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얼이 깃든 호남 3대 산성, 담양 금성산성에 오르다.
산림청 블로그 일반인 기자단 심인섭
왜구로부터 전라도 땅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산성을 따라 수없이 뛰었을 의병들의 거친 숨소리와 발자취를 찾아보고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녹두장군의 피를 토한 격문을 들어보고 한국전쟁 순창 회문산과 담양 가마골 빨치산의 주요거점이었던 금성산성. 그 천년 아픔을 보듬고 천년의 함성을 듣기 위해 담양 산성산에 올랐습니다.
전남 담양에서는 금성산성 주차장이나 담양온천을 거쳐 보국문으로, 또는 담양 오방 길을 따라 서문으로 올라도 되는데요, 오늘은 담양온천을 거쳐 보국문에 올라 산성을 걸어보기로 합니다.
담양온천 쪽 숲길은 한여름에 오면 좌우로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와 활엽수로 인해 햇볕 한 조각 새어 들어오지 않는데요, 옷을 모두 벗어던진 겨울이라 그런지 황량하기만 합니다.
금성산성은 연대봉과 시루봉, 철마봉 등 산봉우리를 잇는 능선을 따라 6,486m의 외성과 859m의 내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이 있고 군량미 창고,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시설이 있었지만, 임진왜란과 동학혁명을 거치면서 모두 불타버리고 90년대 복원된 보국문과 충용문을 제외하고 터만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1906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한 녹두장군 전봉준의 마지막 전투지로 알려졌는데요, 이곳에서 관군과 맞서 20여 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떨어진 식량 조달을 위해 전북 순창 쌍치에 사는 동지 김경천의 집을 찾았다가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금성산성 전투가 끝나고 왜병이 물러간 뒤 의병과 농민, 왜병의 시신을 계곡에 모았는데 무려 2,000구에 달했다고 합니다.
가운데 숲길을 따라 서문까지는 약 1.8km, 북문까지 이어진 숲길은 약 2.0km, 동문까지는 약 1.5km로 왕복 1시간 정도 걸리니 굳이 성곽 길을 걷지 않아도 충분한 산림욕이 될 것입니다.
담양온천 → 보국문 → 충용문 → 보국사터 → 서문 → 철마봉 →노적봉 → 충용문 → 보국문 → 담양온천으로 5.8km에 3시간 13분 소요
그 옆에는 휴당산방(休堂山房)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 집이 한 채 있는데요, 퇴직 공무원 출신 시인이 홀로 살며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자신의 시집과 시구가 적혀 있는 책받침을 판매하여 얻은 작은 수입으로 청빈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과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쓰러져간 수많은 넋들과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쓰러져간 수많은 민중들의 넋. 그리고 좌우로 편을 갈라 서로 간에 죽이고자 시퍼렇게 눈을 치켜떴던 동족상잔의 아픈 상처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위로해야 할까요?
사계절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담양 금성산성은 남녀노소 큰 부담 없이 운동화에 일상복으로 충용문까지 오를 수 있으며 숲길을 거닐어 동자암과 보국사 터까지만 다녀와도 훌륭한 산림욕을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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