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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 2012. 12. 11. 08:30
 


김기덕과 비주류,
그리고 과학자
 
“상을 받는 순간 청계천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구리가 든 박스를 들고 다니던 열다섯 살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1990년대부터 꾸준히 국제무대에 소개돼 좋은 성과를 올린 한국 영화계에 준 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피에타>로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다. 단순비교는 어렵겠지만 월드컵 우승과 맞먹는 쾌거라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은 많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비주류다.

 

 

그의 최종 학력은 중졸. <피에타>의 무대가 된 청계천에서 열다섯 살부터 공장을 전전했다. 미술에는 소질이 있었지만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한 적은 없다. 데뷔 초기부터 충무로의 이단아였고,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그의 영화도 그랬다. 오죽 했으면 스스로“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했을까. 그런 비주류가 세계3대 영화제에서, 그것도 최고 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최근 문화예술계의‘대세’는 비주류다. <강남 스타일>로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킨 싸이도 그렇다. 데뷔 때부터‘B급 감성’을 무기로 내세웠다. 품위와는 거리가 멀고 세련미도 없었다. 뮤직비디오 <강남 스타일> 역시 마찬가지다. 의상, 춤, 배경 등은 노래 제목과 달리‘강남’스럽지 않고 오히려 촌스럽다. 그런데도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열광했다. 싸이 본인 역시 병역문제로 두 번이나 군대를 가야했던,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비주류이자 이단아다. 아웃사이더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지만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 그런 면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자기의 길을 고집스럽게 가는 과학자도 모두‘비주류’다.

 

실제 역사에서도 비주류였던 인물이 위대한 과학자로 남은 사례도 적지 않다. 에디슨은 어렸을 적 집단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정서불안 증세까지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이래서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고 적었을 만큼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둘 모두 기존 교육체계에서는 공부에 실패한 전형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은 최고의 발명왕, 20세기 최고의 과학자가 됐다.

 

노벨상의 세계도 그렇다. 종이처럼 접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차세대 전자소재인 그래핀을 개발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안드레 가임은 2000년 괴짜 노벨상으로 불리는‘이그노벨상’수상 경력자다.

 

당시 가임은 개구리를 공중부양시킨‘반자성 부상’이론을 시연해 보여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일본에 11번째 노벨상(물리학상)을 안겨줬던 고시바 마사토시 전명예교수도“물리를 못하니 물리학과 진학은 불가능하다”는 교사의 말에 오기로 물리학과를 선택한 이단아였다.

 

김석준 전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원장은 한 인터뷰에서“20세기를 이끌어 온 것이 힘과 경영이었다면 21세기는 새로운 사고가 사회경제를 바꾸는 시대가 될 것이다. 미국 하버드 교육체제의 이단아였던 빌게이츠가 미국을 뒤흔든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이공계는 한 분야만 열심히 공부한 순혈주의를 좋아하지만 빌게이츠처럼 타인에게 이단아로 보이는 사람이 창조적인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주류, 혹은 괴짜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이원규 시인은 최근 한 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진정한 예술가는 결국 이단아, 혹은 경계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바꿔“진정한 과학자는 결국 이단아, 혹은 경계인”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누가 뭐라든 자기의 길을 고집스럽게 걷는 과학계의 김기덕, 과학계의 싸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분명 노벨상도 우리와 더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