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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 2013. 2. 1. 00:30
 

 

한국인은 의 발견을 놀라운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즉, 쌀 등의 전분질에 물과 누룩이 들어가면, 이들 재료에는 없었던 알코올의 생성과 함께 신비한 향기와 함께 마시고 나면 정신이 야릇해지고 몽롱한 상태가 되는 취하는 현상에 대해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술이 되느라고 일어나는 발효현상, 곧 술독이 따뜻해지는 열의 발생을 비롯하여 수 많은 공기방울과 함께 매운 가스 냄새가 생기는 현상을 신비로워하였다. 특히 사과·포도와 같은 맛있는 과일향기가 생성되는 현상을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뭔가가 있어 이러한 현상을 주관하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측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과 함께 경외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술을 일컬어 “물에 가둔 불”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이나, 술을 경계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신비로운 물질의 귀한 음식을 천지신명께 바치고, 보살핌으로 자손과 가족이 평안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후일에 이르러, 이러한 술을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가장 숭고한 음식으로 여기게 되었고, 신이 아닌 인간은 숭고한 정신을 가진 존재로 여기면서 술을 경계하기 시작하였을 터이고, 인간이 술을 마심으로써 신과의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술은 마시고 나면 몸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에 대해 나름의 철학으로, 동양철학의 기본인 음양사상(陰陽思想)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술의 80% 이상은 물로 음(陰)의 성질을 지녔고, 나머지 20%에 못 미치는 알코올(술)은 뜨겁고 위로 상승하는 불의 기질인 양(陽)의 성질을 지녔으니, 이는 음과 양의 환상적인 융합이라고 이해했으니, 이야말로 ‘물(음)과 불(양)의 환상적 조화, 곧 음양화합(陰陽和合)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특히 한국인들 사이에 술이 친화와 융합을 위한 매개물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계절 변화에 따른 명절과 세시풍속을 바탕으로 한 가양주 문화를 꽃피워 왔다. 따라서 매 계절 그때그때 산출되는 재료를 술에 이용하거나,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술을 빚었다. 이를 절기주(節氣酒)라고 하는데,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되어 서로 모여 앉아 잔치와 놀이를 즐기는 동안 친척과 이웃,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깊어지고, 공동체를 형성케 해주는 매개물로 술을 마셨으므로, 이러한 때를 맞아 빚는 술은 계절적 변화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 조상들이 즐겨 마셨던 계절주이자 절기주는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의 세주(歲酒)부터 시작된다. 세주는 설날 아침 차례를 모시기 위한 술로서, 보다 그지없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빚었으며 설날의 준비는 차례상에 올릴 세주를 빚는 일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또한 차례상을 물리고 나서 온 가족이 각기 한 잔씩의 술을 나눠 마시는 ‘도소음(屠蘇飮)’을 낳았다. 도소음이 맑은 청주에 백출을 비롯 오두, 천초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고 끓여 만든 ‘도소주(屠蘇酒)’를 마시는 풍속인데, 나이 어린 사람부터 한 잔씩 차례로 마시는 것이 우리 음주풍속이다.

 

 특히 나이 어린 사람부터 마시는 독특한 음주풍속은, 설날의 음주풍속을 통해서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시는 자세며 예의범절을 배우게 하는 한편, 돌림병과 같은 질병에 취약한 연소자를 배려하는 어른들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다. 도소주는 “한 사람이 마시면 온 가족이 질병이 없고, 한 가족이 마시면 온 고을에 질병이 없어진다.” 하여,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고을고을이 도소주에 취한 사람들로 정초의 거리 풍경이 도도했다. 도소음이 귀족과 사대부·부유층의 설날 음주풍속이었다면, 일반 민가에서는 천초와 잣잎을 술에 달여 마시는 ‘초백주’ ‘초주’ ‘백엽주’ 등으로 도소음을 대신했다.

 

 

 


또 다른 정월의 절술로 ‘귀밝이술(耳明酒)’이 있는데, 대보름날의 오곡밥, 부럼과 함께 대표적인 절식으로서, “이 날 찬술(청주)을 가족 모두가 한 잔씩 마시면, 1년 내내 귓병이 없고 귀가 밝아진다.”고 하였다. 정월 보름에 ‘찬 술(冷酒)을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하는 속담에는 ‘1년 농사를 준비하기 위한 정월의 첫 군중모임인 대보름날의 귀밝이술은 농사정보에 밝아야 한다.’는 선인들의 지혜와 슬기도 담겨 있는 것이다.

 

 


정월에 빚는 술로 ‘삼해주(三亥酒)’가 있는데 ‘돼지날(亥日)에 세 번에 걸쳐 빚는 술’이란 뜻이다. 술 이름으로 보면 겨울철의 술이란 것은 알 수 있으나, 술을 빚는 때가 ‘음력으로 정월 첫 해일(亥日)에 시작해서 12일 간격 또는 36일 간격으로 돌아오는 둘째 해일과 셋째 해일에 술을 빚는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술이니, 겨울철에 빚는 계절주인 셈이나 음주 시기가 이른 봄이니 ‘도화주(桃花酒)’ ‘두견주(杜鵑酒)’ ‘행화주(杏花酒)’와 함께 대표적인 춘주류(春酒類)의 하나이다. 이 삼해주는 서울을 비롯하여 충청도 전라도 등의 부유층에서 즐겼던 명주이자, 맛과 향이 깊고 좋아 춘주라고 불리울 만큼 유명세를 얻었는데, 증류한 소주 삼해주 장기간 저장이 가능해 명문가와 상류층의 접대주이자 설날을 비롯한 겨울철 술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엄동설한의 고난을 이기고 만개한 매화는 늦겨울의 진객이라고 일컫는다. 그 향기는 매혹적이다 못해 고고한 자태는 온몸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감동을 준다. 이른 봄에 잘 빚어 빛깔이 밝고 맑은 술에 이 매화를 동동 드리워 만든 매화주를 잔설이 깔린 창 밖을 내다보면서 다정한 벗과 함께 나누는 맛이란,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멋이다. 

 

 


     한국인들의 음주관 은 동양문화권인 중국의 ‘주법(酒法)’이나 일본의 ‘주도(酒道)와도 차별화된다. 한국인은 술을 마시는 절차와 규칙, 술을 마시고 대접하는 사람의 자세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궁극에는 “술 마시는 예의”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곧 한국인의 음주관은 ‘술을 마시는 가운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정신자세를 통해 인간 본래의 숭고한 정신과 깨끗한 물질(술)이 한데 어울려 비로소 조화를 이루게 되는 ‘주례(酒禮)’가 곧 한국인의 음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술에 녹아 든 한국인의 철학은, 술을 단순히 마시고 취하기 위한 음식이나 수단으로만 인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의 반증이요, 술을 빚는 사람의 마음자세에서 출발하여 마시고 대접하는 모든 행위와 절차, 그리고 마신 후의 행동거지에 이르기까지 예의를 바탕에 깔고 있음을 거듭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집안에서 어머니의 손끝에서 그렇게 빚어지던 술이 언제부턴지 물건을 찍어내듯 하루에도 수천만병씩 쏟아져 나오게 되면서, 언제 어디서고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술이 그렇게 정성을 들인 ’신성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없어졌고, ‘귀한 음식’ 줄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음주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마셔도 지나치게 마셔대고, 그것이 지나쳐서 고성방가에 방뇨, 노숙, 싸움질에 걸핏하면 공공기물 파손, 행인과의 시비, 심지어 살인까지도 곧잘 일어난다. 술이 나빠진 것일까. 아니면 사람 종자가 나빠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왜 귀한 술, 비싼 술 마시고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지. 세상을 살면서 이해 못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랴만, 술주정과 그에 따른 피해는 자못 심각하기만 하다.

 

 


그러기에 다시금 술 마시는 데 반드시 예와 풍류를 쫒으며, 술을 빚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알고, 술의 향취와 취기에서 오는 즐거움을 더불어 나누던, 인정과 풍류의 술자리가 그리워지는 명절이다.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객원교수,시인

박록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