <[하나님] 곧 우리 []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를 찬송합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어있는 자들로부터 부활하게 하심에 의하여,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우리를 새로 낳으셔서, 살아있는 소망에 이르게 하셨으며, (벧전1:3)>

 

골로새서 212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그분을 죽어있는 자들로부터 살리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믿음에 의하여, 침례 안에서 그분과 함께 묻혔고, 또한 침례 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2:12)>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포함시키셔서 죽어있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포함시키셔서 성도들을 새로 살리셨습니다. 이 공통적 객관적 사실을 성도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여 성도들의 개인적 주관적인 사실로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공통적인 사실을 (객관적인 사실),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받아들여 개인적인 사실로 (주관적 사실) 갖게 되었음을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신다. 그렇게 하시므로 내가 지금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 의하여, 내가 살고 있다. (2:20)>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는 바울의 옛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신다.’ 라는 고백에서의 는 바울의 새 사람입니다. 바울의 옛 사람이 다시 태어나 또는 거듭 태어나 새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바울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혀 죽어 있고, 바울의 새 사람이 [성령님]에 의하여 새로 태어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바울의 새 사람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1 23절에서 말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새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 의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고, 반대로 썩지 않을 씨에 의하여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곧 살아 있고 영원히 지속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벧전1:23)> 성도들은 썩을 씨, 곧 육체에 의하여 태어나지 않고, 썩지 않을 씨,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에 의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 17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다. 왜냐하면 헌 것들은 사라졌고, 보라, 모든 것들이 새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후5:17)>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의 새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님]에 의하여 새로 낳으신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옛 사람이 다시 태어난 또는 거듭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갖고 있는 큰 착각들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사실들이 성도들에게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면 성도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객관적 사실을 성도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그 믿는 성도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고 간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루어 주신 공통적 객관적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개인적 주관적인 사실로 갖고 있다고 갈라디아서 2 20절에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사실일지라도 (6:6), 그 사실을 자신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일은, 곧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 31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우리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지고 있는, 너희를 기뻐하는 기쁨에 따라 단언한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 (고전15:31)> 그리고 그 결과를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4 16절에서 알려줍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약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겉 사람은 소멸되지만, 속 사람은 매일매일 새롭게 바뀐다. (고후4:16)>

 

많은 성도들이 갖고 있는 큰 착각들 중의 또 하나는, 성도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모든 은혜의 조건이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믿으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들 이었을 때에 (5:4)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고, 우리의 옛 사람을 포함하여 죽게 하셨으며, 우리의 새 사람을 포함하여 부활하게 하신 것을 근거로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믿으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성도가 믿으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을 것이다.’ 라는 말에는 성도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는 조건이나 원인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는 조건이나 원인이 아닙니다. 성도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는 원인은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성도에게 거저, 곧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는 것, 바로 그 자체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는 수단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는 그릇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는 조건이나 원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도가 믿으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를 성도가 믿음에 의하여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끊임없이 자신을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성령님]에 의하여 새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성도는, 자신이 지금 믿음 안에 있는지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있는지를, 곧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하여 살고 있는지를, 곧 자신의 새로 태어난 새 사람 안에서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3 5절에서 말합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너희 스스로 점검하라. 그렇게 해서 너희 자신을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 자신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다. (고후13:5)>

 

[성령님]에 의하여 새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을 자신의 육신의 애착들과 욕망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 24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것인 사람은 자신의 육신을, 곧 자신의 옛 사람을 애착들과 욕망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것인 사람들은, 육신을 애착들과 욕망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다. (5:24)>

 

[성령님]에 의하여 새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성도는, 자신이 자신의 육신에 의하여. 곧 자신의 옛 사람에 의하여 완전해 지려고 애쓰고 있지 않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3절에서 사도 바울이 경고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님] 안에서 시작했다가, 이제는 육신에 의하여 완전해지려고 하느냐? (3:3)>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성도의 새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하나됨에 의하여, 완전해지게,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지게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성도가 에베소서 4 13절에서 말합니다. <마침내 우리 모두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앎이 가져오는 하나됨에 의하여, 완전한 사람에까지 이르게,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진 충만함이라는 높이를 가진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시려 함이다.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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