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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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산림청/Let`s Go! 휴양림

2009. 3. 3.

"모진 삭풍과 눈보라 속에서 피어나는 들꽃, 제주도의 수선화"

-여행작가 양영훈이 소개하는 세번째 여행이야기-

 

 

"수선화는 정말 천하의 구경거리다.

정월 그믐부터 삼월까지는 산과 들, 밭둑 할 것 없이 일망무제로 핀다.

마치 희게 퍼진 구름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다."

 

추사 김정희선생이 유배 당시 권돈인이라는 벗에게 보낸 편지 中

 

 

<멀리 송악산이 보이는 대정들녘에 핀 수선화>

대한이가 놀러왔다가 얼어죽었을 정도로 춥다는 소한이 며칠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의 소한은 봄날처럼 따뜻했습니다. 

그것도 어쩌면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혹한이 연일 계속되는 소한 무렵이면, 제주도 서귀포시 서남부의 대정들녘에 피어나는 수선화가 그리워집니다.

 

해마다 이맘때쯤부터 순결한 꽃빛깔과 그윽한 꽃향기가 일품인 야생 수선활르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한 겨울 날의 모진 삭풍과 눈보라 속에서 진한 수선화 향기가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에도 수선화가 자생한다는 사실을 제가 처음 안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의 일입니다.

 

예정돼 있던 일정이 취소되는 바람에 하릴없는 사람처럼 대정들녘의 이곳저곳을 소요하다가 어느 밭둑에 곱게 핀 수선화 한 무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마침 근처의 밭에서는 인자한 낯빛의 노부부께서 분주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이 수선화는 어르신께서 심어놓으신 건가요?"

"아, 그거요? 그냥 저 혼자서 나고 자란 거요. 아무리 뽑아내고 없애도 또 돋아나요."

 

그러면서 "농부들에게는 꽃이 아니라 잡초"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밭에 뿌리를 내린 수선화는 무성히 번져 나가서 다른 농작물들의 생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랍니다.

 

어쩌면 온 식구들이 연명하기 벅찰 만큼 농토가 비좁고 척박해서 육지 사람들보다 더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제주도 토박이들에게는 유난히도 생명력 강한 수선화가 천덕꾸러기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생 수선화는 제주도 사투리로 ‘마농’이라 불립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말이 먹는 마늘’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진짜 속뜻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마늘’입니다. 말이 흔한 제주도에서는 가치 없는 것, 흔한 것의 앞에는 육지의 ‘개’ 대신에 ‘말’이라는 접두사를 붙이곤 합니다.

 

서귀포시 대정읍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생활을 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일찍이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탄탄대로의 벼슬길을 내달리던 추사는 55세 때인 1840년 졸지에 유배객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은 안동 김씨 일파가 10년 전에 종결된 ‘윤상도의 옥사(獄事)’를 빌미로 추사를 중죄인으로 옭아맨 것이다. 제주도에 도착한 추사는 처음 송계순이라는 포교의 집에 머무르다가 얼마 뒤에 강도순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유배생활 중에도 추사의 거처에는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추사도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는 남다른 열성을 보였고, 그가 제주도의 문예발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제주도의 문예가 추사로부터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생겨났답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시절 즐겨찾았다는

대정향교>

 
대정에서 만 7년 3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한 추사는 유난히 수선화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유배 당시 그가 권돈인이라는 벗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수선화는 정말 천하의 구경거리다. 정월 그믐부터 삼월까지는 산과 들, 밭둑 할 것 없이 일망무제로 핀다. 마치 희게 퍼진 구름 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추사는 자연의 시련 속에서도 향기 그윽한 꽃을 피우는 수선화와 고단한 유배생활 중에도 부단히 절차탁마하는 자신을 동일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주도 대표적인 해안드라이브코스인 송악산-사계리해안도로>

 

※ 여행작가 양영훈이 추천하는 송악산주변의 토막정보

 

 

오늘날 이맘때쯤의 대정들녘에서는 어딜 가나 야생 수선화가 쉽게 눈에 띕니다. 자동차들이 분주히 오가는 도로변에도 있고, 바닷가의 양지바른 언덕에도 피어 있다. 또한 마을 안의 돌담 아래와 고샅길뿐만 아니라 들녘의 밭둑과 무덤 가에서도 수선화가 피고 집니다.
물론 농부들에게 뿌리째 뽑혀서 밭둑에 나뒹구는 수선화도 간혹 발견됩니다. 뿌리째 뽑힌 수선화 한 송이를 꺾어서 꽃향기를 맡아봤습니다. 이미 오랜 전에 목이 부러진 상태인데도, 은은하고도 고혹적인 향기를 한껏 뿜어냅니다. 수선화의 진한 꽃향기에서 추사 김정희의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느껴집니다. 이맘때쯤 제주도의 대정들녘을 지나시거든, 추사의 <세한도>처럼 고결하고 그의 글씨처럼 기품 있는 수선화 향기를 꼭 한번쯤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수선화 향기 그윽한 대정들녘의 한복판에 솟은 단산(바굼지오름)의 남쪽 기슭에는 대정향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을과 뚝 떨어진 산기슭에 덩그러니 위치해 있어서 호젓하기 이를 데 없는 곳입니다. 그래도 몇 그루의 해묵은 팽나무와 소나무가 경내를 그윽하게 굽어보고 있어 마음은 한결 푸근하답니다. 추사의 대표작 <세한도>에 등장하는 소나무의 실제 모델이 바로 이곳의 소나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향교 앞의 드넓은 들녘 너머로는 눈이 시도록 푸른 바다와 형제섬, 송악산 등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옵니다.


대정들녘의 서남쪽 바닷가에는 송악산(104m)이 솟아 있습니다. 정상에 올라서면 가파도와 마라도,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한라산 정상까지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빼어난 오름입니다. 송악산 북쪽의 상모리 들녘은 일제시대에 오무라 해군항공대의 ‘알뜨르비행장’이 들어섰던 곳입니다. 지금도 들녘 곳곳에는 당시 건립된 비행기격납고의 잔해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답니다.


송악산 기슭의 해안절벽 아래에는 일본군이 군수품과 어뢰정을 숨겨두기 위해 파놓은 인공동굴도 많습니다. 모두 15개여서 ‘일오동굴’로도 불리는데,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은 TV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 알려진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습니다. 그밖에도 송악산~사계리 해안도로는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답고 운치 있는 해안드라이브코스 중의 하나로 손꼽힙니다. 또한 서남부 해안인데도 겨울철에는 형제섬 위로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해돋이 광경도 감상할 수가 있답니다.

 

- 토막정보 -

송악산~사계리 해안도로 주변펜션 & 주변식당

제주도 B&B펜션(064-792-5670) : 큰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 조용하고, 2층 베란다에서는 사계리 바다와 송악산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조망이 좋아요.

산방산휴양펜션(064-794-3100)

바닷가별장펜션(064-794-7289)

파도소리펜션(064-792-8222) 

 

성원식당(해물탕과 전복회, 064-794-0085)은 현지 택시기사들이 제주 최고의 맛집 중 하나로 꼽는 집.

남경미락(다금바리회, 064-794-0055)

진미가(생선회 도미국, 064-794-3639)

형제식당(갈치조림, 04-792-0092) 

 

<송악산 기슭의 일오동굴> 

 

이 컨텐츠는 산림청의 E-숲 이야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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