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신통방통

방송통신위원회 2011. 11. 1. 15:30
 

 

영화 역사 100년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필름의 퇴조, 디지털 영화의 탄생이다. 촬영 현장을 직접 보는 것처럼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영상, 화려한 색채,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와 캐릭터가 디지털 영화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이후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내려 받을 수 있는 콘텐츠라고 불렸다. "그 영화 어디서 봤니?"가 아니라 "그 영화 다운로드 받았니?"라는 말이 더 흔하다. 20세기 후반 들어 처음 등장한 디지털 영화가 개봉관을 점령해 관객들의 마음을 독점하고 있다. 21세기 들어서야 영화를 접한 세대는 원래부터 영화는 디지털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영화는 필름에서 시작됐다. 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영상은 객석 뒤편에서 돌아가는 영사기에서 번져나왔다. 영사 기사의 손이 떨릴 때마다 영상은 이따금 흔들렸다. 필름을 비추는 할로겐램프에 따라 장면은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도 했다. 편집된 부분을 지날 때면 이따금 암전이 비쳤다. 현상이나 보관과정에서 필름에 난 스크래치는 영상에 움직이는 검은 실처럼 보였다. 릴에 감기는 필름에서 나오는 '차르르'하는 잡음은 영화음악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어려운 촬영과 현상, 편집 과정 등 손이 많이 가는 필름 영화는, 그래서 물리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아날로그적이다.

 

고전으로 남은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은 한 번 보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감성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영상은 화려하지도 않고 서사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다루지 않지만 낭만적이던 과거 감성을 오롯이 담고 있다. 0과 1로 딱딱 떨어지고 명백히 구분되기 보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영화 자체가 한 편의 춤을 추는 듯한, 그런 아날로그 감성을 고전은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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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 아날로그 영화에서만 접할 수 있는 오묘한 친근감은 고전에서 고유하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1936)'는 아날로그 감성의 강한 힘을 보여준다. 영화 초창기 흑백 무성영화의 대표주자이면서 기계화되는 산업사회에 대한 강렬한 비판, 인간성의 회복을 희극적으로 풀어간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나사를 조이던 공원들은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다. 사장은 화장실에까지 숨겨둔 카메라로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가 하면, 점심시간을 줄이기 위해 밥을 먹이는 기계까지 동원한다.

 

인간을 산업사회의 기계 부품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처사는 특히 거대 공장의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찰리의 모습으로 상징한다. 이후 영화는 산업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모습으로 사랑, 의기를 제안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행복하게 사는 길이 인간의 본모습이라고 이야기해주는 영화다. 아날로그 영화에서만 접할 수 있는 오묘한 친근감은 고전에서 고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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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런 아날로그 제작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 아날로그 제작방식으로만 얻을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작과정을 아날로그로 유지하면서 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하는 영화가 있다. '이웃집 토토로'나 '원령공주' 등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드는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이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디지털 작업으로 간단하게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지금까지도 장면 하나 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그린다. 과거 작업방식대로 비닐 위에 그림을 그리고 달라지는 장면마다 한 장씩 사진을 촬영한다. 당연히 작품 하나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너무 길고 수많은 만화가들의 노동 강도가 강하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자주 영화를 만들어내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바쁜 영화계 현실을 놓고 보면 어처구니없는 제작방식이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런 아날로그 제작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 아날로그 제작방식으로만 얻을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손으로 그림을 하나씩 그리다보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수십 분 분량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일일이 손으로 그려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련된 표현에 한계가 있고, 그만큼 그림에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면이 강조된다.

 

최근에도 아날로그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가 종종 나온다. 도시의 빨라지는 생활 속도와 무한 경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영화에서나마 일부러 천천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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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멜릭의 트리오브라이프 - 날로그적인 내용과 편집으로 관객들에 내재된 아날로그적 감성을 끌어낸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트리오브라이프(The Tree of Life)'장장 5년에 걸쳐 제작됐다. 주로 인생의 의미, 신과의 대화, 존재에 대한 성찰 등 철학적인 메시지를 가득 담은 영화다. 스토리는 대단히 간단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는 대단히 느리게 전개된다. 특이할만한 사건이라기 보다 촌구석에 사는 소년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이에 더해 거의 15분 내외동안 초신성의 폭발장면, 우주의 역사 등을 드라마 없이 보여준다. 135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동안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빠르고 경쾌한 영화에 익숙했던 관객들이 갑갑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든 장면을 여유롭게 보면서 인생의 의미 등 답 없는 이야기를 자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아날로그적인 내용과 편집으로 관객들에 내재된 아날로그적 감성을 끌어낸다.

 

영화가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하고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려는 시도가 흔하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열차를 폭파시키고 도심을 물에 수몰시키는 장면이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라는 이름으로 거의 매년 등장한다. 각종 잔인한 무기로 양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액션 영화라며 개봉관에서 관객들을 끌어 모은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이 없는 멜로 영화는 선정적인 애욕의 영상을 세상에 뿌려댄다. 그러나 마음에 남는 영화 중에 그런 말초적이고 속된 것은 별로 없다. 결국 사람간의 진정성을 긴 호흡으로 다룬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영화만이 기억에 남는다. 인간 역시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아까징기 박(영화평론가,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