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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 2011. 11. 1. 15:30
 

 

 

 

아날로그의 추억이라는 단어와 함께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바로, LP 판과 함께 돌아가는 턴테이블일 것이다. 아날로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음악... 아날로그 오디오에 푹 빠져 책 까지 펼쳐낸 최윤옥 한의사가 말하는 아날로그 음악과 디지털 음악은 무엇일까?

 

 

'베토벤 9번 교향곡'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가끔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평상시 오디오를 통해 흔하게 듣는 곡이고, 매년 연말이면 거의 모든 방송매체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들려주는 곡이 '9번 합창 교향곡'이다. 아마 그 가치를 금액으로 따지면 엄청난 액수일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가치를 지닌 음악을 기록한 악보의 가격이 40억 정도다.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9개 묶음 악보가 50억 정도다. 그런데 최고가를 기록한 그림은 천억을 훌쩍 넘는다. 최고가 악보 가격의 이 십 배가 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한 때 최고가를 기록한 피카소의 천 억 짜리 그림이 '베토벤 9번 교향곡'보다 20배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오히려 피카소의 생소한 그림보다 9번 합창 교향곡이 수 십 배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오이스트라흐 연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엘피(LP) 사진

 

 

나는 솔직히 피카소의 생소한 그림에서 기괴하다는 느낌 이상의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들으면 벅찬 감동을 느낀다.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9번 합창교향곡을 들으면 벅찬 감동까지는 아니라도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음악을 즐기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음악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가치가 현실적인 금액으로는 제대로 환산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비싸게 주고 산 그림이야 감상이 가능하지만, 음악을 기록한 악보는 그 자체로는 감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음악학자라도 악보를 보고 음악적 감동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음악은 연주 되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음악을 소리라는 형태로 기록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이 첫 결실을 본 것은 알려져 있다시피 에디슨의 축음기다. 에디슨의 축음기는 엘피의 원형으로 소리를 요철 즉 굴곡의 형태로 새겨서 보관했다가 그것을 검출해서 소리로 만들어 재생하는 장치다. 요즘은 엘피 면에 새겨진 굴곡을 바늘로 긁어서 소리로 만드는 방식을 아날로그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소리를 0과 1이라는 숫자로 변환해서 기록하는 방식을 디지털이라고 칭한다. 이 두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는 소리를 연속된 것으로 새겨서 보관하느냐 아니면 잘게 쪼개서 불연속적인 숫자로 보관하느냐 하는 것이다.

 

에디슨 측음기

 

소리를 잘게 쪼개 수치화해서 보관하는 디지털 방식은 잡음 없는 깨끗한 음질확보나 영구적 보관이라는 측면에서 아날로그에 절대적 우위를 가진다. 특히 복사를 계속해도 수치화된 데이터이기 때문에 음질열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특히 데이터를 압축하는 기술이 적용되면서 아주 적은 용량으로 저장이 가능한 MP3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디지털 방식으로 재생된 음악소리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생된 소리에 비해 사람에게 음악적 감동을 느끼게 하는 면에서는 오히려 부족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특히 MP3의 음질은 귀를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러한 디지털 음에 대한 반성은 아날로그를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아날로그 음이 가지는 장점인 자연스러움, 음악적 흡인력 등이 재평가 받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디지털 기기인 CD플레이어나 DA컨버터를 생산하는 메이커의 최종 목표는 다름 아닌 ‘아날로그적인 소리’인 것이다.

 

아날로그 음에는 그 시대의 감성과 낭만만 녹아있는게 아니다. 소리를 어떻게 보관하고 재생해야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수 십 년 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장인들의 노고가 살아 숨쉬고 있다. 다소 고가이긴 하지만 최근의 발전한 기술로 제작된 턴테이블과 톤암, 카트리지로 재생된 엘피의 소리는 놀라움 그 자체다. 아날로그 전성시대에는 상상하기 조차 힘들었던 소리를 내준다. 이런 아날로그 음은 최신의 디지털 기기가 내주는 소리를 초라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훌륭하다. 음질적 우위를 떠나 아날로그가 재생하는 소리의 장점은 음악을 오래 듣게 해준다는 점이다. 실연 못지않게 음악에 몰입시키면서도 귀를 피곤하지 않게 한다. 이것이 아날로그가 디지털과 비교되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나도 이런 아날로그의 장점 때문에 CD를 포기하고 엘피만 듣다 보니 20여 년째 아날로그만 듣게 되었다. 

 

 

옛날 유성기

 

 

'컨티넘 오디오의 턴테이블과 코브라 톤암'        '아방가르드 혼 스피커'   

최신 턴테이블         

             

 

아날로그는 음이 자연스럽고 오래들어도 피곤하지 않다. 반면 디지털은 잡음이 거의 없고 보관과 재생이 편리한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음질만 따지고 본다면 아날로그 음은 좋은 것이고 디지털 음은 몹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디지털 음도 아날로그와의 끝없는 경쟁을 통해서 최근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이런 디지털 음의 발전은 CD라는 물리적 매체가 아닌 파일이라는 가상적 매체를 통해서 일어났다. CD는 개발 초기부터 16비트 44.1kHz라는 제한된 스펙 때문에 음질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최근 CD의 부족한 스펙을 뛰어넘어 마스터 테입 수준의 스펙(24비트, 96kHz)을 자랑하는 파일들이 디지털 음악 재생에 사용되고 있다. 특히 원본 파일이라고 할 수 있는 wave 파일이 보여주는 음질은 정말 놀랄만한 수준이다. 20년 넘게 아날로그 사운드를 주로 추구해온 내가 들어도 정말 감쪽같다고 느낄 정도로 최고 수준의 아날로그 사운드에 손색없는 소리를 내준다.

 

wave 파일은 음질이 아주 뛰어나지만 용량이 엄청나게 크고, 곡명이나 연주자등 부가정보를 담기 어려워 검색이나 사용에 불편하다. 그래서 wave 파일을 60% 정도로 살짝 압축한 flac 파일이나 애플의 로스리스(Lossless) 파일을 애용하는 이용자가 많다. flac이나 로스리스 파일은 음반정보도 쉽게 담을 수 있어 검색과 사용이 아주 편리하다. 이론적으로 flac 파일은 wave의 정보를 손실없이 압축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flac 파일로 재생한 음이 wave 파일로 재생한 음과 음질이 같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내가 들어본 바로는 flac이나 로스리스 파일 모두 wave 파일의 음질을 따라가지 못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CD를 읽어서 파일형태로 만드는 리핑(Ripping)이라는 작업을 통하면 원본 CD보다 더 좋은 소리를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을 재생하는 방식에 있어 아날로그가 좋으냐? 디지털이 좋으냐?’ 하는 질문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음반의 녹음과정을 깊숙히 따져들어가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가 모호하고, 아날로그나 디지털 모두 상대편에 대해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하다. 아날로그 음과 디지털 음은 음악을 듣고 그 매력에 빠져 느끼는 황홀경이라는 정상을 오르는 것 같은 능선의 다른 코스일 뿐이다.

 

최윤욱('최윤욱의 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 저자, 한의사/오디오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