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매산 2014. 2. 24. 13:22

기독교의 중요 10대 교리

 

 

1.[하나님]

창조주이시며 인류의 아버지시며, 우주를 주관하시고 운행케 하시며, 사람의 생사와 복화를 주관하십니다.

 

2.[예수님]

하나님의 아들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주 메시야 이시며 신성과 인성을 가진분으로 하나님나라를 전하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자를 살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40일간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세상 끝날까지 성도들과 함께하시며 재림하신다고 약속 하셨는데 그 때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죄사함받고 거듭나며 성령을 받고 구원과 천국에 들어갑니다.

  

3.[성령]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인데 진리의 영이십니다.

예수님 승천 10일 후에 성령이 강림하셨는데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더욱 확신하게되고 성령 받으면 선교하고 충성하게됩니다. 성령세례는 1회, 성령충만은 계속 충만해야합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 를 받으시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4.[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는 건물교회와 성도를 교회라 합니다. 교회의 주인과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성도들은 지체입니다.

교회는 예배, 선교, 교육,친교, 봉사, 구제등 여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배와 선교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5.[성경]

기독교의 경전을 정경이라 하는데 구약39권 신약27권 계66권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고 믿습니다. 외경과 위경은 정경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신학자들이 연구, 참고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의해서 선지자, 에언자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기록되었으며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예언의 말씀, 계시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구원의 말씀, 창조의 말씀, 영의 양식이며 은혜와 치유의 말씀, 위로의 말씀입니다.

 

6.[천국]

천국은 하나님 계신 하나님나라 천국, 가정천국, 마음천국, 천국 같은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천국은 하늘나라를 말합니다. 천국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예수님도 계시지요. 하나님 보좌 앞에 생명강이 흐르고 천군 천사들이 있고 성도들도 천국에 들어갑니다.

 

 

 

 

7.[구원]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삶속에서의 여러가지 구원도 있고 궁극적인 구원은 천국에 들어가 영생하는 것입니다.

 

 

 

 

8. [부활과 영생]

예수님 믿는 성도는 사후에 육체는 무덤에 장사되며 영혼은 낙원에 갑니다.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 무덤에 있는 성도들의 육체는 부활하며 우리가 (성도들)예수님 재림하실 때 살아있다면 변화되어 들림 받고 영생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영생하며 살게됩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영혼, 육체의 전인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9.[처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신 예수님을 믿음

예수님은 호적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셔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죄가 없는 분이므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가 있는분입니다.

아담의 죄가 유전되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가 있는 분이며 구원하실 수가 있는 분이시지요.

 

10.[삼위일체]를 믿음

천지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시며 운행케하시는 인간의 창조주시며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인류의 아버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과 구원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며 예수님의 영인 보혜사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고 거듭나면 성령을 받고 선교, 전도, 충성, 순종하게 되며 믿음이 더 굳건해져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사랑하며 사람과 사회를 변화 시킬 수가 있습니다. 성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의 중요교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유일신 하나님이신데,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 보혜사 성령으로 3위격을(PERSONA) 갖추신 하나님이신 것을 표명합니다. 

라틴어로'TRINITAS'라는 신학 용어를 사용한사람이 터툴리안(A.D. 150-220)입니다.

삼위일체의 표현은 성경에 여러군데 나타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표현 

1.창1:1-3,26)-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 하셨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 호칭 했는데 엘로힘은 복수형 입니다.

2.하나님은 자신을 복수형으로 말씀 하셨습니다.(창11:7) 바벨탑을 쌓은자들에게 우리가 내려가서...혼잡케 하자"고 말씀 하셨습니다.

3.하나님은 이사야서에서(사6:8)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말씀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에 의한 증거.

1.예수님 세례시에.(마3:16-17)성자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

2.예수님께서 증거하심.(요14:26,15:26)

3.사도들의 축도에 성부, 성자, 성령 이름으로 축도함(고후13:13)

4.예수님의 분부에 나타남(마28:19)

5.갈4:4-6절에 말씀하심.

6.엡4:3-6에 말씀하심.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 말씀들

1.아기가(아들) 하나님으로 표현됨.(사9:6-7)

2.성령이 하나님으로 표현 됨(행5:3-4)

3.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 부터온다.(요14:16, 26)

4.성령은 예수님 승천10일 후에 강림 하심.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시며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요한복음1:1-4)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 이십니다. 도마가 예수님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요한복음20:28)

성령님은 보혜사로 예수님 승천 후에 오신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나 역할을 삼위일체로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 인간의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삼위일체 교리는 구원론. 신론에 있어서 중요한 기독교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유일 하신 한분이시나 그 활동과 역할은 삼위이시며 일체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예수님은 아들 구주 그리스도, 성령님은 보혜사이시며,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신 이십니다.

여러분들 위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호와 구원과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 합니다.

 

 

 

 

 

 

 

기초적인 기독교 용어

 

◎기도
기도는 말과 생각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 또는 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우리 소원을 말하는 것으로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 신앙의 표현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입니다. 성경 말씀이 영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므로 규칙적으로, 그리고 성령안에서 무시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적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나를 구원하시려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셨지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말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남자만 5천명 먹음(마가복음 6:30~44)

 

◎교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로서 여기서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을 드립니다.

 

◎구원
구원(Salvation)이란 죄와 죄의 세력으로부터 분리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세상의 주관자인 마귀와 죄악으로부터 건져내는 것입니다.

 

◎권사
교회의 지시에 따라서 교인을 방문, 위로하고, 연약한 교인들을 세워주는 역할을 하는 직분입니다.

 

◎경건의 시간[큐티]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갖는 영적 교제의 시간(QuietTime)입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이나 아침에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갖고 하루의 생활중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으로서 무기력하고 나태한 신앙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머리로만 알던 말씀을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계시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진리들을 하나님이 드러내어 알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목사
목사는 총회의 안수로 임직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성례를 거행하며, 교회를 치리하는 사람으로서 교회의 신자를 관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직분입니다.

 

◎봉사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 섬기며 일하는 것입니다.

 

◎부활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으로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으며, 예수를 믿는 사람도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의 영으로서 우리를 예수님 믿도록 인도하시고 보호 하시며 위안과 힘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샬롬
"평안, 평강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인사말입니다. 평안하십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아멘
아멘이란, 히브리어로 "진실로 그렇게 되옵소서"라는 뜻으로 기도의 마지막에 주로 붙이는 동의의 표시입니다. "기도하는 것을 꼭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확인의 뜻이 있으므로 타인이 기도할 때도 "아멘"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알파와 오메가
헬라어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말한 것으로 "하나님 자신이 처음과 나중이 된다"는 뜻입니다. 즉, 모든 만물의 시작과 끝이 됨을 말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영접한 사람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외아들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리의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시고 채워주십니다.

 

◎예배
예배(Worship)란 말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굽히고 하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여 주시는데 대하여 감사와 찬송으로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생
예수 믿는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영혼
사람은 영, 혼, 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생
"거듭남, 새로 지음 받은 사람, 새로 태어남"이란 뜻으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나 있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을 말합니다. 중생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전도와 인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고 권면하는 것이 전도이고, 인도는 전도한 사람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전도사
교회에서 목사를 보좌하여 신자들을 심방하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직분입니다.

 

◎장로
교인의 택함을 받아서 목회자와 협동하여 교회의 행정을 담당하며, 교인들의 신앙을 살펴 위로, 권면, 세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집사
신앙에 입문하여 세례를 받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 신앙과 생활에 있어 타의 모범이 되어 하나님의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세운 직분으로 안수집사와 서리 집사가 있습니다.

 

◎재림
이 시대의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는 때가 세상의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다만 우리는 그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죄
죄란 원래 "과녘을 빗나가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모두 죄입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정의는 언제나 사람의 생각이 아닌 성경이 근거가 됩니다.

 

◎지옥
현세에서 죄를 범한 사람이 사후에 가서 고통을 받는 멸망의 암흑 세계이며, 성경에는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타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죄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 즉,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찬송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조와 가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천국(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로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이곳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며 천국은 가장 값진 보화와 같은 것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 해서라도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마13:44-46).

 

◎천사
하나님을 섬기고 인간을 보호해 주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천사는 인간 창조 이전에 창조되었고, 천사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와 주는 일을 합니다.

 

◎칭의
칭의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며 선언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하나님의 법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칭의를 받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비록 행함으로는 아직 죄인이지만 믿음으로는 당당히 의인으로 서게 됩니다.

 

◎헌금
신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드리는 물질입니다.

 

◎헌신
몸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형제, 자매
바울을 비롯한 신약성경의 여러 저자들은 각 교회에게 편지를 할 때, 그 교회의 성도들을 형제 또는 자매로 지칭을 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는 성도들의 기본적인 의식이 가족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 즉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세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의 가족이고,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은 가족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가족원이라는 뜻이요 우리말로 하면 식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주 안에서 하나된 형제이고, 자매로서 (마23:8)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받은 사람들입니다. (요13:34; 롬12:3; 갈5:13; 엡4:2; 골2:2,3; 딛1:8; 벧후1:7)

 

 

 

 

믿음과 기적 ?

 

 

한마디로 말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눈앞에 보는 것처럼 나를 내맡기고 매달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고자 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신다. 그리고 우리 앞에 당신의 그 모습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잡아주시고 붙들어주시는 그 분의 손길을 느낀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 <믿고자 하는 마음>을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론으로 설명이 안되고 체험이 말할 뿐이다. 그러니까 체험을 하기 위해 우선 일단 믿어 볼 것이다.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 바디매오

 


소경 바디메오의 기적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조건으로 기적 보기를 원한다. 기적을 보여주면 하나님을 믿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왜냐하면, 기적은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믿음 하나만으로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폭약만 가지고서는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가과 같은 것이다. 폭약을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뇌관과 도화선이 있어야 하고 그 도화선에 불을 붙여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적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믿음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믿음과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하고 구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 앞에 행위로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등식(等式)으로 나타내면

<믿음> + <간절한 소망> +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나타내는 행위> = 기적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믿음만 가지고서는 안 되고,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 믿음과 소원을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있어도 안 된다. 그것을 무엇인가의 형태로 하나님 앞에 행위로서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는 그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즉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니, 그런다고 정말 기적이 일어날까요?”하고 못 믿어 하시는 분. 믿으시기 바란다. 성경이 증명하고 있다.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

소경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며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는 그의 믿음과, 눈을 뜨고자 하는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예수님 앞에, 즉 하나님 앞에 행위로서 나타낸 것이다. (다 아는 것이지만,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소리는, 메시아는 다윗 가문에서 나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다윗의 지손이여, 하는 소리는 메시아여, 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처음 믿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삼아. 참 소경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아직 모르는 사람은 누가복음 18장 35절에서 43절까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뜨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어야 하고,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믿음만 가지고서는 안 되고, 눈을 뜨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하고, 간절한 소원만 가지고 있어도 안 된다. 믿음과 소원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틀림없는 메시아야. 전능하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분명해 나는 그렇게 믿어. 그리고 나는 눈을 뜨고 싶다. 예수님 앞에 나가서 이 소원을 아뢰면 틀림없이 눈을 뜨게 해 두실 텐데...” 하고 생각만 하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백날이 가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믿음과 소원을 하나님 앞에 행위로서 나타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그것을 행위로 나타내기 위해 앞으로 뛰어나오면서 외쳤던 것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래서 그가 눈을 떴는가?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보고 조용하라고 꾸짖었던 것이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장애물이 나타난 것이다. 다윗의 자손을 외치며 나오는 바디매오와 메시아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나타나 배디매오를 꾸짖은 것이다.


기적 앞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장애물은 언제나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나타난다. 어찌했거나 기적 앞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나타난다. 따라서 기적을 보기 위해서는 장애물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장애물 때문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기적이 일어날 전조라고 생각하고 기뻐할 것.

 

바디매오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다윗의 자소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응답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믿음>과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계속 외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바디매오의 첫 번째 외치는 소리도 물론 들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외치는 소리를 들고 나서야 머물러서시며 그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 외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간절히 사모하며 열심히 외치는 자에게 응답하신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쉬지 말고 계속 외쳐야 한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물으셨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워하느냐?”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다 아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직접 아뢰기를 원하신다. 왜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어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로 확실하게 알게 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그냥 이루어지시는 일은 없다.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이루어 주신다. 그냥 이루어 주시면 아둔한 인간들은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소원을 아뢰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바디매오는 곧 보게 되었다.

예수님이 이어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바디매오는 눈을 떴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이란 무엇인가?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2) 그 앞에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소경 따위 아주 쉽게 보게 할 수 있다고 믿고

4) 눈을 뜨고 싶은 소원을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5) 예수님 앞에 큰 소리로 외치고 나왔다.

위의 1) + 2) + 3) + 4) + 5) = 구원받는 믿음.


소경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설교하시는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바디매오가 눈으 뜬 것으로 그 설교를 마친다. 바디매오는 눈을 떴다. 기적은 일어났고, 그는 그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다. 얘기는 끝난 것이다.

하지만....실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

성경은 바디매오가 눈을 뜬 다음에 한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눅18:43)


이것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 은혜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런 다음, 예수를 좇아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가신 그 험하고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소경 바디매오의 진짜 이야기는 그가 눈을 뜬 다음부터 시작된다.

 

 

축복 받는 믿음 -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축복은 믿고 순종하는 데서 온다. 복 받는 공식은 아래와 같다.

<믿음> + <순종> = <축복>

기적은 어저께 믿기 시작한 사람도 체험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대개는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 믿음의 소유자라야 받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흔히 말한다. 뿌린 것이 있어야 거둔다고,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뜨기 위해,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온 믿음은 아직은 나 중심의 초보적 믿음이다. 순종의 믿음, 축복 받는 믿음은 그 믿음의 중심이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옮겨간 믿음이다. 주시옵소서! 하고 외치는 믿음이 아니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내맡기고 하나님 뜻에 나를 맞추는 믿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나를 바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복 받겠다고 교회로 몰려오지만, 정말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축복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만한 믿음이 될 수 있나?

복을 목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백년을 가도 그런 믿음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죽으라시면 죽겠습니다, 하고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맡기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신다.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큰 순종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순종이지만, 그것 말고는 아마도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을 바치는 순종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를 가끔 시험하시는데, 그 시험 문제가 바로 순종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순종을 시험하실 때에는 하나님 한쪽 손에는 우리에게 주실 축복이 가득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라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네? 뭐라구요? 아니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요? 그럴 수가....하나님이 그러실 수가?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건 너무 하십니다.”하면 불합격이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이삭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던 하나님의 약속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을 하나님께 따지지 덤비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며 결코 한 번 하신 약속을 어기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다.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같이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하나님은 이삭을 결코 죽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아니, 죽어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도 믿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분이므로 우리에게 좋게만 하시고 나쁘게는 절대로 안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며 선하신 분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절대로 나쁘게 안 하시고 좋게만 해 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흘이나 걸리는 모리아 땅까지 가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생각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 이거 생각할수록 억울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하나님도 거짓말 하십니까? 나는 이삭 못 바쳐요.”하고 항의하고 돌아설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깊어만 갔다. 하나님이 현실과 동떨어진 명령을 나에게 하셨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없이 순종하는 믿음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답고 원숙한 믿음인 것이다.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 말은 눈물을 감추고 아들을 속이며 거짓으로 한 말이 결코 아니다. 그의 믿음의 참다운 고배이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고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쥐고 그 아들을 잡으려 했다.

아브라함은 정말로 아들 이삭을 잡을 작정이었다. 정말로 이삭을 잡았다고 해도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믿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의로우심 뿐 아니라 그 능력도 믿은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였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속까지도 살피신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평소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실 리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바치려는 것을 직접 보시고서야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인정하셨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그 행위로 판단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에 따라 상을 주신다. 아무리 입으로 “믿습니다!”를 외쳐도 소용이 없다. 행위로 그 믿음을 보여 드려야 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렀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를 위해 번제할 어린 양을 준비하셨다. 즉 그 아들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시고,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은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모두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기적을 일으키는 순종 - 모세

 

나일강에서 공주가 모세 발견

 


모세와 불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아주 어렵고 하기 힘든 것으로 우리에게 순종을 시험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주 쉽고 작은 것으로 우리의 순종을 시험하신다.

민수기 21장 4절부터 보자.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이 불평을 들으시고 불뱀을 보내 백성들을 물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 중 죽는 자가 많아지자 백성이 모세에게 말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아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 중에서 놋뱀을 쳐다본 자들은 다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신 것은 그들의 불평불만에 대한 벌이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올렸을 때, 백성 중에는, “이 무서운 뱀의 독이 전신에 퍼져서 살이 썩어 가는데 아니 놋뱀을 올려다본다고 살아? 웃기는 수작하네.” 하고 장대 위의 놋뱀을 올려다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뱀의 독으로 썩어가는 자신들의 육신만 보았지, 하나님의 능력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의 불평불만이나 불순종으로 인한 벌은 돌이켜 순종만 하면 사함을 받는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주 쉬운 순종을 요구하셨다. 눈을 들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올려다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올려다 본 사람은 순종함으로 살았고, 올려다보지 않은 사람들은 불순종으로 죽었다. 죽은 사람들은 참으로 바보 같은 인간들이다. 그냥 슬쩍 올려다보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옹고집이라고 그걸 안 보고 죽으냐 말이다. (그냥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데, 무슨 옹고집이라고 예수 안 믿고 죽느냐 말이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시험하실 때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일반적으로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것일수록 그 시험을 통과한 후에 받는 복도 크다.

그러나 불뱀의 경우와 같이 생명이 걸려있는 중대한 것의 경우는 그 요구하시는 순종은 아주 간단하고 실행하기 쉬운 것이 보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누구나 그 시험에 통과해서 모두 다 살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살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생명을 건지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공식을 발견하게 된다.

<간절한 소원> + <순종> = <기적>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놋뱀을 올려다봤을 때, 그들 모두에게 올려다보면 산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올려다보라니까 기계적으로 올려다 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혹사나 하고 올려다 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죽기 싫어 마지못해 올려다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올려다 본 그들 모두가 산 것이다.


성경에 보면, “뱀에게 물린 자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믿고 올려다 본 자만 산 것이 아니라, 올려다본 자들은 다 산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리시는 조건으로 믿음을 요구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그저 하나님 말씀을 따르기만 하면 살려 주신 것이다.

기적을 일으키는 공식

<간절한 소원> + <순종> = <기적> 
<순종>은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뿐 아니라 단순한 기계적인 순종까지도 포함되는 것이다.


모든 기적은 <믿음>에서 나온다. 하지만, 때로는 믿음이 없는 자에게도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켜 그 소원을 들어주신다.

 

 


일곱번 몸을 씻은 문둥병자 나아만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장군이었으나 문둥병자였다. 그는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선지자 엘리사의 집으로 그를 찾아온다.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람을 시켜 요단강 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일러준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화가 났다. 상처에 손을 얹고 여호와의 이름을 크게 외쳐 부르며 열심히 기도해서 고쳐줄 줄 알았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니? 우리나라에 그만한 강이 없어서 내가 여기까지 왔는줄 아나, 하고 돌이켜 떠나려고 했다.

이때 그의 부하들이 말했다.

“장군님,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라고 했다면 장군님은 하셨을 것 아닙니까. 자 이왕에 왔으니 그대로 한번 번 해 보세요.”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그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다. 비록 믿음은 약할지라도, 아니 믿음은 없을지라도,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이나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별로 믿음도 없었을 때에 아내에게 끌려가 교회에 다닌 지 3개월 만에, 어느 부흥회에서 목사님 말씀대로 앉아서 할 줄 모르는 기도를 하다가 내 병과 아내의 병이 고침 받는 기적을 체험했다.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기적을 나타내 주신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총인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장대 위의 놋뱀을 올려다 보라고 하신다.
그 장대 위의 놋뱀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이다.

(아니, 주님이 어째서 놋뱀인가? 뱀은 사단이 아닌가? 네, 맞습니다, 뱀은 사단입니다. 주님은 왜 십자가에 달리셨나? 그 사단 때문이 아닌가. 사단 때문에 죄를 진 우리 인생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들의 죄는 사단에게서 왔다. 주님의 십자가의 형벌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것이지만, 동시에 바로 사단의 죄를 벌하신 것이다. 달리신 분은 예수님이지만, 그 죄는 사단의 곧 뱀의 죄인 것이다).

믿음은 없을지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올려다보면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것이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어느 젊은 전도사님께서 기도원에서 21일간의 금식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21일 동안을 금식하며 주야로 기도만 했더니 성령이 충만해서 몸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를 것만 같았고, 무엇이든지 기도만 하면 당장에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계절은 초겨울이라 산길을 가로지른 작은 시냇물에는 살얼음이 얼어 있었다. 그 전도사님은 그때 성경 구절이 하나 머리에 떠올랐다.

 

마태복음 17장 20절의 말씀.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


이 젊은 전도사님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두 손을 마주잡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전도사님은 소리를 내어 뜨겁게 꽤 오랫동안 기도를 드렸다. 등골이 뜨거워지고 몸에 가벼운 진동이 일어났다. 전도사님은 주여 믿습니다! 하고 다시 한번 소리치고는 한 발을 살얼음 위에 올려놓고 밟았다.

바싹! 기도한 보람도 없이 살얼음은 깨지고 발은 차가운 시내물 속으로 푹 빠지고 말았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지금은 작고한 아주 유명하신 목사님이 역시 기도를 많이 하시고 성령이 충만해서 거리로 나왔다. 마침 거리에 한 앉은뱅이 걸인이 구걸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목사님은 그 앉은뱅이 걸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걸인은 한 푼 받을까 하고 목사님을 올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목사님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목사님은 손을 내밀어 앉은뱅이 걸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힘찬 목소리로, 그러나 그리 크지는 않은 목소리로,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의 흉내를 내어 소리쳤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그리고는 잡은 손을 힘차게 잡아당겼다.

순간, 앉은뱅이 걸인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기는커녕, 팔이 빠지는 아픔에 비명을 지르며 길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불쌍한 건 앉은뱅이였다. 돈 한 푼 얻을까 하고 손을 내밀었다가 목사인지 뭔지 하는 사람 때문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주여, 창피하오니 어서 날 숨겨 주소서.”하고 기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 거기까진 모르지만, 목사님은 누가 봤나 주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목사님 체면 다 내던지고 골목길을 달음박질쳤다.


왜 이 두 사람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에게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이 두 사람은 “믿음대로 될 지어다”하는 말씀을 믿기만 했지, 믿으면 왜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지만, 믿음 그 제체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믿음은 말하자면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 앞에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마찬가지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믿음 그 자체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대로 이루어주셔야 기적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뜨고 구원을 받은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고 말씀하심으로 그는 보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아무리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굳게 믿고 외치고 나왔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그냥 지니시고 말았다면 그는 눈을 뜨지 못했을 것이다.

 

구원받은 강도의 이야기.(누가복음 23장 39-43절)

 

 


십자가 위의 예수님과 강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한다. 마지막 죽는 순간에라도 주를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참으로 한심스러운 해석이다. 아까 그 전도사님이나 목사님과 같은, 성경의 참 뜻을 모르는 사람들의 잘못된 해석이다.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 구원받은 강도는 죽기 마지막 순간에 주를 입으로 시인했기 때문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구원받은 강도가 구원받은 것은 그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앞의 전도사님과 목사님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에게 그만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기도를 받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듣고도 이루어주시지 않으신 것일까?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세가 홍해를 가른 기적을 흉내 내어 아무리 한강변에 서서 소리치고 외쳐도 한강 물이 가라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기를 쓰며 기도를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은 모세의 믿음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신 사도 바울은 그의 지병을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병을 낫게 하시지 않았다. 그의 병이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시는 종인 바울사도에게는 그 병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더 유익했기 때문이다.

 

 

기적의 공식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 앞에 기적을 나타내실 때에는 보통 다음의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를 택하신다.

1) <하나님> → <기적>

2) <사람> → <하나님> → <기적> : 초신자 믿음

3) <하나님> → <사람> → <기적> : 원숙한 믿음


위 셋을 차래로 설명해 보자.

<하나님> → <기적> 은 하나님이 당시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스스로 나타내시는 기적으로, 가령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일(모든 기적 중 가장 큰 기적)이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사신 기적, 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 여기에 속한다.


반면,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뜬 기적은 <사람> → <하나님> → <기적>에 속한다. 그는 눈을 뜨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가졌고, 그 눈을 뜨게 해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와 크게 외쳤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눈을 뜨게 해 주셨다. 곧 <사람> → <하나님> → <기적>의 순서인 것이다. 여기서 행동을 먼저 일으키는 것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다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외쳐 부르짖으면 그것을 보시고 움직이기 시작하신다.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가만히 계신다. 그러므로 기적을 맛보고 싶은 사람은 소경 바디매오처럼 믿음과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와 소리쳐 외치고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까지 쉬지 말고 계속 부르짖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으로 많은 기적을 체험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기도원에서 산에서 가정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외쳐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고 외쳐 부르짖는 것을 보시고 그 사람의 믿음과 소원하는 그 소원의 간절함이나 그 종류, 그 기적을 얻고 난 후의 그 사람의 믿음의 변화, 기타 등등을 보시고 그의 기도를 즉시 이루어 주시기도 하고, 그 시기를 약간 뒤로 늦추시기도 하고, 때로는 꼭 이루어주시겠다는 응답을 주셔서 기쁨으로 더욱 간절히 열심히 기도하게 하시기도 하고, 또 더러는 아주 안 이루어주시기도 한다. 특기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각별히 사랑하시는 사람의 기도는 아주 잘 들어 주신다는 사실이다. 같은 기도를 하는데도 어떤 사람의 기도는 하기가 무섭게 들어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리 해도 좀처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므로 이왕에 하나님을 믿을 바에는 하나님의 각별하신 사랑을 받도록, 하나님 마음에 꼭 들도록 열심히 믿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적당히 믿는 것이 하나님을 쉽게 믿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을 가장 쉽게 믿는 방법은 열심히 힘을 다해 믿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힘을 다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몇 십 배로 갚아주시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 훨씬 힘이 덜 드는(남는 장사?)인 것이다.


이번에는 <하나님> → <사람> →<기적>에 대해 알아보자.

이거야말로 홍해를 가르며, 바다 위를 걸으며, 앉은뱅이를 벌떡 일어나게 하는 바로 그것이다. <사람> → <하나님> →<기적>의 경우는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고 사람이 먼저 움직인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일어나셔서 기적을 일으켜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 → <사람> →<기적>의 경우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이 먼저 움직이신다.


출애굽기 3장 1-4절의 말씀을 보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사람> → <하나님> → <기적>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먼저 부르짖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사람인 모세에게 부탁(?)을 하신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그러자 사람인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슬쩍 뺀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을 하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 받은 종이 되어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일대 구속 사업의 전면에 나서서 갖가지 기적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겨자씨 만한 믿음

  

공주가 나일강에서 모세 발견

 

모세가 이스라엘 지손들을 이끌고 홍해 광야 길로 나갈 때, 애굽 군대가 뒤쫓아 왔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자손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위기를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써 해결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곧 <사람> → <하나님> → <기적>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부르짖긴 해도 과연 하나님이 구해 주실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를 마구 비난한다.

“그들은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겠노라”(출 14:10-12)

모세는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구원이 있을 것을 말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찌나라”(출 14:13-14)

이렇게 말하고 모세는 여호와께 구원해 주실 것을 부르짖는다. 모세 역시 <사람> → <하나님> → <기적>의 방식을 통해 이 민족적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꾸짖으시며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출 14:15-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라고 말씀하신 것은 지금은 <사람> → <하나님> → <기적>의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창세 이전부터 계획하신 대역사를 하시는 때이다. 백성들이 살려달라고 부르짖으면 살려주시고 안 그러면 가만히 죽게 내버려두시는 그런 때가 아닌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 → <사람> → <기적>의 때인 것이다.

 


갈라진 홍해속을 이끄는 모세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 14:21)

바다가 갈라지고 산이 옮기지는 기적은 <하나님> → <사람> → <기적>의 경우에만 일어난다.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 길로 이끄실 때, 여호와께서는 이미 홍해를 가르실 것을 예정하셨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자 홍해 바다는 갈라졌다.

하나님께 열심히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말하자면 하나님을 나의 형편에 맞추는 믿음에서는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전면에 나서서 그 도구로 쓰임을 받는 믿음에서만이 바다가 갈라지고 산이 옮겨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너는 어서 저 앉은뱅이를 내 이름으로 일으키라” 하고 나에게 명령하셨을 때, 내가 그 앉은뱅이를 주의 이름으로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믿음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자 할 때, 아무리 소리높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해도 앉은뱅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성직자들을 주의 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글자 그대로 주의 뜻대로 쓰임을 당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까의 그 두명의 주의 종은 주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주의 이름을 빌어 자기의 능력으로 살얼음판 위를 걷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리고 부르짖고 하는 <사람> → <하나님> → <기적>의 방식을 가지고, <하나님> → <사람> → <기적>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초신자의 믿음은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고 부르짖고 해서 무엇인가를 얻어 내고자 하는 <사람> → <하나님> → <기적>이다.  믿음은  내 뜻대로 하나님이 움직여 무엇이가를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믿음이다.


원숙한 믿음은 내가 하나님 뜻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곧 <하나님> → <사람> → <기적>의 믿음이다.
바로 이 믿음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참 믿음이며, 이런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을 옮기고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개인에게도 출생과 죽음이 있으며 역사에도 시작과 마지막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말은 역사의 종말, 즉 인류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이 종말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루십니다. 예수님의 오심도, 고난도, 부활도, 죽음도 예언하신 대로되었습니다. 종말과 재림 역시 성경에 예언되었고 그대로 될 것입니다.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구약에 보면 다니엘이 “인자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와서···”(단7:13)라고 예언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예수님 스스로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히9:28) 이처럼 성경은 세상의 종말과 재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오면 세상의 멸망과 불 심판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영생의 심판으로, 불신자들에게는 멸망의 심판으로 나타날 것입니다.(눅17:29-30)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큰 소망입니다.

1.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징조)은 무엇입니까?


1) 재림의 징조는 거짓 선지자들의 난무, 기근과 전쟁, 지진, 사랑의 식어짐 등입니다.(마24:3-8)
예수님은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가 어떠하냐는 제자들의 질문을 받고 재림 전의 현상으로는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 난리와 난리의 소문, 기근, 지진, 핍박, 불법의 성함이 나타날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또한 말세가 되면 인간성을 상실하고 도덕의 기준이 무너지고 쾌락을 사랑하게 됩니다.

각종 미신과 이방 종교가 판을 치게 되며 신앙의 타락과 변질이 옵니다.

이러한 징조들이 주님의 승천 이후 계속적으로 있어 왔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러한 징조들이 급속히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징조들이 빈발하고 있는 이 시대를 ‘말세지말(末世之末)’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막13:8(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딤후3:2-5(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2) 재림의 징조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천하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전에는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의 긴박성과 복음의 삶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24: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이 오리라)


3) 예수님의 재림 시에는 성도들의 육체가 변화되고 부활된 성도들은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죽었던 성도의 육체가 부활됩니다.

 살아 있는 성도들의 육체가 변화됩니다.

부활된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고 지상에는 무서운 환난이 임합니다.
*살전4:16-17(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니)
*고전15: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벧후3:10(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시는 예수님

 

 

2.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이며, 재림의 양식과 목적은 무엇입니까?


1) 재림의 시기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모릅니다.(마24:36-42)
재림의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시기를 알려고 애쓰는 것이나, 재림의 시기를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재림의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 주님이 재림하시느냐? 에 관심 갖지 말고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며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막13:32-33(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재림의 양식은 하늘에 올리우신 그대로 내려오시는 것입니다.(눅21:27)
예수님은 하늘에 올리우신 그대로 자신이 직접 내려오실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올 것이니 신자들만이 아니라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되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될 것입니다.
*행1:11(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계1:7(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3) 재림의 목적은 심판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재림 시에는 만왕의 왕으로 영광 중에 오셔서 믿는 성도들에게 영생의 상급이 주어집니다.(딤후4:8)

악한 사탄의 세력들과 그들을 추종했던 불신자들은 영영한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살후2:8) 즉 최후의 심판을 하십니다.
*마25:31-33(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 성도는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1) 예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언제 다시 오실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모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 있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눅12:40(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막25: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못하느니라)


2) 열심 품고 주를 섬기며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롬12:11)
*히10: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3) 하늘의 소망을 품고 늘 경건하며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세에 더욱 사랑이 식어지고 세속화되기 쉽습니다.

성도들은 더욱 경건하고 깨끗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세상 유혹에 빠지지 말고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복되게 살아야 합니다.
*요일3: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복음 안에 살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딤후4: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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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행복의샘(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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