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맛과 멋/우리의 "활" 국궁

뽀얀둥이 2011. 3. 22. 10:01

국궁, 국민 스포츠로 명중!…등록선수 1만1천여명
현대 부활…남녀노소 불문, 과학적 장치없이 '원시적'
 
 
 
‘국궁’이라고 불리는 우리 활 쏘기는 호흡법과 바른 자세, 활을 당기는 근력 등의 전신운동과 함께 마음 수양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사대에서 조용히 바람을 느낀다. 그리고 활을 당겨 먼 하늘을 향한 뒤 숨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린다.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이 고르게 반복되다 쉬는 듯 안 쉬는 듯 호흡이 느려지면 거궁 자세를 취하면서 잠시 호흡을 멈춘다. 이때만큼은 세상도 흐름을 멈추는 순간이다. 그리고 짱짱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미동도 없이 살며시 놓으면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가 과녁에 꽂힌다. ‘탕~’ 하고 과녁에 맞는 소리에 가슴도 함께 맑아진다. 활을 당기고 밀며 몸을 긴장시키는 시간이 길수록 화살을 쏘고 난 뒤 느끼는 이완의 기분도 짜릿하다. 이것이 바로 활을 쏘는 재미다.

◆궁도(弓道)라 부르는 활쏘기

화살은 마음이다. 사념이 가득하거나 활을 쏘는 자세가 바르지 못할 때는 여지없이 과녁을 벗어나고 만다. 활쏘기가 몸을 단련시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정신을 단련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운동인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활쏘기를 통해 자신을 수양했다. 고구려시대부터 전쟁도구로 활용돼 왔지만, 워낙 정적인 매력이 있다 보니 조선시대 들어서는 싸우기 위한 목적보다는 자신을 다스리는 도구로 더 많이 쓰였던 것이다.

꽃샘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리던 차가운 봄날 오후. 늘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던 대구 앞산순환도로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숲 사이에 관덕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145m 표적판은 까마득했다. “과연 저곳까지 화살이 날아가기나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절로 생겨난다.

이날 관덕정에서는 10명의 궁사가 활쏘기를 즐기고 있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는 회원들이 모여 활을 쏘면서 많은 점수를 내는 사람이 이기는 형식의 ‘편대놀음’을 하는 것. 혼자 활을 쏘는 것보다 회원들이 함께 즐기며 친목을 다지기 위한 놀이다. 내기라 해봤자 고작 500원짜리 커피값 내기인데다 회비로 적립되기 때문에 승자도 패자도 없는 놀이지만, 그래도 돈이 걸려 있는 만큼 승부욕은 제대로 불타오른다고 했다. 화살 5발을 쏘는 것을 한 순이라고 부르는데 15발을 쏴 한 발당 1점씩, 점수가 낮은 사람이 커피값을 부담하는 것이다.

놀이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활을 쏘는 순간만큼은 자신과의 진지한 싸움이다. 사대에서의 양발 위치는 비정비팔(非丁非八)이 돼야 한다고 했다. 앞쪽 발의 뒤꿈치 연장선이 뒷발을 지나지 않고, 여덟 팔(八)자도 아닌 형태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 활시위를 놓을 때는 흔들림 없이 자연스러운 타이밍이 포인트다. 숨을 쉬느라 폐가 팽창해 활을 건드려서도 안 되고, 시위를 놓을 때 손이 딸려가서도 안 된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날씨와 바람에 따라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생각 없이 화살을 쏴서는 안 된다. 명민한 두뇌가 더해져야 비로소 화살이 제대로 바람을 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덕정의 교장을 맡고 있는 조건석(89) 옹은 “활쏘기는 단순히 시위를 당겨 놓는 일 뿐만이 아니라 바른 자세와 호흡, 흔들림 없는 마음가짐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한 수를 쏘는데도 굉장한 체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궁을 배우려면?

대한궁도협회 산하 국궁장은 전국 350여 곳이 있으며 회원 수는 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인기 스포츠는 아니지만 단일 종목으로는 꽤 많은 인구가 즐기는 편이다. 국궁을 시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현재 대구에서 국궁을 즐길 수 있는 곳은 관덕정, 팔공정, 덕무정, 학산정 등 네 곳이다. 이 네 곳의 사정(활터) 중 처음 입회비 30만원을 내고 회원으로 등록한 뒤 매달 2만~3만원의 회비를 내면 된다. 동호회 형식으로 운영되는 구조이다 보니 회원들이 낸 회비를 통해 사정 운영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현재 관덕정에 등록된 회원은 모두 80여 명. 이 중 여성회원도 10여 명 정도 된다. 부부끼리 국궁을 즐기는 회원도 꽤 된다. 남편이 먼저 시작을 하고 그 재미에 푹 빠져 아내까지 함께 즐기게 된 경우다.

장비를 마련하는 비용도 여느 스포츠와 비교해 그리 비싸지 않다. 초보자가 사용하는 개량궁은 20만원쯤이면 장만할 수 있고, 화살은 한 개 7천원씩 10~15개 정도를 구매하면 된다. 이 밖에 궁대(활을 싸두는 천)`각지(손가락 보호대) 등도 필요하다.

하지만 장비를 갖췄다고 해서 당장 활을 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 2, 3주에서 길게는 두 달 정도 자세와 호흡법을 익히고 활시위를 당길 수 있을 만큼의 팔 근력을 길러야 한다. 각 활터에는 교장이나 사범이 있어 처음 국궁에 입문하는 초보자들의 교육을 맡는다.

국궁에도 ‘단’이 있다. 초단부터 9단까지 있으며 5단 이상을 ‘명궁’이라고 부른다. 매년 세 차례 입`승단 심사가 이뤄진다. 하지만 화살을 잘 쏜다고 해서 누구나 ‘명궁’의 칭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단을 딴 지 5년 이상이 돼야 하고, 연령기준도 있어 40세 이상이어야 한다.

더구나 명궁의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개량궁이 아니라 각궁을 사용해야 한다. 각궁은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활이다. 각궁은 탄성을 높이기 위해 대나무, 물소뼈, 소힘줄, 뽕나무, 참나무, 벚나무 등 6가지 동`식물성 재료를 민어부레풀로 접착해 만든다. 명주`무명실 대신 화학섬유로 만들어진 활줄을 거는 것만 빼면 1천 년 전 활과 다름이 없다. 대신 각궁은 이것을 지니는 사람의 정성이 더해져야 제대로 된 궁합을 이룰 수 있다.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완벽한 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맞게 깎고 다듬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활이 바로 각궁이다. 가격은 55만원 이상. 또 각궁에는 '죽시'라는 화살을 써야 하는데 대나무를 재료로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화살 하나의 가격이 2만5천~3만원 선이다.

◆낡은 유산? 천만에!

국궁이라는 이름에서는 왠지 낡은 냄새가 난다.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나 즐길 것 같고, 그런 만큼 화살은 빠르고 멀리 날아가기보다는 유유자적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산.

최근에는 부부가 함께 활쏘기를 즐기거나 부자(父子)가 함께 즐기다 보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즐기는 레저로 자리 잡았다.

나영일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2009년 현재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양궁 선수는 1천559명이고, 국궁 선수는 1만1천560명이다. 선수 숫자만 놓고 보면 국궁은 축구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스포츠다.

국궁은 서양식 활쏘기(양궁)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외국에서 전해진 음악과 구분하기 위해 우리 음악을 국악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활로 대표됐다. 동이족(東夷族)의 이름에도 바로 큰 활, 대궁(大弓=夷)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 우리나라 활은 중국이나 일본, 몽골에 비해 그 크기가 작은 '단궁'이지만, 성능에 있어서는 비견할 바가 못 된다. 사거리가 멀게는 400m까지도 날아간다는 것.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서 볼 수 있듯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은 우리 민족의 특기였다. 말을 타고 자유자재로 쏘기 위해서는 활과 화살이 작아야 했다.

사대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는 145m다. 양궁의 사거리가 30~90m에 불과한 것과 비견할 바가 아니다. 적당한 힘으로 화살이 다다를 수 있는 거리가 200보(步)였다는 데서 145m가 규정 거리가 됐다고 한다. 과녁은 육송으로 마름돼 있으며 크기는 가로 2m, 세로 2.66m로 돼 있는데, 과녁에 맞았나 안 맞았나를 따질 뿐 점수 차는 없다. 흔히 TV스포츠 중계를 통해 보는 양궁은 과녁의 중앙에 가까울수록 색깔이 달라 점수 차가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양궁에서 사용하는 활에는 조준기와 비행조정장치 등이 달려 있는 것에 비해 국궁의 활은 탄력 있는 활대와 활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원시활이라는 점도 차이점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