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Diary

OH1FH 2007. 4. 4. 15:10
 

 

 

 

"'박병장 감전사고' 1군단서 전면 재조사" 다음 메인화면에서 확 눈에 띤 기사 제목이다. 어제였던가.. 관련 기사가 났던 것이.. 그런데 그 다음날 바로 이렇게 영향을 미치다니.. 정말 언론의 힘이 그리고 네티즌의 힘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그런데.. 한편으론 마음이 쓰리고 어이도 없다.. 그런 1군단.. 국방부.. 넓게 보면 정부가 신속하게 반응하는 데 있어 박병장이라는 사람한테는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 사건을 알게 된 내게 있어서는 씁쓸한 기분만 들뿐이다.

 

재조사의 초점이 1사단 헌병대의 수사과정에서 지휘관의 책임소재가 명확하게 가려졌는지와 병원후송과 보상 등 사후조치 등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에 맞춰져 있다고 하는데 과연 재조사를 먼저 계획했던 것일까.. 아니면 여론을 고려한 수사인 것일까..

 

당연하다.. 의문점이 들었으면 바로 했을 것을.. 왜 지금에서야 하는 건지..

 

내딴에서 생각해 볼 때는 오십보 백보지만 1군단의 조사가 검찰보다는 더 나아 보인다. 돌아가신 큰형의 사고가 박병장 사건보다 더 의문시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기사를 읽고 난 후 내일 볼 토익 공부가 도무지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누군가 로또에 당첨됐다는 기사를 보게 되면 나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라는 소박한(?!) 꿈도 꾸지만 박병장에 관한 기사를 보고서는 큰형 사건도 저렇게 기사화 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년이 지나고서야 이런 글을 남긴다는 게 조금은 꺼림칙하긴 하지만 내 블로그이니깐..

그리고 어느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공감해줄 수 있을꺼니깐 이라고 합리화하면서 본론에 들어가고자 한다..

 

2001년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2002년에 대학을 들어가려던 때의 이야기이다.

과거형이라는 게 못내 마음 아프지만 내게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다른 집보다 우애가 깊다고 자부할 수 있는 큰형, 작은형 이렇게 다섯명의 가족이 있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부유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아버지가 신문보급소를 하셨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큰형은 고등학교를 광주로 가게 될 때까지 코 흘리개 신문 배달원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막내이면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때 큰형, 작은형은 내게 많은 걸 양보하고 장남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다른 여느 형들보다 여러가지 힘든 일도 많이 하고, 그리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을 것이다.

 

큰형은 시골에서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유지해서 서울에 비할바 못하지만 상대적으로 시골 촌놈에게 있어서는 대도시의 학교인 광주 사레지오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큰형은 2학년이 될 당시 가정 형편에 전세보다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부모님 고생을 덜 시킨다는 생각에 거의 꼴지로 들어가서 1학년 말 무렵에는 자기 딴에 50등안에 든 악바리였다. 형이 세상을 떠나기 전의 몸무게가 80kg 정도였는데 고등학교 시절 큰형이 키 185cm에 몸무게 60kg이었다는 것이 어느 정도 큰형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나중에 큰형의 유골을 대천 앞 바다에 뿌리고 돌아온 날 밤 늦게 길도 모르는 시골을 찾아온 큰형의 고등학교 동창이 했던 말도 얼마나 고생을 하고 노력을 했는지 보여주는 듯 싶다. "성식이가 행시 검찰직에 합격하고 나서 저랑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저 공부하는 모습보고 제가 화장실 갈 때 자기는 그것도 참고 공부했었다고 했었는데.."

 

어쨌든 어릴 때부터 신문배달을 하고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1년전부터 아버지, 어머니의 불화.. 고3인 내게 부모님 불화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연수받으면서도 종종 서울에서 내가 다니는 학교까지 동생을 찾아와서 고기를 사주고 용돈을 주는.. 그런 형이었다..

 

큰형은 법대는 절대 가지말라는 아버지 때문에 고3시절 서울대를 떨어지고 재수를 해서 역시 또 잘나가는 SKY에서 SK에 떨어지고 결국 전남대학교 영문학과를 다녔다..

 

사필귀정이라고 해야하나.. 큰형은 언제부터인가 행정고시를 보겠다고 선언하고 공부에 돌입을 하더니 만 22살이라는 나이에 제44회 행정고등고시 검찰사무관 직렬에 합격하였다. 부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집에다 손을 벌리길 싫어하는 형 성격 때문에 큰형의 한달 용돈은 만원의 행복처럼 10만원을 넘지 못했고 이 때문에 고시촌이라는 신림동은 2차 공부를 위해 2개월정도 밖에 있지 않았었다.

 

"모모씨 아들 장남 모모군 고시합격"이라는 전형적인 시골 동네의 플래카드가 걸렸고 과

학고에 다니던 내가 동네 잔치에 합류하기 위해서 한달만에 귀가하였고 큰형은 나와 플래카드를 구경하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는 순박한 촌놈에 불과했다. 동생인 나로서도 큰형이 어릴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합격한 형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고생한 당연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큰형이 합격한 해.. 어머니가 병으로 많이 아프셨고 평생 집밖을 떠나시지 않은 어머니가 이모와 한달간 절에 가셨고 여러가지 이유로 보수적이신 아버지와 불화가 생겼다.. 그 해.. 내게 있어서도..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도 모든 것이 불행한 한해였던 듯 싶다.. 큰형이 세상을 떠나고 형수님이라고 불러야 될 큰형 여자친구는 "오빠가 올해 한해가 저물어 가는 걸보고 많이 좋아했었는데.."라고 했다..

 

큰형은 대법원 근처 어느 한 식당에서 연수의 한 수습과정이던 공판과의 회식자리에서 2001년 12월 28일 저녁 8시경 결혼을 몇 일 앞두고 두개골이 함몰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2002년 1월 2일 밤에 할아버지, 할머니 첫 합동기일에 1월 5일 결혼식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정말 영화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살다간 큰형의 사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점 투성이다.

 

대수술을 거친 형의 주검을 부검을 할꺼냐는 물음에 아버지는 별로 밝혀질게 없다는데 사랑하는 자식을 다시 한번 살을 도려낼 수 없다고 반대하셨고 그렇게 해서 이 사건은 실족사로 처리 되었다.

아버지는 이후 큰형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했고 갖가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했었지만 모든게 헛수고였다.

 

큰형이 실족사를 당했다고 처리되었지만 처음부터 제기되었던 의문점과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종합해보면 의문점, 정황, 검찰의 부당함은 다음과 같다..(성명은 모두 가명)

 

첫번째, 당시 큰형은 2000년도 제44회 행정고등고시 검찰사무직에 합격하여 제46기 중앙공무원 연수중 서울지방검찰청 공판사무과에서 검찰 사무관 시보 수습을 하고 있었다.

 

두번째, 서울지방검찰청 공판사무과는 유일하게 서울지방법원에 나와 있고 그 사무실은 비좁아 타부서와 달리 수습사무관에게 부여된 책상이 없었는데,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던 큰형은 이석(移席)한 직원의 자리에 앉아 결혼준비에 관한 메일 확인을 하다가 직원에게 무안을 당한 듯 사고 이틀 전에 퇴근후 여자친구에게 "이젠 사무실에서 절대 컴퓨터 앞에 앉지 말아야 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모든 수습과정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솔직한 말로 큰형은 수습과정 당시 할 일은 없고 계장도 PC방에 가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여유로웠던 듯 싶다. 큰형이 여자친구에게 말 한 내용을 보건데 22살이라는 나이에 합격했던 것이 한 공무원과 알력이 생기게 만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한다.

 

세번째, 큰형은 2002년 12월 28일 오후 6경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XX빌딩 1층의 XXXX 식당에서 공판사무과 연말 망년회에 참석하였고 회식이 끝나갈 무렵 회식장소에서 말다툼이 있었다고 한다.(당시 공판사무과 계장이 병원에서 아버지에게 "회식자리 끝에 다툼이 있었다"고 진술한 바가 있는데 검찰조사시에는 번복하였음. 또한 PC방 아르바이트생이 그 시각에 2층 계단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고 한 순간 조용했다는 녹취록이 있음.)

 

네번째, 피의자 XXX는 이전에는 회식이 끝나갈 무렵 2층 화장실로 갔다고 진술하였으나(진정사건처분결과통지서) 이후에는 회식을 마치고 2층 화장실로 갔다고 진술하고 있으며(공소부제기이유고지서) 또 이전에는 피의자가 화장실에 갔을때는 큰형이 소변을 보고 있었고 큰형이 소변을 보고 먼저 화장실을 나갔다고 진술하더니(진정사건처분결과통지서) 이후에는 큰형이 소변기에 서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소변을 본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소변이 실제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진술하여 진술을 번복하였다(공소부제기이유고지서).

 

다섯번째, 피의자 김제일은 큰형이 화장실을 나간 후에 쿵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큰형이 계단에 굴러 떨어져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피의자가 "쿵" 소리를 듣고 화장실을 나갔다면 당시 회식에 참석했던 다른 검찰직원들보다 먼저 피의자가 쓰러져 있는 큰형을 발견하고 구호조치를 하였어야 마땅한데도 실제로는 큰형을 응급조치한 사람은 피의자가 아니라 서울지방법원 직원 이지법과 검찰청 직원 이검찰 등이었고 화장실에 함께 있었다던 피의자는 옆에 없었다.

 

여섯번째, 사건외 김대한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서울지방법원 집행과 직원 이지법은 이전 조사에서 큰형이 2층 계단 꼭대기로부터 넘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였으나(진정사건처분결과통지서) 이후에는 큰형이 계단 중간에서 넘어지는 것을 본 것처럼 진술하였다(공소부제기이유고지서). 그러나 위 서울지법 집행과 직원 이지법 진술의 전체적 취지는 계단 상단에서부터 넘어지면서 밀려 내려와 계단의 모서리 부분에 부딪치면서 톡톡 튀었다는 의미이지 계단 중간부분에서 실족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서울지법 집행과 직원 이지법 녹취록).

 

일곱번째, 위 서울지법 집행과 직원 이지법은 큰형이 누구와 다투거나 큰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이지법은 얼큰하게 술을 마신 상태에서 김대한과 대화를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외부의 음향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었고 또한 지하 노래방으로부터의 소음 때문에 들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음향은 위로 반향하는 관계로 1층에 있던 서울지법 집행과 직원 이지법보다는 3층에 있던 홍길동이 2층에서 나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을 것인데 위 홍길동은 큰형이 2층에서 굴러떨어질 당시 2층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바 있다(홍길동, 이식당 녹취록). 따라서 큰형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당시 위 이지법이 들은 소리만 조사될 것이 아니라 큰형이 굴러떨어지기 직전에 큰형을 본 사실이 있는지, 이지법이 위치한 자리에서는 2층 계단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지, 이지법은 1층계단 입구에서 이검찰과 얼마동안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 피의자나 큰형이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았는지 등이 조사되었어야 할 것이다.

 

여덟번째, 유전자 감정결과 현장에서 채취한 흔적은 혈흔이 아니라고 판정되었으나 위 흔적이 혈흔이 아니라고 하여 피의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증거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채취한 흔적이 혈흔이 아니라면 다른 물질이라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해명이 되지 않았고 전문가가 아닌 아버지가 직접 시료를 채취하였다는 점에서 유전자감정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큰형이 세상을 떠나고 수개월 후에 변호사와의 상담을 위해 아버지와 내가 변호사 사무실을 갔다가 사건 현장을 다시 한번 가게 되고 그 때 아버지가 채취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전문성이 결여됨).

 

아홉번째, 큰형은 2층계단 꼭대기에서부터 피를 흘러내려 6, 7번째 계단 위에도 피가 묻어 있었는데 사건직후 누군가에 의하여 계단 위의 피가 지워졌다.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6, 7번째 계단에 피가 묻을 수 있는 것은 키가 183 내지 185cm인 큰형이 계단 꼭대기부터 모든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발이 땅에 붙은 상태에서 넘어져도 불가능한 것이고 결국 계단 꼭대기에서부터 피를 흘리고 있었어야 가능한 것이다.(6, 7번째 계단에 피가 묻어 있었는데 나중에 지워졌다는 것은 아버지(고소인)와 지하 노래방 할머니의 대화를 녹음한 녹취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열번째, 목격자 이지법의 진술에 따르면 큰형이 계단 아래로 쓰러지면서 한 방향으로 스키타듯 내려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큰형은 한쪽만 계단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럼에도 큰형의 두개골은 좌우측 모두 심하게 함몰되어 있었고 이는 계단으로 쓰러지기 직전에 큰형에게 어떠한 심한 물리적 충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경험법칙에 맞는 것이다.

 

열한번째, 사건 당일 XXXX 식당의 1층 화장실 문은 열려 있었다(아버지와 식당주인 이식당의 녹취록). 그런데도 피의자의 진술에 의하면 피의자와 큰형은 2층 화장실까지 올라갔었던 것이다. 1층 화장실이 열려있는데 2층 화장실까지 갈 이유는 없는 것이고 생각건데 피의자와 큰형이 2층으로 올라간 것은 전술한 첫번째 의문점을 고려할 때 무언가 다른 사람을 피하여야 할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열두번째, 이전 조사과정에서 피의자의 진술에 따르면 피의자가 2층 화장실에 들어가니 큰형이 소변을 보고 있었고 피의자가 소변을 보고 있을 당시 큰형이 볼일을 마치고 먼저 화장실을 나갔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였다. 그런데 큰형의 아랫도리는 당시 소변에 흠뻑 젖어있었다고 한다. 방금 소변을 보고 나오다가 계단에서 실족하였다는 사람이 상식선에서 생각해 볼 때 소변을 다량 흘리면서 의식을 잃을 수는 없는 것이다.(급사의 경우 소변이 나온다지만 큰형의 경우는 대량의 소변이었다.) 한편 피의자는 이후 수사과정에서 큰형이 소변기 앞에 서 있었으나 소변은 보지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였다.

 

열세번째, 피의자가 쿵하는 소리를 듣고 1층으로 내려가니 큰형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 있었으며 큰형이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최초로 목격한 이지법은 큰형이 검찰사무관 시보로서 회식중이라는 것을 알리가 없는데 서울지검 공판사무과 직원 이검찰 등이 망인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의문스럽다. 혈흔이 지워진 것과 피의자가 제일 먼저 발견하지 않은 것을 고려해 볼 때 당시 피의자가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취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피의자를 포함한 당시 회식에 참석하였던 사람들의 이동전화통화내역에 관한 조사가 있었어야 했다.

 

열네번째, 당시 구급차를 기다리면서 이검찰 등이 응급조치를 하고 있는 동안에 피의자는 옆에 없었다. 피의자는 이후 수사과정에서 큰형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어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큰형이 화장실에서 나간 후 쿵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가 보았다는 피의자가 검찰직원들 중 누구보다도 먼저 큰형을 발견하였을 것인데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큰형을 보살피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진술이라고 생각된다.

 

열다섯번째, 피의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사건당시 자신의 행적에 대하여 엇갈리는 진술을 한 바가 있다. 피의자가 엇갈린 진술을 한 사실이 있는지에 관하여 고소인의 진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회식에 참여하고 이 사건에 관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었을 서울지검공판사무과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하였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건 당일 큰형과 함께 회식에 참여했던 검찰직원 김직원은 회식자리 끝에 다툼이 있었다고 진술한 바가 있는데 김직원은 위와 같은 말을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만 조사될 것이 아니라 당시 회식에 참여한 사람들을 상대로 실제로 다툼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이렇게 큰형의 사망에는 여러가지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가득하고 타살의 개연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채 불기소 처분 결정을 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의 검찰의 작태를 보건데 가족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식구 감싸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남과학고라는 특수목적고를 졸업하고 못다이룬 큰형의 꿈과 새로운 내 꿈을 위해 법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알게 된 말이지만 서울의 어느 한 대학의 검사 출신인 모 법대 교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사람은 검사라고 했다. 물론 말의 취지는 검사다가 아닌 검사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의미겠지만.. 아무튼 이처럼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수사를 하여야 하는 검찰이, 또 검사가.., 피의자가 검찰직원이라는 이유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수사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위 의문점 등에 대한 구체적 답변 없이 불공정하게 수사를 진행하여 혐의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하였는데 공권력 행사의 심각한 이러한 오류에 험한 말도 서슴치 않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심정을 보건데 어차피 죽었다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인데 큰형의 사건을 비롯하여 군대에서의 사망 사고 소식을 들을 때면 너무나도 답답한 심정이다.

 

일년에 한번 서울에 갈가말까한 아버지가 억울함과 의문점 해결을 위해 지난 몇년간 전라도 영광에서 서울에 가셨던 횟수를 생각하면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진다.  서글픈 일이지만 큰형 사건을 위해서 했던 소송 등을 비롯 여러가지 일들이 법학을 전공하는 내게 많은 도움을 줬지만 이런 식의 도움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건지 검찰, 법원은 알아야 할 것이다.

 

큰형 사건을 위해 어느 TV에도 많이 출연한 유명한 XXX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아버지와 나이 차이도 얼마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면한 자리에서 자기가 볼 신문의 기사거리를 다 보고나서 아주 친절한(?!) 말투로 상담을 하는 그 변호사를 볼 때 역겨운 마음과 혹시 내가 합격해서도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TV에서 보았던 그 변호사가 이런 변호사였다"라는 생각은 내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세상을 떠난 큰형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엄청나게 투자하시고 술과 담배를 갑절로 하시던 아버지의 최종적인 수단은 헌법소원이었고 헌법소원의 결과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우리 일만 해결하는 헌법재판소가 아니라지만 겪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하던가.. 우리 가족에게 돌아온 건 고작 몇 줄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피청구인이 위 사건에 관하여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수사를 하였거나, 헌법의 해석, 법률의 적용 또는 증거판단에 있어서 불기소처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잘못이 있었다고 보여지지 아니하며, 달리 피청구인의 위 불기소처분이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정도의 자의적 처분이라고 볼 자료도 없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청구인 주장의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였다.. 헌법재판소의 말이 너무나도 멋있다. 법학 공부를 하면서 헌재의 말이라면 예수님의 말처럼, 공자님의 말처럼 믿었는데 큰형의 사건을 비롯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비판하는 것을 볼 때 헌법 결정문의 내용이 너무나도 약점이 많고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28일 사고 당일날 서울 신정동 어느 한병원에서 수술을 막 마친 형을 전라도 영광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신 아버지가 형의 이름을 부를 때 목에 호스를 꽂고 뇌사 상태였다던 형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그때 형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눈물이 자꾸 흐른다.. 결혼 3일을 앞두고 세상을.. 그것도 할아버지, 할머니 합동 기일에 숨이 멎었다는 소식을.. 할아버지, 할머니께 기도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서울에서 저녁 늦게 내려오신 아버지가 전화 받고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벽에 기대어 우셨던 그 모습.. 2001년 12월 28일 사고 당일부터 광주에서 급히 올라가 2002년 1월 2일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밤낮을 정말 뜬눈으로 지새우며 큰형을 떠나지 않던 작은형이 호흡이 곤란해져서 호흡기를 때는 모습을 보면서 전화를 했다는.. 그 상황.. TV에서 결혼 장면만 나오면 우셨던 어머니.. 결혼 상담소에서 오는 전화... 여러가지 일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마음에 국가가 한 인격체였더라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심정이다..

 

수사과정, 심리과정이야 단순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지만 별론으로 하고 검찰은 불기소처분, 헌법재판소는 기각을 하면 끝이지만 가족에게는 아직도 그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피의자를 반드시 처벌해주라는 것도 아니고 사인(死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밝혀달라는 요구에 또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을 유족들이 하고 불성실하고 허점투성이인 수사기관의 처분의 행태.. 그 딴식의 수사는 초등학생도 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릴 때부터 많은 고생 마다않고 이제 막 노력한 열매가 맺어가고 결혼을 3일 앞둔 사람에 대한 검찰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박병장 사건이 너무나도 부럽다.

 

내게 있어서 가장 큰 효도는 큰형의 못다이룬 꿈과 내 꿈인 검사가 되는 것이고, 위에서 말한 변호사는 되지 말아야 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효도는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님의 억울함, 큰형 동생인 나와 작은형의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박병장 사건과 같은 재조사가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들고 이런 글은 감정적으로 써야 되는데 조금 딱딱한 감이 들어 아쉽지만.. 이 글을 누군가가 읽고 같이 공감이라도 해줬으면 한다..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병장을 검색하다 알게 되었지만.. 왠지 우리집안을보는듯... 어렵게어렵게..무언가 하고나면.. 더큰시련이.. 님처럼의 불행은아니지만.. 어렵게 살다 가 이제 행복해지려나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늘은참 무심하고 이기적이지요 왜하필 이때일까.. 이젠행복해지려하는데말이죠 주절주절 님에게 방해가되는글은아니였나..모르겠네요.. 진심으로 님의꿈 형이못다이룬꿈을.. 맘껏 펼쳐서 이세상 억울한사람 돈이없어못난사람들 더이상억울하지않게 님이라도 힘이되어주세요.. 훌륭한 사무관이 될거라믿으면서 진심으로 님의꿈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글이님에게 방해가 된다면 지우셔두 됩니다..
아닙니다.. 읽고 이해해주고 공감하시는 분이 있다는 게 오히려 감사한데요.. ^^
1차 합격자 명단을 찾아보던 중 검색이 되어 우연히 들어와서 글 남깁니다. 전 소설을 보는줄 알았어요..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 아픔과 고난이 님을 꼭 강하게 해줄 거에요

꼭 힘내시고 (저도 같은 2차생입니다) 같이 합격해요^^

감사합니다.. 위에 글 대학교 1학년 때 썼는데.. 여전히 법리에 밝지않지만 지금 읽어보면 참 수정할 내용이 많은데 그냥 저대로 내둘려구요 ^^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법에 대해 그냥 일반인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잃지 않으려구요.. 암튼 같이 합격해서 연수원에서 뵜으면 합니다 ^^ 건승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