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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 2013. 2. 1. 00:30
 

 

 

전령, 소식을 전하는 자이다.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대변인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세계 내에서의 관계가 아닌 초현실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관계에서는 어떨까? 예를 들어, 신이 인간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하고 싶거나, 인간이 신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했을 리 없다고? 아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고등종교, 샤머니즘과 같은 민간신앙, 그리고 수많은 옛이야기는 실상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삶 및 자연 현상은 이성적으로 해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기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그에 대한 욕망을 문학적, 신앙적, 종교적으로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옛이야기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신라 제21대 비처왕(毗處王) 즉위 10년 무진(戊辰, 488)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거동했다. 그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는데, 쥐가 “이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을 찾아가시오.”라며 사람의 말을 했다. 이렇게 해서 한 노인으로부터 겉봉에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는 편지를 얻었다. 왕은 그 한 사람이 왕이란 걸 알고 거문고 갑을 쏘아 분향수도승(焚香修道僧)과 궁주(宮主)를 죽이고 위기를 모면했다.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다. 여기서 까마귀와 쥐는 신령스런 ‘노인’의 충실한 전령 역할을 하고 있다. 왕의 명령을 받은 기사를 신령스런 노인이 있는 연못으로 오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 『태조실록』에 의하면,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꿈에 신인(神人)이 금자[金尺]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기서 ‘금척’은 왕권의 상징물이다. 그리고 ‘금척을 전해 준 신인’은 이성계에게 하늘의 계시, 즉 천명(天命)을 전달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전령이다.

 


전령을 통한 신의 계시가 왕과 같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음의 옛이야기는 일반 백성과 관련하여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전라도 나주에 정씨 성을 가진 효자가 있었다. 어머니가 아파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늘 먼 읍내까지 약을 지으러 다녔다. 그 사람의 효심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늘 그 사람의 집 앞에 호랑이가 기다리다가 정씨를 태우고 약을 짓는 데까지 데려다주고, 끝나면 다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래서 정씨는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그 후 정씨의 효를 기리는 효자비가 세워졌다. 민간신앙에서는 산신(山神)의 전령으로 곧잘 호랑이가 등장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여기서의 호랑이는 효자를 보호해주고 도와주라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전령이다. 신물(神物)을 전달하거나, 신성한 글을 전달하거나 하는 것 이외에 특정한 사람을 위해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함으로써 전령의 역할 수행 범위가 단일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전령의 이러한 임무들은 결국 수신자를 부각시키는 수단이 된다. 아무나 초현실계에 존재하는 신의 관심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충사(毅忠祠, 경북 예천군 소재)에 배향된 임지한(林支漢, 1224~?)이 공방 벼슬을 할 때, 그 고을의 원이 서울에 있는 아버지 생신에 맞춰서 본가에 반찬을 보내고 싶어 사령들에게 빨리 걸어서 다음날 아침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때 임지한이 나서면서 자기의 목숨을 걸고 갔다가 올 수 있다고 장담을 하였다. 그래서 원은 반찬을 사서 임지한에게 주었는데, 임지한은 서울로 바로 가지 않고 집에 가더니 칠십 먹은 노모에게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원은 그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임지한을 지켜보게 했다. 밤중에 임지한은 노모에게 잠깐 어디에 갔다 오겠다며 나오더니 큰 소리로 ‘아무개야’ 하고 호랑이를 불렀다. 그리고는 호랑이를 타고 서울에 갔다가 돌아와 다음날 원에게 편지까지 전해주었다. 여기서의 전령 호랑이 역시 임지한을 도와 그를 효자이자 기개가 있는 인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후에 임지한은 도원수가 되어 왜군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웠다.

 

 

 

<봉은사영산전사자도>

아랫줄 왼쪽에서 첫째와 둘째 인물이 저승사자들이다.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아 사람에게 수명이 다했음을 알리고,

죽은 이의 영혼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역할을 한다.

 

 


초현실계의 주목을 받은 이로 강임 만한 인물이 없다. 그는 본래 김치라는 원님 밑에 속한 사령이었다. 그런데 과양생의 세 아들이 과거급제 뒤에 곧바로 급사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원님의 명령을 받아 저승에 있는 염라대왕을 찾아간다. 죽음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을 이승으로 불러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강임은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이승에 온 염라대왕이 왜 자신을 불렀느냐며 김치에게 호통을 치자, 강임은 ‘이승 왕도 왕, 저승 왕도 왕’이라며, 왕끼리 청하지 못할 바가 있겠느냐고 말하는 기개를 보인다. 그 후 사건을 해결한 염라대왕은 똑똑하고 영리한 강임을 저승으로 데려가 차사로 부리게 된다. 저승차사의 기원을 담고 있는 구전신화 <차사본풀이>의 내용이다.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에 대응되는 우리의 독특한 전령신인 셈이다.

 

 


이상의 전령들은 경계 넘어서 소통을 책임지는 존재이다. 계사년 새해에는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전령이 아닌 세대와 세대, 지역과 지역, 한국과 세계를 소통시켜 서로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전령, 말하자면 공감의 느낌을 주는 전령을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령을 부리는 자가 초현실적 세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최원오

아름다운 새해를 맞이하세요!
전령 역할을 잘 이행하는 호랑이, 공방 벼슬였던 임지한이 전령인 호랑이를 부릴 수 있는 것 등.. 나중에 도원수가 되어 왜군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우는 것 등.. 평범한 인물이 비범해지는 것에 절대적인 힘이 작용하는 공통점이 느껴지네요. 귀한 글 감사합니다.
^^ .....gentle and m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