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담긴 역사> 팔공산에 금표가 있다고? 팔공산이 봉산(封山)으로 지정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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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소셜 기자단 -/2019년(10기)

2019. 12. 26.





 대구와 인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팔공산은 친숙하게 다가오는 산이자 동시에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는 산인데요. 지금도 많은 등산객들과 함께 수능이 가까워지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갓바위(=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431호)는 팔공산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입니다. 또한 팔공산의 주변으로 지묘동(智妙洞)과 안심(安心), 반야월(半夜月) 등의 지명을 통해 후삼국 시대 팔공산에서 있었던 공산 전투(927)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공산 전투의 시작은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의 수도인 금성(현 경주)로 쳐들어가 경애왕을 자진하게 했습니다. 





신숭겸 장군의 동상, 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해 죽음을 맞이한 신숭겸 장군의 흔적은 팔공산과 지묘동 등 지명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구리시 인창동에 소재한 동구릉 중 수릉(綏陵), 효명세자(추존 익종, 문조)와 신정왕후 조씨의 합장릉이다. 



한편 신라의 다급한 구원 요청을 받은 고려의 왕건이 이를 구원하기 위해 내려오다가 공산, 즉 지금의 팔공산에 매복하고 있던 후백제 군에 포위되어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던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왕건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고려의 장수들 특히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해 죽은 전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본래 공산이라 불렸지만 이 전투에서 고려의 8명의 충신들이 죽었다 해서 팔공산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팔공산은 나무의 역사적 측면으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산인데요.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금표(禁標)입니다. 의외로 팔공산에는 적지 않은 금표가 확인이 되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 수릉(綏陵)과 팔공산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또한 금표가 남긴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팔공산이 봉산(封山)으로 지정된 이유는?

팔공산의 등산로 가운데 수태골을 출발해 서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걷다 보면, 대구 수릉봉산계 표석(대구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33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정표가 있기 때문에 찾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은데요. 가까이에 가서 보면 바위에 글씨가 새겨진 형태로, 수릉봉산계 표석이라고 들으면,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단어를 끊어서 읽어보면 의외로 쉽게 이해가 됩니다. 우선 수릉(綏陵)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1809~1830, 추존 익종, 문조)의 능호로, 현 구리시 인창동에 소재한 동구릉 중 수릉을 이야기합니다. 




팔공산의 등산 코스 중 수태골에서 출발해 서봉으로 오르는 코스, 주차장과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비교적 완만한 등산 코스, 대략 1km 가량 걷다 보면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대구 수릉봉산계 표석의 이정표

수릉봉산계 표석, 자세히 보면 바위에 수릉봉산계(綏陵封山界)가 새겨져 있다.

 바위에 새겨진 수릉봉산계



또한 봉산(封山)은 나무를 베지 못한다는 의미로, 벌채금지와 출입금지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계(界)는 경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해석해보면 팔공산이 수릉과 관련이 있다는 점과 이러한 이유로는 봉산으로 지정, 관리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 봉산 표석의 사례는 문경과 울진 등에서도 확인이 되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어떠한 목적을 위해 나무를 보호하고자 했던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나름 의미 있게 바라볼 지점입니다. 



* 대구 봉산계 표석 입구(=수태골)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915

입장료 : 무료

비고 : 수태골에서 서봉 방향으로 1km 가량 걷다 보면 이정표를 만날 수 있음, 주차공간 넓음, 공용화장실 있음





 또 하나의 금표, 대구 수릉향탄금계 표석(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


대구 수릉봉산계 표석과 함께 주목해볼 표석이 바로 대구 수릉향탄금계 표석인데요. 해당 표석은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27-5번지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팔공산 분수대 광장을 찾게 되면 인근에 화단과 함께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수릉향탄금계(綏陵香炭禁界)라고 했을 때 어렵게 느껴지지만, 단어를 끊어서 읽어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데요. 우선 수릉의 경우는 앞의 의미와 동일합니다. 




팔공산 분수대 광장 인근에 자리한 대구 수릉향탄금계 표석

대구 수릉향탄금계 표석의 안내문

바위에 새겨진 수릉향탄금계(綏陵香炭禁界)




또한 향탄(香炭)은 향과 숯 등의 재료로 쓰는 나무로, 해당 표석으로 인해 팔공산이 향탄봉산으로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향탄봉산의 주요 목적은 향탄목의 안정적인 공급인데요. 수릉의 제사에 쓸 향탄목을 공급하기 위해 팔공산이 봉산으로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금계(禁界), 즉 출입금지를 새겼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됩니다. 




확대해서 바라본 수릉향탄금계 

 안내문 옆에 새겨진 첩지, 해당 첩지를 통해 팔공산이 봉산으로 지정된 사실과 관리할 사찰이 동화사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표석 안내문 옆에 첩지의 실물을 표석에 새긴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해당 첩지를 통해 예조에서 팔공산을 봉산으로 지정했고, 이를 관리할 사찰로 동화사를 지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석민헌에게 향탄봉사수호총습과 도승통자로 임명해 수릉의 제사에 숯과 향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책임자로 임명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대구 수릉봉산계 표석과 대구 수릉향탄금계 표석은 팔공산이 수릉의 제사에 쓰기 위해 나무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문화재로, 팔공산을 찾으실 때 주목해보시면 좋은 산림문화자산입니다.   




* 대구 수릉향탄금계 표석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27-5번지

입장료 : 무료

비고 : 주차공간 협소, 공용 화장실 있음





※ 본 기사는 산림청 전문필진 김희태 기자님 글입니다. 콘텐츠의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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