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슈주팬픽

오직성민SJ 2008. 8. 11. 23:22

 


선물 膳物
written by. gangs

 

 

 

 

 

 

 

제 1화

갑자기 쏟아지는 것들

 

 

 

 


“음료수 배달 왔어요!”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품안가득 이온음료를 든 성민과 려욱이 시끄러운 대기실로 들어선다.


“자판기가 고장나서 포카리밖에 안나오더라구요.”


성민이 파란 이온음료를 테이블에 우르르 내려놓으며 말했다. 려욱은 이미 대기실 의자에 앉아 심부름 때문에 덥다고 귀엽게 투정 중이었다. 그런 려욱의 모습을 ENG카메라가 놓치지 않고 담았다. 카메라 앞에서 부쩍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려욱을 보고 성민은 미소 지으며 캔 하나를 집어 곁에 있는 영운에게 건넸다.

뒤를 돌아보니 길다란 대기실 의자에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정수가 보인다. 그저께부터 몸이 안좋다하더니 제대로 감기에 걸렸나보다. 작게 쿨럭이는 등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성민이 물었다.


“정수형은 아직도에요?”

“응. 감기가 심하게 걸렸나보더라.”


평소 같았으면 약이라도 사먹였을텐데. 하루 종일 자신들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ENG카메라 때문에 멤버들은 오늘 단 하루도 맘 편히 있지 못했다. 아픈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구석에 찌그러져있는 정수가 오늘따라 더욱 측은한 성민이었다.

어쨌든 자신들은 연예인이었고, 카메라 앞에선 아프든 가식이든 뭐든 간에 시청자들에게 밝고 유쾌한 모습만 보여줘야 했다. 아픈 정수형 때문에 멤버들 기분이 축 쳐져있었지만, 혁재와 동해는 새로운 개인기라며 카메라 앞에서 가식 웃음을 지어내 보였다. 뒤를 이어 질 수 없다는 듯이 신동과 영운이 합세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괜히 안쓰러워 성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영운이 어느새 카메라 앞에서 빠져나와 성민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마라.”


짧은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안정된다. 불쾌하던 기분이 한 순간에 쓸려간 기분이다. 왠지 벅차오르는 감정에 성민이 영운을 향해 하얗게 미소지었다. 그런 성민의 뒤통수를 살살 쓸어주던 영운이 다시 신동에게 가서 장난을 건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비록 카메라 앞이였지만 오늘따라 다정한 영운의 모습에 성민은 가슴이 두근댄다고 생각했다.

 

“슈퍼주니어! 드라이리허설 준비해주세요.”


대기실 안을 울리는 스텝의 말에 멤버들이 신나는 듯 마구 소리를 지르며 문밖으로 나선다. 시장바닥처럼 온통 시끄러운 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지만 성민의 시선은 한 곳에 집중된다.


“괜찮겠어?”


정수의 허리를 부축하며 다정하게 말하는 영운의 모습.
자신과 있을 때 굳어있던 냉랭한 눈과는 달리, 정수를 담는 그의 눈은 아련하고 깊었다. 손에서 땀이나고 심장안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두근댄다. 그러다 용암이 흘렀는지 따끔거린다. 온몸을 휘감는 이상스런 기운에 성민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하지만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어 본다. 정수형은 아프니까…나랑은 다르니까. 그런 것일거다.


“형. 괜찮아요?”


곁에서 커다란 손이 어깨를 휘감는다. 중저음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올려다보니 시원이다. 못나고 추한 질투심. 마음을 들킨 것이라도 되는 냥 깜짝 놀란 성민이다.


“응? 괘…괜찮고말고. 왜 리허설 먼저 안갔어? ”

“형이랑 같이 가려구요.”


잘생긴 입꼬리를 올려 웃는 그를 보며 성민은 마주 웃어주었다.
어째서인지 무대로 가는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온몸이 나른하고 무겁다.
성민은 어깨에 걸쳐진 시원의 손을 살짝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잘만 얹고 다니던 손인데 오늘따라 납덩이를 단것처럼 무겁기만하다. 몸을 살짝 돌려 빼보려 했으나, 시원의 배려가 고마워서라도 성민은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형, 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려요?”

“응?”


시원의 말에 손등으로 이마를 한번 훔쳐본다. 손에 묻어나는 땀이 흥건하다. 시원이 자신의 소매 끝으로 성민의 이마를 조심스레 닦아준다. 질척질척 거리는 땀이 이마를 벗어나 얼굴을 타고 조르르 흐른다.


“한 여름에도 땀한번 안 흘리던 사람이. 몸에 무슨 이상 있는거 아니에요?”

“이상은 무슨.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봐. 에구…메이크업 다 지워지겠다.”


성민의 작은 얼굴을 닦아주던 시원의 손을 잡은 성민이 그만하라며 웃어보인다. 잠시 걱정되던 모습으로 바라보던 그가 퉁명스럽게 한 소리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요. 바보같이 착해빠져서는.”


그리곤 멤버들을 따라 무대로 오른다. 아까부터 이상스레 행동하던 시원이 마음에 걸린다.
도둑질하다 들킨 것인냥 얼굴이 화끈거린다. 보지않아도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얼굴에 성민은 이번 무대가 리허설인게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목선을 타고 흐르는 것도 모자라 바닥으로 뚝뚝 땀방울이 떨어진다.


“이성민, 리허설 안해?”

“앗! 네!!”


떨어져 검정색 스니커즈에 둥그런 흔적을 남기는 땀방울을 멍하니 쳐다보던 성민이 매니저의 말에 황급히 무대로 올라간다. 무대로 올라서는 계단이 어지럽다. 무대위에 대기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두갈래로 갈라진다. 성민은 손등으로 두 눈을 비벼본다.

 

 

 

“이성민. 너 똑바로 안 할거야?”

영운의 차가운 음성이 대기실을 가른다.
지독하게 쫓아오던 카메라도 없다. 오랜만에 고요를 찾은 대기실의 공기가 유난히도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멤버들은 모두 화가 난 영운의 눈치만 살살 보았다. 거리낄 것 없는 동해만이 평소처럼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귓가에 스치는 오래된 유행가 사이로 성민은 영운앞에 서서 고개도 들지 못한채로 작게 대답했다.


“죄송해요. 형.”


목소리가 두갈래 세갈래로 갈라졌다. 덜덜 떨고있는 성민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영운이 고개를 홱 돌려 의자 두개를 붙이고 누워있는 정수에게 다가간다. 그제서야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롭던 대기실이 조금은 느슨해진다.

성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이 없다. 사실 자기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아까 리허설 무대에서 자기 파트를 하고 돌아나올때 살짝 미끄러졌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잠시 휘청이다가 바닥에 투둑, 하고 떨어진 땀방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은 것뿐이었다.

놀란 눈의 시원이가 자신을 쳐다보았고, 옆에서 춤추던 은혁이 그 모습에 놀라 잠시 휘청였다. 성민은 난감한 듯 혓바닥을 한번 내보이며 약하게 미소지었다. 앞에서 노래하던 규현이가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며 괜찮냐고 입모양으로 물었다. 뿌옇게 영사되는 그 모습마저도 어지러웠다. 성민은 아파오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래…나는 아직 신인가수야. 신인가수가 무대에서 엎어지는 건 큰 실수잖아. 그러니까 영운이형이 나에게 화를 내는건 당연한거야….

섭섭한 마음을 달래려 속으로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괜히 쓰게 눈가에 눈물이 고여왔다. 사내자식이 울기나 하고...가슴 속에서 금새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 성민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었다. 잔뜩 힘준 눈사이로 땀과 눈물이 섞여 금새 눈이 뻑뻑해져왔다.
그런 성민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원이 성민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옆에 앉혔다.


“형…나 좀봐요.”


시원이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성민은 계속 고개를 숙인채 쓴 눈물을 삼킬 뿐이었다. 섭섭한 마음에 자꾸 찔끔찔끔 눈을 비집고 눈물이 나왔다. 멈추고 싶어도 자꾸 영운의 차가운 목소리가 생각나서 한없이 속상했다.
어디선가 차가운 물수건을 구해온 시원이 땀으로 범벅이된 성민의 얼굴을 한손으로 잡고 조심스레 닦아준다. 자신의 눈물이 채 밑으로 떨어지기전이라서 다행이라고 성민은 생각했다.


“고마워…시원아.”

“고맙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이잖아요.”


짧지만 단호한 신념이 섞인 그의 말에 성민은 살풋 웃어보였다. 성민의 작은 얼굴을 꼼꼼히 닦아주던 시원이 그제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성민과 눈을 맞춘다.


“이거봐요. 웃으니까 얼마나좋아.”


씩씩한 그의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성민은 손을 들어 기특한 동생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시원이 눈을 감은 채 기분 좋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이 무지 사랑스러워서 성민은 꺄르르 소리내어 웃어본다. 그래! 앞으로 잘하면 되는거야. 굳게 마음도 먹어본다. 그런 성민의 어깨를 한아름 안은 시원이 오밀조밀 큰 손으로 성민의 어깨를 주물러준다. 간지러운 느낌에 성민이 몸을 뒤틀며 기분 좋게 피한다.

형 어깨 무지 작다…딱 내 손바닥 만해. 혼자 중얼중얼 대며 간지럼에 가까운 안마를 하는 시원 때문에 작게 몸을 비틀던 성민은 또다시 찾아온 두통에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머릿속에 압정을 한통 가득 쏟아붓고 격렬한 헤드뱅잉이라도 한 것 같았다. 기껏 시원이 닦아준 얼굴에 또다시 끈적한 땀이 흘러내린다. 대기실에서 장난치고 있는 멤버들의 소리가 멍하게 메아리친다. 형! 왜그래요? 괜찮아요? 하며 걱정스레 묻는 시원의 얼굴이 빙글빙글 돈다. 정신을 차리려 두눈을 꼭 감고 고개를 세차게 휘저어본다.


“슈퍼주니어 스탠바이 해주세요.”


대기실 문을 열고 크게 외치는 스텝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린다. 왜 하필 이때인지, 스텝의 목소리가 원망스럽다 생각하며 성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 걸을 수 있겠어요? 흥분한 시원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만 같다. 그 소리에 놀란 멤버들이 성민에게 다가와서 괜찮냐고 무대에 설 수 있겠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성민은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휘청인다. 자신을 내려다 보는 멤버들의 얼굴이 두개가 �다가 세 개가 �다가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겹쳐진다. 심하게 휘청이는 성민의 허리를 시원이 단단하게 감싸안았다. 그 순간.


“너랑 최시원이랑…, 누가 보면 사귀는 줄 알겠다?”


잔뜩 조롱과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성민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영운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대기실을 나서는 영운의 옆구리엔 아직도 많이 아픈 정수가 붙어있었다.
억울했다. 또 다시 온몸을 타고 도는 치기어린 질투심에 성민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변함없이 차가운 영운이 못내 야속했다. 하지만 차마 미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 자신이 너무 싫었다.


“무대설수 있겠어?”


혁재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걱정스레 물어왔다. 억지로 웃으며 성민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마.”


성민의 힘없는 웃음에 우거지상이 된 혁재가 무대에 올라가면서도 자꾸 뒤돌아봤다. 다른 멤버들도 걱정하는 눈치였다. 성민은 걱정말라는 듯 멤버들에게 웃어보였다. 그러다 영운과 눈이 마주쳤다. 영운은 싸늘하게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까 전 그 다정함은 다 거짓이었나보다. 그저, 그저 카메라앞에서 같은 멤버한테 해 줄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나보다. 자신의 눈을 피해버릴만큼. 그 만큼 이미 영운의 마음속엔 제가 들어갈수 없는 자리는 없었나보다. 차라리 다정하지나 말지. 차라리 더 냉정해지지.

목을 타고 울컥 올라오는 뭉어리에서 피맛이 났다. 쿵쿵. 익숙한 비트소리가 들린다. 성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감사합니다---!”


방송국을 뚫을 것 같은 팬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멤버들은 무대를 내려왔다. 3주연속 1위를 한 오늘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객석 가득히 파란 물결이 넘실거렸다. 팬들도 다른 날 보다 더 많이 왔고, 그 만큼 환호성도 더 컸다. 다들 들뜬 마음으로 정신없이 무대를 내려오는데 몰려드는 팬들을 막으며 뒤따라오던 매니저의 손끝을 성민이 잡아챘다.


“형, 저랑 얘기좀 해요.”

“무슨 얘기?”


심드렁한 말투에 주위 눈치를 살피던 성민이 매니저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형… 저 병원좀 다녀올까해요.”

“왜?”


뻘쭘하게 말하는 성민의 말에 매니저가 놀란 듯 성민의 몸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훑어본다.딱히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까 대기실에서의 두통때문이었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매니저가 걱정스레 물었다.


“어디가 아픈데?”

“저…”


성민은 주저했다.


“저기…피가 안 멈춰서.”


피? 매니져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별거 아닌 듯 덤덤히 말하며 꼼지락대는 성민의 손가락 끝에 하얀 붕대가 작게 매어져있다. 조금씩 피가 새어나와 붕대를 붉게 물들인다.


“그걸 이제야 말하면 어떡해! 언제부터 이랬어?”

“그니까…일주일전에…”


그 말에 매니저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일주전이라하면 방송국 특설무대 비슷한 것이었다. 여름특집이다 뭐다 해서 소방용 헬리콥터로 무대위로 잔뜩 물을 뿌려댔고, 그 물 때문에 멤버들이 엎어질뻔 했었다.
신나게 춤추던 규현의 신발이 물에 미끄러져 무대 구석으로 날라갔으며, 발목이 좋지않던 영운이 쿵 하는 소리를 내고 바닥에 무릎을 그대로 메다 꽂았다. 날쌔기로는 빠지지 않는 혁재가 마침 성민의 옆에서 춤을 추다 삐끗했고, 성민은 그런 혁재의 팔을 붙잡다가 체중이 쏠려 옆에 세워둔 조명기구에 손가락 끝을 살짝 긁혔다. 조금씩 피가 새나오길래 대충 밴드로 마감해놨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성민을 바보천치라도 되는 냥 호되게 쏘아보던 매니저가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는 손가락끝을 걱정스레 주시하며 말했다.


“오늘 스케줄은 이게 마지막이니까 바로 병원가자.”


잔뜩 걱정이 서려있는 매니저의 말에 미안함을 느낀 성민이 조용히 매니저의 뒤를 따라 벤으로 향했다.
그 앞에 다다랐을때 성민이 살갑게 매니저를 불렀다.


“형….”

“왜 임마.”

“이거… 형들하고 동생들한텐 얘기하지 말아주라.”


헤- 하며 성민이 해맑게 웃어보인다. 순한건지 미련한건지. 이런 상황에서까지 멤버들을 먼저 챙기는 성민을 안쓰럽게 쳐다본 매니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민은 고맙다하며 벤에 올랐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웃어보이는 성민의 뒤꼭지를 바라보던 매니저가 한숨을 절레절레 쉬며 앞에 올라탔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의사의 얼굴은 차가웠다. 은색 무테에 잔뜩 긴장한 성민의 모습이 비춰졌다. 숙소에 들르자마자 병원으로 날른 성민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각자 스케줄 때문에 바뻤기 때문에 나간다고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분홍색 비니를 눌러 쓴 성민이 민망한 듯 작게 혀를 내밀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


이 상황이 답답한 듯 뭐라 말하려하자 뒤에 단단하게 서있던 매니져가 성민의 팔뚝을 찰싹하고 때렸다. 씨잉. 입술을 삐죽대자 가만히있어. 하며 으름장을 놓는다.
성민은 그저 입술만 삐죽 내밀었다.


“이성민씨?”


한참만에 나온 대답에 성민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많이 탁한 의사의 목소리가 성민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대답안하면 혹여 나가라할까 성민은 재빨리 대답했다.


“네?”

“피가 안멈추는 것 외에 또 무슨 증상이 있었다고요?”

“저…그니까 머리가, 아니아니 두통이 많이 심하게왔구요. 식은땀 나고, 밤 되면 으슬으슬 춥기도 하구….”

“입맛이 없거나 살이 빠지진 않았나요?”

“네? 네. 사실 바뻐서 제대로 밥챙겨먹을 시간이 없었거든요.”


흐음. 의사가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모여 올라간 미간을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안좋은 듯 했다. 한참을 뚫어지게 살펴보는 의사 때문에 성민은 얼음땡이라도 하는 듯 꼿꼿이 얼어버렸다. 불안해 하는 성민의 어깨를 매니저가 어르듯 잡았다.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은 정밀검사 먼저 받아보도록하죠.”

 

 

 


터덜터덜. 검사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성민이었다. 뭔 놈의 검사가 그렇게나 많은지 아주 곤죽이 될때까지 병원에 있었다. 위검사다 뭐다 해서 밥도 못먹었더니 온몸에 힘이 없어서 팔다리가 뼈없는 문어처럼 흐물거렸다. 집에 오는 길에 시간이 마침 출출할 때라서 가게방에 들려 멤버들에게 줄 과자도 샀다. 하얀봉지를 들썩거리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하얀 봉지를 낚아챈다.


“어?”


놀라 뒤를 돌아보니 시원이 방긋 웃으며 서있다.


“시원아!”

“형. 안녕.”


시원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시원은 원래 멤버들과 다른 숙소를 써서 방송활동이 겹치지 않는 이상 만날 일이 거의 없는데 이 시간에 여기 있다는게 놀랍고 신기하고 또 반가웠다. 성민이 되물었다.


“네가 여기 왠일이야?”

“왜? 나 여기 오는거 싫어요?”

“아니아니. 저얼대루 그런거 아니야. 그냥 반가워서 헤헤.”


반색을 하던 성민이 실없이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유난히 느린 성민의 보폭에 맞춰 걸으며 시원이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나 내일 중국가거든요.”

“중국? 거긴 왜?”

“이번 영화 제작발표회 때문에…”

“아…묵공?”

“네.”


쑥스럽게 웃으며 시원이 대답했다.
에구…대견해라. 성민은 그런 동생이 대견한지 까치발을 들어 시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시원이 작게 얼굴을 붉힌다. 머뭇머뭇대던 시원이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진지하게 말한다.


“형. 나 이번에 중국 다녀와서 형한테 할말 있어요.”

“할말 뭔데?”

“아…그런게 있어요.”

“그게 뭘까? 우리 시원이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성민을 보며 시원이 씁쓸하게 웃었다. 성민은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둔하고 눈치없었다. 그런 점이 몹시 사랑스러웠지만 너무 답답해서 걱정이 될 때도 적지 않았다. 바보 형. 앞에있는 성민이 백치아다다 같다고 느낀 시원이었다.


“나 2주후에 오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요. 알겠죠?”


2주? 성민의 눈의 커졌다. ‘2주 후에 다시 뵙도록 하죠.’ 차갑게 진료실을 울리던 의사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잘됐네. 2주 후면 활동도 다 접는데.’ 어깨를 툭치며 살갑게 말하던 매니저의 말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2주 후면 시원이 돌아온다. 자신에게 꽤 많은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며 성민은 입을 열었다.


“2주? 알았어. 기다리지 뭐어.”


별 다른 반응없이 무덤덤하게 기다린다는 말에 시원은 아주 조금 맘이 상하고 그 조금보다 더 많이 섭섭했다. 적어도 서운해는 해줄줄 알았는데 앞에 있는 성민은 너무나도 태연했다. 속에 삶은 달걀을 꾹꾹 밀어넣은 듯 답답해져와 손가락이 저절로 주머니에 들어있는 담배곽으로 향했다. 손가락에 만져지는 잘빠진 담배를 자분거리다가 그가 말했다.


“형 나 약속하나만 들어줘요.”

“약속? 무슨약속?”

“그냥…나 중국가서 잘하고 오라는 의미로. 응?”

“음…그르지 머. 뭔데?”

“있잖아요… 나 중국갔다 돌아오면 그때 내가 해 달라는거 하나 해주기. 어때?”

“뭐든지 다?”

“응. 뭐든지.”

“너…막 집사달라거나 차 사달라거나 이러믄 안돼.”

“안 그럴게. 들어줄거지요?”


눈을 맞추며 너무도 진지하게 말하는 시원의 모습이 눈에 와 박혔다. 시원이 새끼손가락을 얼굴앞에 가져다대며 약속. 하고 말한다. 성민이 베실 하고 웃으며 그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새끼손가락 고리걸고 꼭꼭 약속해. 노래까지 부르고 싸인 복사 코팅까지 마친 두사람은 마주보며 하얗게 웃었다.

머리위로 이름모를 하얀 새들이 정답게 지저귀며 날아간다. 녹음빛의 나무들이 공기중에 파랗게 부서진다. 지평선 끝 분홍빛으로 물드는 노을뒤로 골목길마다 오렌지색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진다. 황금빛으로 물든 황금길위를 나란히 걷는 그림자 두개. 성민은 행복했다.

 

 

하지만 불행은 한꺼번에 닥쳐온다는 것을 몰랐다

 


길 것만 같던 2주가 금세 지났다. 기분좋게 막방을 끝내고 뒷풀이가는 멤버들, 코디들, 매니저들을 뒤로한채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같이 가주겠다고 하는 매니저를 달래 멤버들과 함께 뒷풀이자리로 보냈다. 많이 불안해하는 매니저였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성민은 단지 오랜 활동으로 인해 피곤해서 그런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산산히 부숴졌다.

행복뒤엔 언제나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이러면…내가 무슨 드라마 여주인공 같잖아.”


병원을 채 나오지도 못한 성민은 병원 현관 기둥에 등을 기대고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헛 웃음이 흘러나왔다.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라고 했다. 지금 상황이 너무도 뻔한 삼류 드라마같아 성민은 말없이 꺽꺽대며 웃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죽을병을 얻어 아름답게 죽음을 그리는 그런 삼류 드라마.


-암세포로 보이는 악성 종양이 발견�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태니 입원이 필요합니다.


한순간에 자신의 인생이 뒤집어졌다. 방금까지 했왔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다신 해 볼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머리속을 커다란 주걱으로 뇌를 휘젓는 느낌. 딱 그 꼴이었다. 가슴을 내려 누르는 그 암담한 현실에 성민은 당황스러웠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불행은 찾아왔다. 눈을 감으면 눈 앞에 절망이라는 두 글자가 확연히 들어왔다. 그렇다고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눈을 떠 본 세계는 방금 전과 조금도 다를게 없었다. 내 인생은 180도 역전�는데 눈앞에 흐르는 일상은 평소대로 유유히 흘러갔다. 그 유함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성민은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이제는 완전히 주저 앉은 성민의 눈에 오렌지 빛 햇살이 하얗게 부숴져 눈 속으로 들어왔다. 성민은 천천히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순간 톡 하고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한번 떨어진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온 뇌를 다 녹이듯 흘러내렸다. 하얀 셔츠가 축축히 젖어 들어갔다. 손가락틈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그 하얀 빛이 너무도 예뻐서 그래서 우는 것이라 성민은 생각했다.

말없이 주저앉아 우는 그에게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가왔다. 그 중 성민을 알아본 여고생들이 꺅꺅대며 성민의 옷을 끌어당겼다. 성민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 그들을 밀어냈다. 악몽같은 병원을 도망치듯 벗어났다. 지금은 팬들보단 안식처가 절실히 필요했다.

엄마, 아빠, 동생 성진이, 멤버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마라.

영운이형… 다정한 영운의 얼굴이 눈 앞에 그려졌다.

지금 성민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제 2화

적신호

 

 

 


성민이 집으로 돌아왔을땐 이미 술자리가 최고조에 달아있었다. 거실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들하며, 접시위에 있어야할 안주들이 쓰레기처럼 널려있고, 술에 만취한 멤버들은 각자 구석자리를 하나씩 맡곤 누워있었다. 멀쩡한 사람이라곤 술은 입에도 안대는 혁재와, 원래 주량이 센 영운, 그리고 동해였다.

거실로 들어와 경악하는 성민을 보고 술에 잔뜩 취해 얼굴이 새빨개진 규현이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형~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형 기다리느라 우리 다 취해버렸잖아.”


흐흐. 웃으며 다가온 규현이 성민의 품에 폭삭 안겼다. 자신보다 키가 큰 그였기에 어정쩡한 폼으로 규현을 안은 성민이 난감한 듯 말했다.

“으이구.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심 어떡해.”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술도 잘하는 녀석이 이렇게까지 취한걸 보면 작정을 하고 먹인 것이 분명하다. 성민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규현을 소파에 잘 눕혀놓고 거실바닥을 치우기 시작했다.
원래도 알아서 잘 치우는 성민이었지만 오늘은 무엇에 홀린 사람마냥 쉴새없이 청소한다. 마치 낮의 일을 잊어버리려는 듯이. 자꾸 마음 한켠을 눌러내리는 생각때문에 성민은 더 많이 웃고 더 오바해서 행동했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였지만 무엇보다 멤버들에게 알리는 것이 더욱 더 두려웠다. 가족같은 멤버들에게 알리면 정말로 인정하게 되어버릴 것 같아서, 성민은 자꾸 눈으로 차오르는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빈 술병을 양손에 들어 부엌 한켠에 두고 나오는데 누군가 손목채를 휘어잡는다. 혁재였다. 멀쩡한 눈으로 그가 성민에게 묻는다.

“너…오늘 울었어?”

그 답지 않은 낮은 목소리였다. 뜨끔한 성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정했다.

“울긴… 나 안 울었어. 오늘 같이 좋은 날에.”

부은 눈을 감추려 자꾸만 땅만 쳐다보는 성민의 턱을 혁재가 가만히 들었다. 그러더니 눈을 맞추며 이리저리 뚫어져라 쳐다본다. 괜히 불편해진 성민이 그런 손을 쳐보지만 미동도 없는 혁재다.

“아니긴. 울었구만. 눈이 아주 탱탱 부었어.”

성민이 황급히 손으로 눈두덩이를 부빈다. 족집게 같은 그였다. 예전부터 자신이 쥐도새도 모르게 울고 들어와도 척척 알아맞히던 혁재였다. 하지만 성민은 계속해서 부정한다.

“아니야. 라면먹고 자서 그래.”

“진짜?”

“응.”

“너 나한테 뭐 숨기는거 있지?”

오늘따라 더 많이 웃고 더 활발한 성민이 아무래도 이상한 혁재였다. 다른 날도 아니고 뒷풀이날 혼자 몰래 빠진 거 하며 꺼져있는 핸드폰. 그리고 무엇보다 붉게 충혈된 눈. 제가 아는 이성민은 이런 모습이 아니였다.
오늘 따라 수상한 성민을 탐색하듯 쳐다보자 성민이 조심스레 손목을 돌려 뺀다. 그러더니 실없이 웃으면서 작게 얘기한다.

“너. 밥 먹고 힘만 키웠지? 으…손목 아퍼.”

혁재 뒤에 놓여있던 걸레하나를 집어잡곤 빠르게 등을 돌린다. 그의 작은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작아보인다. 혁재는 성민의 등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성민. 내가 널 모를 것 같냐?”

그 말에 성민의 등이 움찔하더니

“형이라고 했자나. 이 바부야.”

그리곤 빠르게 나가버린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 성민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엌을 빠르게 나가버렸다. 혁재를 만난 몇 년 동안 한번도 불편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불편했다. 그는 제 모든 것을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이 된 성민이 뒤를 힐끔 돌아보며 바닥을 닦는다. 그는 여전히 뿌리내린 듯 그렇게 서 있을 뿐이다.

머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바닥을 닦는 성민을 노려보던 혁재가 쌩하고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액면가로 따져도 저보단 훨씬 어려보이고, 햇수로 끊으면 저랑 동갑인 그였기에 혁재는 따로 성민을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처음에 연습생으로 만났을땐 괜한 남자들 사이의 자존심 때문이었지만, 나중에는 저와 형만의 특권 같은 거였다.
그 만큼 혁재와 성민은 둘도 없는 가족, 형제, 친구같은 사이였다. 그런 성민한테 ‘형’이야기가 나올 때는 말하기 곤란한 상황이어서 화제를 돌리고 싶을 때나, 저 한테 화가 났을 때. 딱 두가지 상황뿐이었다. 앞을 미루어 봤을때 후자는 아닌 거 같고, 전자일게 틀림 없는데…

-형이 나한테 말하기 곤란한게 뭐지?

그 동안 비밀도 없이 몸에 있는 점 개수 까지 다 알만큼 스스럼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구 머리를 헝클은 혁재는 침대에 팔을 뒤로 베고 누웠다. 성민이 붙여준 야광 별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

 

성민은 더러워진 걸레를 깨끗이 빨아 화장실에서 나왔다. 쭈글쭈글해진 걸레를 탁탁 털며 건조대에 널고 있는데 동해가 주머니에 손을 꼽아놓고 껄렁껄렁하게 다가왔다.

한 쪽 벽에 손을 기대곤 비스듬히 서있는 동해를 성민이 곁눈질로 쳐다보며 말한다.

“속은 괜찮아?”

“응?”

난데없는 말에 당황한 동해가 눈을 크게 뜨곤 되물었다. 성민은 그저 묵묵히 빨래만 넌다.

“너 술 많이 마셨을 거 아냐.”

“별로 안 마셨어.”

“거짓말. 술냄새가 여기까지 나는걸.”

“진짜 별로 안 마셨어. 그리고 나 원래 술 잘하잖아.”

옅게 미소지으며 동해가 말한다. 꽤나 걱정스럽게 그를 쳐다보던 성민이 다 널었다는 듯이 두손을 셔츠에 탁탁 딱고는 다행이다. 하며 웃는다. 술을 잘하는 동해지만 다음 날 심한 숙취로 고생하는 그였기에 성민으로썬 꽤나 고민이 됐던 모양이었다.

“내가 속 아플 때 먹는 약하고 요플레 사왔으니까 그거 먹구 자.”

얌전히 말하며 성민이 부엌으로 향한다. 혹시나 멤버들이 술에 잔뜩 취했을까봐 미리 술 깨는 약과 겔포스, 요플레 등을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사논 성민이었다. 이미 취해버려서 술 깨는 약은 소용이 없게 됐지만 말이다.

“너야말로 괜찮아?”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성민의 발걸음이 우뚝하고 멈췄다. 장난기 어린 말투였지만 진지했다. 속을 꿰뚫어 보는 말투에 당황스러워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내…내가 뭘.”

“진짜 괜찮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 같은데.”

빈정대는 투였다.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발끝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온 것 같았다. 성민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런 성민의 뒤꼭지를 쳐다보던 동해가 답답한 듯 성민의 어깨들 잡곤 홱 돌려버렸다.

“너 오늘 아무래도 이상해. 무슨 일 있었지.”

“일은 무슨.”

“근데 왜 이렇게 오바해.”

“오바는 무슨. 기분 좋아서 그르지.”

고개를 들어 동해를 봤을 땐 그의 눈이 으르렁대고 있었다. 겁이 났다. 성민은 허둥대며 횡설수설하다가 나가볼게. 하며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동해는 허탈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게 분명했다. 바보 같은 그였다. 어린게 버르장머리없이 무시해도 웃으며 다 받아주던 바보 같은 그였다. 저 바보가 지금 뭔가 숨긴 게 분명했다. 술에 취해 잘못 본 게 아니다.
동해는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멍하게 두어 번 죄더니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위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주인모습답게 얌전히도 올려져있었다. 그 모습이 처량해 보여 실소를 터뜨린 동해가 봉지를 뒤적거려 딸기맛 요플레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손에 잡힌다.

“이게 뭐지?”

작은 병이었다. 동해는 천천히 손을 꺼내 그 것을 들여다보았다.

“말도 안돼.”

병이 손에서 툭하고 떨어져 내린다. 도르르 굴러 그의 발치에 머무른다. 허공에 멈춘 동해의 손이 달달 떨리기 시작한다.

 

 

 

“스물 하나. 스물 둘.”

휘익. 얇은 줄이 바람을 통과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오랜만에 하는 줄넘기라 그런지 많이 힘들었다. 아니, 몸이 약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몇 백개도 문제없었는데….

줄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울고 싶다. 성민은 좀 더 세게 줄을 돌린다. 줄이 빨라지고 성민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울면 안돼. 마음속에서 두개의 마음이 싸운다. 성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야밤에 웬 줄넘기냐?”

어둠속에서 영운의 모습이 가로등 불빛에 희끄무레하게 들어난다. 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줄넘기를 손에서 놓쳤다. 그 바람에 돌아가던 줄이 허공에 멈추며 얼굴에 그대로 떨어졌다. 악. 바보같이 얼굴에 붉은 선이 가버렸다. 성민은 눈을 찡그리며 볼을 어루만졌다.

“바보같이. 그것하나 제대로 못하냐.”

그의 뜨거운 손이 볼에 와 닿는다. 성민의 손을 치운 영운이 다정스레 볼을 쓰다듬는다. 부었네. 약 발라야겠다. 다정한 말투에 성민은 그 손을 매정하게 뿌리쳐 버린다. 내가 넘봐선 안 될 사람이다. 나한텐 부메랑이 되서 돌아올 거야.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듯 콕콕 가시들이 마음에 와 박힌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걷어내 버리자 그 바람에 무안한건 영운과 성민이었다. 영운은 황급히 손들 들어 괜한 머리를 긁적였다. 성민은 저…저. 하며 우물쭈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다 괜찮다는 듯이 영운이 성민의 손을 끌어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따라서 앉아버린 성민이 뻘쭘한 듯 운동화 끝만 바라보며 발장난 만 쳤다. 영운이 물었다.

“줄넘기 재밌냐?”

“아니요….”

“그런데 왜 하냐?”

성민은 망설였다. 달이 밝게 빛났다. 오늘따라 극성맞은 팬들도 숙소 앞에 없었다. 성민은 오늘 하루만은 솔직해지기로 결심한다.

“울고 싶어서요.”

“그럼 울면 되잖아.”

“울 수 없어서요.”

자신과 말장난을 하자는 건지 어이없는 그의 말에 영운이 고개를 까닥였다. 장난을 친다기엔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지만 처연해서 문득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 생각에 놀란 영운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성민에게 물었다.


“그게 줄넘기랑 뭔 상관이냐.”

다시금 잠시 망설이던 성민이 작정한 듯 조용히 내 뱉었다.

“옛날에 책에서 봤는데요, 사람 눈물하고 땀은 같은 성분이래요. 전 지금 무지 울고 싶은데, 울 수 없거든요.”

“…”

“그러니까 땀을 다 빼내면 안 울 수 있어요.”

성민이 영운을 쳐다보며 환히 웃었다. 그 웃기지도 슬프지도 않은 말에 아연해진 영운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는 집안으로 들어가버린 후 였다. 그는 웃고있었다. 하지만 울고있었다. 영운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너 나 좀봐.”


성민이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동해가 성민의 손목을 끌곤 방으로 들어갔다. 달깍. 하며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힌다. 성민이 미간을 찌뿌린다.


“멤버들 깨겠다. 문 좀 살살 닫아.”


멤버들 깨겠다? 하! 성난 동해의 눈이 더욱더 으르렁댔다. 앞에 있는 성민은 무슨 일인지 모른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동해는 더욱더 열이 뻗쳐올랐다.


“니가 지금 다른 멤버들 걱정할때야?!”


격양된 동해의 목소리가 커졌다. 방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당황한 성민이 동해에게 눈치를 주며 조용히 말했다.


”…너 왜 그래…!“

“너 왜 그래?! 그래 나도 이유 좀 알자. 내가 왜 이러는 것 같냐?”


당황한 성민이 동해의 눈을 쏘아봤다. 평소에 까칠한 면이 없잖아 있어도, 이렇게 까지 자신에게 화낸 적은 없던 동해였다. 설마…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성민의 눈이 흔들렸다.


“너 이거 뭐야.”


낮게 내뱉는 동해의 손에는 너무나도 낯익은 병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병원에서 친절히도 타준 진통제와 항암제였다. 성민은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끝도 없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만 같았다.


“말해봐. 이성민.”


성난 동해의 눈이 일렁였다. 성민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동해가 과연 저 끔직한 물건을 어디서 발견했을까. 그러다… 아! 짧은 탄식 후에 생각났다. 요플레 봉투. 편의점에서 요플레를 산 뒤 칠칠맞게도 약병을 그냥 봉지에 넣고 집까지 온 성민이었다. 뒤 늦은 후회감이 뼈속까지 몰려왔다. 두려웠다. 동해의 우악스런 손길이 성민의 멱살을 잡았다. 성민은 천천히 눈을 떴다.


“미안해.”

“미안해? 니가 왜 미안한데?”

“…”

“그래. 나 속이고 우리 멤버들 다 속이고, 매니저형까지 속이고 그러니까 미안하시겠지.”

“…”

“너 참 대단하다. 어떻게 사람 한순간에 병신을 만들 수가 있냐.”


빈정대는 동해의 말이 성민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때가 되면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저…그저 아직은 인정하기 싫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래서 그런 것이었다.


“니 걱정하는 멤버들 니 눈엔 개만도 호구만도 못했겠네. 어? 아까 니 걱정하는 나 보고 즐겁디? 니 계획대로 속아줘서?”

“그런거 아니야.”


성민이 대답했다.


“그런거 아니야. 넌 죽었다 깨어나도 몰라. 내가 왜 못 말했는데. 나도! 나도…말하고 싶었거든? 내가 오늘 하루 동안에만 지옥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는지 니가 알어?”


날카로운 음성이 둘 사이를 가른다. 어느새 성민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안우려고 했는데…


“나도 기대고 싶었거든? 일분에도 수십번 수천번 말하고 싶었는데. 부모님한테 매니저형한테 멤버들한테 이제 나 죽는데. 나 암이래. 어떻게 말해! 내가…내가! 내입으로 어떻게 말해!”


암?! 동해의 눈이 커졌다. 지금 암이라고 했어? 동해가 성민의 양 팔을 붙잡았다. 자신은 그저 아파도 멤버들에게 말 안하는 성민이 야속해서 그래서 홧김에 화를 낸 것 뿐이었다. 걱정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그 태도. 그 멍청스런 태도 때문에 화낸것이었다. 그 약병도, 약병을 통째로 처방받았을 정도면 몸이 꽤 많이 안 좋으니까 그랬겠거니…하고 생각했던 것 뿐이었다. 오랜 지병으로 심장병을 앓고 있던 친구가 가지고 다니던 약병과 비슷해서,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한번 떠 본 것 뿐이었다. 그런데 암이라니. 암이라니!


“너. 그냥 몸이 좀 안좋은거 아니었어? 말해봐-!”


너무나도 큰 비밀을 알아버렸다. 커다란 해머로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눈앞에 있는 성민은 이제 완전히 울고있었다. 제 입에서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도 아파서 성민은 그렇게 울어버렸다.


“동해야…동해야. 나 암이래. 어? 나 암이래!! 나 어떡해? 응?”


성민은 동해의 목을 껴안고 엉엉 울었다. 날벼락같이 떨어졌던 사형선고가 이제야 피부로 전해져왔다. 정말로 무서웠다. 가슴이 쿵쿵 떨어져 내려서,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아서 성민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런 성민의 등을 동해가 세게 껴안았다. 어느새 동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이 왜 우는지 왜 이렇게 얼굴이 짠지 아무것도 모른채 그렇게 동해도 울고있었다.


“확실한거래? 응? 말해봐. 진짜 맞는거래?”


동해가 다급하게 물었다. 이젠 둘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위험하대. 너무 위험해서 나…나 이제 가수생활도 못한대! 나…나! 곧 죽는데.”


동해의 뜨거운 눈물이 성민의 볼에 떨어졌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동해는 그저 성민의 뒤통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아무데도 보낼 수 없다는 듯이. 우리 착한 성민이 이대로 보내버리면 내가 너무 못�놈이라서… 그래서. 동해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성민을 지켜주리라 그렇게 마음속으로 수 없이 다짐했다.


“동해야…나 무서워--!! 나 너무 무서워.”


오열하는 성민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 가여웠다. 제가 방금 내뱉은 말이 이렇게 자신에게 상처가 되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심장을 날카로운 단도로 도려내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차라리 지독한 린치를 당하는 것이 그게 더 속이 편 할 것 같았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동해는 손등으로 거칠게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성민의 얼굴을 들어 성민의 눈가를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온 몸의 수분을 다 빼내려는 듯이 성민의 눈가에서 계속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동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눈물에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자꾸만 자신을 껴안는 성민의 손을 꼭 부여잡으며 동해가 말했다.


“내가 꼭 살릴테니까…그러니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터져나오는 울음이 자꾸 말도 희망도 꿈도 먹어갔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동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성민의 얼굴을 감싸안았다.


“…너무 걱정하지마.”


성민의 귓가에 대고 동해가 속삭였다. 아프게 감긴 눈이 요동친다.
그렇게 눈물로 가득찬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침대위로 쏟아지는 햇살에 동해는 잠에서 깨어났다. 탁자에 놓여진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지끈지끈 땡겨오는 머리를 훌훌 털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여니 고소한 냄새가 코를 후비고 들어왔다. 마침 방문 옆 욕실에서 나온 려욱이 반갑게 말했다.

“형. 식사준비 다 됐어요. 얼른 와서 밥 드세요.”

동해는 대답없이 려욱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줬다. 려욱이 쑥스러운 듯, 형도 참…하며 거실로 뛰어갔다. 어젯밤 일이 다 꿈만 같았다.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씻고 마른 수건으로 젖은머리를 탈탈 털며 거실로 나오자 멤버들이 밥상앞에 둥글게 모여있었다. 지금 중국에 가있는 시원이만 빼고 12명의 멤버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여기저기 굴리던 동해의 눈이 성민의 눈과 마주쳤다. 성민은 아무일이 없다는 듯 예쁘게 미소지어 줄 뿐이었다. 동해가 뭔가 말하려하자 성민이 검지손가락을 입 앞에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냈다. 동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암묵적인 동의였다. 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성민 옆에 끼어들어 앉았다.

“와~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네.”

덕분에 옆으로 밀려나게 되버린 혁재가 씹퉁대며 욕했지만 들은 척도 안하고 동해는 성민을 보며 마주 웃었다.

“이거 성민이 솜씨야? 역시. 니가 만든 건 뭐든지 맛있다니까.”

순간 젓가락이 탁하고 거칠게 식탁에 부딪히더니

“야! 이동해. 니가 뭔데 우리 성민이한테 말까? 앙?”

혁재였다.

“말까던 말던.”

동해는 무시하며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 성민의 밥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성민아~ 밥 많이~많이 먹어.”

하며 혁재에게 메롱했다. 약이 바싹오른 혁재가 계란말이 접시를 통째로 들더니 성민의 밥그릇 위에 모조리 올려놓는다.

“성민아. 저 물고기가 준거 말고 이 보석미남이 준거 먹어.”

“보석미남은 무슨.”

“물고기주제에.”

“이 말라깽이야.”

“뭐 말라깽이? 너 죽을래? 물고기가 진짜.”


툭탁대는 둘을 보며 멤버들이 다들 하하 웃었다. 성민은 그런 동해와 혁재에게 조용히 그만해. 라며 살풋 웃어보인다. 그러자 진짜로 조용해진 둘이 얌전히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재밌어 멤버들이 또 한번 웃는다. 성민은 자신 밥그릇 위에 올려놓은 계란말이를 멤버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준다. 하여튼 착해빠졌다니깐…이 순간만큼은 같은 생각을 한 동해와 혁재였다.

다들 밥을 다 먹어갈 때 쯤 영운이 밥상위를 한번 쭉 훑어보다가 그런다.

“야. 막내. 물 좀 가져와.”

조용히 밥을 먹던 규현이 울상이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짬밥이 딸리는데. 원래 물 떠오기, 잠잘 때 불끄기, 커피타기 등등은 막내가 하는 거라고 했다. 결국 우거지상이 된 규현이 일어나려고 하자

“내가 갖고 올게.”

하며 성민이 일어난다. 하지만 강하게 끌어내리는 힘에 곧 다시 주저앉고 만다. 동해였다. 너 왜 그래. 하며 성민이 조그맣게 속삭이자 동해가 잡고 있는 팔에 더 힘을 주며 영운의 눈을 강하게 쏘아보았다.

“먹고 싶으면 형이 떠다 마셔.”

꽤 건방진 말투였다. 놀란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태까지 잘만 해온 일이었다.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이 멤버들이 동해를 쳐다봤다.

“지금 성민이 밥 먹고 있잖아. 그러니까 형이 떠다 마셔.”

순간 실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거리낄 것 없이 말하는 동해 때문에 당황한건 오히려 성민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성민의 모습이 짜증나는 영운이었다. 오늘 따라 둘 사이가 더 좋아 보이는 것도.
안 빼기엔 걸리적거리고 빼기엔 또 귀찮은 그런 손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둘의 모습이 맘에 걸렸다. 제가 왜 이렇게 열 받는지도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도 몰라서 영운은 더 승질머리가 났다.
아무렇지 않게 밥 먹고 있는 동해를 훑던 영운이 제 성질에 못이긴 듯 일어난다. 될 수만 있다면 다 엎어버리고 싶은 영운이었다. 하지만 정작 시비를 건 동해는 낄낄대며 성민에게 장난만 친다.
어쭈? 너 오늘 잘 걸렸다. 위협적으로 목을 꺾으며 영운이 말했다.

“이동해. 너 오늘 나한테 죽고싶지?”

그 말에 동해가 물고있던 숟가락을 탁 소리나게 밥상에 올려놓고 일어섰다. 왜 그래…하며 성민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올려다 보았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냉해졌다.

“내가 왜?”

단단한 눈빛의 동해가 영운과 대치했다. 싸늘한 영운의 눈이 동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영운의 화를 더 북돋았다.

“내가 왜? 하! 그래서 묻잖아. 죽고싶지?”

“형이면 다야? 물 마시고 싶음 알아서 떠 마시라고.”

형이면 다야? 영운의 눈썹이 올라갔다. 별일도 아니고 여태까지 당연시해온 일이었다. 괜히 시비거는 동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영운이었다. 그러다 옆에 앉아 걱정스레 바라보는 성민에게로 시선이 갔다. 하, 그런거였어?
영운은 코 웃음을 한번 치더니 앉아 있는 성민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성민. 너 이리 와봐.”

난데 없는 호명에 놀란 성민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잘 안떼지는 발걸음을 영운에게로 옮기는데.

“가지마.”

그 앞을 동해가 막아섰다. 헉.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멤버들의 눈이 더욱 커졌다.

“가려면 형이 오던가. 괜한 사람 부르지마.”

“이게 진짜.”

영운이 주먹을 단단하게 만들어 한대 칠 기세로 들자 정수가 후다닥 일어나서 그 주먹을 잡았다.

“이동해. 너 빨리 형한테 사과해.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형은 상관말고 빠져.”

동해가 정수의 어깨를 잡곤 거칠게 밀어냈다. 덕분에 정수는 거실 한 구석에 널부러졌다. 그 모습을 본 영운이 기어이 꼭지가 돌고 말았다.

“진짜 이 새끼가. 디질라고 환장했지?”

“어. 나 환장했거든? 근데 성민이는 안돼.”

그 말에 영운이 뒤에 안절부절 못하며 서있는 성민의 팔목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영운은 성민을 벽에 거칠게 잡아 밀었다. 툭-하고 벽이 울렸다. 윽…. 그 충격으로 성민이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너 뭐야? 너 이동해랑 사겨? 접땐 최시원이더니 이제 시원이 없으니까 대리만족인거야?”

영운이 성민의 귓가에 대곤 낮게 빈정댔다. 김영운은 잔인한 남자였다. 거칠게 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를 제대로 잡힌 성민이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성민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하지만 영운은 멈추지 않았다.

“너 하나 때문에 내가 이런 취급 받아야되? 새파랗게 어린….”

그때였다. 동해가 영운의 얼굴에 제대로 펀치를 날린것은. 퍽 소리가 나며 영운이 나가 떨어졌다. 해방된 성민은 벽을 타고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전혀 예상못한 공격이라 영운이 조소를 흘리며 얼얼해진 뺨을 붙잡고 일어섰다. 니가 진짜 나랑 해보자는 거지? 영운은 동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씨발.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영운이 주먹을 꽉 쥐며 단단하게 만들었다. 앞에 있는 동해가 긴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손에 땀이 들어갔다. 영운의 주먹이 천천히 공중으로 올라갔다. 순간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그대로 앞으로 돌격했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먹에 단단한 아픔이 느껴진다. 제대로 얼굴을 가격했다. 영운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동해는 너무도 멀쩡해 보였다. 그런 동해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시선이 밑으로 향한다.

“성민아 괜찮아---?!!!”

영운은 당황했다. 밑에는 동해대신 성민이 쓰러져 있었다. 영운이 주먹을 던졌을 때 몸을 던져 앞으로 끼어든 성민이 대신에 맞은 것이었다. 성민의 코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팔을 잡는 동해를 뿌리치곤 성민은 그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바닥에 붉은 원이 뚝뚝 떨어져 흔적을 만들었다.

동해는 그대로 영운에게 덤벼들었다.

“씨발. 지금 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어?”

분노에 다다른 동해의 울부짖음에 당황한 멤버들이 일단 동해를 말리고 봤다. 사내새끼가 코피 한번 터졌다고 저 모양인 게 멤버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따라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듯 성민을 챙기는 동해였다. 이상했지만 우선은 동해의 팔다리에 달아붙어 동해를 제지했다. 하지만 사람이 화가나면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건지 자신의 팔을 붙잡는 멤버들을 거칠게 뿌리치곤 동해는 영운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 붙였다.

“씨발. 개새끼야.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고----!!!”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영운은 여전히 빈정대는 투였다. 씨발, 이성민 피나면 안되는데…. 동해의 머릿속에선 그저 성민의 코에서 뚝뚝 떨어지던 피만 계속해서 리와인드 되고 있었다. 피가 안 멈춰서 병원에 간 것이라고 했다. 계속 피가나면 위험하다 했다. 암 말기라 했다. 무엇보다 곧 죽는다고 했다. 동해는 크윽…. 울부짖으며 화장실 문앞으로 갔다. 그리곤 미친 사람처럼 문을 두들겨 댔다.

“성민아…!! 성민아 나와봐.”

하지만 화장실안에 있는 성민은 아무 대답이 없다. 미친 사람처럼 문을 두드리는 동해를 보고 그제서야 사태파악한 멤버들이 심각한 얼굴로 다가왔다. 혁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는거지?”

“…”

“그치? 성민이한테 무슨 일 있는거지?”

동해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방바닥에 주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넋나간 사람처럼 앉아있는 동해의 멱살을 잡은 혁재가 거칠게 물었다.

“씨발. 무슨 일이야. 당장 말해.”

한대 칠 기세였다. 혁재는 흥분해있었다. 순식간에 숙소는 공황상태가 되었다. 혁재는 불안했다. 그래 내가 잘 못 본 것이 아니었다. 어제 분명히 성민은 울고 들어왔다. 그리곤 저에게 무언가를 숨겼다. 확실했다. 이제 동해는 완전히 체념하고 있었다. 혁재는 그런 동해를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일어섰다. 그리곤 화장실 문을 두드리려 하는데

달칵-

그토록 기다렸던 문이 열렸다. 그 작은 소리에 동해가 후다닥 일어섰다. 멤버들이 화장실 문 앞으로 몰려왔다. 그리곤 다들 하나같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삐용- 삐용-. 멤버들의 머릿속에 사이렌이 어지럽게 울려퍼졌다.

성민은 문간에 우뚝하니 서 있었다. 흰 셔츠가 붉게 물들고 덜덜 떨리고 있는 하얀 손이 붉게 물들었다. 그 피 묻은 손을 멍하니 쳐다보던 성민이 고개를 들었다. 입 주변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아직까지도 코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턱 밑으로 방울방울 맺힌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에 붉은 원을 그렸다. 그런 끔찍한 모습을 하곤 성민이 흔들리는 눈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나…나, 피가 안 멈춰.”


이건 틀림없는 적신호였다.

 

 

 

 

제 3화


애인(哀人)

 

 


병원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성민은 천사 같았다. 영운은 아무 말 없이 고아한 성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얇은 병원복 소매 사이로 나온 마른 손등을 비껴질러 링거가 아프게 꽂혀있다. 똑똑. 링거액이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영운은 이 상황이 지독하리만치 괴로워 차라리 병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화장실 앞에서 검붉은 피를 뚝뚝 흘리던 성민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당황해 굳어버린 멤버들 사이로 동해가 날쌔게 성민을 받아냈다. 그리곤 으스러지듯 제 품에 성민을 안고 엉엉 울었다. 일순간 하얗게 질린 혁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동해는 그저 한 단어만 계속해서 읊조렸다.

암. 울음소리 같은 작은 소리를 토해내자 멤버들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남의 얘기인양 웃고 떠들었던 그 단어가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신이 번쩍이는 도끼날을 들고 눈앞에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것이 너무 소름끼쳐서 다들 시간이 멈춘 것 마냥 그대로 멈춰있었다.


그 끔찍한 순간이 천천히 되풀이되 머리를 감싸쥐는 손께가 부들부들 떨린다. ‘내가 그랬다. 내가 이성민을 다치게 했다.’ 온몸을 엄습하는 죄책감에 눈가가 시큰거려온다. ‘바보같은 녀석. 아프면 아프다고 할 것이지.’ 괜한 화살이 성민에게로 쏘아진다. 마음속에서 두개의 의견이 대립한다. 무거운 중압감과 더러운 변명. 하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이어서 더럽다는 걸 알면서도 변명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영운은 고개를 들어 성민을 쳐다보았다. 통통하게 살집이 잡히던 그의 볼이 어느새 쏙 들어갈만큼 홀쭉해져있다. 그 동안 다이어트를 하는 줄만 알았다. 몸속에 이런 병을 키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자신이다. 그 동안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니, 혼자서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아픈 불면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바보 같은 놈.”


어제 홀로 외롭게 줄넘기를 하고 있던 성민이 떠오른다. 왜 울지않냐는 저의 말에 그는 울 수 없다고 답했었다. 이런 의미였다면…이런 의미인줄 알았더라면 녀석을 혼자 두지 않았을터인디. 가슴 한구석이 저리다. 끝도 없는 자책은 영운을 점점 무너뜨렸다. 영운은 무릎위에 올려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꽉 맞물린 주먹이 저릿하게 떨려온다. 영운은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름처럼 강인해져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뭉쳐진 주먹이 제 힘을 주체 못하고 어긋나며 풀어진다. 그가 속삭이듯 내뱉는다.


“…나 너 많이 싫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왜…어째서.

영운은 천천히 손을 들어 성민의 얼굴께로 가져가본다. 하얀 자작나무 같은 얼굴이 너무 가련해보였다. 조심스레 다가가던 손이 고운 이마 앞에서 그대로 멈추었다. 가슴이 쨍하고 울린다.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공중에 멈춰있던 손이 오그라들며 제 자리로 돌아온다. 아련한 영운의 눈빛이 금세 검게 퇴색되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때 맞춰 정수가 예의바르게 말하며 병실 안으로 들어온다. 병원에는 정수와, 영운, 매니저 그리고 성민뿐이었다. 혁재와 동해가 울며불며 난리를 쳤지만 활동을 접은지 이제 이틀이었다. 병원까지 따라오고 싶은 멤버들의 마음은 잘 알았지만 괜히 몰려왔다 팬들의 눈에라도 띄면 그러다 혹시라도 기자의 눈에 띄면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나름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한 매니저가 정수와 영운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고 가장 믿음직한 희철은 숙소에 남아 혹시 모를 멤버들의 이탈을 방지하기로 했다.


“의사선생님이 뭐래?”


영운이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정수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무서웠다.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수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곧 대답한다.


“…괜찮을거래.”


휴…. 영운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괜찮다는 의미가 어떤건지는 잘 알고있다. 평소의 그 괜찮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현재만 괜찮다는 것 뿐.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라는 것을 정수도 영운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매니저형은?”

“아직…의사선생님이랑 면담중이야.”


설풋. 입가에 슬픈 미소를 띄우며 정수가 답한다.


“나 성민이 옷가지랑 이것저것 챙겨와야해서 숙소 다녀와야 하는데 너도 같이 갈래?”


대답대신 영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 말이 없는 영운을 바라보던 정수가 어렵게 발걸음을 떼며 물었다.


“너 뭐 필요한거 있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아무 응답이 없다. 정수는 조심히 병실 문을 열었다. 까치발을 하곤 최대한 조용하게 나가려는데 몸이 반쯤 빠져나왔을까,


“형.”


뒤에서 묵직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곤 정수가 뒤를 돌아본다. 정수의 시선과 그의 시선이 맞닿는다. 그 사이로 슬픈 미소를 띄며 영운이 말한다.


“…나 줄넘기 좀 가져다주라.”

 

 


-상해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2시 30분 발 101편이 잠시 후 인천공항에 도착합니다. 승객….

낭랑한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들린다. 시원은 반사적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2시 20분. 예정보다 일정이 하루 늦춰져서 최대한 빠른 비행기편을 잡아타고 온 시원이었다.

흰색에 연한 하늘빛 스트라이프가 들어가있는 와이셔츠를 입은 시원은 누구보다 멋졌다. 그 셔츠 가슴팍에 꽂아둔 선그라스를 쓴 시원이 잘생긴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지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온 것이다.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성민 얼굴에 시원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그였다. 미리 한국에 있는 꽃집에 연락해 성민을 닮은 백장미도 한 아름 준비했다. 그가 싫다하면 소원을 빌미로 해서 억지로라도 사귈 계획이었다. 그 만큼 시원은 절실했다. 3년을 바라본 짝사랑이 오늘에서야 빛을 보는구나. 시원은 설레었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잠시 졸던 영운은 이불이 스치는 소리에 번뜩 눈이 떠졌다. 성민의 손가락이 미세하지만 미약하게나마 움직이고 있었다.


“성민아! 정신이 들어?”


침대위로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한 영운이 성민의 손을 꼭 부여잡으며 다급히 외쳤다. 그 소리에 성민이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평생 이 눈이 안 떠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영운은 큰 시름을 덜어낸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성민이 살포시 미소 지었다. 순간 제 행동을 깨달은 영운의 얼굴이 붉어졌다.


“조금만 기다려. 주치의 불러올게.”


민망한 듯 급히 손을 떼며 일어나는 영운이다. 그런 영운의 옷소매를 성민이 잡는다. 당기는 느낌에 뒤로 돌아 보니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싫다한다. 일단은 성민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앉자 뭐가 그리 좋은지 성민이 입에 웃음을 한가득 담고 웃는다. 영운은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너 이러다가 주치의 오면 혼난다.”


그 말에도 성민은 그저 웃고만 있다. 아우씨. 환장하겠네. 아픈 애를 줘 팰수도 없고…. 영운은 답답한지 뒷머리만 마구 헝큰다. 그런 영운의 손을 성민이 잡아끌었다. 저도 모르게 성민의 두 손에 들어차버렸다. 영운이 당황해서 빼보려 하지만 잔뜩 품에 안고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고 포기한 영운이 성민과 눈을 맞추고 진지하게 물었다.


“너 몸은 좀 괜찮….”


하지만 금세 성민의 검지 손가락에 틀어 막힌다. 그의 손가락이 영운의 입술 앞에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신호를 따라서 영운이 조용해진다. 성민은 그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영운의 손바닥위에 조심스레 써 나간다. 기분 좋은 간지럼에 미묘한 기분이 든다. 손바닥을 자분거리던 검지 손가락이 사라지고 자랑스레 고개를 든 성민이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의 영운을 보고는 심퉁 맞은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이 샘난 아가마냥 귀여워 보였다.

다시 한번 영운의 눈과 마주친 성민이 손바닥을 한번 쳐다보며 잘 보라 눈으로 이야기한다.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그가 손가락에 집중한다. 하얗고 작은 손가락이 제 손바닥 위를 자유롭게 헤엄친다. 하얀 물고기가 한 마리가 넓은 바다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 같다. 아래로 직선을 그었다가 옆으로 그었다가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점을 찍었다가.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영운이 경악스런 표정으로 성민을 쳐다본다.

[형 저 예쁘죠?]

그 다운 말이었다. 성민은 여전히 예쁘게 웃고있다. 입술은 메마르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고 게다가 코에는 붉그죽죽하게 멍까지 들었지만 그 모습이 진짜로 예쁘게만 느껴져서 영운은 괜히 심통을 부린다.


“너 병원 입원하더니 정신이 어떻….”


그 말에 또 다시 성민이 신호를 보낸다. 솟아오르는 닭살을 매만지며 영운이 조용해졌다. 이번엔 하얀 물고기가 조금 더 빨리 바다속을 헤엄치기 시작한다.

[형…나한테 미안하죠?]

그 말에 영운의 고개가 아래로 꺾어졌다. 금세 잊고 있었다. 때늦은 미안함이 발끝부터 스물스물 기어 올라왔다. 성민 앞에서 자신은 죄인이었다. 그런 영운의 손을 성민이 한번 꼭 쥐어 잡았다. 영운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괜찮다 웃어준다. 마냥 착한 녀석. 물고기가 다시 헤엄친다.

[형. 내 소원 하나만 들어줄래요?]

머릿속으로 성민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영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꼭 들어주겠다고 약속해요.]

순간 성민이 눈을 맞춰왔다. 영운은 그 눈빛에 응하며 순순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조금은 얼굴이 빨개진 성민이었다. 창문 밖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하얀 빛에 반사된 성민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꼭 천사가 있으면 이런 모습일거라고 생각한 영운이었다. 하얀 물고기가 쫑쫑쫑 제 손바닥과 입맞추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 게이트를 빠져나온 시원이었다. 천천히 좀 가라고 채근하는 매니저의 말을 다 무시하고 달리다시피 공항을 빠져나왔다.

날르듯 차에 탄 시원이 바로 숙소로 향한다. 운전대를 잡은 매니저가 사람 좋게 묻는다.


“원. 녀석도 참. 뭐 그리 급해.”

“미안 형. 급한 일이 있어서.”


정말로 급해보이는 시원의 얼굴에 매니저가 미소 지었다. 그의 얼굴엔 설레임과 흥분이 복합적으로 뒤섞여있었다. 손가락을 가만있지 못하고 답지 않게 산만해 하는 그의 모습에 매니저가 미소지었다. 녀석이 아무리 어른스럽다해도 아직은 어린 애였다. 옆에 앉은 시원을 힐끔 본 매니저가 숙소 쪽으로 부드럽게 좌회전했다. 때마침 매니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정수였다. 운전 중인 매니저를 대신해 시원이 핸드폰을 받았다. 플립을 열고 귀에 대자마자 정수의 따가운 목소리가 귓등을 때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시원이냐? 이 자식아! 너 뭐하느라 핸드폰을 여지껏 꺼놨어!]

“아…. 그거야 해외로밍을 안해서. 마침 비행기 안이었고. 그런데 왜?”

[잔말 말고 당장 여의도 병원으로 와.]

"…왜?"


병원이란 말에 심장이 두근대는 시원이다. 괜히 불안해져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성민이 쓰러졌어.]


쿵…. 심장이 떨어진다.


[…자세한 건 병원와서 얘기해줄테니까…. 여보세요? 최시원! 듣고있어?]


전혀 듣고 싶지 않았던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 말에 핸드폰까지 놓쳐버린 시원이다. 놀란 매니저가 당황해서 쳐다본다. 시원은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매니저에게 소리친다.


“형-!! 빨리-!! 여의도 병원--!!! 성민이 쓰러졌대.”

 


영운의 넓은 손바닥을 잡은 성민은 망설였다.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따뜻하지만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차가운 이 남자. 이 남자에게 과연 제 맘을 선뜻 고백해도 될까? 짧은 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를 잡고 싶었다. 욕심이 났다. 손으로 움켜잡으면 자꾸자꾸 틈으로 새어나가는 모래알처럼 영운은 자꾸 자신을 벗어났다. 컵 안의 모래알처럼 완연히 그를 담고 싶었다.

하지만 불현듯 정수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가 중간에서 이러면 상처받는 건 정수와 영운일 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머릿속을 섬광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제가 보기에 영운은 분명히 정수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조그만 이기심이 이젠 양심까지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한참의 망설임 끝에 성민은 결정했다.


[형아. 일주일동안만 내 애인해줘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지고 쓴 손바닥을 쳐다보던 영운이 시선을 옮겨 저를 쳐다 보는게 느껴진다. 웃는건지 화난건지 모를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성민은 조금 더 힘을 줘 꽉꽉 눌러 쓴다.


[내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요.]


다시 한번


[치사하게 이럴거에요?]


하지만 여전히 그는 요지부동이다.
성민은 최후의 보루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내 소원 안 들어주면 나 평생 말 안할거야.]


두근두근. 심장이 저려온다. 제 글에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그가 멍하게 손을 보더니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려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는다.


“너 내가 누구 좋아하는지 알어?”


응. 성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말로해 임마.”

“정수형이요.”


정곡을 훅 찌르는 성민의 말에도 영운은 아무런 미동도 없다. 오히려 자만하게 반문한다.


“근데 알면서 왜?”

“내가 형 좋아하니까요.”

“난 너 안 좋은데?”

“상관없어요. 내가 형 좋아하니까.”

“내가 왜 좋은데?”

“그냥 좋으니까요.”

“언제부터 좋아했는데?”

“우리 처음 녹음 했을 때부터요.”

“왜?”


당찬 성민의 말에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마지막 이유가 쬐끔 궁금한 건 사실이긴 하다. 양 볼이 발갛게 물든 성민이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게 눈에 보인다. 영운은 왠지 그 이유가 듣고 싶어졌다.


“그 이야기 해주면 니 소원 들어줄게.”


그 말에 성민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영운을 살피더니 진짜요? 하고 묻는다. 눈썹을 까딱하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니 부끄러워하면서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저…그니까요.”

 

 


그 날은 첫 녹음이 있던 날이었다. 사람 수가 많은 관계로 부스에 반씩 쪼개서 들어가기로 멤버들끼리 합의를 봤다. 그러나 마이크는 단 세대뿐이었고 사람 수는 여섯 명이라, 성민은 마이크의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마이크와 마이크 사이 그 어중간한 공간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노래하자니 녹음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이성민. 너 똑바로 노래 못해--!?”

“죄…죄송합니다.”
 
성민 때문에 녹음이 지연되자 화가 난 프로듀서가 헤드폰까지 내팽개치며 정말 무섭도록 화를 냈다. 성민은 너무도 속상해 울먹이고 말았다. 그러자 그런 성민의 허리춤을 누군가 홱 잡아당겼다.

“누구….”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영운이었다.

“병신이냐? 마이크에다 대고 노래를 불러야지.”

그가 제 허리에 손을 감고 말하고 있었다. 엉겁결에 영운의 품 안으로 들어온 성민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등과 가슴사이로 맞닿은 틈으로 영운의 심장소리가 익숙한 비트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가 노래할 때 마다 살짝살짝 스치는 입김이 너무나도 따뜻하다 생각했다.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가 너무도 포근했다. 다행히도 그 날 그 이후로 별탈없이 녹음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늘 성민의 자리는 영운의 앞자리였다. 그래. 그 때부터인 것 같다. 저가 영운을 마음 깊숙이 담은 때가. 지금도 눈만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그 날의 풍경에 성민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얼굴이 잘익은 토마토가 되버린 성민이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영운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 이야기였다. 그저 성민의 덜 말라서 축축한 머리와 달콤한 샴푸향. 그 향기만이 떠올랐다. 꽤 나쁘지 않은 기억에 수긍하던 영운이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이거 하나만 더 물어보자.”

“뭐요?”


또 무슨 말이 나올까 긴장하는 성민이다. 영운은 망설인다.


“…왜 하필 일주일이냐?”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한달 동안 애인하구 싶어 질까봐….”


별 일 아니라는 듯 성민의 시선이 하얀 이불보로 향한다. 그 이불만큼 하얀 손가락으로 꼼지락거리던 성민의 목소리가 촉촉이 젖어 들어간다.


“그러다 한달이 지나면 두 달동안 애인하구 싶어지구…. 그러다 보면 세 달이되구, 네 달이되구…. 자꾸자꾸 욕심은 늘거구…. 그러다보면 평생 동안 같이 살고 싶어질거구….”


끝내 말을 못 잇는 성민이다. 영운이 되물었다.


“그럼 평생 같이 살아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 말에 성민이 물기 어린 눈으로 웃는다.


“이젠…이젠 그럴 수 없으니까….”


그 미소에 순간 영운의 가슴이 저려왔다. 그래. 성민은 암환자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암환자. 저 미소를 앞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려왔다. 영운은 말대신 그저 성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영운의 마음을 아는지 성민이 눈을 잔뜩 휘어뜨려 환히 웃는다.


“그럼 형 이제 내 애인인거에요?”

“그래. 이 자식아.”


그 말에 마주보고 행복하게 웃어 버린다. 영운이 성민의 귓가에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작게 속삭인다. ‘그 대신 단 일주일만이야.’ 장난스런 그 말투에 그 속삭임을 말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자신 앞에 찾아온 작은 행복에 웃을 수 있는 한 맘껏 웃어본다.

해맑게 웃던 성민의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고인다. 그 물기 어린 눈으로 성민이 웃었다.

형아…. 그런데…우리 디게 슬프다? 그치?

차마 가슴 속 한마디만은 하지 못했다.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럼 형 이제 내 애인인거에요?

너무나 행복한 듯 보였던 성민의 목소리

-그래. 이 자식아.

덩달아 행복해 보였던 영운의 목소리.

둘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여 혼란을 만들어낸다. 머릿속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데 가슴은 더 아리다. 심장을 맨 손으로 움켜쥐는 듯 저릿저릿한 고통에 시원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병실안으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도망쳐버리듯 나와버렸다. 병실안의 둘의 모습에 울화통이 터졌지만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열받지만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무엇보다 성민이 형이 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그래서 주먹을 꽉 쥐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자신이었다.

저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조금 늦게 들어갈 걸. 차라리 중국에서 늦게 올걸. 후회가 가슴 한켠 가득 쌓인다. 성민을 위해 비워두었던 가슴 한켠에 후회만 쌓여간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잔인하게도 맑은 하늘이 시원을 반긴다. 제길스럽게도 하늘이 너무 푸르러서 괜히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힌다.


“씨발. 나란 놈이 사랑은 무슨.”


하늘이 시리게도 푸르다.

 

 

 

 

 

 

 

제 4화

취중진담

 

 

숙소는 엉망진창이었다. 희철은 화장실 앞 거실을 걸레로 빡빡 문대고 있었다. 집안일이라곤 해본적도 없을 뿐더러 평소엔 시키지 않아도 성민이 늘 해왔던 일이라 마냥 힘들고 어렵기만하다. 또 다시 떠오른 성민 생각에 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희철이지만 씩씩하게 훔쳐내곤 다시 바닥을 닦는다. 이렇게 힘든일인줄 알았으면 내가 하겠다고 할걸. 늦은 후회만 층층히 쌓여간다.

베란다로 눈을 돌리니 종운이 회색 연기를 흩날리며 그림처럼 서 있다. 성민이 쓰러졌을 때 바로 119에 신고하곤 그 후로 계속해서 담배만 뻐끔뻐끔 펴대는 종운이었다. 지금 몇 갑째인지 감도 잡을 수 없을 만큼. 하긴…저 녀석도 겉으론 내색 안 해도 속은 타들어가고 있을테니. 희철은 아파오는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섰다. 그리곤 베란다 다가가 유리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 소리에 종운이 뒤를 돌아본다. 희철은 문을 빼꼼히 열고 말했다.


“들어와. 담배 그만피고.”

“…”


종운은 아무 말 없이 들어온다. 돼지우리같던 집안 꼴이 이제야 조금은 사람다워졌다. 피식 웃던 종운이 거실바닥으로 시선을 둔다. 거실바닥에는 동해와 혁재가 새삼 모르고 잠이 들어있다. 잠이 든건지 하도 울어서 실신해 버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119가 오자 죽어도 못 놓는다며 성민을 껴안고 놔주지 않는 동해와 그러다 죽는다며 얼른 병원가자는 혁재가 대판 싸웠었다. 그러다 결국엔 서로 부둥켜안고 미친 듯 울더니 어느새 거실 바닥에 쓰러져 쥐 죽은 듯 자고있다. 종운은 안쓰러운 동생들을 지켜보다가 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성민은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아무 일 없어야 한다.


“근데 니가 왠일로 방청소를 다하냐?”


종운이 씁쓸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희철의 손에 들린 걸레가 성민의 부재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다 알면서도 괜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집안 곳곳 시선 두는 데마다 성민의 흔적이 너무 많았다. 희철은 억울하다는 듯이 종운을 쳐다본다. 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뱉는다.


“넌 여왕님이잖아.”


그 말에 희철이 종운의 어깨를 살짝 치며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종운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를 따라 희철이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한참을 말없이 고개만 무릎사이에 파묻은 희철이 고개를 들며 말한다.


“술 한잔 할래?”

“됐다. 우리까지 망가지면 얘네 대책 안선다.”


쳇, 희철이 입술을 삐죽댔다. 온 집안에 깔린 무거운 공기가 자신의 가슴을 압박하는 것 같다. 으씨! 갑자기 벌떡 일어선 희철이 냉장고로가 시원한 캔맥주 두개를 꺼내온다. 다시 쪼그리고 앉은 희철이 옆으로 눈을 흘긴다.


“씹새야. 넌 이거 손대면 죽는다.”


종운은 아무 말 없이 물방울이 송송 맺힌 캔맥주에 손을 뻗는다. 희철이 그 손을 가볍게 찰싹 친다.


“씹새. 폼은 지 혼자 다 잡더니.”

“뭐, 동생들만 망가지란 법 있냐?”


그러더니 캔을 탁 하고 딴다. 톡 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또 다시 침묵. 아무 말 없이 맥주만 마시던 희철이 캬아- 하는 정체모를 의성어와 함께 약간은 풀어진 눈으로 종운을 쳐다본다.


“너 아까 나한테 왠 방청소냐고 했지?”


종운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맥주만 마신다. 맥주캔을 가만 응시하던 희철이 조심스레 묻는다.


“너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이유가 뭔지 알아?”

“글쎄…. 다신 볼 수 없으니까 아닌가?”


약간은 자조섞인 목소리로 대답한 종운이었다. 희철은 곧게 세운 무릎을 더 꼭 껴안았다. 편안하지만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는다.


“그건 남은 사람들이 떠난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


그 말에 종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희철의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욱신욱신 거린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던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이제야 조금씩 실감이 난다.


“이제 성민이한테 뭔가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잖아.”


씨발. 미치게도. 희철은 눈을 거칠게 비빈다. 해 주고 싶은 일은 죽도록 많은데 그걸 허락해줄 시간이 짧다. 너무도 아이러니한 상황에 입가가 자꾸 올라간다.


“근데 빌어먹게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건 이따위 걸레질밖에 없어서….”


말을 끝맺지 못한 희철이 무릎사이로 얼굴을 묻는다. 그의 어깨가 조금씩 떨려온다. 그런 희철의 뒤통수를 종운이 커다란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빙신. 누가 시간이 없다 그러디?”


그 말에 잔잔하게 떨려오던 어깨의 미동이 멈춘다.


“성민이 안 죽어. 아니, 못 죽어.”


종운이 단호히 말한다. 그의 손 안에서 알루미늄캔이 볼품없이 찌그러진다.


“걔가 나한테 줬던 거 다 갚기 전까진 아무데도 못가지. 설령 저승사자랑 맞짱뜨는 한이 있더라도.”


진지한 목소리에 장난기를 얹어 종운이 그리 말했다. 너란 새끼는…. 희철이 쓰게 웅얼거리며 엷게 웃는다. 멈추었던 어깨의 떨림이 조금 더 격해진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말인데,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인데, 묘하게 안심이 된다. 희철의 발등으로 뜨거운 물 한방울이 툭 떨어지며 퍼져간다.

빙신. 낮은 목소리만을 남겨둔 채 종운이 일어선다. 뚜벅거리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간다. 희철은 손에 든 맥주캔을 흔들어 보았다. 찰랑. 갈색의 탄산수가 요동쳐 부�힌다. 희철은 남은 맥주를 한 숨에 들이켰다. 맥주를 털어넣으려 고개를 꺾자 얼굴선을 따라 뜨거운 눈물이 미끄러져 내린다.

술이 지독히도 쓰다.


 

 

 

 

 


“성민아 형 왔다.”


병실의 문을 밀며 정수가 얼굴을 드러냈다. 양 손 가득 무거운 짐이 들려있었다. 정수의 등장에 성민에게서 화들짝 떨어진 영운이 그 모습을 보고 잽싸게 달려가 짐을 받았다. 그런 영운을 멍하니 쳐다보던 성민이 쓰게 웃었다. 이런 모습을 알면서 시작한 연애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자니 너무나도 괴로웠다. 눈앞의 두 사람은 같이 서있는 모습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마지막을 알고 시작한 연애란걸 알면서도 가슴을 도려내듯 아파왔다. 순정만화 속 악역이 된 것 같아 괴로웠다.


“성민아. 형이 너 주려고 전복죽 사왔어.”

“그냥 오셔도 되는데….”


차라리 정수를 미워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불행히도 눈앞의 정수는 너무도 착했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을 만큼.

침대에 달려있는 작은 식탁을 끌어올린 정수가 그 위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전복죽과 숟가락을 올려놓는다. “어서 먹어.” 그가 눈웃음을 치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차마 말로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성민의 머리를 정수가 따스히 쓰다듬는다.


“형도 드실래요?”


성민이 숟가락을 건네며 물었다. 정수는 손사래를 치며 밥 먹으러 가면 된다고 했고, 영운은 대답대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정수가 들어오고 나선 그의 눈동자 안에 담기는 것은 오로지 정수뿐이었다. 눈앞에서 많이 먹으라며 웃고 있는 정수와 그런 정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영운의 옆모습.

윽.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사한 배꽃같은 정수와 그 옆의 못난 제 모습에 성민은 눈물이 차 올라왔다. 가슴에서부터 밀어쳐온 눈물이 눈가에 짜게 스며들었다. 왜,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왜, 그는 정수를 사랑하는 것일까? 크게 요동치는 심장이 가슴안에서 절절히 외친다. 그 절규가 제일먼저 자신에게 돌아와 상처를 남긴다. 닥치는대로 저주를 퍼 붓고 싶다. 그리고 그 대상은 고통스럽게도 제 자신이다.

더는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더니 타이밍 좋게 눈물이 투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성민은 숟가락을 들어 죽을 한 숟갈 떴다. 숟가락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억지로 입에 넣었다. 눈물이 뒤섞인 죽은 너무 짜고 아팠다. 목에서부터 울컥 올라오는 뭉어리를 막으려 계속해서 죽을 밀어넣었다. 그 모습에 놀란 정수가 성민의 손을 홱 부여잡는다.


“이렇게 급하게 먹으면…세상에, 성민아 너 왜 울어?”


정수가 놀라서 묻는다. 그 말에 그가 저에게 시선을 주는게 느껴진다. 성민은 소매로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토끼처럼 눈이 발개져있었다.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는 정수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진다. 성민은 얼른 다시 고개를 숙인다.


“…죽이 맛있어서요.”


성민은 쓰린 마음을 감추려 씩씩하게 숟가락질을 했다. 온 몸의 수분이란 수분은 다 나오려는지 눈물은 끝없이 솟아나왔다. 몸이 움츠려들까 걱정될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인 성민 옆에 하얀 손수건 하나가 홱 날아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영운이었다.


“눈물이나 닦고 먹어.”


그가 말했다. 아무 감정 없는 그의 말에 서러워졌다. 눈을 가리는 손수건에서 그의 향내가 났다. 차라리 냉정하게 대해주지. 제 심장을 깊이 찌른 가시를 스스로 꺾은 성민이었다. 그 상처를 자꾸 영운이 끄집어낸다. 종잡을 수 없는 영운의 마음에 상처가 곪아 터져간다. 단 둘이 있을 때면 가시를 조금씩 뽑아주고 곧 다시 집어 넣어버리는 잔인한 남자 때문에 성민의 심장이 타들어간다.


“성민아. 어? 정수하고 영운이도 와 있었네.”


매니저가 반갑게 웃으며 들어왔다. 하지만 표정이 썩 밝진 않았다. 그의 뒤로 성민의 주치의가 살짝 인사한다. 주치의를 본 정수가 잰걸음에 가 의사의 손을 꼭 부여잡고 묻는다.


“선생님. 우리 성민이 상태 어떤가요?”


그 물음에 의사가 살짝 눈치를 본다. 그러다 성민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저…일단 나가서.” 성민의 눈을 피하며 정수에게 말하자 성민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제가 나갔다 올게요. 안 그래도 산책 좀 하고 싶었는데….”


성민이 살짝 웃으며 말하자 매니저가 서둘러 허둥지둥 둘러댄다.


“그래 줄래? 그럼 나가는 김에 형 차에서 서류봉투 하나만 꺼내다 줘.”


옆에서 아픈애를 어딜 내보내냐며 펄펄뛰는 정수의 입을 틀어막은 매니저가 어색히 웃으며 “그럼 부탁해. 성민아.” 한다. 성민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그대로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복도 끝 화장실로 미친 듯 달렸다. 병실안에서 참고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봇물 터지듯 터진다. 제일 끝 빈칸에 들어서자마자 방금 먹었던 죽을 다시 게워낸다. 서러움이 독이 되어 온 몸에 퍼진다. 욱…. 속이 올라올때마다 그의 잔인한 눈빛이 떠오른다. 모든 것을 다 잊으려는 듯 변기통을 붙잡고 한참을 게워내던 성민이 물을 내리고 힘없이 벽에 기대어 무너진다.

-형의 진심이 뭔지 알고 싶어.

찔린 심장이 너무 아프다.

 

 

 

“일단 이 사진을 보시면 이 검은 부분 보이시죠? 이게 바로 암세포입니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형광판에 필름을 들며 의사가 말했다. 작은 주머니같이 볼록한 성민의 하얀 위에 화산 같은 검은 구멍이 뻥뻥 뚫려있다. 검은 어둠이 성민의 위를 먹어 치워가고 있었다. 뇌를 관통하는 충격에 정수와 영운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실제로 목격하니 충격은 배가 된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의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항암제를 투여했지만 다른 암환자들처럼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구토를 하는 증상이 없었어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긍정의 말이 나오길 원하지만 의사의 표정은 심각하다.


“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이 그 사실에 좋아하지만 의사입장에선 전혀 아니에요. 환자가 치료제를 쓰고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환자의 몸 안에서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니까요.”


그 말에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그럼 치료는.”

“지금 상황으로선 전혀 소용없다는 이야기죠. 이런 상황에선 항암치료를 중단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그의 말에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정이다. 항암치료중단은 결국 성민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주 경미하긴 했지만 치료제쇼크가 나타났어요. 백혈구수치도 위험수준이고 암이 벌써 다른 장기에도 전이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쇼크가 더 위험합니다.”


의사가 단호히 말한다. 영운은 굳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다.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정수가 의사의 옷소매를 붙잡고 꺽꺽 울며 말했다.


“선생님. 수술…수술 있잖아요. 치료제가 안 먹히면 수술하면 되는 거잖아요? 네?”


그런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의사가 내려간 안경을 치켜 올렸다. 그가 한 장의 사진을 더 꺼내들었다. 일반적으로 암세포가 형성될 때에는 대개 두 가지 형태를 가진다. 하나는 종기처럼 엉켜있는 형태고 다른 하나는 꽃가루처럼 분산되어 나타나는 형태이다. 의사의 손에 들린 사진은 잔인하게도 꽃가루처럼 퍼진 암세포였다.

이토록 심할 줄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었다. 도저히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가 된 것 같았다. 좌측으로도 우측으로도 키를 돌릴 수 없는 상황. 그 선택의 기로에 선 영운과 정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의사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땅땅땅. 사형선고가 울려퍼졌다. 말이 안돼는 일이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겨우 몇분만에 판가름이 났다. 더 화나는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분노와 슬픔이 교차되 온 몸을 적셔 내려갔다. 정수는 병실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흐윽, 그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던 영운이 갑자기 다가와 의사의 멱살을 쥐고 벽으로 밀어 붙였다.


“씹새끼야. 넌 사람 죽여놓고 미안하단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


그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영운은 힘줄이 터지듯 손에 힘을 주었다. 의사의 발이 점점 공중으로 들린다. 씨발. 니 까짓게 감히 나를 농락해? 영운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니가 의사라면 최소한 배라도 갈라봐야 하는 거 아니야? 적어도! 니가 의사라면 최소한 환자한테 믿음은 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영운은 거의 울부짖었다. 멱살 쥔 한 손을 풀어 높이 들었다. 공중에 들린 주먹이 분노에 못이겨 부들부들 떨린다. 안경이 흘러내려 반쯤 걸쳐진 초라한 모습의 의사가 구걸하듯 눈을 감았다. 공중에서 지껴내린 주먹은 그대로 귀 옆을 스쳐 벽에 꽂혔다. 벽이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지면서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시멘트 조각이 손에 박혔는지 주먹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그를 칠 순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의사였고 의학엔, 더군다나 생소한 암이라는 것에 문외한인 우리는 정보가 필요했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영운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래. 그럼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그 잘난 입으로 한번 지껄여봐.”


순간 정수의 울음소리가 멈추었다. 의사가 자신감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길어 봤자 2주.”


망설이던 그의 입이 떨어지고 동시에 영운의 손에서 힘이 그대로 풀려나갔다. 바닥으로 쿵-소리를 내며 떨어진 의사는 목을 부여잡고 켁켁 댔다. 하하. 의미 없는 웃음이 영운의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2주라 한다. 게다가 그 앞엔 악몽 같은 전제조건이 또 하나 붙어있다. 길어봤자 2주라한다. 성민이 내일 죽을지 일주일후에 죽을지 그것도 아니라면 오늘 죽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성민이 보인다. 정수는 번쩍 일어나 눈물을 닦곤 어떻게든 부서진 시멘트 부스러기를 의자 밑으로 숨겨보려 애쓴다. 영운은 조용히 피딱지 얹은 주먹을 등 뒤로 감추었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하고 성민이 말한다.


“나 집에 갈래. 형…나 집에 가고 싶어요.”

 

 

 

 

 

그대로 퇴원수속을 밟곤 병원을 나섰다. 성민이 조심스레 차에 올라타고 그 옆을 정수와 영운이 따른다. 차에 탄 성민은 곧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든 성민의 얼굴을 바라보던 정수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울음을 터뜨린다. 우리 성민이 불쌍해서 어떡해. 응? 그 눈물을 조심스레 영운이 닦아준다. 결국 집에 도착할 동안 정수는 영운의 품에 안겨 한 참을 울었다.

영운이 잠든 성민을 업고 집에 들어서자 거실에 심각한 표정으로 모여 앉아 있던 멤버들이 우루루 나온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뭔가 말을 꺼내려하자 정수가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낸다. 영운이 성민을 방안에 눕혀 놓고 나오자 그제서야 말문이 터지기 시작한다.


“뭐야. 왜 병원에서 그냥 와.”


동해였다. 정수는 따질 기운조차 없었다. 그저 고개만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사정이 있었어. 일단 진정하고 얘기해줄게.”

“사정? 무슨 사정? 성민이 죽는 것보다 더 급한 사정이 있어?”


잔뜩 성이 난 그의 어깨를 영운이 조용히 잡는다. 옆으로 시선을 돌린 동해가 그의 손등에 남겨진 피딱지를 본다. 그 모습에 동해는 아무 말도 할 수없었다. 벌써부터 눈이 벌개진 동해를 가엾게 쳐다보던 정수가 혁재를 찾지만 그의 모습이 안 보인다. 그새 성민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나보다. 정수가 영운에게 눈짓하자 영운이 방으로 들어선다. 멤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앞으로 더 끔찍한 사실을 말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진이 빠진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다. 아참! 정수가 동해에게 물었다.


“시원인?”

“최시원?”


하지만 동해는 영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놀란 정수가 재차 물었다.


“시원이 숙소에 안 왔어?”

“무슨 소리야. 오늘 시원이 한국 왔어?”


돌아오는 대답은 오히려 뜬금없는 소리다. 분명히 제가 전화해서 직접 병원이라 알렸다. 하지만 오지않길래 숙소에 간 줄만 알았다. 서울에서 갈 곳이라곤 숙소와 방송국뿐이 없는 시원이었다. 슬슬 걱정이 됐다.


“시원이 진짜 안 왔어?”

“아! 안 왔다니까!”


불안한지 정수가 손톱을 잘근잘근 씹는다. 이 녀석이 어디로 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성민 문제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환장해버릴 지경이다. 대충 시원의 번호를 눌러 통화를 시도해본다. 하지만 긴 신호음이 끝날 때까지도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계속해서 전화를 해 보지만 묵묵부답이다. 그때 기범이 말한다.


“지금 무슨 벨소리 안 들려요?”


그 말에 다들 조용해져 귀를 집중하니 시원의 것인듯한 익숙한 멜로디가 울린다. 하지만 집안이 아니다. 계속해서 벨소리를 따라가던 려욱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형!!”


현관문 옆에는 시원이 기대어 앉아있었다. 핸드폰은 그의 주머니 안에서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중이었다. 술에 취해 맛이가버린 시원을 부축한 려욱이 현관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정수가 화를 내며 다가왔다.


“뭐야. 최시원! 너 여태까지 어디있다…. 너 술마셨니?”


강한 술냄새가 코에 훅 끼쳤다.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신 시원이 실실 웃으면서 들어온다. 난생 처음 보는 시원의 모습에 다들 놀란다. 평소에도 술은 잘 입에 안 대던 그였다. 그저 멤버들이 주는 술을 예의상 한두잔만 받아먹던 그였는데…. 눈이 풀릴 정도로 취해 들어온 시원을 보고 동해가 다가왔다.


“시원아. 너 무슨 일이야. 술도 잘 안마시던 놈이.”

“동해야….”


흐흐 웃으며 그가 동해에게 기댄다. 미끄러지는 시원을 받쳐 든 동해가 비틀거리는 그를 소파에 눕힌다. 여전히 인사불성인 그의 손끝에 청초한 백장미 한 다발이 곱게 들려있다.


“너 어떻게 된거야. 그리고 이건 또 뭐야. 팬한테 받기라도 한거야?”


채근하듯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오히려 쌩뚱맞았다.


“동해야…성민이형 행복하대?”


그 말에 기가 찬 동해였다.


“빙신아. 궁금하면 정신 차리고 상황파악 좀 해.”

“…동해야……성민이형이 진짜 그 사람 좋다 그러디?”


엥? 이게 무슨 소리래. 생전 첨 듣는 소리에 귀가 쫑긋한 멤버들이 시원 곁으로 다가섰다. 그의 목소리에 슬픔이 짙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동해야…성민이형 행복하다 그러디? 응? 그 사람이 잘 해준다고 그러디? 그 사람이… 성민이형 …사랑한다고 그러디? 성민이형이… 우리 성민이형이 진짜로 그 사람 사랑한다고 그러디? …응?”


손등으로 눈을 완전히 가려버린 시원이다. 그 가리워진 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눈물에 당황한 동해가 시원의 어깨를 흔들며 묻는다. 그 사람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에 다들 당황한다. 시원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리기 시작한다.


“형…. 정수형. 그 사람이…그 사람이 형 말고 성민이형이 더 좋대요? 그 사람이 성민이형이랑 사귀어서 좋대요? 네?”


이제는 완전히 흐느낀다. 그 슬픈 고백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저희들이 아는 시원은 술도 모르고 여자도 모르는 그런 순수한 남자였다. 지금 그의 모습으로 봐선 그는 지독하디 지독한 실연을 겪은 듯 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놀랍게도 성민이었다.

흙바닥에서 구르고 왔는지 온통 흙투성이인 시원의 옷에 비해 손에 들린 꽃다발만큼은 눈부시게 희다. 마치 성민의 모습처럼. 온통 시끄러운 사이로 방에 들어갔던 영운이 등장했다.


“무슨 일이야.”


낮은 어조의 목소리가 나자 가만히 흐느끼던 시원이 벌떡 일어선다. 그가 비틀거리며 영운에게 다가간다.


“오늘이 무슨 날이었는지 알아?”


영운이 미간을 찌푸린다.


“술 취했으면 곱게 들어가 자라.”


그 말에 시원이 한 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잔뜩 풀린 목소리로 빈정대며 말한다.


“오늘 아주 중요한 날이었거든? 오늘을 위해서 3년을 버릴 만큼. 근데 그게 다 물거품이 되버렸지 뭐야.”


영운은 아무 말이 없다. 시원이 그런 영운의 가슴을 기분 나쁘게 툭툭 찌른다.

 

“그래서 기분이 아~주 좋아서 술한잔 했는데. 왜?”


그가 영운의 눈을 강하게 쏘아본다.


“형은 사랑하고 술병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해?”

“…취했으면 들어가서 닥치고 자랬지.”


하! 그 말에 시원이 코웃음을 치더니 번뜩이는 눈으로 무섭게 영운과 눈을 맞춘다. 저 순한 녀석의 몸에서 지독한 살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랑도 술도 깨지고 나면은 병만 남는다는거 알어? 오늘 내가 떨어뜨린 술병도 깨져서 병만 남아버렸는데 내 사랑도 깨져서 마음에 병만 남아버렸네?”


이제는 거칠게 자신의 심장께를 때리는 시원이다. 너무나도 화가나 그를 마구 때리고 싶은데, 힘없이 늘어진 주먹이 웅웅대며 우는데, 시원은 아무 것도 할 수없었다. 그는 성민이 선택한 사람이었다. 어리석게 느린 저보다 그가 한 발짝 더 빨랐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가혹했고 비참했다. 차라리 그를 맘껏 욕할 수 있더라면. 그랬더라면. 크흑. 가슴 속부터 뿜어져 나오는 눈물을 꾸욱 참았다.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자 손톱이 살을 파고든다. 살갗이 찢어지는게 절절히 느껴진다. 너무 아프다. 하지만 아픈 곳이 손만은 아니다.

상처받은 심장을 한 손으로 감싸 안은 채 시원이 영운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순수하고 맑은 그를 위해 내 손으로 고른 것이었다. 그를 위한 나의 최초의 선물이었다. 그를 위한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영운에게 넘어감으로써 무너져 내렸다. 꽃다발을 영운의 품에 안긴채 시원은 고개도 들지 않고 낮게 말하며 방으로 사라졌다.


“성민이형 행복하게 해줘.”


쓸쓸한 말이 남겨진 그 자리에 하얀 꽃다발을든채로 하얗게 질린 영운을 마찬가지로 질려서 부들부들 떠는 정수. 그리고 기가 찬 동해가 당황스런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제야 아리송한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정수는 울었고 동해는 웃었다. 영운의 손에서 꽃다발이 떨어졌다. 꽃잎들이 공중에 산산이 흩어졌다.

 

 

 

 

 

제 5화

빗속에서

 

 

 


한 동안 묘한 기류가 흘렀다. 세 사람 모두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 답답한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시선의 흐름을 깨며 영운이 거칠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영운의 뒷꽁무늬를 �아 들어가려는 성난 동해를 희철이 제지했다.


“그만해.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다들 자리에 앉아봐.”


희철의 차분한 말에 멤버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씩씩대며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서있는 동해의 어깨를 종운이 힘껏 누르며 자리에 앉혔다. 때 마침 혁재가 방에서 나왔다. 이상한 분위기에 동해옆에 앉으며 왜그러냐 묻지만 동해는 여전히 으르렁거린다. 그런 혁재를 눈치껏보던 희철이 말한다.


“다 모인거지? 김영운은 방금까지 병원에 있었으니까 잘 알테고 최시원 저 새끼는 꼴아서 말해봤자 모를테니 빼놓고 우선 말해봐.”


희철의 말에도 정수는 계속해서 바닥만 쳐다본다. 그러더니 한숨을 한번 푹 쉰다. 고개를 든 정수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너무 충격 받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성민이 생각보다 많이 위독해. 병원에서 퇴원조치 내렸어. 성민이의 의사도 있었고.”


그 말에 멤버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발끈해서 일어서려는 동해의 멱살을 잡고 종운이 끌어내렸다. 별 수 없이 다시 앉은 동해를 힐끔 본 정수가 다시금 말을 잇는다.


“항암치료를 하는데도 …전혀 효과가 없대. …후, 오히려 치료제 쇼크가 나타나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대.”

“…수술은?”


진지한 목소리로 혁재가 묻는다.


“손도 댈 수 없는 지경이래. 간, 쓸개, 장기 어디하나 전이가 안 된 곳이 없대. 몸이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수술하면 오히려…오히려….”


정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참지 못한 동해가 벌떡 일어나 정수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그럼 의사한테 빌기라도 했어야지----!!! 아픈 애를 데리고 집으로 오면 어떡해---!!!!”

“까불지마. 이동해.”


정수가 동해의 손을 뿌리치며 날카롭게 외쳤다.


“우리도 최선을 다 했어. 누구는 성민이 이대로 보내고 싶은 줄 알어?”


글자 한 음절 한 음절 어금니를 꽉 깨물며 그가 말했다. 동해는 두 눈을 가리고 털썩 주저 앉았다. 우리 성민이…우리 성민이…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중얼댈 뿐이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대.”


침착한 목소리로 종운이 물었다. 정수는 더욱더 말을 하지 못했다. 제 입으로 내뱉기엔 너무도 잔인한 말이었다. 정수는 오들오들 떨려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2주.”


끔찍한 말이 뱉어졌다. 멤버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이 순간만큼은 공기의 흐름이 멈춰진 듯 했다. 손에 진득한 식은땀이 맺혔다. 동해는 차라리 귀를 막고 있었다. 그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우리 성민이…우리 성민이. 머릿속을 강타하는 충격에 고요해진 가운데 혁재가 일어났다. 그리곤 술 취한 사람마냥 비틀비틀 성민이 자고 있는 방으로 향한다.

문 앞에 다다른 혁재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다. 성민의 얼굴을 본다면 모든 것이 다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망설이던 그가 차가운 금속재질의 문고리를 잡았다. 냉함이 뼈마디를 엄습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연 혁재가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와 새근새근 자고 있는 성민 옆에 눕는다.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성민에게로 향한다. 옆으로 돌아누워 자고 있는 성민의 등을 마주보고 똑같은 자세로 누웠다. 성민의 등을 보고 누운 것은 처음이었다. 고된 연습에 지쳐 차가운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워 잘 때도, 간혹 둘만의 여행을 갔을 때도, 서로의 집에 놀러갔을때도 자신이 늘 성민에게 등을 보였었다. 뒤에서 본 상대의 등이 이토록 쓸쓸해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외소한 성민의 등이 괜히 슬퍼보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주보고 자는 건데…. 사소한 기억 하나하나가 유리조각이 되어 저에게 돌아온다.

창문으로 투영된 달빛에 은은히 비친 성민은 아름다웠다. 혁재는 성민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우리 성민이 참 예쁘다.”


내 심장을 울릴 만큼 지독히도. 너무나도 달콤한 성민의 향기가 몸속 가득 퍼진다. 그 달콤함이 독이 되어 눈시울을 적신다. 코끝에 따뜻한 물방울이 맺힌다. 혁재가 몸을 일으켜 세워 성민의 머리칼을 살살 어루만진다. 부드럽게 손가락에 감기는 머리칼의 촉감이 너무 좋아서 미련스럽게도 또 눈물이 난다. 그 머리칼을 가만 귀에 걸어주자 또르르 눈물이 귓바퀴에 맺힌다.


“…바보. 이 지경이 됐으면서 말도 안하고.”


이번에는 그의 볼을 어루만져 본다. 낙인처럼 그의 볼에 눈물이 뚝뚝 찍힌다. 다시 자리에 누운 혁재가 성민의 어깨를 끌어 앉았다. 따스한 그의 온도에 갑자기 눈물이 난다. 안도의 눈물인지 이별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이 자꾸 내려와 침대 시트를 축축히 적신다.


“…서로…서로 비밀 같은 거 없기로 약속해놓구….”


흐흡. 혁재가 숨을 들이마신다. 조금 더 손을 뻗어 작은 성민의 손을 잡는다. 그 손가락 마디마디를 어루만지다가 깍지를 낀다. 톱니바퀴처럼 딱 들어맞는 느낌에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북받쳐오르는 울음에 남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사이로 작은 흐느낌이 토해진다.

-성민아…성민아…우리 이제 어떡하니?


그때


“혁재니?”


성민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한다. 놀란 혁재가 황급히 손을 걷어낸다.


“…혁재 맞지?”

“……으응.“


겨우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다행히도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역시 너였구나.”


숨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어. 성민이 미소짓는다.

“혁재야…오늘이 몇 월이야?”

“…”


그는 왜 계절을 묻는 걸까. 달력과 시계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조금씩 더해져 가는 그 그림자가 성민의 삶을 덮쳐오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응?”

“…8월. 8월이야.”


혁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을 들은 성민이 눈을 깜빡였다.


“그렇구나…. 겨울이 오려면 아직 멀었겠지?”


유난히도 흰 눈을 좋아하는 성민이었다. 그를 닮은 순수한 눈을 맞으며 예쁘게 미소짓곤 하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계절이 되어버렸다. 그걸 아는 혁재의 눈에서 또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거칠게 눈을 닦은 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 보고싶은데.”

“그럼 눈 보면 되잖어.”

“…”

“…내가 보여줄거야.”


내가 살려낼거야. 굳은 다짐을 한 혁재가 주먹을 꼬옥 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민을 살리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충 얼굴을 수습한 그가 성민의 어깨를 돌려 눕혔다. 덕분에 마주보게 된 성민이 눈을 맞춰왔다. 혁재가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 오늘 되게 재밌는 이야기 들었는데, 말해줄까?”


성민이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뜸을 들이던 그가 입을 연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사실 태양이 뿜어내는 빛을 반사하는 거래. 욕심 부리지 않고 조금씩만 빛을 먹은 별은 오래도록 빛날 수 있지만 별은 욕심쟁이라서 태양의 따뜻한 빛을 혼자 독점하려고만 한데. 그래서 별이 금방 소멸해 버리는 거야.”

“정말? 하하…진짜 욕심꾸러기별이네.”

“그치? 그런데 나는 왠지 욕심쟁이별이 이해가 되더라. 비록 제 몸이 없어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갖고 싶어 한거잖아.”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쓸쓸하다. 제 아픈 마음을 감추며 그리 말했다. 숨길 수 없는 마음을 꼭꼭 누르고 삼켰다. 성민은 손을 들어 혁재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혁재가 눈을 감고 이야기한다.


“성민아.”

“응?”

“나….”


성민이 그의 감긴 눈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조용하다. 그제서야 잠이 든걸 안 성민이 조금은 안쓰럽게 조금은 아프게 말한다.


“…혁재야 나 좋아하지 마.”


그리곤 곧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새근새근. 곤히 잠든 성민의 숨소리가 나자 잠든 줄 알았던 혁재가 조용히 눈을 뜬다.


“어쩌지? 나…이미 욕심쟁이별이 되버린 것 같애.”

 

 

 


블라인드 틈으로 작은 빛이 들어온다. 그 빛에 눈을 찡그리던 시원이 머리를 짚으며 일어섰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어떻게 집까지 찾아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오후 2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깨우는 사람 하나 없다.

조용히 일어나 뻐근한 허리를 한번 돌리고 화장실로 갔다. 찬물을 얼굴에 몇 번 끼얹고 거울을 봤는데 헉. 괴물이 따로 없다. 두 눈이 탱탱 부어서 크기가 반으로 줄어있다. 머릿속을 후비는 아픔에 관자놀이를 양 손으로 꾹 눌러본다. 필름이 완전히 끊겼나 보다. 작게 잘린 기억의 조각들이 사진처럼 스쳐지나간다. 병원. 웃고 있던 성민이형. 그 앞에 있던 영운이형. 장미꽃. 포장마차. 아픈 기억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점령한다. 그래. 어제 나는 차였다.

허탈하고 씁쓸하고 아픈, 그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에 코가 시큰하다. 주린 목을 부여잡고 부엌으로 가니 식탁 한켠에 흉하게 뜯어진 꽃다발이 보인다. 그래. 이제야 생각난다. 깨진 병. 화난 동해의 모습. 슬픈 고백. 하얗게 질린 영운이형… 그리고 밤새 울던 제 모습.

이제 상황은 끝났다. 성민이형은 영운의 손에 넘어갔다. 멤버들도 이젠 다 알아버렸다. 더할 나위없는 K.O패란 생각에 시원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생수통을 하나 꺼내 디립다 마셨다. 가슴 윗켠이 텅 빈것처럼 공허하다. 냉동실에서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통을 하나 꺼내 무작정 앉았다. 밥숟가락으로 한 숟갈 크게 퍼 입속으로 넣었다. 시린 아이스크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속이 시리다. 또 한 숟갈 넣었다.


“뭐하냐?”


동해다. 어느새 다가온 그가 마주앉으며 묻는다.


“보면 모르냐? 아이스크림 먹잖아.”


픽하고 웃는다.


“어제 일은 기억이나 나냐?”


“…뭐, 조금은.”


그리 말하며 웃었다. 동해가 저리 묻는 걸 보면 어제 대형사고를 치긴 친 모양이다. 동해가 저를 쳐다보며 그런다.


“불쌍한 새끼.”

“그래. 나 불쌍하다.”

“존나 불쌍한 새끼.”


뭐,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동정 섞인 동해의 말에 시원이 대꾸했다.


“근데 집이 왜 이렇게 조용하냐?”

“너…아직 모르는 거야?”

“뭘?”

“성민이.”

“성민이 뭐? 형 쓰러진 거?”


후…. 동해가 대답대신 긴 한숨을 뿜는다. 고개를 숙이던 그가 입술을 꽉 다물며 눈을 마주쳤다.


“성민이 얼마 못산댄다.”


툭. 숟가락이 바닥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암이래.”


툭. 갈곳없는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진다. 말도안돼. 조용히 고개만 젓던 시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야-! 어디가-!!!”


동해의 외침을 뒤로하고 그대로 숙소를 나왔다. 맑았던 하늘에 어느새 먹구름이 끼어 어둑하다. 멍하니 걷던 시원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존나 개 같은 오후네.”


개 같은 눈물이 떨어져 운동화를 물들인다.

 

 

 


시원이 나가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던 동해였다. 그런 동해의 뒤를 영운이 스쳐지나간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영운에게 동해가 물었다.


“동정이야? 사랑이야?”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냐?”

“내가 아는 김영운은 이성민을 싫어했던 것 같은데…내가 틀렸나?”

“니 맘대로 생각해.”


싸늘하게 받아치며 영운은 부엌을 나왔다. 괜히 두리번거리다 때 마침 현관에서 신발을 벗던 시원과 눈이 마주쳤다. 젠장할. 산 넘어 산이라더니 동해를 피해 거실로 나오니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버렸다. 시원이 눈을 부릅뜨고 다가왔다. 양볼이 딱딱하게 굳는게 느껴졌다. 저 녀석에게 한대 쯤 맞아줄 각오는 되어있었다.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아무 느낌이 없다. 조심히 눈을 떠보니 시원이 검은 봉지를 들이대곤 말한다.


“형…우리 술이나 한잔 할래요?”

 

 

 

윽. 성민은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엄습했다. 숨쉬기도 힘든 고통스런 아픔에 머릿속이 하얗게 번져나간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전쟁이 시작�다. 그 무시무시한 전쟁의 축포를 뱃속에서 터뜨리는 것만 같았다. 힘줄이 터지도록 배를 부여잡은 성민이 탁자 쪽으로 기어가 힘겹게 서랍을 연다. 둥그런 약병이 손에 잡힌다. 끔찍한 물건. 약병을 집은 성민의 눈이 흔들린다. 절대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몸서리 처지게 끔찍했지만 고통은 두려움보다 강했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뚜껑을 연 성민이 하얀 알약 두개를 입 안에 털어넣었다.

하아…하아. 진통제의 효력은 강했다. 알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무거운 쇠고랑에 해방된 듯한 느낌에 성민이 숨을 몰아쉬었다. 진이 빠져 침대에 걸쳐 기댄 성민이 손을 들어 식은땀을 닦았다. 축축한 땀에 젖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암이란 놈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했지만 그 헛된 망상들이 다 와르르 무너질 만큼 그 만큼 무서웠다.

고통이 가시자 폭풍의 잔해처럼 두려움이 몰려왔다. 성민은 무릎을 세우고 온 몸을 감싸안았다. 무서워…혁재야 나 너무 무서워. 무릎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나한텐 아직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가족, 멤버들, 그리고 영운이형. 성민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목에서 울컥하며 넘어온다. 그 설움의 덩어리를 넘긴 성민이 조용히 일어나 침대위에 곤히 잠들어 있는 혁재를 깨운다.


“혁재야…일어나.”


그는 깊이 잠들었나보다. 몇 번 혁재의 어깨를 흔들던 성민이 조심스레 방문을 닫는다. 그리고 그가 나가자 혁재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코를 따라 흐른다.

-바보…. 바보 이성민.

 

 

 

 

거실에는 한껏 취기오른 멤버들이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왠일인지 완전 만취한 동해가 소파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쓰러져 누워있었고, 그 옆에 시원과 영운, 그리고 정수가 정신없이 술을 마시고 있다. 조심스레 다가간 성민이 그 사이를 파고들어 웃으며 말했다.


“와~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만 술먹는다.”


그 말에 다들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왠지 저가 끼어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에 성민이 입을 삐쭉 거려보지만 세 사람은 그저 묵묵히 제 앞의 술잔만 비워낼 뿐이었다. 끝을 보인 소주병이 여러개. 거의 다 먹어가는 맥주병만이 남았을때 터프하게 소주잔을 비워낸 시원이 영운의 손을 끌며 술을 사러 다녀오겠다 한다. 어깨동무를 한 둘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나가자 적막만 남은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앞에 앉은 정수의 눈치를 힐끔 보던 성민이 조금 남아있는 맥주병을 집었다. 그러자 술만 마시던 정수가 깜짝 놀라 손목을 움켜잡는다.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짓이긴요. 저도 술마실줄 알아요.”

“그래도 지금은 안되잖아.”

“치, 맥주 한모금 마신다고 죽는사람 없어요.”


성민이 그리 말하며 정수의 손을 걷어냈다. 그대로 들고 마시자 칼칼한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가슴깊이 내려간다. 싸하게 쏘아오는 느낌이 기분좋다. 반쯤 남은 맥주를 원샷한 성민이 병을 내려놓으며 씨익 웃는다.


“캬아…. 좋다.”


이렇게라도 안마시면 형 얼굴 못볼 것 같아서…. 성민이 쓰게 웃었다. 갑자기 얼굴로 취기가 확 올라온다. 뜨거운 느낌에 차가운 손으로 볼을 식힌다. 여전히 술만 마시던 정수가 반쯤 취한 목소리로 묻는다.


“…성민아, 너 정말 영운이 좋아하니?”


그 말에 어지러운 정신이 확 깨는 기분이다. 눈 앞의 정수는 너무도 슬픈 얼굴로 묻고있었다. 소주를 털어넘긴 정수가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묻는다.


“진…짜야?”

“…미안해요. 형.”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정수가 그런 그를 쏘아봤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자신도 영운을 놓칠 수 없었다.


“영운이가 누구 좋아하는지는 알고있니?”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영운이 누굴 좋아하는지는 이미 너무도 많이 겪어왔다. 그 뜨거운 사랑에 이미 제 심장은 너무도 많이 데어버렸다. 성민은 괜히 울컥 눈물이났다. 동시에 정수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알면서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너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


정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비수가되어 제 심장에 꽂혀왔다. 피가 줄줄 흐르는 심장을 부여잡고 성민이 맞받아쳤다.


“정수형은 왜 형밖에 생각안하세요?”

“뭐?”

“…저 이제 곧 죽어요. 형도 잘 아시잖아요. 나 얼마 못산다는거. 제 마지막 소원이고 제 마지막 사랑이에요. 그런데도 그게 그렇게 싫으세요?”


죽기보다 싫은 말이었다. 제 목숨을 담보로 그와 사귀는 일. 하지만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못난 자존심이 주먹속에서 울어댔다. 비참한 변명이었다. 정수에게 거지같이 사랑을 구걸했다. 이보다 더 구차할 수 없다 생각하며 성민은 울어버렸다.


“형…저도 영운이형 많이 좋아하거든요? 전…정말 안되요? 네?”


제 가슴까지 치며 성민은 통곡했다. 정수에게서 따뜻한 위로의 말. 아니, 쌀쌀맞아도 인정의 말이 나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뜻밖에 나온 그의 말은 성민을 더 깊은 절벽으로 밀어넣었다.


“이래서 니가 이기적이라는거야.”


심장이 쿵 떨어진다.


“…뭐라…구요?”

“넌 늘 니 생각밖에 안해. 너 죽고나면 남은 영운이는? 너야 편히가면 그만이지만, 남겨진 영운이는?”


그의 말이 독이 되어 온 몸에 퍼진다. 자신이 얼마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정수는 모른다. 하루하루 아니, 일분 일초 시간을 견뎌내는게 얼마나 힘든지 그는 모른다.

그의 냉정한 말이 귀속으로 파고들어와 눈물샘을 자극한다. 반박하고 싶지만 결국엔 맞는말이었다. 저야 죽고 나면 그만이지만 남겨진 사람은 그게 아니다. 하지만 참기엔 너무 가혹한 말이었다. 치밀어오르는 화에 치가 떨린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성민이 소리쳤다.


“그래도 내가 먼저였어요. 내가 먼저였어-! 형은 지금 이럴 자격….”


짝. 정수의 손이 성민의 뺨을 스쳤다. 새된 파열음이 허공을 갈랐다. 그 충격에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맞은 곳을 부여잡은 성민이 멍한 얼굴로 일어섰다. 정수도 당황한 나머지 재빨리 손을 뒤로 숨겼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한걸음 한걸음 정수에게 다가갔다. 성민의 분노한 눈과, 정수의 떳떳한 눈이 공중에서 마주친다. 붉은 입술이 어그러지도록 꽉 깨물고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그대로 힘을 실어 내리치려는데 누군가가 손목을 가로막는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영운이었다. 그의 화난 목소리가 온 집을 쩌렁쩌렁 울렸다.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 타이밍에 성민은 너무 억울해 아무말 못했다. 이건 누가봐도 저의 잘못이라고 생각할터였다. 꼭지가 돈 영운이 성민의 양어깨를 뭉그러뜨릴 듯이 세게 쥐어잡곤 거칠게 흔들었다. 그 때 가만히 서있던 정수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성민의 어깨를 쥐고있던 손을 확 놔버린 영운이 정수형…! 다급히 외치며 뒤따라나갔다. 성민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버렸다.

이제야 현관에 들어온 시원이 무슨일이냐며 달려왔다. 손에있던 술병들이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성민을 감싸안은 시원의 눈이 그의 벌겋게 부은 볼을 보고 커진다.


“이거 누구짓이야-! 김영운 짓이야?”


하지만 그 손길을 뿌리치고 성민은 영운을 �아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앞을 가름하기 힘들정도로 오는 비에 눈앞이 뿌옇다. 정신나간사람처럼 이리저리 주위를 살폈다. 차가운 빗소리에 성민의 울음소리가 먹혀들어갔다.

 

 

“박정수--!!”


영운의 부름에 정수가 멈춰섰다. 영운은 거칠게 다가가 어깨를 돌려세웠다. 비에 젖은 정수가 애처롭게 울고있었다. 영운은 그런 정수를 꼭 껴안았다. 그 따스한 품에 안심하고 꺽꺽대며 울던 정수가 영운의 목에 손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영운의 따뜻한 입술에 입맞췄다.

 

 

굵은 빗줄기가 온 몸을 사정없이 아프게 때려댔다. 성민은 자리에 서서 그저 울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짠물이 입가에 축축히 젖어들어왔다. 그런 성민을 뒤 따라나온 시원이 꼭 껴안았다. 하얗게 질린 시원이 성민에게 말했다.


“형…절대 뒤돌아보지마.”


제발. 제발 뒤돌아보지마. 간절한 바램이었다. 하지만 잔인한 신은 자신의 바램을 배신했다. 성민은 기어코 품속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을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하얗게 흐린 풍경속에 영운과 정수가 너무나 다정히 키스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끔찍한 모습이었다. 으흑…. 성민은 울부짖었다. 할 수만 있다면 두 눈을 뽑고 싶었다. 무너진 성민을 시원이 품속에 더 꽉 안았다.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성민이 말했다.


“…시원아 나 너무 아퍼. 응? 나…나 너무 아퍼어….”


그 울음소리에 시원의 마음까지 타 들어가는 듯 했다. 성민은 시원의 목에 더 꽉 매달렸다.


“…나 나 심장이 너무 아파서…죽을 것 같애…시원아…나 죽을 것 같애.”


그 가엾고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시원도 따라 울었다. 성민은 이제 정신을 놓은 사람 같았다.


“…상처가 난 곳에…물이 스며들면 아프다던데…내 심장에 난 상처가 빗물 때문에…그래서 이렇게 아픈가봐…그지?…그런거지? 응?”


제 작은 가슴을 퍽퍽치며 성민은 주저앉아 그리 울었다. 그 작은 주먹을 맞잡은 시원이 그대로 성민을 안았다. 얌전히 품에 안긴 성민은 탈진해 버린건지 조용했다. 감긴 눈에서 눈물만 나올 뿐이었다. 성민을 안고 집으로 들어가는 시원의 이가 빠질 듯 맞물렸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성민이 형 눈에서 피눈물나게 한 꼴 절대로 그냥 안 보낼거야. 턱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대로 시원은 집 안으로 사라졌다.

 

 


“이거 왜 이래--!!”


정수의 손을 거칠게 풀며 입술을 떼버렸다. 충격받은듯한 정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영운아…너 왜그래…. 영운은 돌아섰다. 분명 자신은 정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입 맞출수 없었다. 정수의 차가운 입술이 닿았을때 성민의 하얀 얼굴이 눈 앞에 떠올랐다. 그래서 매정하게 뿌리쳐버렸다. 자신은 정수를 좋아하지만 그와 키스할 수 없었다. 영운은 그대로 달렸다. 정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독히도 슬픈 엇갈림이 빗속에서 그들을 점차 조여오고 있었다.

 

 

 

 

 

제 6화


selfish

 

 


“내가 진짜 못살어.”


희철은 또 다시 바닥을 닦고 있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깨진 술병 탓에 집안엔 아직도 술 냄새가 진동했다. 우레같이 쏟아지는 비에 창문을 열수조차 없었다.


“형…제가 할까요?”


그나마 양심 있는 려욱이 뻘줌히 와서 물었다. 희철은 그런 려욱이 눈물나게 고마워서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픈 애를 데리고 술을 마시질 않나 애꿎은 술병은 다 죄 깨놓고 나가고 성민이는 반쯤 미친 시원이 품에 안겨 들어오지 않나, 그나마 침착했던 정수는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돌아왔고 정작 문제인 김영운은 아예 집에 코끝하나 내비치지 않는다. 답답한 상황에 희철이 낮은 신음을 뱉으며 미간을 찌뿌렸다. 겁나게 재미없는 추리소설을 뒤에서부터 읽어 내려가는 기분이다.

안 그래도 우울한 집안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희철이 주먹을 두둑 꺾으며 말했다.


“기범아. 영운이 한테 아직도 연락 안 되니?”

“응. 핸드폰 전원이 아예 꺼져있다는데?”


아무리 밉살스러운 짓을 했어도 희철은 몇 시간째 감감무소식인 영운이 걱정되었다. 게다가 밖에는 송곳같은 비가 미친 듯 내리는 상황이다, 요즘 녀석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는 곁에서 지켜본 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해도 성민이 소식에 혼자서 끙끙 앓았다는 것도. 영운은 대나무 같은 남자라 표현하지 않는 것뿐 강한 바람이 불면 제일 먼저 우지끈하고 부러질 녀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요즘 들어 흔들리고 있었다.

성민이 그리고 정수사이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힌 사각형을 어떻게 풀어줄까 고민하던 희철이 불안한 듯 발길을 가만두지 못하다가 문득 베란다 앞에서 멈춰 섰다.

숙소 앞 가로등 밑으로 검은 그림자가 언뜻언뜻 비친다. 비에 가려 잘 안보이지만 체격하며 영 청승맞은것이 영운이 맞는 것 같다. 대충 겉옷을 챙긴 희철이 우산을 들고 급하게 밖으로 나간다.


“나 영운이 데리고 올게.”

 

 

 


“새꺄. 이게 무슨 청승이냐.”


자신 앞을 가득 채운 커다란 그림자에 발끝으로 떨어지던 빗방울을 응시하던 영운이 고개를 들었다. 희철이 커다란 우산을 들고 씨익 미소 짓고 있었다. 그 개구쟁이 같은 미소에 영운이 허탈한 웃음을 띠며 다시금 고개를 꺾었다.


“일어나. 감기걸릴라.”


하지만 벤치에 앉은 그는 요지부동이다.


“아씨. 감기걸리면 친구고 머고 없어. 그냥 갖다 버릴꺼야.”


심통맞게 말하자


“지랄.”


그가 픽 하고 웃는다. 희철의 손에 이끌려 일어선 그가 힘없이 비틀대다 그대로 희철의 앞섶에 쓰러진다.


“희철아…. 내 친구 희철이.”


나 요즘 너무 힘들다. 목을 감아오며 물에 푹 젖은 목소리로 그리 말한다.


“치워 새꺄. 닭살돋아.”


말은 그리했지만 한 손으론 그의 애처로운 등을 감싸 안았다. 마주 안은 등이 차갑게 식어있다. 원래부터 한 덩치 하던 녀석이었는데 오늘따라 그의 등이 작아 보인다.


“희철아…나 요즘 왜 이럴까…?”

“그걸 니가 알지 내가 아냐.”

“…”

“자시고 뭐고 제발 집에 좀 들어가자. 집에 환자가 둘이나 되는건 나 싫걸랑.


하지만 뒤이어 나온 그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희철아…. 나 정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서 모든 걸 다 포기 할 만큼 그 만큼 사랑하는데….


“…자꾸 가슴에선 그게 아니래.”


피로 짓이겨진 제 가슴은 자꾸만 다른 사랑을 말하고 있다.


“머리는 정수라는데 그런데…그런데 이 빌어먹을 심장은 자꾸 그게 아니래.”


난 분명히 동정이었는데, 난 정수를 사랑하는데…지금도 마찬가진데…자꾸만 심장이 사랑했었대.
아픈 심장위로 아픈 눈물이 떨어진다.


“영운아 너 대나무가 강해지는 법이 뭔지 아니?”


뜬금없는 희철의 말에 영운이 목에 파묻었던 얼굴을 든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창백하다.


“속을 텅 비우는 거야.”


희철이 얼음장 같은 그의 어깨를 양손으로 다부지게 쥐곤 한걸음 물러났다.


“김영운. 이기적이되라.”


강철 같은 그 말에 영운이 의아스러운 듯 바라봤다.


“남 생각하지 말고 너 자신만 생각해. 동정, 연민따위 가질 필요없고 그저 너만 생각해.”


마주치는 시선 사이로 수백개의 빗방울이 다다닥 선율을 만든다. 부딪힌 희철의 시선은 강직했다. 그 눈빛이 제게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대신 철저하게 이기적이되라.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어설픈 이기심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법이거든.”


그는 나에게 뭐라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굳건한 희철의 손이 어깨를 야무지게 쥐곤 등을 돌렸다.

넋이 나간 듯 영운은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서있었다. 머릿속이 복잡스러웠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날카롭게 신경을 긁던 빗소리가 왠일인지 토닥토닥 위안하는 소리로 들린다. 토닥토닥, 토닥토닥. 희철의 말이 머릿속에 뱅뱅돈다. 이기적이 되라…. 가슴속에서 두개의 마음이 용솟음치며 뒤섞인다. 토닥토닥. 빗방울이 그런 가슴을 위로해준다.

 

 

 

 


“려욱아.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동그랗게 부쳐야지.”

“아…. 헤헤”


부엌에선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냄새가 풍겨왔다. 저녁때 쯤 눈을 뜬 성민이 오랜만에 기운을 차렸다. 그 따스한 미소덕분인지 집안에 화목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노란 지단을 예쁘게 부치던 려욱이 성민의 말에 쑥스러운 듯 웃어보였다. 계란말이는 이렇게 부쳐야 더 맛있어…. 옹알대며 말하는 성민이 형이지만 귀여웠다. 길다란 뒤집개로 뭉글뭉글한 지단을 조심스레 말자 성민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와~ 우리 려욱이 되게 잘한다.”


그 말에 마주보며 웃었다. 팔까지 걷어부치고 적극적으로 요리에 임하는 성민을 바라보던 려욱의 눈이 그의 팔목으로 향했다. 제법 살이 올라있던 팔목이 어느새 어린아이처럼 빼싹 말라있었다. 우리 형 많이 아프겠다.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어 뒤에서 성민을 그냥 꽉 안아버렸다. 난데없는 포옹에 놀란 성민이 우리 려욱이가 왜 이럴까? 하며 다정스레 말한다. 그 달달한 말투에 더욱더 눈물이나 성민의 목에 고개를 묻곤 웅얼대듯 말했다.


“형…아무대도 가면 안돼?”


성민은 아무 말이 없다. 조금 더 품에 힘을 주자 그때서야


“형이 가긴 어딜 간다구 그래. 이제 보니 우리 려욱이 애기구나?”


가슴께에 닿은 저의 손을 꽉 잡아온다. 그 손길이 너무 따스하다.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아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가스렌지의 불을 조심히 끈 성민이 어깨에 걸쳐진 손을 조심히 푸르곤 형은 혁재 깨우고 올게. 하며 부엌을 나섰다.

 

 


조용히 저와 혁재의 방문을 열었다. 혁재야….하고 조심스레 부르는데 그는 이미 일어나있다. 침대에 어지럽게 흩어진 이불을 정리하던 그가, 부끄러웠는지 금세 얼굴을 붉힌다. 평소 때 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었다. 그 모습이 대견스러워 침대 맡에 걸터앉으며 성민이 말했다.


“이렇게 잘하는 걸 그 동안 왜 안했어?”


혁재는 멋쩍은 듯 뒷머리만 몇 번 긁다가 싱겁게 그냥…. 이러고 만다. 우리 가서 밥먹자. 혁재의 손을 잡고 방문을 나섰다. 아직도 창밖엔 비가 내린다. 날이 많이 어두컴컴해져서 밥 먹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활기를 찾은 집이었다. 려욱이 상 차리는 것을 바라보던 성민이 한쪽 건조대로 가서 마른 빨래를 하나 둘씩 개킨다. 그러자 부록처럼 혁재와 기범이 따라와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따라한다. 그 모습이 말 잘 듣는 아가들 같아서 성민이 쿡 하고 작게 웃는다.


“어라?”


하지만 마른수건이 수건이 아닌 걸레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녀석들 나름대로 열심히 하겠다고 한 것 같은데 영 엉망이다. 이대로 두면 일을 두 배로 해야 된다는 생각에 바삭하게 마른 수건하나를 집은 성민이 쳐다보며 그런다.


“그르케 개는게 아니구 이렇게.”


하얀 손이 긴 수건을 쫙 펴서 반 접고, 또 반 접고 세로로 돌돌 만다. 신기한 듯 쳐다보던 혁재와 기범이 하나하나 따라 접고는 성민만큼은 아니지만 꽤 예쁘게 접히자 환히 웃는다. 신나서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성민은 그들 나름대로 이별준비를 하고 있단 생각에 가슴이 짠해졌다. 제가 떠난 빈 자리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에 어느새 이별이 한 걸음 성큼 앞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그래. 내가 가기 전에 하나 둘씩 다 알려주고 갈거야. 그게 내가 멤버들한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니까. 그 마음만큼 예쁘게 성민이 미소지었다.


“꼴깝들을 떠네. 아주”


다정한 분위기를 홀딱 깨는 소리에 뒤돌아 봤더니 동해다. 그가 한껏 얼굴을 찌뿌리곤 성민옆에 주저앉는다. 우리 성민이 빨래 개켜? 살랑 눈웃음치며 말했더니 혁재가 눈을 얄쌍하게 뜨곤 한마디 툭 내던진다.


“닥쳐. 이동해. 너 괜히 질투나니까 그르지?”

“웃기시네. 내가 왜 질투가 나냐?”

“당연히 성민이랑 나랑 더 친하니까.”

“깝치시네. 성민이 나랑 훠어어어얼씬 친하거덩?”

“영양가 없는 소리 할거면 빨래나 개켜라. 이 철 없는 놈아.”


동해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찰싹 때렸다. 으씨. 욱한 동해를 나몰라라하고 열심히 수건만 개키는 혁재다. 동해가 예와 다른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얘 어디 가냐?”


뭐? 그 말에 성민, 혁재, 기범. 그리고 거실에서 각자 할 일하고 있던 멤버들의 눈이 동해에게로 집중된다.


“얘 어디 갈 사람도 아닌데 갑자기 그러는거 보기에 안좋다.”


장난 같지만 설득력 있는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동해가 성민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일어나며 장난스레 말한다.


“난 이성민이 개키는 빨래 아님 안 입을꺼거든. 밥이나 먹자.”


그러면서 상 앞에 털썩 앉는다. 어느덧 밥상을 다 차린 려욱이 “형들 밥 드세요.” 하자 방에 있던 멤버들이 하나 둘씩 밥상 앞에 둘러 모인다. 통통한 계란말이 하나를 집던 희철이 묻는다.


“정수는?”

“형은 밥 안 드시겠대요.”


려욱이 제가 미안한 듯 조심스레 말한다. 김영운 이 자식은 아직 안 들어왔으니까…. 열 한명. 딱 수가 맞다. 잘 먹겠습니다-! 시원하게 외쳐진 희철의 말 뒤로 조용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딱 한 사람. 성민만 제외하고.

빗속에서의 일이 오버랩 되어 눈앞에서 겹쳐졌다. 그 환상 같은 아름다운 장면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른쪽 손을 가만히 들어 맞은쪽 볼을 만져보았다. 부은게 다 가라앉았는지 은근한 미열만 남아있을 뿐이다. 막상 맞았을 때는 눈앞이 핑핑 돌면서 머릿속에서 불이 튀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방안에 있는 정수가 걱정되니 참 난감했다. 숟가락으로 밥풀만 끄적대던 성민이 살포시 숟가락을 내려놓곤 말했다.


“저기…나 정수형 깨우고 올게.”

“가긴 어딜가.”


반쯤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려는 제 손목을 거칠게 잡아 다시 주저앉힌 시원이 으르렁대며 말한다. 언제나 다정다감한 녀석이 갑자기 이러자 다들 당황했는지 시원만 쳐다본다. 그가 매서운 눈으로 말한다.


“내 앞에서 그 자식들 얘기 꺼내지마.”


그 자식들이라니?! 날이 잔뜩 선 그 말에 어벙벙해진 멤버들을 뒤로 하고 성민은 그저 작게 알았어….하고 만다. 옆에 앉은 동해가 왜 그러냐는 듯이 툭툭 쳐보지만 말없이 밥만 깨작대는 성민이다. 그 요상한 분위기에 또 나 혼자만 빙신이지? 하며 동해가 씹퉁댔지만 모른 척 밥만 먹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은 영운과 방 안에 있는 정수가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감기 걸렸을지도 모르는데…. 숟가락 꼭대기를 입에 물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던 성민이 갑자기 욱…!, 치미는 구토기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날이 잘 선 면도칼로 장기를 하나하나 끊는 그 느낌에 성민은 몸을 최대한 앞으로 숙이고 배를 감싸 안았다. 척추사이로 한기가 통과해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배를 압박하며 올라오는 고통에 성민은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겨우 화장실로 들어가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걸어 잠근 성민이 그대로 좌변기를 끌어안고 쓴 물을 토해냈다. 입가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 나 진짜 죽나봐. 고통을 뛰어넘는 공포심이 온 몸을 송두리째 휘감았다. 힘없이 달싹거리는 입술께로 핏방울이 뚝뚝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형 문 열어--!! 멤버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소용돌이 쳤다. 저 앞에서 검은 옷을 입은 죽음이 달콤한 목소리로 저를 유혹한다. 씨발! 비상키 가져와--!!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구토와 더불어 온몸을 엄습하는 두려움. 그 것만으로도 성민의 고통은 죽음 이상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저의 목을 서서히 조르기 시작했다. 죽음이 저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눈앞에서 달콤하게 미소 짓는 죽음을 뒤로한 채 하늘이 하얗게 퇴색된다. 천장 가득 보이는 건 오로지 그. 죽음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그의 얼굴이다.

…영운이형. 하늘은 왜 이렇게 잔인한걸까?

 

 

 

뚝뚝. 처량 맞은 소리를 내며 물방울이 엘리베이터 바닥으로 떨어진다. 거칠게 머리를 털어낸 영운이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핸드폰도 없고 몇 시간째 걸었는지 짐작이 안 간다. 아까보다 한층 더 짙어진 하늘을 보니 적어도 두어시간 정도는 흐른 것 같다. 미친 사람처럼 정처 없이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집 앞이었다.

마음의 정리는…아직도 미지수였다. 분명 제가 흔들리면 다른 사람도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희철의 말도 그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마음을 정해야 하지만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두 개의 얼굴에 모든 것은 원점이었다. 저울에 올려져 있는 두 개의 마음. 그리고 심판관인 저 자신. 빌어먹을 운명에, 손에 끈적한 땀이 배어나온다.

띵동- 상념을 깨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영운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 분위기가 시끄럽다. 현관에서 물에 푹 젖어 잘 벗겨지지 않는 신발을 끌어내리던 영운은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시원의 품에 안겨 지친 표정의 성민이 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입 주위가 온통 피 일색이다. 피투성이가 된 성민을 조심스레 안은 시원의 눈이 공포에 가득 차 있었다. 그 뒤를 동생들이 겁에 질린 채 엉엉 울며 뒤따랐다. 전기에 감전된 듯 멈춰 서 있던 영운이 멤버들의 당황스런 시선을 뚫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화장실 바닥엔 피가 흥건했다. 아직 채 풀리지도 않은 핏덩이를 본 영운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성민의 고통이 제 몸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영운은 그저 눈을 감고 이를 악 물었다. 저 가냘픈 아이한테 제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변기물을 내리고 샤워기로 바닥을 대충 쓸어내린 영운이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대고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놓아진 샤워기가 갈 곳을 잃고 뱅글뱅글 돌며 사방에 물을 뿌려댔다. 성민아…성민아.

찬 물을 그대로 맞던 영운이 일어섰다. 흠뻑 젖은 영운이 얼굴 앞에 놓여진 거울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 거울엔 아픈 표정의 남자가 어색하게 담겨있었다. 한 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던 영운이 문득 입을 열었다.


“성민아….”


얼마 만에 불러보는 그의 이름인가. 이제 서야 깨달았다. 갈라진 목소리가 떨려왔다. 거울속의 남자가, 맘이 시린 제가 아프게 울고 있었다.


“죽지 마, 성민아….”


힘없이 손을 뻗어 그 얼굴을 어루만지던 영운이 순간 무너져 내렸다. 타일 바닥으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제 7화

무지개

 

 

 
감겼던 눈이 번뜩 떠졌다. 무거운 공기를 휘저어대던 양 손이 그대로 공중에 정지했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꿈속에서 성민은 조금씩 자신의 목을 조여 오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햇볕이 따사로운 오후, 나른히 소파에 앉아있을 때면 문득 온 몸을 엄습하는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사랑해마지 않는 멤버들과 식사를 할 때, 청소를 할 때, 이야기를 할 때, 웃을 때. 그 평화로운 시간마저도 죽음은 제 이름을 끊임없이 귀에 속삭였다. 아무도 그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성민은 알 수 있었다. 그건 성민의 목숨 안에 내포되어있는 어떤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독한 죽음의 그림자는 꿈에서조차 긴 장막을 뻗어 제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정처 없이 뻗은 손을 거두며 성민이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머리가 어지럽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등에 한 가닥 바람이 통했는지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다시 생각해도 소스라치게 끔찍한 그 풍경에 성민이 몸을 감싸 안았다.

방안은 짙은 남빛에 잠식되어 있었다. 언뜻 스쳐본 시계는 새벽 3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서야, 맞다. 나 쓰러졌었지. 몸서리쳐지는 기억이 머릿속에서 조금씩 되풀이된다. 붉은 피, 정신을 어지럽히던 다급한 목소리들. 그리고 영운이 형.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단어만으로도 아린 그 잔상에 성민이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그런 그의 옆에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인상을 찡그린 동해가 입을 살짝 벌리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에 취해있다. 다 내팽개쳐 발끝에 구겨져 있는 이불을 끌어올린 성민이 어깨까지 잘 덮어준 뒤 하얀 발로 조심히 땅을 짚었다.

완전히 일어선 성민은 성급하지 않았다. 느릿한 걸음으로 나온 거실은 채도가 낮은 푸르스름한 빚이 휘감고 있었다. 왠지 가벼워진 공기에 숨을 크게 들이쉬던 성민의 눈에 소파위에 걸쳐진 큰 인영(人影)이 비춰졌다.

가까이 다가갔지만 검은 음영만이 흐릿하게 보여 사람이란 것만 알뿐 누군지는 잘 구분이 되질 않았다. 이불도 없이 불쌍하게 자고 있는 그를 깨울까 망설이던 성민이 방에 들러 얇은 이불을 하나 가져 나왔다. 불쌍한 그를 위해 발끝부터 목께까지 꼼꼼하게 덮어주자 포근한지 뒤척이며 얼굴을 돌린다.

침침하던 눈이 낯선 어둠으로부터 익숙해 진 것일까, 잘 보이지 않던 사물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린 불쌍한 그는 영운이었다. 난데없는 그의 등장에 놀란 성민이 숨을 크게 쓸어 담곤 한 걸음 물러났다가 이내 옆에 조심히 쪼그리고 앉는다.

무심한 영운은 제가 온 것도 모르고 잠에 깊이 빠져있다. 가만 손으로 영운의 볼을 조심히 쓰다듬는다.


“바보.”


퉁명스레 내뱉어본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멍청이.”


조금 더 세게 내뱉는다. 멍청이. 멍청이 김영운.

비 오던 날. 하늘에서 천사들이 우는지 무섭도록 비가 쏟아지던 그 날. 저는 그의 마음을 확연히 알았더랬다. 그 떨리던 입맞춤이, 그 떨리던 손끝이 제 가슴팍을 저미고 들어와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다. 그 아름다운 순간은 제 머릿속에 기어 들어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 날 이후 저는 영운에 대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영운은 사랑했지만 사랑할 수 없는 남자였다. 저는 감히 그에게 애정 섞인 눈길을 보낼 수 없었고 그 역시 차갑게 제 마음을 버렸다.

단지 한 순간의 동정으로 시작된 연애라면 이젠 끝이여야 한다. 처음으로 돌이키기엔 제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가슴 안에 뽑지 않고 놔두었던 가시는 뜨거운 눈물에 삭아 혈관을 따라 온 몸을 뒤흔든다. 이제 가슴 한 편에는 아물지 않을 상처만이 아프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멍청이.”


독살스런 화살이 날아온다. 멍청이. 멍청이 이성민.

저는 이제 죽는다. 어차피 가진 것 하나 없는 몸, 나올 때와 같이 떠나면 그만이지만, 제가 잡고 있는 영운은 그게 아니었다. 분명 그에게도 무거운 짐이 될 것이 뻔했다.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 잊어야한다. 지워야한다. 떠나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원치 않았다.

성민은 잠든 영운의 얼굴을 조심스레 바라봤다. 투명한 눈에서 물 한 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잊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그립기만 한 이 남자를 어떻게 잊어야할까…. 성민은 축축해진 눈가를 급히 닦았다.


“…우리 형 되게 잘생겼다.”


달빛은 받은 그의 판판한 이마가 하얗게 빛난다. 그 위에 아로새겨진 짙은 눈썹. 성민은 생각한다.

형아는 화날 때면 눈썹이 빼쭉 올라가는데 그게 얼마나 성민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지 알어?

그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 시선을 따라 내려오면 그 곳엔 꽉 감긴 눈이 자리한다.

되게 무심하지만 그래두 단 둘이 있을 땐 다정해지는 이 눈이 너무너무 좋아. 가끔… 아주 가끔 나 말고 다른 사람 쳐다 볼 때 더 다정해져서 쬐끔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그래두 형아 까만 눈이 나를 담을 때면 내가 얼마나 설레는지 형아는 모르지?

성민의 눈이 조금은 아픈 기색을 띈다. 당장이라도 그를 깨워 부드러운 눈을 마주하고 싶다. 그 머루알 같이 까만 눈동자에 제 모습을 한 가득 담고 싶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민이는 형아 코도 좋아. 얼굴에 날렵하게 솟은 이 코 때문에 내가 형한테 반한거 형은 알어?

얼굴 정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코에 도둑질하듯 입술을 가져갔다. 반질반질한 콧망울에 마음을 담아 입맞춰본다. 재빨리 입술을 뗀 성민이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다 이내 영운의 입술을 아련하게 쳐다본다.

나쁜 입술. 형아 입술 때문에 내가 밤잠 설친 거 모르지? 형이 방송에서 장난으로 한 뽀뽀 때문에 나 혼자 많이 울었었는데…. 정수형이랑 한 키스 때문에 나 정말 많이 울었는데….

고개를 떨군 성민이 떨리는 손을 뻗어 영운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형아…. 성민이 형아 얼굴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죽는 건 무섭지 않은데 형아 얼굴 잊어버릴까봐 그게 가장 무서워.


“형….”


애달프게 불러본다.


“우리는 왜 안 될까?”


눈에서 따뜻한 물이 토독 그의 뺨 위로 굴러 떨어진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수 천번 수 만번 불러봐도 형은 왜 날 바라봐주지 않는 걸까.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억울함이 온 몸에 퍼진다. 왜 그와 저는 안 되는지. 왜 그는 저를 바라봐주지 않는 건지. 왜… 저는 그를 버리고 먼저 떠나야하는지… 너무나도 억울했다.
하늘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생각하며 성민은 조금 더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애써 다잡은 마음이 그의 얼굴에 조금씩 흔들리려 한다. 조금만 더 그와 함께 하고 싶다. 조금만 더 그를 가지고 싶다. 밑도 끝도 없이 밀려드는 욕심에 성민은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

형…. 성민이는…성민이는 이제 더 이상 형한테 사랑한다 말할 수 없어. 이제 성민이는 형과의 이별을 준비해야하거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방울의 속도가 점차 빨라진다.

언젠가 이 눈을 보면서 사랑한다 하고 싶었는데…. 그의 감긴 눈을 조심히 쓰다듬었다.


“…형.”


꽉 잠긴 목이 아프게 떨려왔다.


“…사랑해서 미안해.”


곪아 터진 심장이 요동쳤다. 순간 울컥한 성민이 재빠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미쳐 토해내지 못한 설움이 끈질기게 목구멍을 역류했다. 따끔따끔하게 심장에 박혀오는 그리움에 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는 여전히 아기처럼 고요히 잠들어있다. 영운의 볼에 제 볼을 부빈 성민이 조심스레 일어섰다.

잠시 그대로 멈춰 서 하릴없이 영운의 모습을 가슴 깊이 박아 넣은 성민이 씩씩하게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곤 아프게 미소 지었다.


“…형 잠든 새에 나한테 차인거야. 억울하지?”


자꾸만 눈물이 눈께를 넘어 흘러내린다.

이게 내가 형한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거든.

쏟아지는 눈물사이로 성민은 그렇게 웃어보였다.

 

 

 

 


토독 토독

며칠 새 지겹게도 쏟아지던 비가 그치려는지 빗방울의 세기가 점점 약해진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파랗게 밝아진다 생각하며 영운이 베란다 난간에 담뱃재를 툭하니 털었다. 아직 채 장마기운이 가시지 않은 축축한 난간 때문에 필터부분이 조금 젖었지만 상관안하고 그대로 입으로 넣어 한 모금 태웠다. 폐부 깊숙이 빨아들인 그의 입에서 한 숨과 함께 청회색 연기가 흘러나온다.


“형.”


그런 그의 어깨를 누군가 다정스레 친다. 뒤 돌아보니 려욱이다. 아직 막내티를 못 벗어난 녀석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저를 어려워해서 그런건지 몰라도 평소에는 눈도 못 마주치던 녀석이 갑작스레 살갑게 대하는 게 당황스러운지 영운이 눈을 크게 떴다.


“니가 왠일이냐?”

“에이~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오나요.”


참 나. 넉살스런 그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다시금 손을 입으로 가져대려는 순간. 자신의 긴 손가락 사이에 걸쳐있던 가느다란 담배가 다른 손가락에 의해 빠져나와 땅으로 추락한다. 담배를 목숨처럼 여기는 영운이 한껏 눈을 부라리며 려욱을 째리자 그가 애교있게 웃으며 맥주캔 하나를 건넨다.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까 대신 이거 마셔요? 응?”

“참 나…. 담배는 몸에 해롭고 술을 몸에 안 해롭냐?”

“그래두…. 담배보단 이게 더 낫잖아요? 안 그래요?”


양 손에 어울리지도 않은 맥주캔을 들고 밝게 웃는 려욱의 모습에 막내니까 봐주는 거다. 앞으론 국물도 없을 줄 알어. 단단히 으름장을 놓으며 캔 하나를 건네받았다.
피슉- 캔을 따자 특유의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칼칼한 탄산이 목구멍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어쭈… 옆을 보니 어린놈이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대낮부터 왠 술이냐?”

“에이… 술 마시는데 낮밤이 어딨어요.”

“어쭈. 어린놈이 아주 술꾼처럼 말하는데…”

“히히… 제가 술 서열 3위잖아요. 1위가 형. 2위가 규현이.”


우리 팀 막내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나사 풀린 사람처럼 헤헤 웃는 려욱을 보며 영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순진했던 것(?)들이 팀에 있으면서 아주 나쁜 것만 배웠나보다. 올챙이 개구리 적 생각 못한다고 제가 그랬던 건 기억도 못하는지 영운이 말세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맥주 한캔을 다 비운 려욱이 빈 캔을 거꾸로 들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톡톡 털어 마신다. 으아 기~분 좋다! 양 볼이 벌개져서는 난간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매달린 폼이 퍽 우습다. 영운은 아무 말 없이 손에 든 맥주만 비워낼 뿐이다.

낮이지만 조용한 동네풍경을 바라보며 려욱이 말한다.


“형. 요즘 근심있죠?”

“근심은 무슨.”

“에게~ 얼굴에 딱 써있어요.”


근.심. 또박또박 말하며 제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하는 이 맹랑한 어린 녀석에게 어떻게 겁을 줄까 고민하던 영운에게 뜬금없이 려욱이 말했다.


“형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고민? 무슨 고민.”

“쳇. 그건 형이 더 잘 알겠죠. 끝까지 멋있는 척 하는 것 좀봐.”


부드럽게 말하는 영운에게 려욱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토하는 시늉을 하자 이마를 꽁하고 때리며 그가 말한다.


“멋있는 척이 아니라 원래 멋있는거야. 이 녀석아.”

“그러지말구요. 함 말해봐요. 형 고민. 혹시 알아요? 풀어질지.”


술은 사람을 솔직하게 한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신 맥주 한잔의 힘일까. 아니면 대책 없는 맹랑한 어린 녀석의 힘일까. 영운이 씁쓸하게 말한다.


“글쎄…. 나한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일지 가장 고민이야. 요즘은.”


그리 말하며 또 주머니에서 가느다란 담배 한 개피를 꺼냈다. 돛대였다. 쓸모없는 빈 곽을 구겨버리며 라이터를 찾는데

철컥-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려욱이 불을 짠하고 대령한다. 의외였는지 설핏 웃은 영운이 움켜진 손에 담배를 가져다댄다. 곧 청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한 모금 빤 그가 담배를 거둬내며 묻는다.


“너 담배도 하냐?”

“예? 아…아니에요! 종운이 형이 자주 피길래…”


아… 종운이 새끼…. 어쩐지 그 골초자식이 요즘 라이터를 안 가지고 다닌다 했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맑게 웃는 려욱을 보고 한마디 한다.


“니가 종운이 꼬붕도 아니고 무슨… 앞으론 하지 마라.”

“에이…”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뭐. 그가 작게 중얼거린다. 그러다 버릇되면 골치 아프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리 말해줬다. 곱게 쥐고 있던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은 려욱이 조심스레 말한다.


“형. 제가 뭐 하나 알려드릴까요?”

“뭔데….”

“있잖아요. 무지개 끝에는 보물이 있대요.”


그게 뭐 비밀거리인지 진지하게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그게 뭐….”

“아이참. 진짜라니까요!”

“그래. 뭐, 그렇다고 치자 근데?”

“그니까 요정들이 보물을 숨겨 둘 때가 없어서 무지개 끝에다 숨겨 놨다구요.”


그래서?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녀석이 눈을 빛내오며 마주한다.


“무지개 끝에 가면 형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진지한 녀석의 말이 가슴에 와 쿡 박혔다. 그런 영운을 뒤로 하고 려욱이 베란다 문을 나서며 그런다.


“이제 곧 무지개가 뜰 것 같기도 한데…. 함 찾아보는 건 어때요?”


파이팅! 그가 문을 닫으며 작게 소리친다. 자식 유치하기는. 발랄하게 뛰어가는 려욱을 보고 뒤로 돈 영운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가 바닥으로 툭하니 떨어진다.

어느덧 비는 그쳐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그 위로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듯 하양, 검정, 회색빛이 어우러진 비둘기떼가 날아다닌다.

쪽빛의 하늘이 빛나고,
습기가 적당한 가벼운 공기가 코 끝을 휘감고
부드러운 바람이 머리칼을 쓰다듬어오고
키 큰 나무들의 푸르른 잎이 풍경소리마냥 사락 소리를 내며
그 위로 정말 믿기지 않게도 어릴 적 동화 속 에서나 보았던
붉은색, 노란색, 녹색, 푸른색이 일렬로 정렬된 무지개가
곱게 휘어져선 눈앞에 웃고 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은 영운이 뺨을 살짝 꼬집어본다.

꿈이 아니다.
이건 …현실이다.

 

 

 

상황이 지독하리만큼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신을 찾는다고 했다.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신에게 제 모든 것을 맡긴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영운은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려욱의 그 얼토당토않은 말이 가벼운 거짓말이란 것도, 사람들이 그저 호기심에 지어낸 우스운 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작은 말에나마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다. 


“에이. 이거 형이 든다니까 그러네.”

“형. 척 보기에도 더 힘세 보이는 내가 들게.”

“아니라니까. 내가 키가 작아서 그렇지 몸은 더 다부져.”

“척 봐도 내가 더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키도 훠얼씬 커!”

“아니야! 이래 뵈도 나 태권도 삼단이야!”

“어유~ 그랬어요? 쳇. 삼단은 무슨. 요즘 태권도 삼단은 노란띠만도 못해.”

한적하리만큼 조용했던 거리가 두 사람이 만든 소음으로 가득 찬다. 익숙한 두 목소리에 영운이 관심을 가지고 곁눈질로 쳐다봤다. 두 사람은 장본 짐을 누가 들지 티격태격하는 중이다. 주위를 살피며 눈치를 본 작은 사람이 냉큼 큰 사람의 손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뺏어든다. 그러더니 단숨에 줄행랑을 치며 뛰어간다. 그 뒤를 큰 녀석이 다다다 �아가다 둘다 지붕위에 닭 �던 개처럼 자리에 그대로 굳어진다.


“우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려 탄성을 짓는다. 어느새 같은 곳을 본 두 사람이다. 큰 녀석이 작은 녀석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그 다정한 모습에 땀 때문에 따가운 눈을 가늘게 떠 힘을 주니 만나기 부담스러운 두 녀석 성민과 시원이었다.


“형. 정말 예쁘지?”

“응… 정말로 예쁘다.”


어느새 무지개에 넋을 잃고 구경하는 둘이다. 그런 둘의 시선 끝에 멀리서 미친 듯 달려오는 한 남자가 잡힌다.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무섭도록 달려오는 남자를 보며 슬슬 뒷걸음치던 시원과 성민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영운이형?

그 쪽에서도 성민과 시원을 발견했는지 조금씩 걸음이 느려진다. 어느새 다가온 영운을 보고 시원이 잔뜩 날을 세우며 성민 앞을 가로 막았다. 으르렁거리는 젊은 살기가 살갗에 그대로 느껴진다. 그 서투른 혈기에 자조 섞인 웃음을 지은 영운이 도발하듯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둘 사이의 무시무시한 기 싸움에 성민이 민망한 듯 시원의 팔을 잡으며 저지하자 그 모습을 힐끔 본 영운이 픽 웃으며 그대로 둘을 지나친다. 잠시 얽혀든 눈빛이 사뭇 가슴 시렸다.

그렇게 지나쳐가려는 영운의 옷깃을 성민이 강하게 부여잡았다. 시원아 미안한데 자리 좀 잠깐만 비켜줄래? 성민의 눈이 다급하게 전해왔다. 그 아련한 눈빛에 잠시 숨을 죽인 시원이 바득바득 이를 갈며 영운을 강하게 쏘아본 후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조금 긴장한 듯싶다. 무심하게 비껴선 그가 삐뚜름한 시선을 던진다.


“왜?”

“……”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그는 끝까지 독했다. 매정하게 뒤돌아서는 영운의 손끝을 성민의 더운 손이 마주잡았다. 그 작은 손길에 영운이 몸을 틀어 완연하게 눈을 마주한다. 이제야 서로 마주하게 됐다. 성민은 망설였다. 전기뱀장어를 만진 것 마냥 손끝이 저릿저릿 했다. 휭 하고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만 들리는 공간 안. 어찌보면 단호한 눈빛으로 성민이 차갑게 말을 내어놓았다.


“형, 우리 헤어져요.”


뭐? 영운의 눈이 커진다. 작아진 심장이 떨어져 바닥을 뒹군다. 마주 본 성민의 얼굴은 너무나도 태연스러워 헤어지잔 말보단 그 말에 맞춰 뛰기 시작하는 제 심장이 더 당황스럽다. 손바닥을 스멀스멀 채워오는 더운 땀이 끈적거린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이상스런 기분이 몸을 감싸왔다.


“……뭐?”


한참 후에야 트인 말문이 뱉어낸 말이라곤 어이없게도 반문이었다. 납득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해 줄 말이라곤 어리석게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게…니 소원이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어놓는 영운의 표정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형. 내 소원 하나만 들어줄래요?

머릿속으로 성민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게…니 소원이냐고 물었어.”


이를 악물고서 영운이 이죽대듯 말했다.

-꼭 들어주겠다고 약속해요.

몽롱한 정신 속에 달콤한 목소리가 잘게 부서진다. 당황스런 표정이 이내 비웃음으로 바뀐다. 하하. 의미 없는 웃음을 지은 영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말을 내어놓는다.


“…그게 니 소원이라면야.”

“……”

“들어주는거야 일도 아니지.”


지독한 그에게 밤을 지새워 준비한 아픈 이별의 말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쉽게 흘러나오는 그 말에 성민의 손이 툭하고 떨어졌다. 잔인하게 틀어박히는 목소리에 입술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억누르며 성민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형…나 하나만 묻자.”


그가 고개를 든다.


“우리… 함께했던 시간 동안 날 좋아했던 적이 단 1분이라도 있었어요?”


부풀어 오른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깔딱거린다. 묵직한 침묵이 둘 사이를 가른다. 긴박한 호흡만이 잔 여운을 남긴 채 공기에 섞여 떠다닐 뿐이다.

뜨인 눈이 짠물에 아려온다. 그의 눈이 반짝 빛난다 생각했을 때 그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위로 흔들린다.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의 모습이 하얗게 흐려진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인데 전혀 기쁘지가 않다.


“그래…그거면…그거면 됐어요.”


아릿한 고통이 온 몸을 관통한다. 아직 아물지도 못한 생채기는 찢겨 발겨졌다. 목숨처럼 지녔던 가시는 이제 도려내졌다.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그의 고개짓은 단 하나의 위안이고 안식이다.

이제 성민이는 맘 편히 갈 수 있어….


“형….”


애절하게 영운을 부른 성민이 그의 목을 감싸 안고 그대로 입을 맞춰왔다. 밀어붙이듯 입을 맞추곤 살며시 아랫입술을 쓰다듬는다. 뜨거운 성민의 입술이 그대로 느껴진다 생각했을 때 가볍게 머문 입술이 떨어진다. 그렇게 짧은 입맞춤은 끝나버렸다. 목덜미를 감싸오던 손이 풀어지며 멀어진다. 허한 공간을 눈물 섞인 성민의 씩씩한 말소리가 대신 채운다.


“…이건 마지막 선물로 받아둘게요.”


그대로 돌아서서 이별이다. 작은 어깨의 그는 부서질 듯한 모습을 하곤 떳떳이 걸어갔다. 쓸쓸한 공기만이 주위를 먹어간다. 성민과 저의 짧은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마지막 소원이라는 얄팍한 구실로 이뤄진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지긋지긋한 여름날의 반토막을 함께한 그와 이제 곧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트여진 눈에 경련이 인다. 얼굴이 뜨끈하다. 눈가를 지긋이 눌러보니 축축한 물기가 손가락 끝에 묻어나온다. 비가 오나 싶어서 하늘을 쳐다봤더니 얄밉게도 맑다. 그제서야 제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성민.”


작게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멀어진 그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성민---!!!!!!”


목이 터져라 외쳐보아도 이미 돌아선 그는 아무 응답이 없다. 반대방향으로 돌아선 영운이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바람을 타고 날라간다. 이성민. 나 지금 도망가는 거야. 알아? 비겁한 제 모습에 영운은 울부짖었다. 짐승같은 괴성을 내지른 영운이 그대로 제 풀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저 편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건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은 아주 솔직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편하지 않다. 분명 귀찮았었는데 귀찮지 않다. 분명 부담스러웠는데 부담스럽지 않다. 분명 싫었었는데…싫지 않다. 떠나보내면 편할 것이라 생각했는데…편하지 않다

그가 수줍게 입맞춰왔던 아랫입술이 조금씩 떨려온다. 그가 나에게 사랑한다 고백했던 빌어먹을 손바닥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하얀 물고기가 뛰어놀던 넓은 바다는 사라진지 오래다. 주먹을 움켜쥐어 봐도 잡히는 건 오로지 휑한 공기뿐이다. 그는 떠났다. 나는 여기 홀로 남았다.


“…씨발.”


나오는 것이라곤 낮은 욕지기다. 네 멋대로 되라 올려다 본 하늘엔 비웃듯 잔뜩 휘어진 무지개만이 반짝 눈을 빛내올 뿐이다.

 

 

 

 

 


제 8화

날짜변경선

 

 


라디오를 끝내고 돌아온 동네는 어둠에 잠겨있었다. 습기 가득한 무거운 공기가 정수와 혁재의 어깨를 내리 눌렀다. 피곤한 몸을 가누며 벤에서 내리자 한차례 씻긴 깨끗한 공기가 코를 타고 들어와 머리를 맑게 해준다. 평소와 달리 조용한 숙소 앞을 보며 정수가 나른한 듯 기지개를 켰다. 한창 장마기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은 숙소 앞에 팬들이 없었다. 매일같이 숙소 앞에서 밤을 새는 정성이야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방송에서 실수해 매니저한테 잔뜩 깨지고 온 날에는…. 생각하기도 싫은 광경에 혁재가 몸서리치자 정수가 공기 중으로 손바닥을 뻗으며 그런다.


“…비 그쳤네.”

“오늘 오후쯤에 그쳤어. 무지개도 떴었는데 형 못 봤어?”

“진짜? 아깝다. 그러고 보니 이제 장마도 끝이네.”

“…응.”


지겹도록 길던 장마가 드디어 끝났다. 하지만 이번 장마는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영원히 장마였으면 좋겠어…. 혁재가 정수에게 물었다.


“형. 오늘 며칠이야?”

“오늘? 8월 31일”

“…오늘이 8월의 마지막 날이구나.”

“그러게….”


벌써 8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성민과의 이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꿋꿋했지만 그의 병이 점점 깊어지고 잇다는 걸 멍청이가 아닌 이상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시간은 장난꾸러기여서 사람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 일초라도 빠르게 지나가주기를 바랄 때에는 발목에 묵직한 납덩이를 단 것마냥 너무나 느리게 흐르지만, 일초라도 느리게 지나가주기를 바랄 때에는 손바닥에 올려진 바닷물처럼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너무나 쉽게 지나쳐간다. 그 우스운 양면성에 철저히 유린당하는 걸 알면서도 우린 그 시간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고 다시 태어난다. 시간은 매 시간 죽지만 매 시간 다시 태어나 운명에 인도한다. 그건 인간이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이고 이치였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손가락으로 숫자 놀음을 하던 혁재가 분한 듯 차례대로 굽어진 손가락을 뚫어져라 보다 이내 시선을 하늘로 옮긴다. 까만 하늘에는 구름 한 점없다. 그 흔한 별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검은 구름이 꾸역꾸역 몰려와 노란 달을 속에 품었다. 한참 동안 민숭한 하늘만 바라보던 혁재옆에 정수가 나란히 선다.


휘익-휘익-

얇은 줄이 공중을 가르며 마찰하자 그 소리가 공기를 타고 정수와 혁재의 귀에 스며든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걸어가 봤더니 새벽 1시가 다 되가는 야밤에 영운이 쉼 없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

엥? 당황한 혁재는 멀뚱히 그 앞에 멈춰서버렸고, 더 당황한 정수는 영운이란 것을 눈치 채자마자 총총히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시선도 채 주지 않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 그를 보고 영운이 그저 허탈하게 웃었다. 그 날 이후로 많이 어색해져버린 둘이었다. 하긴…지금은 슈퍼주니어 내에서 안 어색한 멤버 찾기가 차라리 더 빠를 것이다.

‘강인이와 빨리 친해지기 바래’ 라도 찍어야 하나? 우스운 생각에 혼자서 비실비실 웃던 영운이 얼음땡이라도 하듯 경직되어있는 혁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유일한 지원군인 정수가 사라지자 그 미묘한 어색함에 삐질삐질 파리약 먹은 병아리마냥 웃던 혁재가


“하…하이.”


하며 오른 손을 들어 보인다. 픽, 웃던 영운이 순간 손잡이에 힘을 주자 빠르게 돌아가던 줄이 그대로 멈추었다. 탁-하고 바닥에 부딪치며 동시에 고요해진다. 나름 상황을 피해보고자 했던 말인데 오히려 영운이 반응을 보이자 더더욱 당황한 혁재였다. 아하하…나는 씻으러 가볼까나…. 괜한 능청을 피우며 재빨리 사라지려는 그를 영운이 무겁게 불렀다.


“혁재야.”

“으…응?”


부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자상하게 미소를 지은 그가 벤치에 앉아선 비어있는 옆자리를 톡톡 두드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미소였다. 그 미소에 이유 없는 어색함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아 따라 웃어버린 혁재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앉자마자 훅- 끼쳐오는 술 냄새와 땀 냄새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어디 가서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온 모양이다. 사냥개 같은 눈빛을 하곤 주위를 살펴 본 혁재가 그럼 그렇지…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처참하게 널부러진 줄넘기 옆에 빈 소주병이 하나, 둘, 셋… 자그마치 세병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벤치 뒤 수풀을 뒤적거리던 그가 히히 웃으며 초록빛 소주병 두개를 꺼낸다.

흠칫. 경악하는 혁재 무릎팍에 하나를 놓아두며 미안한데 종이컵이 없다. 걍 불어. 라며 친절하게 뚜껑까지 따준다. 얼굴에 조금만 가까이대도 냄새 때문에 질색하는 혁재와 상반되게 꿀꺽 꿀꺽 맛나게 삼킨 영운이 으아…. 야수 같이 내뱉곤 거칠게 입가를 문질러 닦는다.


“혁재야.”

“왜.”

“형이 질문 하나만 하자.”


잔뜩 풀린 말투와는 다르게 진지하게 눈을 빛내오며 그가 묻는다. 손톱만 깔짝대는 그에게 몸을 길게 주욱 늘리며 혁재가 편하게 말한다.


“말해. 뭐, 언제는 내 허락받고 했수?”


듣는 이까지 편하게 해 주는 그 말투에 기분좋게 웃으며 혁재의 머리털을 사정없이 부빈다. 후…. 심호흡을 한번 한 번한 영운이 멍하니 먼 산을 응시한다. 나지막히 새어나오는 숨소리. 팽렬하게 긴장된 공기사이로 잠시 뜸을 들인 그가 까만눈으로 혁재를 가만히 응시한다.


“잊는 것과 잃는 것. 너라면 뭐가 더 슬프겠어?”


에? 당황스러운 그 말에 혁재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전혀 쌩뚱맞은 소리였다. 뭐라는 거야…이 양반이. 잔뜩 씹퉁대며 아니꼽게 쳐다보자 그런 눈빛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눈이 아련하다. 맥 빠지는 눈빛에 에라 모르겠다 양손으로 곱게 소주병을 쥔 혁재가 거침없이 소주를 들이킨다. 그 모습에 어? 하며 영운의 눈이 커진다.


“너 임마 술 안 마시잖아.”

“이씨. 다들 미쳐있길래 나도 한번 미쳐볼라 그런다. 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윽. 가슴속으로 겁내 뜨거운 용암이 흘러 들어가는 것 같아 절로 이상한 의성어가 나온다. 캬아. 시원하게 뱉어낸 혁재가 삐딱하게 소주병을 한번 꼴아보곤 뭐, 별거 아니네. 하며 내색한다. 영운이 웃는다. 알딸딸하니 취기가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생전 처음 먹은 술이 이딴 촌 동네에 술 냄새, 땀 냄새에 쩔은 남자와 함께라니.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다 생각하며 혁재가 씨익 웃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나보다.

완전히 아빠다리를 하고 편히 앉은 혁재에게 아무 말 없이 술병만 비우던 영운이 묻는다. 아무 감정도 섞인 것 같지 않아 보였지만 그의 말투엔 그리움과 아픔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었다. 혁재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쓸쓸했다.


“그럼 거짓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거짓이 되면 지금 보단 덜 아플까?”

“좀 알아듣게 말해라. 나 전교 꼴등이었던거 형도 알잖아.”


피식 웃어보인 영운이 다시금 병을 입에 담는다. 술에 취한 제 착각일까? 고개를 뒤로 꺾은 그의 눈에서 반짝 빛나는 무언가 떨어진 것 같다고 느낀 혁재였다.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한다.


“…그 앨 잊는다는 건 거짓이고 그 앨 잃는다는 건 현실이야.”


바라본 영운은 텅빈 허수아비처럼 그렇게 앉아있을 뿐이다. 텅 비어버린 눈동자가 후끈하게 아파왔다. 아릿했다. 눈가도, 심장도, 그 이름도….

그의 쓸쓸한 말이 혁재의 머릿속을 세게 강타했다. 술 속에 잠식되어있던 몸이 한 순간에 해방된 기분이다. 시원하다 생각했던 공기가 납덩어리처럼 무겁게 내려와 가슴을 짓누른다. 분명 영운은 승리자였고, 저는 패배자였다. 알면서 시작한 사랑이고, 보내줄 것을 알면서도 시작한 사랑이었다. 괜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 치기어린 질투심의 대상은 영운도, 성민도 아닌 바로 제 자신이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제 자신이 멍청한 종이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차라리…차라리 거짓과 현실이 바뀌었으면…그랬으면 안 아파도 되는데….”


고개를 숙인 영운의 어깨가 격하게 떨려온다. 눈을 감아도 잔잔히 떠오르는 잔상은 단 둘이었다. 어둠이 까마득히 내려앉은 공간 안에는 나에게 헤어짐을 말한 그가 있고 그에게 헤어짐을 당한 내가 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영상은 물안개처럼 불안정하고 희미하며 허무하다. 이제와 감당하기엔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어깨위로 든든한 응원의 손길이 닿는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혁재로서는 최선의 위로방법이었다. 영운은 그런 혁재가 눈물나게 고마웠다.

어느새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선 영운이 볼품없이 버려진 줄넘기를 다시 주워든다. 짙은 눈썹이 잠시 꿈틀거렸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익숙하게 발을 줄에 거는 영운은 보며 혁재가 물었다.


“형. 근데 야밤에 웬 줄넘기야?”

 

-야밤에 웬 줄넘기냐?

아련하게 남아있는 기억 끝에서 외롭게 줄넘기 하던 그에게 예전의 저는 이렇게 물었더랬다.

-울고 싶어서요.

그는 망설이듯 대답했다.

-그럼 울면 되잖아.

무심한 자신이 퉁명스레 말했다.

 

멍하니 서있는 영운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혁재가 뒤돌아 숙소로 걸어 들어가는데

순간-


“울 수 없어서.”

-울 수 없어서요.


그가 그리고 그의 기억속의 그가 동시에 대답한다. 혁재는 돌렸던 고개를 바로잡고 집으로 향했다. 뒤돌아봤을 때 얼핏 스친 그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울고 있었다.

 

 

 

젖은 머리에서 폴폴 풍기는 샴푸 냄새가 개운했다. 흰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자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 모습이 꼭 비 맞은 강아지가 몸을 터는 것 같아 재미있다. 입가에 개구진 미소를 띤 동해가 제 방으로 들어가려다 멈칫한다. 맞은편에 있는 혁재 방 불이 아직도 켜져 있다. 평소 같았으면 서로 장난치느라 집안을 개판 오 분전 꼴로 만들어 놔야 정상인데, 정신은 어따 빼먹은 건지 멍해져서는 씻고 바로 제 방으로 줄행랑 쳐버린 혁재였다. 피곤해서 그런가…했는데 불 켜놓고선 절대 잠못자는 녀석을 아는지라 이상하게 생각한 동해가 살금살금 몰래 다가가 문을 살짝 열었다.

문 쪽으로 등을 지곤 침대 위에 걸터앉은 혁재가 뭔가를 북북 찢고 있다. 그의 마른 등판에 가려져 뭘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 같은 걸음새로 다가간 동해가 힐끔 쳐다보니 헉- 멀쩡한 공책을 가위로 온통 난도질을 해놨다.


“야…. 너 왜 그래.”


공포영화라도 본 듯이 불안한 목소리로 묻자 열심히 누더기 같은 하얀 종이를 조물락 대던 혁재가 짠-! 하며 밝게 웃는다. 그의 손엔 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종이 뭉탱이가 들려있었다. 꾹꾹 눌러 뭉쳐 동그래진 종이위에 하얀 종이를 뒤집어 씌어서 그저 칭칭 묶어 놓은 아주 아주 이상한 물체.

잇몸까지 내보이며 자랑스럽게 웃는 그를 보며 검지손가락을 들어 머리 옆에서 빙글빙글 돌려본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제가 만든 쓰레기를 뿌듯하게 바라보더니 옆 책상에 놓인 수성매직으로 직직 거의 낙서수준의 얼굴을 그린다. 코도 삐뚤 입도 삐뚤 눈도 삐뚤 거울을 보여줄까 꼬마눈사람~ 괜시리 동요가 생각나 흥얼거리던 동해가 괴물 같은 인형(?)을 보곤 토하는 시늉을 한다.


“니가 사람이냐?”

“왜?”

“나한테 이렇게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겠다.”

“그치? 완전 잘 만들었지?”

“지랄을 해라. 이건 뭐 쓰레기도 아니고. 에휴.”


더럽다는 듯 손가락 끝을 이용해 들어 힐끔 쳐다 본 동해가 에이씨. 하며 훽 던져버린다. 아-! 왜 그래-! 혁재가 격하게 소리치며 후다닥 달려가서 앙 하고 잡아온다. 그 모습이 잘 훈련된 진돗개 같아서 동해는 저도 모르게 쿡- 하고 웃는다. 맞다…쟤 이혁구였지. 꼬리라도 있으면 바짝 세울 표정을 하곤 혁재가 침대위로 기어 올라온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더니 동해를 보곤 아! 짧은 탄성을 내뱉는다. 왜…왜 그래. 불안해진 동해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자


“동해야♡”


어울리지 않는 하트까지 달고는 그가 부른다. 살랑살랑. 눈앞에 있는 혁재의 꼬리뼈가 금세라도 쑤욱 자라나 좌우로 격하게 꼬리를 흔들 것만 같다. 아! 말로 하라거! 소리를 버럭 지른 동해가 방심한 차에 그가 입고 있던 빨간 후드티의 목께에서 무언가 쉭 하고 빠진다. 얼라? 당황해서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니 제 후드티를 조절하는 빨간 끈을 든 혁재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서 있다.


“나 이거 주라.”

 

 

 

 


결국은 빼앗겨버린 끈이었다. 물론 혁재한테 하나 사 주겠다는 다짐은 받아냈지만 영 배알이 꼴렸다. 계속해서 씹퉁대는 동해를 뒤로 한 채 계속해서 열중하던 혁재가 아싸! 하며 통쾌한 비명을 지른다. 시선을 돌려 옆을 쳐다보니 하얀 인형의 목에 붉은 줄이 엉성하게 매어져있다. 괴물딱지 같은 얼굴에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인냥 목이 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인형은 한편의 호러무비였다. 아이같이 너무나 좋아하는 혁재를 한심한 듯 쳐다보던 동해가 불량스럽게 물었다.


“그거 어따 쓸건데?”

“이거?”


동해의 질문에 인형을 들어보인 혁재가 잘봐…. 하며 창문을 연다. 설마 그 끔직한걸 던지려는 건 아니겠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옆에 �아간 동해의 눈을 한번 마주친 혁재가 그 줄을 처마밑에 꼼꼼히 고정한다. 그제야…


“아….”


동해의 입에서 긍정의 음성이 터져 나온다. 그런 동해의 반응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혁재가 다 고정했는지 손바닥을 탁탁 털곤 말한다.


“접때 책에서 봤는데 일본인들이 비 오지 않게 기원하는 인형이래.”

“데루데루보즈(てるてるぼうず).”


동해의 입에서 익숙치 않은 일본어가 흘러나왔다. 그 생경한 언어에 엥?! 토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뜬 혁재가 헛소리냐는 듯 쳐다보자 동해가 무심히 그런다.


“니가 만든 거. 데루데루보즈.”


데루데루보즈는 맑은 날을 기원하며 처마 밑에 걸어두는 인형을 뜻한다…고 몇 년 전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얼핏 스쳐지나간다. 그 말이 이거였어?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던 혁재가 대단하단 눈빛으로 동해를 쳐다보자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인형을 응시한다. 붉은 줄을 주욱 타고 내려오며 관찰하는데, 어? 동해의 눈이 커졌다.


“이혁재. 너 왜 이거 거꾸로 달았어?”


그 말에 따라 창문으로 내다보니 똑바로 서 있어야 할 인형이 거꾸로 뒤집어져있다. 맑은 날을 기원하는 인형이 뒤집어지면 다음 날엔 비가 온다고 했다. 당황해서 묻는 그 말에 혁재가 창틀에 몸을 기대며 그런다.


“난 지금 비가 필요하거든.”

“비? 왠 비?”

“…차라리, 차라리 장마가 계속 되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거든.”


그의 입가가 일자로 벌어지며 씁쓸한 미소를 담는다. 텁텁해진 입이 갑작스레 쓰게 느껴졌다. 니코틴생각이 간절했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낸 동해가 담배곽을 혁재쪽으로 넘기며 권한다. 그도 담배생각이 간절했나보다. 가느다란 담배를 담배만큼 가느다란 손가락사이에 끼우곤 그가 불을 붙인다. 어두웠던 밤하늘이 순간 번쩍이며 밝아진다. 자동차의 라이트처럼 양 쪽에 밝게 빛나는 붉은색 동그라미를 바라보던 혁재가 창틀에 재를 툭하니 털고 묻는다.


“동해야.”

“응?”

“성민이….”

“…응.”

“눈 보고 싶대.”


그 말에 질문한 사람도, 대답한 사람도 아무 말이 없다.

-눈 보고 싶은데.

스쳐가는 바람인 듯 자신 없게 말하던 그날 밤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혁재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 그의 뒤에서 힘이 없는 자신은 그저 가슴속으로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불쌍하고 가엾은 성민의 바램을 이루어 주기엔 혁재는 제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재고있을만큼 똑똑하지 못했고 그럴 능력 또한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동물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이게 전부였다. 그게 비록 이따위 유치한 인형질이라도 성민을 위해서라면 상관없었다.


“영원히 장마처럼 비가 와버렸으면 좋겠어. 장마가 끝나면 가을이 오는 거잖아.”


그러면…성민이 와의 이별도 점점 다가오는 거고. 차마 뒷말은 내뱉지 못한 혁재가 한숨과 함께 흰 연기를 밤하늘에 띄어 보낸다.


“계속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비만 오다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겨울이 와서 내리던 비가 꽁꽁 얼어버리면 그게 눈이잖아. 그러면 성민이 소원도 이루어지는 거고 내 소원도 이루어지는 거니까.”


말도 안돼는 소리였지만 나름의 위안을 얻은 혁재가 창틀에 담배를 비벼 끄곤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시트에 얼굴을 묻는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동해가 천천히 담배를 눌러 끈 후 잠시 아련한 손길로 인형을 만졌다.
흐물흐물하게 녹아 없어져도 상관없으니 제발 비가 오기를…. 그는 간절히 소원했다.

 

 

 

 


새벽은 지나치리만큼 고요하다. 그 적막감을 깨고 집으로 들어선 것은 영운이었다. 시끌벅적했던 낮과는 달리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은 느낌이 새로웠다. 가슴 한 구석에 수숭 구멍이 나서 바람이라도 들어오는 것처럼 허전했다.

오랜만에 한 운동이어서 그런지 잔뜩 굳어있던 몸이 삐걱 삐걱 소리를 내며 노곤하다 외친다. 당장 샤워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 앞으로 다가가는데 반쯤 열린 화장실 문 사이로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나온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기침소리가 텅 빈 공간에 작게 울려 공기 중으로 스며든다. 언뜻 본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 누구야… 하며 문을 벌컥 연 영운은 전기에 감전 된 듯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운의 발치에는 변기통을 새빨갛게 물들여놓은 성민이 차가운 타일을 부여잡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온 몸에 몰아치는 섬�한 예감에 조심스레 성민의 등을 잡아 돌리자 이미 쓰러진지 오래였던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직접 눈으로 마주한 끔찍한 광경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신을 잃은 성민을 끌어안았다. 세상에… 온 몸에 열이 절절 끓었다. 지독한 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져있었다. 순간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삼킨 것 마냥 마구 열을 발산해내는 성민의 가는 몸뚱이를 끌어안고 영운이 다급하게 외쳤다.


“조…종운아-! 희철아-!”


그 짐승소리 같은 처절한 외침에 막 잠에서 깨 부스스한 모습의 멤버들이 화장실 앞으로 몰려왔다. 약간은 쉰 듯한 그 목소리에 심장이 관통을 당해 반으로 쪼개진 것 같았다. 패닉상태가 되어버린 영운은 무방비했다. 하지만 죽은 주인을 지키는 충견마냥 성민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느껴지는 열기에 놀란 종운이 서둘러 119에 신고하려 전화기를 들자 어느새 뛰쳐나온 희철이 저지한다.


“119 뜨면……안돼. 차라리 매니저형 차가 더 빠를거야.”


그러더니 소파 옆 콘솔에 얌전히 올려진 차키를 거칠게 낚아채곤 나르듯 밖으로 나갔다. 가냘픈 그를 품에 안은 영운이 침착하게 희철의 뒤를 따른다. 겉으론 태연해 보였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공포와 고통으로 질려있었다. 짙은 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최악이었다. 벌써부터 울먹이는 막내들을 뒤로한 채, 희철과 영운이 병원으로 향했다. 이유는 저번과 같았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혁재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힘을 잃은 무릎이 바닥에 거칠게 찍혔지만 상관 할 새가 없었다. 혁재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피가 번진 입, 축 늘어진 손과 발. 부들부들 떨리던 작은 몸뚱아리. 열에 들떠 정신을 잃은 성민의 표정보다도 혁재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코를 강하게 자극하는 피 향, 여기저기서 울음을 토해내는 멤버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숙소보다 정작 혁재의 숨을 막히게 하는 건 그의 표정. 성민을 품에 안은 영운의 표정이었다.


-잊는 것과 잃는 것. 너라면 뭐가 더 슬프겠어?

그의 허망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그럼 거짓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거짓이 되면 지금 보단 덜 아플까?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된다.


“동해야…”


옆에 똑같은 눈을 하고 무너져있는 제 친구의 이름을 작게 불러본다. 하지만 그는 대답이 없다.
혁재는 공중에 이야기하듯 중얼거린다.


“…잊는 것과 잃는 것. 너라면 뭐가 더 슬프겠니?”


-그 앨 잊는다는 건 거짓이고 그 앨 잃는다는 건 현실이야

막막한 영운의 표정과 더 없이 쓸쓸했던 그 말이 오버랩 되어 보여 진다.


후두둑-

때 마침 창밖으로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진다.
늦봄. 꽃떨어지듯 무겁게 떨어진 빗방울이 혁재가 매달아놓은 작은 인형의 얼굴에 하나 둘 새겨진다.
장난스레 그려놓은 인형의 눈이 빗물에 번져내려간다.
마치 우는 것 마냥.

 

 

 

 

 

 

 

제 9화

부탁

 


눈앞이 흰 연기 사이로 투영한 듯 뿌옇다.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는 형상은 온통 흰색 일색이였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군데군데 네모지게 음영이 들어간 화이트톤의 깨끗한 천장이었다. 처음 보는 생소한 풍경에 눈을 깜박이자 그 위로 엄마얼굴이 비춰진다.


“성민아…정신이 드니?”


얼굴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얼굴이 다급했다. 보고 싶어 남 몰래 눈물도 많이 지게 했던 엄마의 얼굴이었다.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구분이 되지 않아 그저 눈만 껌뻑였다. 갈라터진 입술새로 미약한 숨을 토해내며 그가 말했다.


“…엄…마?”


성민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입술 새로 미지근하게 새어나온 첫 음절은 원망에서 이내 슬픔으로 파랗게 뜨거워져갔다. 성민의 눈빛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성민은 부모님께 이런 약해빠진 모습 따윈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 얼핏 스쳐지나갔던 원망이란 두 글자는 이제 곧 떠나버릴 못난 불효자에 대한 회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정이란 그리 쉽게 무시할 것이 못되었다. 제 어미의 아린 눈을 마주하자 못된 마음은 어느새 파도에 쓸리듯 저 멀리 간지 오래다. 성민의 눈동자가 까맣게 퇴색되어 감에 따라 희철은 그 모든 사실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래…엄마다. 이 놈아. 너 어쩌려구 이래. 이 놈아. 응? 우리 애기. 어쩌려구 그래.”


성민의 어미는 여자답게 가냘픈 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똑 부러질 듯 강단있는 여성이었다. 처음 보는 그녀의 약한 모습에 성민의 천천히 눈을 뜨며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제 등을 서럽게 치며 울먹이는 제 어미의 손을 부여잡은 성민이 말갛게 웃어 보인다. 그 마저도 투명한 산소호흡기에 가려져 잘 안 보인다. 힘없이 웃은 성민이 쉬어빠진 목소리로 작게 이야기한다.


“…엄마…나 괜찮아.”


그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녀다. 어느새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힌 성민이 에이…울지마라. 하면서 애처롭게 웃는다. 불쌍한 내 아들. 성민의 마른 손을 꼭 부여잡은 그녀가 울먹이며 말한다.


“…성민아, 엄마랑 가자. 응? 엄마랑 살자.”


울음 섞인 애처로운 목소리가 한숨처럼 흐뜨러진다. 성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직은 안돼. 나…아직 할 일이 남았거든.”

“니가 무슨 할 일이 있다 그래…. 응? 성민아… 내 아들. 엄마랑 같이 가자. 응?”


성민은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런 제 아들의 모습에 그녀가 쓰러질 듯 통곡한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못난 후회가 눈으로 밀려들어와 입으로 토해진다. 그 애끓는 장면에 병실안에 있던 희철과 영운이 고개를 돌린다.

제 무릎에 엎드려 우는 그녀의 작은 어깨를 부드럽게 매만지던 성민이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쉰다.


“엄마…이러지 마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애틋함이었다. 하지만 성민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었다. 여전히 심하게 요동치는 어깨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성민이 어깨에서 요동치는 부드러운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그런다.


“엄마…성민이 곧 돌아올거야. 뭘 그리 걱정해.”


그 말에 엎드려 떠나가라 울던 그녀가 성민의 목을 부여잡고 늘어진다. 제 앞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작아 보인다. 이 세상, 다신 보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가슴 가득히 성민을 껴안은 그녀의 눈물이 성민의 머리맡에 툭툭 떨어진다. 가만히 품에 안겨있던 성민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엄마 성민이…성민이 딱 삼일만 시간을 줘.”


그 말에 짙게 붙였던 볼을 떨구곤 아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제가 없는 사이 아들은 많이도 자라있었고 그 만큼 강해져있었다. 아프게 미소짓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눈물로 얼룩진 성민의 볼을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닦으며 말한다.


“…딱 삼일이야? 그 다음엔 엄마랑 같이 가야해?”


서운함과 울음기가 잔뜩 섞인 목소리에 눈가에 눈물이 고여왔다. 불안했다. 아들의 어깨죽지에서 곧 하얗고 찬란한 날개가 돋아나 날아갈 것만 같아 몹시 불안했다. 눈앞에 자리한 아들의 모습이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 어미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성민이 고개를 돌려 희철에게 눈짓한다.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아챈 희철이 탈진상태인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모시고 나간다.

그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새겨넣던 성민이 문 밖을 빠져나갈때쯤 나지막히 부른다.


“…엄마.”


그 간절한 목소리에 뒤 돌아보자,


“사랑해요.”


그녀는 울었고 성민은 웃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눈물이 눈앞을 가려 몇 번이나 휘청거리는 성민이 어머님을 아버님께 잘 모셔다 드렸다. 성민을 꼭 빼어닮은, 아니 성민이 쏙 빼다박은 그녀의 작고 고운 얼굴에서 무슨 눈물이 그렇게나 많이 나오는지 제 눈가까지 시큰거려 괜히 헛기침만 한 희철이었다. 차에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 아들이 몸담고 있는 병실을 멍하니 쳐다보던 그녀가 희철에게 살짝 눈인사를 한다.


“고마워요. 우리 아들 잘 보살펴줘서.”

“고맙긴요 뭘. 성민이…잘 버틸거에요. 누구보다 강한 애잖아요. 그러니 힘내세요.”


제 말에 또 다시 눈물이 고인 그녀가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지금의 후회는 나중엔 더 큰 한으로 남으리라. 미끄러지듯 정문을 빠져나가는 차의 뒷모습에 대고 희철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

“……”


햇살이 크림빛 블라인드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고 들어오는 병실은 조용했다. 제 어미가 나간 뒤 그대로 눈을 감고 누워버린 성민이었다. 그가 끼고 있는 투명한 산소호흡기가 내뱉는 숨에 뿌옇다가 다시 사그러든다. 일정한 간격으로 그의 가슴께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퍽 지겨워 영운은 주머니를 거칠게 뒤졌다. 손에 찰싹 감겨오는 담배곽을 죽일 듯 쥐어 잡은 영운이 그 사이에서 얇은 담배 한가치를 꺼낸다. 그대로 불을 붙이고 피우려다 문득 시선이 향한 아무것도 없는 벽면엔 [절 대 금 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작은 팻말이 보인다. 김샌 표정으로 입술을 이죽거리던 영운이 여전히 죽은 듯 누워있는 성민을 힐끔 쳐다봤다. 죽은 사람처럼 고아한 얼굴새를 한 것이 영 불안하지만 지금은 담배가 더 급했다.

담배피고온다.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뇌까린 영운이 급하게 병실을 벗어났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렸을 적 친구들과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잠수시합을 했을 때도, 중학교 시절 청백계주에 나가 뒤를 맹추격하는 백군을 앞서 죽을 듯이 달렸을때도, 고등학교 시절. 홧김에 건드린 옆 학교 짱이랑 붙었을 때도 이렇게 까진 숨 막히진 않았다. 겨우 병실 문을 닫은 영운이 가슴에 손을 얹어 크게 숨을 쉬어본다.

그 애의 얼굴을 보면 숨이 막혀왔다. 마치 무중력 우주에 온 지구인처럼 답답하고 막막했다. 성민의 얼굴을 볼 때마다 손바닥만한 쇠 추들이 가슴으로 푹푹 꺼져 내리는 느낌에 심장이 철렁했다. 그 앨 보면 화가 났다. 이것이 화라고 하긴 조금은 묘한 감정이었지만, 영운이 정의 내린 것은 화였다.

성민을 볼 때면 작은 난장이들이 제 가슴에 들어와 드럼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작게 요동치는 심장을 두드리고 때려 그 요동이 점점 더 커져갔다. 소리가 커질수록 아픔도 더해가서 영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지막은 트레몰로. 짠- 하고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심장이 아릿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트라스는 세상을 어깨로 떠받치는 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아트라스도 자신보단 편할 거라고 생각한 영운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주위 시선은 아랑곳 않고 느릿하게 걷던 영운의 눈이 크게 띄어졌다.


“씨발.”


맞은편 복도에서 시원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수려한 그의 외모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지만 눈에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 듯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그다. 정말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곳에서 만나게 된 영운이 속으로 난감해 하며 느긋이 발을 옮겼다. 손가락을 감싸 쥐어 주먹을 만든 영운이 이를 갈며 으르렁댔다. 예전에는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동생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괜히 시원만 보면 승질머리가 나는 영운이었다. 이유도 모르게 올라오는 화를 삭히며 영운이 발을 옮겼다. 두 사람의 거리가 한 1m쯤 되었을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뚫어져라 시원을 주시하는 영운의 곁을 그가 쌩하고 지나쳐 버린다.

얼라리요. 당황스러운 상황에 영운이 손에 힘을 풀며 뒤를 돌아봤다. 그는 성민의 병실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곧 이어 영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순간이었지만 얼핏 스친 그의 표정은 더 없이 진지했고, 더 없이 남자다웠다. 저한테 없는 기사도가 그 녀석에게는 넘치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두르던 그 모습은 꼭 여주인공 살리러 가는 남주인공, 딱 그 꼴이었다. 갑자기 제 모습이 한 없이 작은 엑스트라로 여겨져서 씁쓸했다.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에 끼워 놓은 담배를 자분거린 영운이 조금 웃었다.

 

 

 

 

“성민인 어째 두고 니가 여기 웬일이냐?”


정문 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한 모금 빨던 희철이 낯익은 얼굴에 놀래서 묻는다.


“병실 안은 금연이더라구.”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옆에 쪼그리고 앉은 영운이 익숙하게 불을 붙이고는 깊게 빨아들인다.


“얌마. 그래도 그냥 나오면 어떡해.”

“걱정마라. 안 그래도 백마 탄 왕자가 납시셨으니.”

“백마 탄 왕자? 누구?”

“누구긴 누구야. 왕자하면 그 놈이지.”


음…하며 한참을 고민하던 희철이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짝치곤 외친다. 최시원?! 그 말에 영운은 별 다른 대꾸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상한 듯 고개를 제낀다.


“걔 들어오는거 못 봤는데.”

“뒷문으로 들어왔나부지 머.”


나름 공인이잖냐. 쿡쿡대며 웃은 영운이 씁쓸하게 흰 연기를 내뱉었다. 공중에 재를 두어번 털자 회색 재들이 공기를 타고 사라진다. 밝은 날씨가 무색한 한참의 침묵 끝에 아무 말 없이 담배만 빨던 희철이 문득 고개를 든다. 그 시선이 그 답지 않게 진지해서 영운은 입안 고여있던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너 정리는 됐냐.”


나오는 말이라곤 고작 그거였다.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건조한 그 말투가 꼭 밥 먹었냐 물어오는 것 같아 피식 웃은 영운이 대답한다.


“…무슨 정리.”

“무슨 정린지는 니가 더 잘 알걸?”


희철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그는 대충인 듯 보여도 늘 심리를 꿰뚫어 본다. 그래서 고민상담하기 편하기도 하지만 또한 불편한 그가 고마울 때도 있지만 무서울 때도 많았다. 이번에도 적중한 그의 말에 입만 쩍 벌린 영운이 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냥…현실을 직시하려고. 몇 가지 덧붙이자면 거짓을 진실로 바꿔보려고 노력중이고.”


참나,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재낀 희철이 반쯤 남은 필터를 수풀로 휙 내던진다. 그러고는 조금은 힘겹게 으�-하며 일어선다. 똑같이 수풀로 필터를 던져버린 영운이 희철에게 손을 내민다. 그런 영운의 손을 얄밉게 쳐다보던 희철이 손을 내밀어 맞잡고는 힘을 주어 일으켜 세우더니 그런다.


“이기적이되라는 내 충고는?”

“내가 너무 착해서 차마 그러진 못하겠고 그냥…깊어지기 전에 잊으려고.”


잊으려고? 얼씨구. 희철의 눈썹이 빼쭉 올라간다. 그런 희철의 반응을 한껏 이해한다는 표정의 영운이 다시금 내뱉는다.


“그냥…모든게 다 꿈이었음 좋겠다. 한 여름밤의 꿈. 적당히 쓸쓸하고 적당히 달콤하고 적당히 아릿한….”

“꿈? 그래서?”

“그래서는…. 그냥…기억하고 싶지 않다.”


병신. 희철이 거칠게 내뱉었다. 영운은 그저 킥킥댔다. 썰물이 빠져나간 바다처럼 공허하다 느꼈다.


“너도 참 병신이다.”


눈을 마주한 희철이 그리 말해온다. 영운은 그 말에 씁쓸히 웃었다. 이만 돌아가야지. 커다란 유리문을 반쯤 밀었을까 다음에 이어서 나온 말에 그의 손이 멈추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는 거잖아.”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순식간에 힘을 잃은 유리문이 달랑 흔들렸다. 영운은 그렇게 잠시 멈춰 서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문을 밀었다. 문 틈새로 �아온 시원한 바람이 제 볼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간다. 고장난 라디오처럼 희철의 말이 머릿속에 무한 반복되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는 거잖아.

 

 

 

 

[똑똑]


정중한 노크소리에 살며시 성민이 살며시 감았던 눈을 뜬다. 노크를 하는 것을 보니 엄마나, 희철이형, 그리고 …영운은 아닐거라 생각한 성민이 의사선생님인가? 하며 입을 열었다.


“들어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벌컥 쳐들어온 사람은 뜻밖에도 시원이었다. 예상 밖의 인물에 눈이 동그랗게 떠진 성민이 놀라서 반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섯 걸음 정도 걸어온 시원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평소완 다르다는 걸 곧 눈치챘다. 그는 조금 울었나보다. 늘 단정하고 여유로웠던 그의 얼굴이 넘치는 울분을 토해내며 씩씩댄다.

벌겋게 부은 눈,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곤 시원이 자리에 멈춰 섰다. 꼭 성민에게서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라도 있는 것 마냥 어느 정도 선을 그은 그가 최대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형, 내가 부…탁할게 한 가지 있거든?”


그 낮은 목소리에 물기가 잔뜩 서려있다. 성민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꼭 형이 들…어줬으면 해….”


고개를 꺾은 시원의 입가가 조금 올라섰다. 애써 태연한척 웃음기를 머금으며 시원이 말했다.


“형, 나 중국 가던 날 기억나?”


성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내 소원 들어주기로 한 것도 기억나지?”


아련한 기억이 성민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다정한 눈빛과 다정했던 목소리. 행복하게 웃고 있던 그 때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예쁘게 맞물리던 그와 자신의 새끼손가락의 주름 하나하나 똑똑히 기억이 난다. 성민은 웃는다.


“그럼. 우리 약속했었잖아.”

“그럴 줄 알았어.”


안심한 듯 작게 내뱉은 시원이 고개를 든다. 그의 물기어린 눈동자에 햇살이 투명하게 반사된다. 그는 이제 성민을 피하지 않았다. 직선으로 내다 꽂은 시선을 성민에게 주시하며 시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사실은 지금 많이 억울하다? 원래 내가 말하려던 소원은 이런게 아니었거든. 그런데…그런데 지금은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어.”


그의 주먹이 굳게 맞물린다. 촉촉이 젖어 나오는 그 목소리에 성민의 눈가도 어느새 젖어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는 잠시 망설인다. 불길한 예감이 손을 타고 흘렀다. 시원의 입에서 나올 말이 괜히 무서워서 성민은 차라리 귀머거리가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묘한 긴장감이 몸을 감싸왔다. 잔뜩 헝클어진 그의 목소리에 온 몸의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 무거운 침묵 끝에 그가 말했다.


“형…살아줘.”


그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다. 심장이 이대로 멈춰 버릴 것만 같다. 쿵쾅쿵쾅. 세게 달음박질치는 가슴을 성민이 두 손으로 잡아본다.


“내가…내가 형한테 해주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지금…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밖엔 없어. 형 살아줘. 나를 위해서…형을 위해서 살아줘.”


시원의 그 말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성민의 눈가에서 굵은 물방울이 톡 손등으로 떨어진다. 떨어진 곳이 데일 듯 아파와서 성민은 고개를 수그렸다.


“…형 제발 살아줘? 응?”


이제 시원은 완전히 울고 있었다. 성민은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 시원은 멀찍이 떨어져서 엄마 잃은 아이처럼 그렇게 울고 있었다. 부풀어 오르는 헛된 그리움과 헛된 기억들을 꾹꾹 삼키며 목구멍을 타고 역류하는 설움을 토해내며 눈이 울고 주먹이 울고 가슴이 울었다.
이성민. 가질 수 없는 세 글자가 너무나도 아팠다.

형…나 어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생명과도 같았던 주님을 욕했어.
이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고 비참해서, 그래서 욕했어.
주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서…그래서…


“…형, 뭐라고 말 좀 해봐. 어?!”

 
결국 시원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묵묵부답이다. 일자로 꽉 맞물린 붉은 입술을 본 시원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거짓말이라도, 비록 거짓이라도 그의 입술새에서 긍정의 단어가 단 한마디라도 나온다면 그렇다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 그 누가 성민이 죽는다 하여도, 그게 설령 신이어도 시원은 믿고 안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기적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이렇게라도 잡고 싶은 내 마음을 형은 알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치열하게 눌러왔던 마음이 참을 수 없다는 듯 폭발했다.


“살아만 달란 말이야---!!!!”


악에 받친 듯 내질른 시원이 그대로 중심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제발…제발 살아만 달란 말이야…. 무릎을 꿇은 채로 꺽꺽 우는 시원의 주먹이 갈 곳을 잃고 부들부들 떨려왔다. 극한으로 치달은 공기가 목을 졸라왔다. 입을 틀어막은 채 성민은 울었다.

-미안…미안해 시원아. 네 소원 들어주지 못할 것 같아.

 

 

 

 


희철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복도를 재빨리 걸었다. 시장통같이 북적이는 산만한 상황이라 다행이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모르니 뒤집어쓰고 있는 후디를 더욱 꽉 덮어썼다. 그 와중에도 간간히 알아본 간호사들이 저를 보며 수군댄다. 매너 좋게 웃으며 눈인사를 해주자 얼굴이 빨개져서는 수줍은 듯 도망간다.

웃고 있는 얼굴과는 달리 머릿속은 심란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김영운 이 미련한 녀석은 제 마음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다. 곁에서 지켜보는 제가 봐도 누굴 좋아하는지 알겠는데 막상 제 자신이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듯 했다. 아니, 아예 좋아한단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에휴…. 답답한 심정에 한숨을 푹 내쉰 희철의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성민의 병실이 분명한 곳 앞에 귀를 대곤 비스듬히 서 있는 녀석의 등이 보인다. 김영운. 소리쳐 부르려 하자 이내 도망치듯 뛰어가 버리는 그다. 부를 새도 없이 사라진 그의 뒷모습을 보며 왜 저러지? 이상하게 생각한 희철이 주저 없이 뛰어가 병실문을 벌컥 열었다.


“세상에….”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의도하지 않은 감탄사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제 앞엔 엎드린 채 고개를 바닥에 묻은 시원이 애처롭게 흐느끼고 있었다. 그의 든든한 어깨가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걱정스런 희철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난 녀석이 그대로 병실을 빠져나간다. 쿵하고 시원을 삼킨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힌다. 눈 깜짝할 새 사라진 두 녀석이 걱정되었다. 제 생각에 아무래도 미련한 녀석은 이 둘의 대화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도망갔던 것이고. 잔뜩 몸을 꼬는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녀석들이 안쓰러워 혀를 끌끌 차던 희철이 조심스레 침대 맡에 걸터앉는다.

투명한 산소호흡기가 그의 발치에서 달랑거린다. 무릎사이에 고개를 묻은 성민의 작은 뒤통수를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얌전히 모아 깍지 낀 장작개비 같은 마른손에 툭 불거져 나온 파란 혈관이 안쓰러웠다. 행복만 하기도 모자랄 시간에 아파만 해야 하는 눈앞의 작은이가 불쌍했다. 하얗게 드러난 마른 목덜미가 추워 보여 희철은 조심스레 어깨를 감싸 안았다.


“…형.”


그 따스한 손길에 성민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늘어지게 희철을 부른다. 고개를 든 성민은 망가진 삐에로 인형처럼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여행가요. 저 여행가고 싶어요.”

 

 

 

 

 

 

 

 

제 10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희철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온 성민을 보고 멤버들은 모두 당황해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그 지독한 상황은 쓴 한약처럼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제 성질에 못 이겨 날뛴 것은 동해였고 그런 동해를 간단히 제압한 희철이 품 안에서 곱게 잠들어있던 성민을 방안 침대에 얌전히 눕히고는 거실로 나왔다.


“또. 왜. 그. 냥. 온. 거. 야?”


이를 갈며 눈을 부릅뜨고 이죽대는 동해를 한번 쏘아본 희철이 그런다.


“성민이가 여행가고 싶대.”


여행? 그 말에 멤버들의 미간이 조금씩 찌푸려진다. 여행이라… 아픈 앨 데리고 해변가에서 ‘나 잡아봐라~’ 하며 놀기라도 하자는 거야?! 도무지 말이 안된다는 표정을 지은 동해의 이마에 순간 툭 하고 힘줄이 튀어나왔다. 비장한 표정으로 오른손까지 불끈 쥐더니,


“난 결사반대야.”


하며 입을 딱 다문다. 그러자 나도 나도 하면서 나머지 멤버들이 죄다 손을 든다. 손을 들지 않은건 오로지 종운뿐이었다. 종운은 그저 바보 머저리 같다는 듯 한심하게 동생들을 힐끔거릴 뿐이다. 순식간에 표를 얻은 동해가 승리감에 가득 찬 얼굴로 거만하게 턱을 치며들자 희철이 별다른 제제없이 나지막하게 그런다.


“마지막 소원이야.”


그 말에 왁왁 대던 멤버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틈을 타서 단단하게 쐐기를 박듯 희철이 한마디 더 한다.


“어쩜 우리랑 만드는 마지막 추억일 수도 있어.”


그 말에 함구령이라도 내려진 냥 다들 한일자로 입을 꽉 다문다. 희철이 땡겨오는 허리를 주무르며 일어선다. 갑자기 분위기가 우울해졌다. 정말이지 이런 분위기는 미치도록 싫다.

희철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방으로 향하자 동해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한다.


“숙소 예약은 내가 한다.”

 

 

 


희철은 방문에 기대어 조금 웃었다. 여기저기서 부탁받은 싸인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책상 모서리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담배곽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문 희철이 반질반질 윤이 나는 지포라이터의 뚜껑을 연다. 챙강- 하며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느긋이 불을 붙인 희철이 깊게 빨아들여 한 모금 내뱉는다. 숨과 함께 밀려나가는 담배연기가 공기를 회색빛으로 물들인다.

씁쓸할 때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은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사막의 오아시스가 이런 맛일거라 생각하며 맛나게 빨아문 희철이 문득 바지 주머니에서 요란하게 몸을 떨고 있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플립을 열자 화면에 친절하게 문자메세지가 뜬다. 씩 웃으며 문자를 읽던 희철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진다. 대충 옆에 걸려있는 잠바를 집어든 희철이 급하게 외친다.


“나 잠깐 나갔다올게.”


진짜로 급한 일이 생긴 건지 재빨리 나른 희철의 뒷꽁무늬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멤버들 사이로 종운이 려욱의 어깨를 몰래 툭 두드린다.


“려욱아 형이 부탁하나만 하자.”

 

 

 

 

 


“아! 여길루 가!”

“아니야. 거기보단 여기가 더 좋아.”


두 사람의 눈빛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혁재와 동해 동희는 여행장소를 정하던 중이었다. 이름을 따라 바다로 가자는 동해와 지금은 가을 초라서 바다는 춥다고 산으로 가자는 혁재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치했다. 그런 둘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동희가 마주보며 싸우고 있는 둘의 뒤통수를 채어잡아 낼름 박치기 시켜버린다.


“아! 형!!”


갑작스런 기습에 앞머리 통만 쓱쓱 문지르던 둘이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동시에 외친다. 못마땅하게 혀만 끌끌차던 동희가 “됐고 여길루 결정했어. 이미.” 단호하게 말하자


“아-!! 그런게 어딨어요-!!”


또 다시 동시에 둘이 같이 그런다. 얼굴까지 빨개져선 왁왁대던 둘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동희가 조금은 살벌한 웃음을 띠면서


“내가 형이다?”


힘주어 말하자 금세 비 맞은 개처럼 꼬리를 내려버리는 둘이다. 축 늘어진 어깨를 탁탁 정감있게 친 동희가 마우스를 요리조리 움직이더니 이내 사이트 하나를 컴퓨터 화면에 띄어낸다.


“어때? 멋지지?”


그 말에 우와- 하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둘이다.

동희가 골라낸 곳은 속초의 한 펜션이었다. 설악산에 위치하고 있지만 앞쪽은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 펜션은 혁재와 동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자연환경과 이층으로 된 멋진 목재 펜션이 금세 마음을 끌었는지 헤헤 웃으며 동해와 혁재가 동희에게 달려든다.


“형…너무 너무 멋있어.”

“형이 짱이야. 다 필요없어.”

“여기 캠프파이어도 해준데. 멋지겠지?”


웅. 웅.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인 둘을 보고 만족한 듯 하하 웃던 동희가 숙소 전화기를 집어 차곡차곡 펜션 전화번호를 누른다. 뚜-뚜- 하는 신호음이 가고 달칵하며 연결되자 훽 하고 혁재에게 떠넘겨 버린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게된 혁재가 조금 당황하더니 이내 익숙하게 예약한다.


“네. 펜션 한 채를 통째로 빌리려고 하는데요.“

[아…한 채요? 몇 분이나 되시는데요?]

“열…열 다섯명 정도요.”

[열 다섯분이요? 예약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성…성함이요?”


그 말에 당황한 혁재가 어떡해하냐는 듯 동해와 동희를 쳐다본다. 동해는 열렬한 손짓까지 해가며 대충 둘러대라고 난리고 사태의 주범인 동희는 딴청 피우기 바쁘다. 결국 난감함 상황에 입술만 깨물던 혁재가 조심스레 말한다.


“저…그니까…이…이동동이요!!”


뜬금없는 이름에 동희와 동해의 눈이 잔뜩 커진다. 상황은 전화기 반대편에서도 마찬가지다.

[예?! 이동동이요?]


장난전화라고 생각했는지 급격하게 불쾌해진 목소리에 혁재가 서둘러 수습을 한다.


“예. 이 동동이요. 계좌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

 

 

결국은 아슬아슬한 숙소예약을 무사히 마친 혁재였다. 뒤통수에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조심스레 목을 돌리니 둘다 입을 쩍 벌리곤 굳어있다. 그 입을 친절하게 닫아주자마자 불같은 목소리로 동해가 그런다.


“야! 아무리 그래도 이동동이 머야!!!”

“아!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생각이 안 나는데.”

“그냥 니 본명 대면 대잖아. 아님 동희형 이름 대던가.”

“난 인기스타라서 알아보면 어떡해!”

“얼씨구…. 퍽이나 알아보시겠다.”


둘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던 동희가 혁재의 어깨를 잡으며 말한다.


“이유나 들어보자. 왜 하필이면 이동동이야?”


그 말에 혁재가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그런다.


“이혁재의 ‘이’에 이동해의 ‘동’ 신동희의 ‘동’……아! 그니까 나도 나름대로 다 생각한 이름이라고!!”

“근데 왜 하필이면 동동이냐고. 동동주도 아니고.”

“그래도 해!…해동보다는 낫잖어. 이씨…”


우리가 무슨 냉동피자도 아니고 해동은 무슨.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씹퉁대는 혁재를 기가막인 듯 꼴아보던 동해가 속 터져 죽겠다는 듯이 가슴을 퍽퍽치더니 그대로 방을 나가버린다.


“형…이동동이 글케 이상해요?”


쌩하니 나가버린 동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혁재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자 금세 퉁퉁한 손이 뒤통수를 강타한다.


“아-! 왜 때려요오!”


꽥꽥대며 뒤를 돌아보자 퉁퉁한 손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은 동희가 아니라 종운이다. 헉. 놀란 혁재가 베실베실 쪼개며 아잉~ 형♡ 하며 뒤로 물러나자 픽 하고 실없이 웃은 종운이 나지막히 말한다.


“헛소리 말고 내려가서 차에나 타.”

“차요? 왜요?”

“라디오 하러 가야지.”

“지금 겨우 4시인데?”

“여행간다며. 거기 가서 라디오 할거야? 아님 여행 안갈 거야?”

“아니요! 가야죠.”

“그니까 옷입고 준비해서 나와. 미리 녹음해놔야지. 특이는 벌써 내려갔다.”


그 말에 후다닥 일어난 혁재가 빠르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한 쪽다리를 청바지에 구겨넣는 혁재를 지켜보던 종운이 일어서 방문을 연다. 적당히 워싱이 들어간 진청을 입은 혁재가 더듬더듬 티셔츠에 손을 집어넣다가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갑자기 아! 하며 영구박터지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뒤돌아보자 아직도 머리는 티셔츠안에서 헤매이는 채로 한마디 한다.
 

“근데 영운이 형은요?”


그 말에 종운의 눈썹이 움찔한다.

 

 

 

“김영운--!!”


정신없이 달려 도착한 곳은 인근의 한 병원 응급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빵빵하게 작동하는 냉방시설이 더운 몸을 금세 차게 식혀준다. 제 모습을 발견했는지 침대에 반쯤 걸터앉은 영운이 눈웃음을 지으며 오른손을 여유롭게 흔든다. 공중에서 활기차게 흔들리는 손에 하얀 붕대가 꼼꼼하게 발라져있다. 급히 오느라 채 고르지 못한 거친 숨을 헉헉 뱉으며 그 앞에 당도하자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영운이 말한다.


“왔냐?”


왔냐? 얼씨구.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날라왔는데. 괘씸한 그 말투에 희철의 이마에서 힘줄이 툭하고 불거져나온다. 몇 분전 받은 문자 때문에 기본요금도 안되는 거리를 택시타고 온 희철이었다. 많이 다쳤을까 조마조마해 택시에 만원짜리 한 장을 툭하니 던져놓고 미친 듯 달려왔는데 정작 이 철없는 놈은 좋다고 실실 쪼개대고 있으니….

에휴- 한숨을 푹 쉰 희철이 그래도 걱정됐는지 붕대로 단단히 감긴 오른손을 마주잡는다. 딱딱한 석고가 느껴지는 것이 꽤 많이 다쳤다보다. 손을 세심하게 돌아보던 희철이 고개를 들곤 묻는다.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친거야.”

“그냥 횡단보도 건너는데 마주오던 차랑 부딪혔지 뭐.”

“마주오던 차?”


희철이 눈썹을 찡긋 올리며 매서운 눈초리로 묻자 영운이 기겁하며 사실대로 털어놓는다.


“그래. 나 무단횡단 했다. 꼽냐?”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희철이 이리저리 훑어보며 묻는다.


“다른데는 다친데 없고?”

“당연히 없지. 그 차도 서행중이었던지 부딪히곤 살짝 바닥에 엎어지면서 손바닥으로 디뎠는데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손바닥만 다치곤 다른데는 멀쩡해.”

“손바닥은 어떤데.”
 
“뼈에 금갔대. 한달 정도는 이러고 다녀야 한대.”


손바닥을 들어 멍하니 쳐다보던 영운이 씩 웃으며 일어선다. 어디 가-! 놀란 희철이 따라 일어서자 영운이 귓가에 대고 조심스레 말한다.


“얼른 숙소가야지. 지금 주위에 팬들이 바글바글하다.”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모인 사람들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서있다. 웅성웅성하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간 희철이 영운의 어깨를 잡으며 말한다.


“너 병원비는?”

“병원비? 나 친 사람이 다 해결했지.”


자랑스레 말하며 가슴을 한번 퉁치는 영운이다. 그래도 희철의 못 믿겠다는 표정에 뒷주머니에서 하얀 명함 한 장을 꺼내며 전해준다. 명함과 제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는 희철을 마주보며 시원스레 웃자 실소를 터뜨린 희철이 사이좋게 병원문을 나선다.

 

택시를 잡아탈까 고민하다가 이내 아까의 택시비를 떠올리곤 발길을 돌려 숙소쪽으로 걷는 희철이다. 도로변 옆 가로수에 위태롭게 매달려 바람부는대로 흔들리는 잎들의 꼬리가 어느새 연하게 붉은기가 감돈다. 이제 정말로 완연한 가을이다.

혹시나 따라붙은 팬들이 있을까싶어 큰길 말고 숙소가 있는 빌라 단지 쪽으로 몸을 틀며 희철이 말했다.


“우리 여행가기로 했어.”


그 말에 이게 웬 횡재냐는 듯 영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곤 되묻는다.


“여행? 무슨 여행?”

“몰라. 숙소는 동해랑 애들이 잡아놨을걸?”
 
“아싸~! 드디어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는 구나.”


방방뛰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영운을 힐끔 본 희철이 말간 하늘을 응시하며 내뱉는다.


“마지막 여행으로 가는 거야.”

“뭐?”

“마지막 여행이라구. 성민이.”

“……”


그 말에 아무 대답이 없다. 좋은 기분이었을 텐데 괜히 말했나…하며 코끝을 찡긋대던 희철이 문득 옆을 보자 옆자리가 텅 비었다. 그러고 보니 계속해서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급하게 뒤를 돌아보자 키 큰 나무아래 영운이 장승처럼 서있다. 그리로 다가가니 영운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어있다. 뒤 돌아 서있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다가가 서자 기척을 느꼈는지 영운이 그런다.


“그런 말 하지마.”

“무슨 말.”

“마지막이라는 말. 하지마.”


희철의 입가가 묘하게 뒤틀린다. 땀 때문에 축축해진 손바닥을 서늘한 바람이 훑고 간다. 앞에 서 있는 녀석의 등이 조금씩 움츠러든다. 겁을 내고 넓은 등을 둥글게 마는 녀석의 몰골이 흉측스러웠다.


“김영운”

“……”

“7살 어린애도 아니고 억지부리지마.”

“……”

“분명히 니가 잊는다했어. 이제와서 그러면 성민이만 힘들어질 뿐이야.”


영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맞는 말이다. 그가 하는 말은 토씨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늘 꿰뚫어 보는 놈이라서. 저가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에 화가 난다.

머리가 아파왔고 심장이 아려왔다. 여러 가지 입장들과 여러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엉켜들어간다. 주저 앉아 다 토해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표정. 그의 말투. 그의 시선.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그 한 단어.

부르르 떨리는 영운의 주먹을 응시하던 희철이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한다.


“잊어. 기회를 버린건 너야. 이제와선 달라질건 하나도 없어.”

“…다시 말해봐.”


영운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는다. 그의 눈빛이 으르렁대며 위협한다. 하지만 희철은 만만치 않았다.
 

“잊으라고 말했어.”

“…다시 한번 말해봐.”

“……”

“씨발. 다시 한번 말해봐-!!”


지그재그로 갈리는 이를 꽉 물며 말하던 영운의 입가에서 결국엔 큰 소리가 터져 나온다. 공기가 단순간에 얼어붙어 흐뜨러지고 그의 눈이 분노로 떨린다. 어떻게 니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할말을 잃은 아랫입술이 떨린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는 거잖아.

머릿속에 매미울음소리처럼 희철의 말이 어지럽게 엉켜들어간다. 소리를 만질 수만 있다면 당장에 집어 걷어 치워버리고 싶을 만큼 불유쾌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기억이란 불가항력 앞에 서있는 자신은 무력했다. 따끔따끔하게 심장을 파고드는 따가움에 숨을 깊게 뱉어낸다. 뻥 뚫린 폐가 쓰리다.

굳게 맘을 다진 영운이 독한 눈을 띄우며 돌아섰다. 둘의 시선이 어색하게 얽힌다.


“못 잊어. 아니?! 잊을 수 없어.”


독한 의지로 내뱉었다. 먹먹하게 차오르는 눈동자를, 혈관을 타고 흘러가는 그리움을, 어둠이 내려앉은 방안, 온몸을 엄습하는 외로움을 어떻게 잊어.

희철은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기분 나쁜 움직임으로 분노가 역류한다. 목구멍 가득히 들어찬 열덩이가 싸하고 퍼진다. 심장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번져나간다. 벌써 눈이 벌겋게 충혈된 영운이 토해내듯 울부짖는다.


“아직 추억 하나 못 만들었는데…아직 시작도 안했는데…뭘 어떻게 잊으란 말이야-!!”


아직…제대로 된 말도 한마디 못해줬는데…. 어미 잃은 늑대처럼 목울음 소리를 내며 영운이 서서히 무너져간다.

너의 애달픈 눈빛을 보지 않으려 스스로 눈을 감았다. 어두컴컴한 암흑이 각막을 지배하자 느껴지는 너의 미약한 숨소리를 느끼지 않으려고 내 손으로 모든 감각을 태워버리고, 너의 작은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내 손으로 고막을 천갈래 만갈래 찢었었다. 너의 달콤하지만 서글픈 살내음을 맡지 않으려 내 후각을 뭉뚱그려 던져버렸다. 너를 잊으려 시각도, 촉각도, 청각도, 후각도 모두 다 버렸지만 비웃듯 힘차게 자맥질하는 심장이 괴로워 매일 밤잠을 설치며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손바닥으로 심장을 꾹 누르는 일. 그것뿐이었다.


“희철아…나 못 잊어. 죽어도 못 잊어. 내 머리통을 열고 분해해서 폭파시키지 않는 한 나 성민이 못 잊어.”


무릎으로 서서히 기어온 영운이 희철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영운의 말에 가슴이 절절했다. 호소력 짙은 그의 목소리에 심장 한 가운데가 따끔따끔하게 아팠다. 뒤늦게야 제 사랑을 깨달은 친구 녀석이 불쌍하고 또 가련했다. 끝이 보이는 사랑을 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은 많이 아파서 제 숨까지 조여왔다.

늘어진 영운이 손을 뻗어 희철의 까슬한 면바지를 움켜 잡아온다. 아마도 희철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제 맘을 알아줄 것만 같은 생각하는 일종의 믿음이었다. 그 손위에 제 손을 가져다 대자 그가 흠칫하는 것이 느껴진다. 절절한 그 손길을 조심스레 제치고 영운을 일으켜 세운 희철이 땀에 젖은 그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말한다.


“영운아…”

“……”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하얀 붕대를 감은 손이 허공으로 떨어진다.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는 심장이 갓 잡은 물고기처럼 팔딱거린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믿었던 그의 입에서 면도날같은 말이 흘러나와 제 귀를 난도질한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왔다. 울컥하는 그리움이 폭풍우에 쓸린 배처럼 너울댄다. 아릿한 아픔이 식도를 통해 넘어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눈동자 안에 하얗게 영사되는 지난날의 그의 모습이 서럽다. 성민아… 내 성민아…


“…그저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


몇 초간 영운을 바라보던 희철이 서서히 시선을 거둔다. 밉다. 성민의 병도. 영운의 사랑도. 그리고 이따위 말밖에 뱉어낼 수 없는 제 입도. 하지만 현실이었다. 고개를 꺾은채 미동 없는 영운을 뒤로 하고 희철은 숙소를 향해 똑바로 걸었다.

 

 

 

검은색 봉고차 뒤에 숨어있던 려욱은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설레어서라기보다는 안쓰럽고 불쌍한 기분에서였다. 왜 종운이 자신을 보고 희철의 뒤를 밟으라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 려욱이었다. 크게 안 싸워서 다행이지만 하마터면 큰 싸움으로 번질 뻔한 다툼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려욱이 봉고차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영운의 동태를 살핀다. 희철이 떠나간지 몇분이 지났지만 그는 곁에 서있는 나무처럼 여전히 서 있을 뿐이다.

허탈감과 상실감이 복잡스레 뒤엉킨 그의 표정에 얼마 전 짧게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있잖아요. 무지개 끝에는 보물이 있대요.

그는 보물을 찾지 못한 것일까?

입술을 꼭 깨문 려욱이 조심스레 영운곁에 다가간다.


“…형.”


얼굴을 조금 찡그린 려욱이 힘겹게 내뱉자 영운의 눈이 당혹감으로 흔들린다. 아무래도 뒤를 밟았다는 것은 숨겨야겠다.


“여기 왜 이러구 있어요.”


제 말에 불안하게 보였던 표정이 조금은 여유로워진다. 그의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지며 예의 그 눈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하나도 안 기쁘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고 싶었다. 이대로 무거운 긴장이 계속 대다간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적당히 시원한 날씨가 이상스레 목을 조여 왔다. 앞에 서있는 영운은 웃고 있었지만 툭 건들면 금세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제가 알고 있는 영운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씩씩하고 듬직하고 강인한 그런 남자였다. 그게 일이든 친구관계든 학업이든 마찬가지였다. 그건 사랑에서도 별 다를바가 없었다. 제가 믿고 따르는 영운은 그런 남자였다. 그래서인지 지금 눈앞에 있는 영운의 모습이 려욱은 속상했다. 그리고 슬펐다.


“형, ‘에반게리온’이란 만화 알아요?”


한참의 침묵을 가르고 나온 려욱의 이야기는 쌩뚱맞게도 만화 이야기였다.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에 영운의 고개가 살짝 려욱쪽으로 향한다. 잠시 머뭇하던 려욱이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제가 되게 감명 깊게 봤던 만화인데 거기 보면 카오루란 캐릭터가 나오거든요? 그 캐릭터가 이런 말을 해요.”

“……”

 "사람은 누구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야."


시큰한 느낌이 콧잔등을 타고 올라와 눈가에 머문다. 괜히 핑하고 눈물이 고인 려욱이 이씨. 하며 소매로 박박 눈을 문지른다. 애꿎은 땅바닥만 운동화 앞코로 긁어대다 눈동자를 힐끔 들어 영운을 본다. 예상외로 그는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그를 보던 려욱이 발장난을 멈추고 살짝 등을 돌린다.

형. 힘내요.

불쌍한 형을 위해서라도.

 

멀어져 가는 려욱의 뒷모습을 보던 영운은 눈을 감았다. 심장이 또 한번 쿵 떨어진다. 한번 찢겨진 심장은 작은 말에도 터져나와 분수처럼 피를 내뿜었다. 손바닥을 들어 가만히 눌러봐도 흘러내리는 피를 막을 수는 없다. 조용히 내뱉은 말은 빠르게 고막을 파고들어와 뇌를 지배했다. 그럼에도 잊혀지지 않는 지독한 세 글자.

영운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흐느적대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어깨를 누른다. 영운은 조금 초췌하게 웃었다.

성민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야한다.

 

 

 

 

 

 


11화


별읽기

 

이글거리는 태양을 천천히 집어삼킨 지평선이 진홍빛으로 물들어 간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등지며 갑갑한 신발을 벗어던진 희철이 무거운 어깨를 털며 집안으로 들어온다. 거실에 앉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를 보며 낄낄대고 있던 동희를 힐끔 보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여행, 어디로 갈지 정했어?”

“동해로 가기로 했어요.”


동해? 뭐, 괜찮지. 페트병채로 벌컥벌컥 마신 희철이 입가를 쓰윽 닦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거실을 둘러본다. 시끄러운 티비소음 외엔 집안이 조용하다. 무언가 이질적인 풍경에 뭐지? 하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 희철이 아! 하며 단발마의 비명을 내뱉는다. 그의 머릿속에 눈앞의 모습이 한 가득 클로즈업되어 비춘다. 동희는 드라마 따윈 보지 않았다.

그래. 이제야 뇌리를 가득 메운 뒤틀린 상황이 이해가 간다.

그가 멀쩡하다면 말이 안됐다. 워낙 형제처럼 지내는 혁재를 제외하고 성민이 가장 믿고 기대고 의지하던 친구는 동희였다. 힘든 연습시절. 그리고 힘든 가수생활. 동희와 성민에게 서로는 친구란 존재보다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저딴 드라마를 봐서라도 위로받고 싶은게 그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괜히 저까지 우울해서 친구한테 짐을 주고 싶지 않고 싶었을 것이다. 늘 유쾌하고, 늘 밝은 동희였으니까. 안쓰러운 그의 옆 자락을 보던 희철이 묻는다.


“집이 왜 이렇게 조용해?”

“정수형이랑 혁재랑, 종운이 형이랑 라디오 녹음하러 가서 그럴걸요? 나머지는 자나? 잘 모르겠어요.”


이내 다시 낄낄대며 드라마에 집중하는 동희다. 그런 그를 가만 쳐다보다 이내 큰 소리로 희철이 그런다.


“이제 여행 갈거니까 알아서 짐들 싸라.”

 

 

 

희철의 그 말에 벌떡 일어난 건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던 동희가 아닌 방에 누워있던 동해였다. 옆에는 성민이 아직도 새근새근 곱게 자고 있었다.

구석에서 커다란 가방을 하나 꺼낸 동해가 룰루랄라~ 경쾌한 콧노래를 부른다. 자주 입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구겨 넣고, 강원도는 춥다는데…하며 남방과 가디건을 넣고 간단한 짐을 꾸린 동해가 침대위에 있는 성민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성민의 짐까지 싼다. 제 옷장 옆에 붙어있는 성민의 옷장을 연 동해가 잠시 고민하다가 멍하니 창문을 본다.

요즘은 더위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아직 긴팔을 입기엔 조금 더운 날씨였다. 가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어중간한 날씨. 한참을 고민하던 동해가 저도 모르게 두꺼운 스웨터를 집는다.


-동해야.

-응?

-성민이…

-…응.

-눈 보고 싶대.


눈가가 축축해 지면서 입가가 짜다. 지금이 아직 여름의 끝무렵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동해가 손에 집는 옷은 보송한 점퍼와 예쁘게 떠진 목도리다. 어느새 두툼한 겨울옷으로 가득 채워진 가방을 아릿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동해가 씨발. 하면서 씩씩하게 웃는다. 한숨처럼 흩어져 내려버린 쉬어버린 목소리가 공기중에 부유한다. 까만 가방 위에 빗물처럼 후두둑 눈물이 떨어진다. 울먹임이 허공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우리 녹음 끝내고 왔어요.”


삼일 치 라디오 분을 한꺼번에 녹음해서 그런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혁재와 정수와 종운이 숙소로 들어온다. 넓은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하늘은 보라색도 아니고 잿빛도 아닌 이상스런 색으로 물들며 점점 어두워진다.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던 희철의 ‘짐 싸’라는 말에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피곤스런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방안으로 들어온 혁재가 자주 매는 크로스백을 꺼내더니 바지하나 티셔츠하나 편한 반바지하나 넣고는 땡이다. 그래놓구선 짐 다 쌌다-!! 하며 침대위로 벌러덩 누운 혁재의 시선 끝에 창밖에 매달린 인형이 들어온다.

거꾸로 매달려 잔뜩 번져 우는 것 같은 인형이 벌써 여러개였다. 잠시 멀뚱히 생각하던 혁재가 책상위에 놓여있는 공책과 수성 펜. 그리고 며칠 전 사놓은 색색깔 털실을 가방에 쑤셔넣고는 만족한 듯 잇몸을 드러내며 환히 웃는다.

 

 


각자 준비가 다 되었는지 확인한 희철이 멤버들에게 눈짓을 한다. 그래도 여행이라는 거에 신나긴 한 모양인지 왁왁대며 내려가는 멤버들을 바라보던 희철이 눈이 현관 앞에 멈춰 선 혁재와 동해에게 머문다.


“아-! 내가 안고 갈거라거!!”

“싫어!! 내가 안고 갈거거든?”


아직까지도 방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성민을 누가 안고 차까지 갈건지 둘 사이에서 유치한 말다툼이 오간다. 참 별것가지고 싸운다 생각하며 한심스레 쳐다본 희철이 표정이 뒤늦게 나오는 시원을 보며 환해진다. 따라서 웃어 보인 시원이 마주서있는 혁재와 동해사이를 가르곤 밖으로 나간다. 그의 두 팔에는 아기처럼 잠든 성민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안겨있었다. 헉. 하며 순식간에 굳어버린 둘이 억울한 듯 삐죽삐죽 입술만 씹어대고 있자 제 가방 하나를 턱 하니 멘 희철이 사악하게 웃으며 그런다.


“뒷정리는 너네가 하고 오는거 알지? 얼른 안 오면 먼저 간다.”


아! 그런게 어딨어요오!! 꽥꽥되는 둘을 뒤로 한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얄밉게 내려가자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확실하게 된 혁재와 동해가 서로에게 짐을 미루다 결국 사이좋게 성민의 짐과 시원의 짐을 하나씩 나눠 든다. 꼼꼼하게 잠긴 문을 확인하고 승질나는지 시원의 가방을 발로 뻥 찬 동해가 씹퉁대며 너 때문이야 하고 갈군다. 그 와중에도 성민의 짐이 부피가 큰 것을 아는 동해는 얍삽하게 가벼운 시원의 짐을 택했다.


“야. 이혁구 얼른 짐 들고 나와라. 참고로 그 짐 내가 쌌는데 무지 무거울 거다.”


캬캬. 웃으며 신나게 엘리베이터 속으로 쏙 들어간 동해가 재빨리 문을 닫아버린다. 결국 엄청 시리 큰 성민의 짐을 맡은 억울한 혁재가 분한 듯 외친다.


“야! 이동해!! 넌 무슨 해외여행가냐?!”

 

 

 


지금쯤 출발했겠지. 파란 불이 켜지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 영운이 씁쓸하게 웃는다. 시간이 모자란 저는 내일방송만 녹음하고 오늘방송은 하고 강원도로 떠나기로 했다. 모레에는 어차피 집에 오니까 그 날 라이브로 진행하기로 합의를 봤다. 어차피 이틀 분을 녹음하기엔 시간이 애매했다.


“강인씨. 지금 녹음 들어가요.”


큐. 경쾌한 피디의 손짓과 함께 on Air 판에 붉은 등이 들어오고 익숙한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온다. 경쾌하게 귓바퀴를 타고 도는 음악에 영운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뜬다. 김영운은 슬플지 몰라도 강인은 슬픈 모습 따윈 보여주면 안된다.

인생은 한편의 시트콤이라 했다. 전혀 우습지 않지만 우스운 말투를 해야 하는 제 자신이 바보 같은 광대 같아 허망한 미소를 지은 영운이 입을 연다.


“강인의 천방지축 라디오….”


마이크를 다부지게 쳐다보는 영운의 강직한 입새사이로 표정과는 다른 활발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래…이거면 된다.
연기는 저 하나로 족하다.

 

 

 


세 시간이 넘게 벤을 타고 달려온 동해는 평일이라 그런지 적막함이 감돌았다. 유리창에 이마를 쿵쿵 박으며 잠들어 있던 동해가 눈을 찡그리며 일어난다. 손등으로 부비적 눈을 비비더니 으앗-! 하며 괴성의 소리를 내뱉는다. 이미 어둠이 내려 검게 보이는 밤바다였지만 신난 동해가 크게 외친다.


“와!!!! 바다다!!!!”


그 말에 까무룩 자고 있던 멤버들이 뭔 일이야?! 하며 일어났다가 와아- 하며 창가에 달라붙는다. 영운이 타지 않아 자리가 남는 바람에 맨 뒷자리에 성민을 눕히고 자신의 무릎을 내준 시원도 오랜만의 휴가가 신난지 얼굴에 유쾌한 미소가 걸린다.

바닷가에 내려달라는 신동과 동해의 땡깡을 사랑의 주먹으로 응징하고 한참을 바다를 끼고 돌던 차가 구불구불한 산 속으로 들어간다. 설악산에 처음 와본다는 한경은 어린애처럼 눈을 빛내며 좋아했다. 큰길로 가다가 산골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을 타고 얼마쯤 가자 하얀 나무목재로 된 이층집이 나온다. 인터넷으로 본 것과 똑같이 생긴 것에 너무도 신기해하는 신동과 동해가 이성을 잃고 광분하자 희철이 또 다시 사랑의 주먹을 들이댄다.

차를 세우고 우선 내린 매니저가 주인장에게 키를 받고 살짝 인사를 하자 산골과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차를 수상한 듯 힐끔 보더니 이내 떠난다. 확실하게 주인의 모습이 안 보이자 허겁지겁 내린 멤버들이 서울과는 차원이 다른 맑은 공기에 감격한다. 잠에서 덜 깨 부스스한 모습의 혁재는 ‘이동동’이란 아연실색할 이름 덕분에 하얗게 질린 매니저한테 제대로 깨졌다. 그래도 기분 좋은지 씩 웃어 보인 혁재가 미친 듯 달려 집 안으로 들어간다.

 

“형…다왔어요.”

“우웅……”


제 무릎을 베고 얌전히 잠을 자던 성민의 볼을 살짝 두드리며 시원이 그런다. 웅얼대던 성민이 고개를 반대편으로 제낀다. 조금은 차가운 손에 인상을 찌푸린 성민이 잠에서 깰 듯 하다 다시 잠이 들자 조심스럽게 머리를 받치고 일어선 시원이 성민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린다. 확실히 맑고 깨끗한 공기가 머리를 상쾌하게 해준다. 하지만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산 중이라 그런지 조금은 차다 싶은 공기에 성민이 덮고 있는 담요를 꼼꼼히 싸매준 시원이 펜션으로 들어선다.


“성민인 아직도 자?”


시원의 품에 안겨 들어오는 성민을 보며 혁재가 그러자 시원이 쉿-하더니 아무 방이나 골라잡아 들어간다. 마침 안방이었는지 넉넉한 더블베드에 보송한 이불이 깔려있다. 미리 보일러를 틀어놓았는지 따뜻한 방의 온기에 미소를 지은 시원이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주며 잠시 멀뚱히 성민을 보다 나간다. 언뜻 스쳐본 벽에 걸린 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킨다.

 

 

 

“네. 이번 사연은 서울시 도곡동에 사시는 김 미영님께서 시를 한편 보내주셨어요. 정호승님의 ‘미안하다’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발랄하게 사연 소개를 한 영운이 가볍게 입을 풀었다. 오늘 사연은 독특하게도 시였다. 워낙 자유로운 방송인지라 가끔 특이한 소재의 사연을 보내는 청취자가 꽤 많았다. 급하게 녹음을 끝내고 하는 생방이라 미처 사연도 못 읽어본 영운이 빠르게 한번 읽는다. 꽤 짧은 시를 보던 영운의 표정이 급하게 얼어붙는다. 잔잔한 배경음악이 깔리고 카메라가 영운의 얼굴을 가득 클로즈업한다.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한 영운이 차마 읽지 못하고 멍청히 대본만 들여다보자 옆에 앉은 남자게스트가 툭툭 영운을 친다.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영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읽어간다.

 

 


잠에서 깬 성민은 어두워진 방안을 잠시 두리번대다가 이 곳이 숙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당황해서 눈만 껌벅거리다 어둠에 익숙해진 각막사이로 낯선 사물들이 하나 둘 투영된다. 이내 곧 이 곳이 여행장소라는 것을 깨달은 성민이 밖으로 나갈까…하다가 옆에 탁자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에 뜨는 시계가 11시를 간당간당했다. 잠시 망설이다 핸드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곤 익숙하게 영운의 라디오를 튼다. 성민의 눈이 편안하게 감긴다.

 

 


“미안하다. 정호승.”


차분한 영운의 목소리가 약하게 떨려온다. 그의 눈동자가 미약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붉게 물들어간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곧 울 것 같은 목소리를 한 영운 때문에 스텝과 게스트는 당황했다. 잔뜩 엉켜서 허물어진 발음을 되찾으려 이를 꽉 물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투둑 떨어진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얼굴을…얼굴을…묻고……울고 있었다…”


북받친 눈물이 막을 수 없이 재빠르게 떨어졌다. 가슴속에 뭉쳐있던 무언가가 작게 벌린 입사이로 팍하고 터져나오는 듯 했다. 이제는 어깨까지 떨며 완전히 흐느꼈다.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틀어막아보아도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영운은 흐느꼈다. 이를 꽉 깨물며 울지 않으려는 영운이 결국 폭발했다.


“……미안하다…우흑……너를…너를……사랑해서……미안하다…”


영운은 이제 완전히 울고 있었다. 마지막 대목에서 영운은 완전히 목이 메었다. 영운은 처음으로 목 놓아 울었다. 자신에게, 타인에게 늘 강인했던 영운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유 따윈 없었다.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는 채 태풍처럼 몰아친 슬픔이 영운의 눈물샘을 장악했다.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끅끅대던 영운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벌어진 손가락틈새사이로 여전히 눈물은 뚝뚝 떨어졌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왜 몰랐을까.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병신.

투두둑. 심장을 감싸안은 혈관이 터져나간다. 갑자기 떠오른 성민의 잔상은 이내 영운의 온 몸을 엄습했다. 심장이 요란하게 뛰기 시작한다. 이제야 깨달았다. 성민의 아린 눈빛에 왜 심장이 따끔거렸는지. 내 뒤에 항상 누가 있었는지. 죽도록 잊고 싶은데 왜 잊지 못하겠는지. 이제야 병신같이 깨달았다.

하지만…이젠 너무 늦었다. 너무나도 늦어버렸다.
저는 그를 버렸고 그 역시도 저를 버렸다.
이젠…사랑하는 일이 미안한 일이 되어버렸다. 늦게 깨달은 감정의 서러움은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영운은 쓰러지듯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눈이 울고 머리가 울고 가슴이 울고 심장이 울었다. 심장부근에 저릿저릿한 고통이 일더니 곧 발기발기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명치끝에서부터 스물스물 타고 올라온 아픔이 관자놀이 부근에서 펄떡거리며 뛰어논다. 지독한 두통이었다. 그리고 그 두통의 원인은…

미안해…미안해 성민아.

그리고…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눈물로 젖은 베게를 감싸 쥐며 힘없는 목소리로 성민이 입술을 달싹였다. 간신히 짜낸 목소리였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고장난 인형처럼 되풀이했지만 벙어리처럼 벙싯거리기만 했다. 입 밖으로 내어놓기엔 너무나도 아픈 말 이었다. 그가…늘 멀어보이기만 했던 그가 라디오에서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울 줄 몰랐다. 울먹이는 영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성민은 같이 목 놓아 울었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다른 그 어떤 말보다 제가 영운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부드러운 베겟잎에 얼굴을 파묻고 성민은 울었다. 날카로운 음성대신 축축한 습기가 짙은 슬픔을 띄우며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성민은…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건 고통으로 인한 수 없는 불면의 밤을 보낼 수 있었던 일종의 본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깟 몸의 고통 따위는 비교 되지 않게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괜한 희망이 들어 더욱더 서러웠다.


“…성민이 형.”


귓가에 감기는 걱정이 가득 섞인 달콤한 목소리에 성민은 움찔했다. 시원이었다. 재빨리 눈물을 이불에 닦으며 최대한 방금 일어난 것처럼 눈을 떴다. 다행이도 시원은 잘 속아주는 것 같다.


“일어났어요?”

“으응.”

“그런데 왜 이렇게 혼자 있었어요. 밖으로 나오지.”

“방금 일어났거든. 우리 나가자.”


헤헤. 속없이 웃으며 눈앞에 내밀어진 그의 손을 잡았다. 따듯했다. 시원은 말하지 않아도 편안했다. 또한 위로되었다. 그 점이 성민은 좋았다. 손을 마주잡은 지금 충분하다 생각했다.


“어?! 성민아 일어났어?”


거실에 모여서 다같이 드라마를 보고 있던 멤버들이 우당탕탕 성민이 곁으로 모여든다. 시끄러운 멤버들 사이로 려욱은 소파에 앉아 얌전히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귓가에 까만 이어폰이 달랑거리며 빛을 낸다.


“너…울었어?”


맨 처음으로 다가온 혁재가 성민의 빨간 눈을 보고 묻는다. 깜짝 놀란 성민이 재빨리 손등으로 눈을 부빈다. 그 모습을 보고 려욱의 눈에 눈물이 핑 돈다.

[……미안하다…우흑……너를…너를……사랑해서……미안하다…]

여름날 소나기 흩뿌리듯 이를 바득바득 갈며 영운은 그리 울었다. 라디오가 끝난 지금까지도 그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생생했다. 시큰한 아픔이 콧잔등을 타고 올라오더니 눈가에 머문다. 이내 눈물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려욱은 영운과 성민이 너무나 불쌍했다. 분명 …성민도 자신처럼 눈물의 라디오 방송을 들은 것이라 확신하자 계속해서 굵은 구슬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울고 있는 려욱을 본 동해가 깜짝 놀라 다가오며 묻는다.


“려욱아. 너 왜 울어?”


그러자 규현이 장난스럽게 한 마디 툭 던진다.


“에이~ 뻔하지. 또 순정 만화보면서 우는거겠죠. 뭐.”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맞다니까요. 야! 김려욱! 맞지? 그치?”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 쳐다보는 동해의 시선을 피하며 발간 눈의 성민과 빈 허공을 아련하게 쳐다봤다. 젖은 목소리로 려욱이 말한다.


“…주인공이 너무 불쌍해서요.”

 

 

 


계속 울음이 멈추지 않아 결국 모든 대사를 게스트가 한 셈이었다. 엉망진창이 되버린 방송이고 뭐고 영운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간신히 남아있는 정신으로 마지막 멘트를 날린 것 까지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빌어먹을 눈물이 자꾸 눈 밖을 비집고 새어나와 시야를 축축이 가린다. 마지막 멘트를 치고 바로 뛰쳐나와 강원도로 직행했다. 가슴이 너무 많이 아팠다. 딱 죽기 바로 전의 심정. 그 심정이었다.


어둠이 내린 국도를 질주하던 노란 헤드라이트가 뿌연 연기를 흩날리며 급하게 샛길로 꺾어진다. 각막에 느껴지는 따가움에 손등으로 눈을 가린 영운이 차문을 열고 내렸다. 그는 비틀거렸다. 그 곳엔 자그마한 성당이 하나 있었다. 성당인지 교회인지는 몰라도 뾰족한 지붕 꼭대기에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십자가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었다. 서울의 다른 교회들이 그렇듯 밤거리의 네온사인처럼 붉은 색 전구들로 치장해놓지 않았다. 희한하다고 생각했지만 맘에 들었다. 터벅터벅 다가간 영운이 굳게 닫힌 문을 밀었다. 아치형의 문은 삐걱 소리를 내며 스르륵 밀렸다. 성당의 문은 열려있었다.

터벅…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뒤따라 발소리가 메아리쳤다. 달콤하지만 특이한 향이 코끝을 강하게 찌른다. 눈앞에 보이는 돔형의 성당엔 거룩한 빛이 감돌았다. 수천개의 모자이크 타일로 아로새겨진 천장의 무늬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단정했다. 피렌체의 두오모처럼 성대하진 않았지만 아기자기한 성당이었다. 열린 창문위로 강가의 기슭에서 자라는 수초처럼 크림색 커튼이 나부낀다.

다크브라운의 장의자가 양 옆으로 정갈하게 놓여있다. 막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천천히 걸어가던 영운이 마호가니 장의자 중간쯤에 조심스레 앉았다. 성당 안은 너무 어둡지 않았지만 또한 너무 밝지도 않았다. 몸 바로 곁에 위치한 사물만 희끄무레 보일 정도였다. 영운에겐 최적의 장소였다.

두 손을 모으고 숙인 고개를 받쳤다. 기도하는 자세였지만 기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도라는 것은 해 본적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는 법을 몰랐다. 지금 영운은 신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전지전능한 하느님이든 성모 마리아든 알라신이든 하다못해 잡신이든 뭐든 간에 구원받고 싶었다.


“살려주세요…네? 성민이…우리 성민이 살려주세요.”


두 손을 굳게 깍지껴 모으고 쉴새없이 뇌까리는 영운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운은 신 따윈 믿지 않았다. 오히려 무시하고 비웃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절실한건 신이었다. 그 존재가 희미하고 불확실하더라도 의지할 수 있는 절대자를 원했다. 몸과 마음… 어느 한 곳 할 것 없이 힘들었다. 기댈 곳이 필요했다.


“제발…”


절박하게 내뱉는 영운이 목탁에 그대로 이마를 댄 채 무너졌다. 신은 잔인했다. 그래서 더 없이 슬펐다.

 -사람은 누구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야.

이제는 잊을 수 없다. 때를 놓쳐버렸다. 시간이 약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자기 위로에 급급한 비겁한 변명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흑…성민아…흑…”


결국 간절한 그리움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영운은 텅 빈 공간에서 오열했다.

그때-


“거기 누구요.”


늙은 노인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영운의 머리 위로 머리가 하얗게 물든 백발의 노인이 하얀 초를 들고 서있다.


“누구 길래 이렇게 외진 곳까지 찾아와 우는 거요.”


노인의 음성은 더없이 따듯하고 차분했다. 영운은 그저 눈만 깜박였다. 눈꺼풀을 닫을 때 마다 뜨거운 눈물이 한 줄기씩 볼을 타고 흩어졌다. 노인은 까만 제복을 입고 있었다. 차이나식 카라에 아무 무늬도 없는 아주 밋밋한 옷이었는데 영운은 단순히 수도복이라 생각했다.

영운의 곁에 초를 둔 노인이 이내 뒤돌아서 무릎팍 정도까지 오는 단 앞으로 걸어간다. 눈앞에 놓인 촛불로 인해 주위가 속속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붉은 색이 감도는 단상위에 하얀 꽃을 듬성듬성 두었다. 단상뿐만 아니라 자잘한 수가 놓인 하얀 천으로 덮여진 작은 피아노 위에도 하얀 꽃은 정성스레 놓여져 있었다. 성당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달콤한 향기의 정체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대충인 것 같지만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섬세한 그 손길에 문득 저 노인은 얼마나 이 작은 성당을 관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에 데코되어있는 꽃송이의 수를 보아 한 시간은 족히 넘게 이 일을 한 것 같다. 하얗디하얀 꽃송이 위에는 싱그러운 이슬마저 매달려있다. 그럼 노인은 제 울음을 다 들었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주체할 수 없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어느새 단 앞에 서있는 영운을 힐끔 본 노인이 무심하게 그런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이 곳 사람은 아닌 것 같네만.”


잠시 뜸을 들인 영운이 목을 가다듬고 말한다.


“지나가다 들렸습니다. 방해가 되었다면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걸 이제야 알았는가? 똘똘하게 생겨서는 영 눈치가 없구먼.”


노인의 심통 섞인 음성에 영운이 맘 상한 듯 거칠게 말을 내뱉는다.


“잘 알겠으니 알아서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믿는 신께서는 요즘 타인에게 친절하라는 말은 안 가르쳐 주시나 보죠?”


이렇게 불친절한 영감은 또 처음이야. 괜히 더 화가 난 영운이 훽 돌아서며 씹퉁댄다. 그러자 뒤에서 노인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하하…재밌는 젊은이 일세. 그래. 이왕 들어온 거 이야기나 들어보도록 하지.”

“일 없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이거 섭섭하게 왜 이러나. 분명 무언가 힘든 일이 있었던 게지.”

“아- 일 없다고 했잖아요.”


어깨위로 얹어진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노인의 호의를 거절했다. 노인이 저를 두고 장난질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한 걸음 떼었을까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영운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성민.”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두 음절에 영운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자네가 간절하게 부르던 사람…맞지?”


순간 화가 뻗쳐올랐다. 노인의 가벼운 입에서 성민의 이름이 오르락 하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무엇보다 제 울음소리를 다 엿들었다는 점도 맘에 안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뒤를 돌자마자 노인의 눈과 마주쳤다.

한 대 때려버릴까 하던 영운은 오히려 무너지듯 무릎을 꿇은 채 엎어졌다. 마주 친 노인의 눈빛이 너무나 따스했다. 모든 걸 다 포용한다는 이해의 눈빛이었다. 그 모습이 어렸을 적 다정했던 아버지의 모습 같았다. 약간은 굽어 뼈만 앙상한 노인의 다리를 부여잡고 영운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부지…우흑…성민아…어엉”


아버지와 성민을 번갈아 부르며 영운은 아이처럼 울었다. 과자를 뺏겨 아무것도 아닌 일에 억울해 우는 아이처럼 발을 비비적대며 영운은 울었다. 노인의 모습이 꼭 아버지 같아서 영운은 아버지를 부르며 울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영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따스했지만 서러워서 영운은 또 울었다.


“…아부지…성민이 죽는데……난 어떻게 해야 해요?”


그 처연한 말에 노인이 허망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살이 모진 풍파를 다 겪은 자의 웃음이었다. 영운은 가슴이 아팠다. 메말라버린 가슴께를 퍽퍽 치며 영운은 모든 기억을 토해내 듯 울었다. 얄궂은 운명이 야속했다.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지독한 열덩이가 되어 가슴을 가득 채운다.


“…난 그를 사랑하는데…크흑…이젠 그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없어…”


헤진 가슴을 온통 휘젓고 나서 식도를 타고 꾸역꾸역 올라온 열덩이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영운은 바보처럼 입만 벙긋거리며 울었다. 지독했다. 잊겠다 해놓고 지독하리만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고집스럽게 잊겠다한 그 이름이 내 심장의 주인이었음을.


“…우흑……”


나를 바라보는 아픈 그의 눈빛은 지독히도 단단했다. 길가에 난 뿌리 약한 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나였다. 거센 파도가 밀어닥치는 백사장의 작은 모래알갱이처럼 큰 파도에 휩쓸려 밀리는 것 또한 나였다. 결국 벌을 받는 쪽은 나였다.


“…성민아…크흑…”


헤어지기 싫단 눈을 하고 헤어짐을 고한 것은 그이고 그 상처받은 눈을 아무렇지 않게 치부해 버린 것은 나인데 어째서 지금은 내가 헤어지기 싫단 눈을 하고 있을까. 지금의 그는 어째서 그렇게 단단한 눈빛을 가지고 있으며 왜 나는 지나간 상처에 이리도 끙끙대고 있을까.

머릿속을 뒤덮는 끊임없는 잔상이 아프게 조여 왔다.


“널 시험에 들게 하시니, 그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기를.”


노인은 다만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짧았지만 심장 깊숙이 맺혔다. 충분했다.

 


노인은 여전히 성당을 정리했다. 새벽부터 미사가 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영운을 향해 노인이 꽃한송이를 건네주며 묻는다. 순백색에 끝이 둥글게 말린 우아한 꽃이었다.


“이 꽃이 무슨 꽃인 줄 아는가?”


영운이 메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합. 백합 아닌가요?”


노인은 그저 미소 짓는다.


“기독교에서 백합은 없어서는 안 될 꽃이네. 어떤 사람들은 아리스라는 어여쁜 소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자애로우신 성모마리아께서 아리스를 백합으로 만들었다고 믿지. 그래서인지 백합은 순결을 뜻하네. 또 다른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흘린 참회의 눈물이 백합으로 피어났다고들 하지. 그래서 옛날부터 백합은 슬픔에 빠진 우리를 성스럽고 깨끗하게 정화해 준다고 믿었네.”


노인은 여전히 뒤돌아선 채 한 아름 안은 백합을 창가에 몇 가지씩 내려놓는다.


“그건 자네를 위한 위로의 선물이고…”


노인이 팔을 뻗어 영운에게 더 탐스럽고 환하게 핀 백합을 한 송이 건넨다.


“이건 그를 위한 희망의 선물이네. 가져다주게나.”


영운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순결이라… 그 어떤 단어보다 천사 같은 성민에게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클래식한 모양의 창 뒤로 하얀 빛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얗게 샌 밤의 끝을 알리는 빛은 어쩐지 조금 약했다. 마치 얇은 실처럼 가냘프고 얇은 모습으로 주위를 조금씩 잠식해나간다. 홀가분했다. 지쳤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영운의 뒤에 대고 노인이 무심하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잊혀지게 된다네.”


지금은 비록 이해할 순 없겠지만…. 노인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조금 움찔하다 이내 곧 사라진 영운의 뒷모습을 보던 노인은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를 살짝 열었다. 그 안에는 몇십년 전 젊었던 자신과 지금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추억 한 자락이 아름답게 웃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잊혀지게 되요. 꿈도 희망도 추억도 사랑도….

아픈 기색이 가득한 너의 말에 내가 웃었니? 울었니…


메마른 손길로 사진을 조심스레 만지던 노인의 눈에 투명한 물빛이 비친다. 미명이 터오는 산듬성을 바라보며 노인이 허공에 속삭인다. 그의 눈이 살짝 반짝인다.


“꼭 젊었을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소. 나도 저렇게 아팠던 시절이 있었지….”


그리곤 두 손을 경건하게 모았다. 불쌍한 그를 위한 축복과 위로의 기도였다.

…널 시험에 들게 하시니, 그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기를.

 

 

 

강원도의 밤은 쌀쌀했다. 보송하게 울이 들어가 있는 가디건을 입혀주며 동해가 조금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조금은 덥다 싶은 옷이었지만 성민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사랑스런 눈빛을 담아 동해를 바라봤다.

확실히 공기가 맑고 깨끗해서 그런지 짙은 남색의 밤하늘엔 노랗고 하얀 별이 촘촘히 박혀있다. 총총하게 빛을 내는 별을 보고 반한 듯 멤버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와- 별 열라게 많다!”

“씨바. 별 세다가 사시 될거같애.”


꽤 죽이 잘 맞는 규현과 동해가 낄낄대며 장난을 치고 언제나 진지한 희철마저 그 유치한 싸움에 가담해 열을 올린다. 기범이와 려욱이는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북두칠성을 찾고, 그런 둘의 뒤로 예쁘게 웃음 지은 정수가 뭐야? 뭐야? 하며 끼어든다. 종운은 별을 보며 낮게 노래를 부르고 그 뒤로 동희와 한경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서울에선 보기 힘든 별을 신기하단 눈으로 쳐다본다. 시원은 디카를 가져나와 멤버들의 모습을 찍겠다 난리법석이다.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다정한 그 모습을 벤치에 반쯤 기대앉은 성민이 하나하나 꼼꼼히 눈에 박는다.

아련한 눈빛으로 멤버들을 관찰하던 성민의 곁으로 혁재가 다가온다. 성민의 어깨에 한 손을 처억 얹으며 다정스레 말한다.


“성민아 뭐해?”


그 장난스런 표정에 풉 웃어보인 성민이 혁재의 코를 살짝 비튼다. 아야~ 나 요기 호해죠. 손가락으로 코를 문지르며 엄살을 떠는 혁재의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진짜로 호- 해준 성민이 어깨를 감싸안은 혁재의 팔에 편히 기대며 그런다.


“나? 별 읽기.”

“별 읽기? 무슨 별 읽기?”

“그런게 있어 임마.”

“그런게 뭔데에!!”

“애들은 모르는 어른 만의 그런게 있어. 훠이훠이-!”


장난스럽게 손 사레 치며 말하는 성민을 마주보며 혁재가 하얗게 웃는다. 사소한 말장난. 웃음기 가득어린 목소리. 다시는 못 들을 것 같아 무서웠던 것들이었다. 성민은 혁재의 볼가를 가볍게 잡아 살짝 비틀었다. 그 손길이 예전과 같아 혁재는 하늘에 감사했다. 두 눈을 반달모양으로 접어 휘어져라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비록 입술은 다 갈라지고 창백했지만 그 어떤 모습보다 예뻤다. 혁재는 뜨거운 제 마음을 담아 성민에게 웃었다. 그의 눈빛이 ‘좋아 한다’ 수줍게 전해온다.

짠하게 웃으며 성민은 차마 뱉지 못한 말을 되뇌었다.


별 읽기


너와 나와 우리의 이별 읽기

 

 

 

 

 

 

제 12화

날 기다려줘

 

 

 

“……!!”


어두웠다.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검은 액체는 발을 끊임없이 잡아당긴다. ‘살려줘!’ 나는 무기력했다. 몸이 점점 가라앉는다 느껴졌을 때 갑자기 치미는 구토기에 성민은 몸을 둥글게 구부렸다. 그러자 척수에서부터 연결된 신경다발을 따라 찌릿한 아픔이 전해져온다. 세밀한 척수줄기를 타고 잘 갈린 면도날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 같았다. 온 몸을 뒤집는 끔찍한 아픔에 속으로 단발마의 비명을 지른 성민이 배를 움켜쥐곤 옆 탁자에 놓여있는 약병을 집어 들었다. 점점 더 심해지는 아픔은 성민의 목을 졸라맸다. 아픔은 거대했지만 또한 섬세했다. 너무나 잘 갈아진 양날의 검에 온 몸의 신경세포를 모조리 쓸어낸 것 같았다.


“…윽……!!”


축축한 식은땀으로 들어찬 손은 뚜껑을 열지 못하고 자꾸만 미끄러졌다. 손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겹게 약병을 열어 탁자위에 마구잡이로 쏟아 부은 성민이 한 움큼 집어 그대로 입에다 가져다 넣었다. 하나하나 약을 셀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암이란 악마가 약에 면역이 되었는지 이젠 몇 알 가지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순간 울컥하고 짭짤한 핏덩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역류한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손을 비집고 나온 피 한 방울이 턱을 타고 하얀 이불보에 툭 떨어진다. 그대로 입안 한 가득 들어찬 알약을 아득아득 씹었다. 성민은 아직 약병을 열 수 있는 힘과 약을 씹을 수 있다는 힘이 존재한다는 거에 감사했다. 고통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입 안에 온통 쓴 약과 함께 비린 피 맛이 감돈다.


“하아…하아…….”


턱까지 들어찬 미약한 숨을 토해내었다. 눈이 부셨다. 온통 검었던 꿈과는 달리 눈두덩이의 얄팍한 살을 뚫고 들어오는 바깥세상은 환했다. 아침이었다. 손바닥을 들어 부신 눈을 가렸다. 얄팍한 눈물 한 줄기가 눈꼬리를 따라 흘러내린다. 두려웠다. 성민은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가느다란 햇살이 커튼을 비집고 들어오면 또 하루를 넘겼다는 생각에 감사했지만 또한 죽을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양치해야겠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성민이 힘겨운 몸을 일으켜 비척비척 방에 딸린 화장실로 걸어간다. 가느다란 다리가 제 힘을 잃고 휘청인다. 식어버린 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을 통해서 저릿저릿하게 전해진다. 몸을 조금 떨며 성민이 화장실로 들어가자 옆에 누워있던 동해가 감았던 눈을 살포시 뜬다. 그러더니 옆에 흩어져 침대보를 물들인 핏방울을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쓸어본다. 울음으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동해가 벌떡 일어서 화장실로 다가가 문을 벌컥 열었다.


“너…!!”

“왜?”


동해는 할 말을 잃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고통을 호소하던 성민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곤 이를 닦고 있다. 그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동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진다. 그 동안 모두를 이렇게 속여 왔겠지…. 알아채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미련했다. 당장이라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고 화를 내고 싶지만 웃음기 가득한 눈으로 이를 닦는 그에게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동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는 강했다. 하지만… 자신은 약했다. 아직 채 고르지 못한 성민의 숨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칼날 없는 숨소리에 심장이 너덜너덜해진다.


“너…너 왜 내 칫솔 써!”


결국 제가 꺼낸 말은 고작 이런 것이었다. 주체할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보다 목소리가 더 빨랐다. 당황한 성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면


“너…왜…내 칫솔 써…어엉.”


오히려 아이처럼 엉엉 우는 동해다. 입 안 가득 들어있는 거품을 뱉은 성민이 동해에게 다가갔다. 동해는 바지가 젖는 것도 모른 채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동해는 보드라운 성민의 다리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곧은 다리는 나뭇가지마냥 앙상했다. 동해는 더욱더 서러웠다.

성민은 제 칫솔을 한번 쳐다봤다. 끝에 조그만 키티가 달린 분홍색 칫솔은 분명 제 것이었다.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해야만 하는 동해가 가여웠다. 제 다리를 껴안고 엉엉 우는 동해를 감싸 안은 성민이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동해는 ‘도대체 뭐가 미안한대?’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하고나면 제가 미안해 질 것 같아 할 수 없었다. 동해는 꾸역꾸역 일어섰다. 그러더니 성민의 손을 잡아 이끈다. 찬 물을 틀어 거칠게 얼굴을 헹군 동해는 말없이 비치되어있는 투명한 컵에 물을 한잔 담아 성민에게 주었다. 아직 헹구지 못해 씁쓸해진 입을 성민은 헹구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동해는 옆 욕조에 성민을 앉히곤 거품투성이인 입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코끝이 시큰해 괜히 코를 훌쩍인 동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 성민은 애써 힘주어 걸었다.

욕실문이 큰 소리를 내며 성민을 삼키자마자 동해는 크게 휘청이다 무릎이 꺾여 바닥에 무너졌다. 그의 입가를 만졌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처음으로 무서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죽음이란게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은 아름다웠다. 어젯밤엔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싱그러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가을로 변하는 길목의 산은 아름다웠다. 녹음이 가득한 푸르렀던 나뭇잎의 꼬리는 레몬푸딩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나무 틈사이로 울긋불긋하게 피어난 코스모스가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렸다. 성민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하나라도 더 많이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우와…”


평소 느끼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에 성민은 문득 눈물이 났다. 대지를 환하게 비추며 떠오르는 햇빛이 이토록 따스한지, 천천히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이 이토록 부드러운지, 발밑을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흙이 이토록 안락한지,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 두어개가 천천히 유영하는 쪽빛 하늘이 이토록 드넓은지, 바람을 따라 살랑대며 흔들리는 풀과 나무가 이토록 푸르른지… 이 모든 것들은 암에 걸리기 전에는 전혀 알 수없던 것들이었다.


“정말 멋지다…”


불치병에 걸리거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남들은 가질 수 없는 선물을 하나 받는다. 그건 바로 남은 시간동안 제 인생을 정리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미안한 사람한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게, 감사한 사람한테는 감사하다 할 수 있게,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사랑한다 할 수 있게… 성민은 그 진리에 순응했다. 세상은 아름다웠다. ‘마지막잎새’의 존시처럼 죽을 날을 기다리며 허무하게 남은 날을 보내는 것은 멍청하다 생각했다. 누구나 한번은 겪을 일이었다. 다만 조금 더 일찍 제게 찾아온 것이라… 성민은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했다.


“고마워요.”


나무에게, 바람에게, 산에게, 바다에게, 흙에게, 꽃에게, 풀에게, 하늘에게… 성민은 하얀 두 손을 모으고 나지막히 내뱉었다. 고마운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눈에 보이는 작은 잎사귀 마디마다 잎 맞추며 고맙다 말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성민은 천천히 숲을 걸었다. 신기한 듯 이곳저곳 둘러보며 걷는 성민의 어깨위로 커다란 손이 털썩 얹어진다. 누구…… 성민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렸다.


“혀엉!!”

“짜식. 무슨 생각을 그리하면서 걷냐.”


영운이었다. 그가 살갑게 웃으며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형 지금 온거에요?”

“응. 길이 많이 막혀서 그렇게 됐다.”


영운과 성민은 최대한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성민의 눈두덩이는 너무나도 심하게 부어있었다. 그건 영운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지금 마주본다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펑펑 쏟을 것 같아서였다. 맹하게 서서 애꿎은 발로 흙만 파헤쳤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성민의 앞으로 영운은 불쑥 하얀 꽃을 내밀었다. 성민이 놀래서 물었다.


“이거…나 주는거에요?”


너무나 감격한 듯한 그의 말에 영운이 코를 한번 훌쩍이며 말한다.


“너 주려고 산건 아니고…그냥 가다가 누가 주길래 주워 왔어.”


뭐…틀린 말은 아니니까. 영운은 조금 웃었다. 하지만 옆에 서있는 성민은 조용했다. 머리 위를 빙빙 도는 하얀 새를 바라보던 영운은 이유 없는 조용함이 이상해서 고개를 돌렸다. 지금쯤 기쁨에 겨워 방방 뛰고 있을 줄 알았는데…


“어어?!”


이거…또 울려버렸네. 성민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성민은 너무나도 감격했다. 젖은 속눈썹을 내리깔며 울음기가 가시지 않은 코맹맹이 소리로 성민은 말했다.


“…고마워요.”

“울보.”


순간, 영운은 성민이 못내 사랑스러웠다. 강아지 같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 결 좋은 그의 머리로 가져가던 손이 공중에서 멈춘다. 손은 잠시 떨리다가 허공에서 사그러들었다. 영운은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침이라 쌀쌀하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바람에 이리저리 나풀거리는 성민의 가디건 단추를 꼼꼼히 잠가주었다. 성민은 그저 멍하니 영운을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살펴보며 모양새를 바르게 한 영운은 한 걸음 정도 앞서서 걸었다. 꽉 다문 주먹이 부르르 울었다. 그를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새 수척해진 그는 손대면 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이 연약했다. 영운은 태평하게 걸었다. 그러나 마음은 태평하지 못했다. 눈이 뜨끈했다. 동그란 눈물방울이 영운의 눈꼬리에 안간힘을 쓰며 매달렸다. 그런 영운의 뒤를 성민은 말없이 뒤따라 걸었다. 이대로 시간이 영원이란 틀에 갇혔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성민은 행복했다.

 

 

 

 

오랜만에 열세명이 다같이 모여 먹는 아침밥이었다. 그 동안은 스케줄도 다르고 숙소도 달라서 늘 몇 명씩 빠졌었는데 다같이 모여 앉으니 거실이 꽉 차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성민의 옆을 꿰어 찬 동해와 혁재가 서로 과시하듯 성민의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놓는다. 성민은 말없이 웃으며 숟가락 위에 올려진 반찬을 꼭꼭 씹어 먹는다. 그러면 혁재는 이제는 선수급인 려욱의 곱게 말린 노란 계란말이를 또 다시 숟가락에 올려놓는다. 한참을 콩자반, 두부조림, 콩나물 이것저것 올려놓던 혁재가 속상한 듯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성민에게 그런다.


“성민아. 뭐가 먹고 싶은지 말 좀해라.”


그러자 성민은 말없이 웃으며 밥 수저를 입으로 가져간다. 답답하다는 듯 가슴팍을 치는 혁재한테 성민이 그런다.


“왜?”

“너 콩나물 먹고 싶은데 내가 계란말이 줄까봐 그러지….”


혁재는 가슴이 아팠다. 작은 것 하나라도 성민의 뜻을 들어주고 싶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성민의 맘에 드는걸로 해주고 싶은게 지금 제 마음이였다. 그런 혁재를 다정스런 눈길로 쳐다보던 성민이 작게 말한다.


“니가 콩나물을 주면 꼭 콩나물이 먹고 싶었던 것 같고 니가 계란말이를 주면 꼭 계란말이를 먹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괜찮아.”


니가 주는 거면 난 버석한 사막의 모래라도 난 씹을 수 있고, 니가 주는 거면 난 바닷물이라도 마실 수 있을 것만 같아.

성민은 초췌하게 웃었다. 이건 정말로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성민의 말에 멤버들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혁재는 결국 밥을 끝까지 먹지 못했다. 성민의 말투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가 가슴으로 들어와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입이 짭짤하다. 눈물과 밥이 한데 뒤섞여 입이 썼다. 혁재는 자리를 박차고 방으로 들어갔다.

괜히 저 때문에 화기애애했던 식사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 성민은 얼른 방으로 따라 들어간다. 혁재는 침대위에 앉아 무릎에 머리를 묻고 있었다. 그런 혁재의 옆에 붙어 앉은 성민이 혁재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혁재야….”


지극히 다정스런 음성이었다. 혁재는 대답이 없었다.


“혁재야.”


성민은 한번더 혁재를 불렀다. 혁재는 고개를 묻고 작게 응….하고 대답했다.


“혁재야.”

“왜…”

“이상하게 자꾸 이름을 부르고 싶다. 혁재야.”

“……”


성민은 자꾸자꾸 혁재를 불렀다. 성민은 세워진 몸을 가만히 옆으로 숙여 혁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혁재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온다. 혁재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한다.


“얼른 가서 밥 먹어…바부야.”


그래야 빨리 병도 낫지. 헛된 꿈을 담아 혁재가 말했다. 성민은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되게 오랜만이다. 혁재야.”

“바부.”

“혁재야….”

“응.”

“난 우리 혁재가 참 좋더라.”


성민의 그 말에 혁재는 차오르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었다. 좋아야 하는데 너무 슬펐다. 잠시 혁재를 아스라이 쳐다보던 성민은 조심히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제서야 혁재는 삼켰던 울음을 맘껏 토해냈다. 성민아… 성민아…

혁재의 머리가 바닥에 닿았다. 혁재는 등을 웅크리고 울었다. 창밖에 거꾸로 매달린 인형이 슬픈 미소를 띠며 그런 혁재를 쳐다보았다.

성민아…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밥을 먹은 성민은 버릇처럼 설거지거리를 개수대에 옮겼다. 그러자 성민의 손목을 턱 하고 잡은 시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에서 하얀 그릇을 옮겨간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됐어. 형은 가서 쉬기나 해.”


잘생긴 눈을 끌어내려 부드럽게 웃어 보인 시원이 어서 나가라며 채근한다. 너무나 착하기만한 시원의 등을 바라보던 성민이 발걸음을 옮겨 시원의 뒤에 바짝 붙어 선다. 비누거품을 풀어 그릇을 닦고 있는 시원의 등을 예고 없이 꽉 안아버렸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던 그의 몸이 일순간 정지한다. 옷자락을 두 주먹으로 꼭 쥐고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버렸다. 두근거리는 그의 심장소리가 등을 타고 성민의 심장께로 전해진다. 그 넓은 등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등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지지만 그건 제 알바가 아니다. 단지…


“시원아….”

“응?”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시원의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가슴을 감싸 안은 손바닥이 쿵쿵대며 그 리듬을 함께한다. 그의 따뜻하고 넓은 등에 성민은 조금 더 깊게 얼굴을 파묻었다. 조금은 뜨겁다싶은 체온이 전해져와 눈이 후끈하다. 이내 다시 손을 움직이며 시원이 조금은 밝고 조금은 물기어린 목소리로 그런다.


“나 잘하잖아.”

“……”

“기다리는거…내 특기잖아.”


죽어서 몸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겨지더라도 기다릴게. 형이 내게 다시 다가올 때까지.

성민은 황급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그의 가슴께에 얹어진 손을 풀며 성민은 작게 흐느꼈다. 그리곤 이내 몸을 돌려 잘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시원의 움직임이 뚝 그친다. 단지 그의 손이 빠져나간 것뿐인데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것 마냥 시리다. 심장이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시원은 재빨리 수도를 튼다. 쏴아-하고 시원스레 내리뻗는 물줄기가 하얗게 응어리져있는 거품을 사그러뜨린다.

시야가 불투명해지기 시작하더니 하나 둘 없어져가는 거품위로 굵직한 물방울이 천천히 떨어지다 이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저릿한 아픔이 심장을 잠식한다. 시원은 그렇게 한 참을 멈춰 선채 움직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많은 생각들이 났다. 언제부터 내 심장이 ‘이성민’이라는 세 글자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일까. 언제부터 그라는 존재가 내 심장에 깊은 홈을 파놓았던 것일까.

평소보다 심했다. 날이 잔뜩 선 신경은 머릿속을 지배하며 긁어내리고 있었다. 필요하지 않은 불길하고 쓸데없는 여러 가지 짧은 기억들은 시야를 어둡게 만들고 가슴을 뭉그러뜨린다.


“영운아.”


희철의 건조한 목소리가 영운을 부른다. 영운은 짧게 고개를 돌렸다. 마당에 주저앉아 흙바닥에 담뱃재를 툭툭 털며 영운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왜?”


그러자 희철이 까만눈을 반짝 빛내오며 그런다.


“너…변했구나.”

“쪽집게 같은 놈.”


희철은 금세 영운의 작은 변화를 캐치했다. 확실히 성민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있었다. 늘 누군가에게 뒤쫓히는 것 마냥 지친 얼굴이었던 놈이 이젠 얼굴에 생동감이 흘렀다. 삶의 이유를 찾은 자의 얼굴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문득 희철은 영운이 불쌍했다.


“앞으론 더 힘들어 질거다.”

 
담배하나를 꺼내 물며 희철이 말을 잇는다.


“후회하게 될 지도 몰라.”

“…그래. 이미 후회하고 있어.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네 말이 맞아.”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다 이내 제 맘대로 변해버리는 메트로놈처럼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어떠한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영운은 성민이 제 삶에 없는 것이 질리게도 싫었다. 아직 채 여물지 못한 영운의 심장은 그 사이 많이도 단단해져 있었다. 담배를 거칠게 발로 비벼 끄며 영운이 일어섰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영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김영운-!!!”


그가 뒤돌아섰다. 하지만 희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말릴 수 없었다. 말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희철의 앞으로 다가서며 영운이 말한다.


“희철아, 너 세상이 멸망하는 때가 언젠지 아냐?”

“……”


수수께끼같은 그의 말에 희철이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 한다. 아마도 영운은 웃었던 것 같다. 예의 그 환한 웃음 뒤 곧이어 나오는 그의 대답에 희철은 영운의 사랑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만한 하지만 조금은 씁쓸하기도 한 미소를 띄우며 영운은 말했다.


“그건 말이지. 이성민이 내 삶에서 사라졌을 때야.”

 

 


넉넉하다 싶을 정도로 큰 소파에 반쯤 기대 누워있던 려욱이 벌떡 일어나자 가죽재질의 소파가 낮은 비명을 지른다.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씹던 려욱은 다짜고짜 성민의 팔목을 세게 잡아 이끌었다.


“형. 이리로 좀 와봐요.”

“응?”


당황한 성민이 반문할 새도 없이 밖으로 끌고나간 려욱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작은 mp3를 성민의 손에 꼭 쥐어준다.


“이게 뭐야?”

“형을 위한 제 선물이에요.”


손에 들어찬 작은 mp3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mp3 목록에는 오로지 한 곡밖에 없었다. 귀를 막는 손톱만한 이어폰에서 play 버튼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낮고 달콤하지만 슬픈 피아노 선율이 성민의 귀를 뱅뱅 돈다. 귓가를 가득 채우는 피아노곡이 심장을 미약하게 자극한다. 밝지만 아련한 그 곡은 처음 들어 보는 곡이었다. 입을 쩍 벌린 성민이 려욱에게 묻는다.


“려욱아. 이거…네가 만든거야?”


성민의 말에 려욱이 씩-하고 쑥스럽게 웃어 보이더니 그런다.


“아직 가사는 못 붙였어요. 가사는…형아 생일날 그때 붙일게요.”


1월 1일. 새로운 날 새 아침. 모든 사람들이 새 생명을 축복하는 그 날. 그러니까


“그 때까지 꼭 기다려주기에요?”


려욱은 간절함을 담아 성민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성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거 어쩌지? 지키지 못할 약속을 너무 많이 만들고 가네. 성민은 아무 말 없이 려욱의 작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려욱의 둥그런 운동화 앞코에 진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흔적을 만든다. 려욱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앙 다문 입새로 슬금슬금 울음이 비어져나온다. 성민이 밝게 말한다.


“우리 려욱이, 형아가 한번 껴안아보자.”


늘어져있는 팔을 들어올려 여전히 작기만한 려욱을 꽉 끌어안았다. 제 목에 얼굴을 묻은 려욱이 이제야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얘…울지마. 성민이 그의 귓가에 조그맣게 말했다. 려욱은 조금 더 세게 성민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성민은 오히려 미소 지었다.


“형아…가지마…”

“려욱아…”

“가지마…가지마아!!…응?”


부서져라 성민의 품에 안겨 처절한 비명을 지르던 려욱이 힘껏 도리질 쳤다. 울어버릴만큼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빈말이라도 제발…

-형이 가긴 어딜 간다구 그래. 이제 보니 우리 려욱이 애기구나?

기억 한켠에 작게 저장되어있는 성민은 따스하게 그리 말했었다. 하지만…지금은…
그런 려욱의 어깨를 잡아 억지로 떼어낸 성민이 동그란 눈물이 맺혀 쉴새없이 떨어뜨리는 그의 눈을 바라본다.


“려욱아.”

“형…흐윽…가지마…”

“밥 잘 먹구, 아프지 말구, 규현이랑…기범이랑 말썽피워서 형들 속썩이지 말구, 노래 연습 춤 연습 열심히 하구….”


성민의 하얀 손이 려욱의 볼을 짧게 쓰다듬었다. 가지마…그런 말 하지마… 려욱은 끅끅대며 성민의 옷소매를 부여잡는다. 그 작기만한 손을 꽉 잡았다 놓으며 성민이 아련한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려욱이 잘할 수 있지?”


형아는 하늘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마.”


형이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마지막으로 성민은 려욱을 감싸 안았다. 려욱은 따뜻했다.

 

 

 


“야야! 나와봐.”


희철의 신난 음성이 어둠이 가라앉은 펜션을 울렸다.


“아- 도대체 또 뭔데.”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밖으로 나가자 노을이 가신 어두운 마당 한 가운데 커다란 캠프파이어가 빛을 내며 활활 타고 있다.


“우와--!!!!”


급격히 얼굴이 밝아진 멤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뒤엉켜 마당으로 뛰쳐나간다.


“이거 다 뭐야?”

“원래 이런데 오면 캠프파이어는 기본이야. 이 촌놈아”


괜시리 물었다가 졸지에 촌놈된 혁재가 입술을 삐죽댔지만 마냥 즐거웠다. 막내인 규현과 기범이 낮에 장을 봐와 준비해온 꼬치구이 재료로 각자 개성만점인 꼬치를 만들었다. 동해는 언젠가 TV에서 나온 것처럼 오이꼬치를 만들었다가 영운의 협박으로 울며겨자먹기로 다 먹었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멤버들이 준비해온 소주를 꺼내자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지글지글 맛있게 익어가는 삼겹살과 소주 한 잔씩을 얼큰하게 걸친 멤버들이 금세 소주 한 박스를 아작 내곤 그래도 모자라다는 듯이 마셔-! 마셔-!를 연발하며 낄낄댄다.

어느정도 알싸하게 취기가 오른 혁재가 차 구석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꺼내온다. 씨익 웃으며 바닥에 다섯 개 정도를 꺼내더니 라이터를 꺼내 소심하게 불을 붙인다. 그러자 파바박- 하고 휘황찬란한 불꽃이 펑! 큰 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우와… 하늘을 수놓는 예쁜 광경에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멤버들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자 어느새 아쉽게도 불꽃놀이가 끝난다.


“에이…감질맛 나.”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만 쩝쩝 다시던 영운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까만 봉다리를 힐끔 쳐다본다. 그러다 혁재와 눈이 마주친다. 장난스런 눈빛이 오가고 개구쟁이처럼 씩 웃어 보인 영운이 큰 소리로 말한다.


“하나 둘 셋! 하면 다들 뛰어가서 엎드리는 거야!”


그러더니 거침없이 모닥불 앞으로 가서 까만 봉다리에 있던 폭죽을 모조리 쏟아 붓는다.


“하나…”


파바박. 폭죽에 연결된 하얀 심지에 불꽃이 붙고


“둘…”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다들 영운의 말만 기다린다.


“셋--!!!”


씩씩한 음성이 하늘을 가르고


“뛰어--!!!!!!”


퍼버버벙-

분홍색,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 파란색, 흰색으로 주위가 온통 물들더니 오색찬란한 불꽃이 하늘 높이 올라간다.


“바보야! 뭐해-!! 위험해-!!”


그 아름다운 색의 향연에 매료되어 움직일 생각도 못하는 성민의 허리를 낚아채듯 잡은 영운이 그대로 달려가 촉촉이 이슬이 내려앉은 풀숲에 같이 엎어졌다. 그런 둘의 모습 뒤로 빠르게 올라간 불꽃들이 하늘에서 꽃비가 되어 땅으로 내린다. 긴 꼬리를 남기며 타오르는 불꽃은 동그라미가 되었다가 하트모양이 되었다가 분수가 되었다가 별이 되어 사라진다.


“정말 멋지다아.”


영운과 나란히 누워 성민은 즐거운 듯 소리쳤다. 영운과 성민은 오랜만에 근심을 털고 하하 웃었다. 불꽃이 거의 다 사그러들때쯤 각자 숨어있던 멤버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보인다. 종운이 정말 유쾌한 듯 하하 웃으며 그런다.


“조기 밑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난 줄 알았을 걸?”

“말도 마. 난 귀청 찢어지는 줄 알았어.”


희철이 기분 좋게 코를 찡긋거리면서 귀를 조심스레 문지르자 규현이 그런다.


“그래두 저거 10만원어치 넘게 산건데…”

“그래서?”


희철이 눈을 흘기며 묻자


“으하하하. 좋다구요. 그냥. 암요. 좋구말구요.”


깨갱하며 물러서는 규현이다. 하지만 입가엔 싱글벙글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모닥불속에 혹시나 불발탄이 있나 꼼꼼히 점검한 영운이 멤버들을 다시 주위로 불러 모은다. 모닥불 옆에 앉기 편하라고 만들어 놓은 작은 통나무 의자에 앉은 멤버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다 갑자기 종운이 그런다.


“근데 혁재랑 동해는?”

“또 어디가서 말썽부릴 준비하고 있겠지 뭐.”


대수롭지 않게 여긴 희철이 따뜻하다…하며 손바닥을 쫙 펴고 불을 쬐고 있는 려욱을 보며 한마디 한다.


“어이! 김려욱. 오랜만에 노래나 한 곡 뽑아봐라.”


그러자 그 말에 김려욱! 김려욱! 하며 여기저기서 환호가 인다. 려욱이 쑥스러운 얼굴로 일어서자 와우-!! 려욱오빠-!! 하며 난리도 아니다. 짐짓 거만한 표정을 한 려욱이 흠흠- 하며 목을 가다듬고는 구성진 한 가락을 부른다.


“즈~알 있거라 나는 간다.”


하지만 멤버들의 반응이 영 심상치가 않다. 반주를 해 주려던 성민은 기타를 든 채로 그대로 굳었다. 어차피 두 소절밖에 모르는 노래라 슬금슬금 실눈을 떴더니 날아오는 거는 온통 핀잔이다.


“아~ 그런 거 말고. 좀 분위기 있는 거 임마~!”


웃겨죽으려고 하는 기범을 힘껏 째린 려욱이 삐진 듯 새침하게 자리에 앉자 희철이 턱으로 규현을 가리키며 그런다.


“어이- 막내! 니가 한 곡 뽑아봐라.”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규현이 성민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품 안에 조심히 들고있는 기타를 홱 빼서는 자리에 앉는다. 그 모습이 조금은 멋지고 조금은 폼 나서 오올~ 하며 야유를 보내자 규현의 긴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며 부드러운 선율을 만든다.

처음 보는 낯선 광경에 입을 쩍 벌린 멤버들을 향해 달콤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연주를 하던 규현의 입에서 중저음의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온다.


“Wise men say. only fools rush in.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였다. 규현의 낮고 섹시한 목소리에 고개를 까딱이던 희철이 문득 영운을 일으켜 세워 장난스럽게 블루스를 춘다.


“Shall I stay. Would it be a sin. If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그러자 어느 정도 술에 취해있던 멤버들이 분위기에 취해 다들 일어서서 블루스를 추기 시작한다. 턱에 손을 괸 채 입가에 웃음을 띠며 구경하는 성민의 앞에 커다란 손이 내밀어 진다.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자 시원이었다.


‘빨리’


입모양으로 채근하는 그를 향해 손바닥을 저으며 살짝 웃자 억지로 손을 끌어올려 성민의 허리를 살포시 감싸 안는다. 당황한 성민이 시원의 귓가에 속삭인다.


“나 이런 거 출줄 몰라.”


그러자 살짝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시원이 성민에게 작은 목소리로 대꾸한다.


“나도 몰라.”

“뭐어?”


그냥 흐름에 몸을 맡겨. 황당한 대답에 까르르 웃은 성민이 조심스럽게 시원의 어깨를 잡는다. 그러자 시원의 큰 손이 성민의 허리를 좀 더 가깝게 밀착시킨다. 느릿한 박자에 몸을 맞기고 그저 발을 움직였다. 서로 귓속말을 하며 즐거워하는 둘의 다정한 모습에 아직까지도 뾰루퉁한 려욱이 기범에게 말한다.


“야. 성민이 형이랑 시원이 형이랑 되게 잘 어울리지 않냐?”


그러자 기범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웅. 진짜 다정하다.”

“둘 중에 한 명이 여자라고 생각해봐. 그림 작살이야.”


그러자 기범이 질겁을하며 려욱에게 그런다.


“야. 말도 마. 성민이 형이야… 여자보다 이쁘니까 상관없는데, 만약에 잘못해서 시원이 형이 여자면….”

“헐. 토할 것 같애.”

“생각 하기두 싫어.”

“진짜 끔찍하다. 그치?”


둘은 같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킥킥대느라 정신이 없다. 막내들의 철없는 대화를 가만 듣고 있던 영운은 문득 시선을 돌렸다. 제 맞은편에는 너무나도 다정해 보이는 시원과 성민이 음악에 몸을 맞긴채 춤을 추고 있다.


“Like a river flows surely to the see. Darling so it goes. Some things are meant to be.”


성민의 허리께에 가있는 시원의 손, 시원의 목에 둘러진 성민의 손, 둘의 웃음, 둘의 다정한 눈빛에 빈정 상한다. 영운은 배알이 꼴렸다. 기분이 확 나빠진다. 발끝에서부터 몰린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오르는 기분. 달콤하기만 한 규현의 목소리도 신경을 긁는 듯 날카로워진다. 그런 제 손을 장난스럽게 잡고 완전히 자아도취중인 희철이 눈치를 챘는지 잡고 있던 손을 홱 뿌리치곤 성큼성큼 시원에게 다가간다.


“파트너 체인지.”


무슨 말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는 시선에 시원의 손을 부여잡은 희철이 성민을 영운쪽으로 밀어버린다. 그러면서 큰 눈으로 윙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쌩유. 입모양으로 작게 감사를 표했다. 얼떨결에 떠밀려온 성민은 무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런 성민에게 정중하게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Shall we dance?”


고운 한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성민이 해맑게 웃는다. 대답은 손을 잡는 걸로 대신했다. 조심스레 성민의 가는 허리를 꼬옥 껴안았다. 가슴속에 꾸역꾸역 쌓였던 추한 질투심이 성민의 미소를 본 순간 한 순간에 쓸려 내려간다.

 
“Take my hands. Take my whole life too. For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내 손을 잡아요. 노래의 타이밍이 기가막히다 생각하며 영운은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조금은 부끄러운지 성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 모습마저도 눈이 부시게 예뻤다. 조금씩 노란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무 밑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믿기지 않게도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려온다.


“어라?”


춤을 멈추고 성민은 위를 올려다봤다. 부드럽고 하얀 눈이 성민과 영운의 머리 위에서만 나부낀다. 보송한 하얀 눈이 머리위에 쌓일 듯 떨어진다. 그리고 그 때 울창한 나뭇가지 위에 앉은 혁재와 동해가 보인다. 두툼한 나뭇가지위에 사이좋게 걸터앉은 둘의 양손에는 눈 스프레이가 들려있다. 마구 뿌려대면서 혁재와 동해가 웃는다.


“이게 내가 형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혁재가 양 손을 입가에 모아 크게 외친다. 하얀 눈은 계속해서 떨어져 그 지역을 점차 넓혀간다. 반딧불이 같은 차가운 눈송이가 볼에 떨어져 물로 변해 떨어진다. 차갑고 축축하다. 성민의 눈이 크게 떠진다. 진짜 눈이다.

지금 이건 기적일까? 눈을 크게 뜬 성민이 감격한 듯 두 손을 얼굴에 묻었다. 나무 위에 올라앉은 동해와 혁재도 신기하면서도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때 아닌 눈에 멤버들이 아이처럼 좋아하며 뛰어다닌다. 성민은 가만 손바닥을 펴 흰 눈을 천천히 만져보았다. 손이 닿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이것은 진짜 눈이었다.

어느새 나무에서 내려와 놀란 눈으로 서 있는 혁재에게 달려가 목을 꼭 껴안고 매달렸다.


-눈 보고싶은데.

-그럼 눈 보면 되잖어.

-…

-…내가 보여줄거야.


이건 분명히 그의 순수한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일것이라… 기적 같은 상황에 성민은 감동했다.


“혁재야. 고마워.”


조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성민이 말한다. 혁재는 정말로 행복한 듯 크게 웃으며 그런 성민의 등을 부서져라 마주 안았다.

 

늦여름. 가을의 입문에 걸맞지 않은 흰눈이 온 세상을 축복하듯 내린다.
실크같은 바람에 뒤섞여 공중을 유영하던 하얀 눈이 창문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창문에 매달린 작은 인형의 곁에도 살포시 내려앉는다.

하지만 인형은 울지 않는다.

 

 

 

 

 

영운은 문 밖에 난감한 듯 서 있었다. 려욱은 짓궂게 웃으며 영운을 쳐다봤다. 희철이 말했다.


“얼른 안 들어가고 뭐해.”

“진짜 왜 이러냐.”

“뭐가? 같은 멤버끼리 방 쓰라는게 뭐 어때서?”


영운은 황당한 듯 한숨만 내 쉬었다. 방 안에는 성민이 잠자고 있었다. 여행 마지막 밤. 영운과 성민을 위한 려욱의 깜짝 아이디어였다. 희철이 바득바득 이를 갈며 영운의 귀에 속삭였다.


“좋은 말 할때 들어가라. 내가 저것들 꼬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러면서 퉁퉁 부어있는 동해와 혁재, 시원을 골고루 찍어준다.


“너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 다 성민이를 위한 거니까 닥치고 들어가.”


사악하게 웃는 희철을 바라보며 영운은 당황한 듯 눈을 굴렸다. 려욱과 규현과 기범, 막내 삼총사는 씨익 웃으며 파이팅! 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응원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영운은 방문을 열었다. 달빛이 은은하게 드리운 침대위에는 성민이 얌전히 누워있었다. 침대 옆 콘솔에는 자신이 선물한 백합 두 송이가 하얗게 빛을 발하며 놓여있다. 잠시 망설이던 영운은 큰맘먹고 침대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안 쪽에 누워있던 성민이 움찔하며 등을 돌린다.


“누구…”

“나야.”


영운의 말에 잠시 당황한 듯한 성민은 이내 표정을 밝게 풀고는 영운이 형?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형.”

“응?”

“그냥요.”


형이 내 옆에 있다는게 믿기지가 않아서요. 성민은 눈을 깜박였다. 영운이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며 그런다.


“싱겁긴…”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 되었다. 하지만 영운은 어쩐지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곁에 성민이 누워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깜박이며 옆으로 몸을 돌려눕자 팔을 베고 불편하게 누워있는 성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이불도 하나 베게도 하나다. 희철과 그 일동들이 얄팍한 수를 쓴 것이 틀림없었다. 괘씸하단 생각을 하며 영운이 살짝 웃음 지었다. 쬐-끔 고맙긴 하다. 제가 베고 있던 말랑한 베게를 성민의 앞으로 넘겨주며 영운이 말한다.


“왜 그렇게 불편하게 자.”


그러자 베게를 고스란히 넘겨주며 성민이 말한다.


“전 베게 없이도 잘 자요. 형은 베게 없으면 못 주무시잖아요.”

“난 머리통이 커서 베게 없어도 돼.”


말도 안돼는 억지를 부리며 영운이 다시 베게를 성민의 앞으로 넘겨준다. 성민은 비실비실 웃음이 자꾸만 나왔다. 서로 툭탁이는 모습은 누가 봐도 다정스런 연인 같았다. 다시 베게가 제 앞으로 돌아오자 단단히 뿔이 난 영운이 전투적으로 베게를 베며 그런다.


“너 후회하지마.”


작은 머리통만 보이는 성민은 아무 말이 없다. 괜히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북북 긁던 영운이


“에이씨.”


순식간에 성민의 허리를 낚아채 끌어당겨 제 팔을 고스란히 대준다. 어색한 듯 흠흠- 헛기침을 하던 영운이 쑥스러운 듯 말을 한다.


“베게는 하나고 사람은 둘이니까 이럴 수밖에 없어.”

“그래도…형 팔 아플텐데…”

“조용히 하고 똑바로 베기나 해.”


퉁명스런 말엔 애정이 다분히 묻어있었다. 성민은 조심스레 목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성민의 머리는 정말로 가벼웠다. 쓸데없이 팔에 들어간 힘을 풀며 영운이 이불을 꼼꼼히 덮어준다.


“나 노래 불러줘요.”


적막을 가르며 성민이 말했다. 영운은 당황했다. 잠시 망설이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래 하나를 선택했다. 이내 목소리를 내리깔고 성민의 귀에 작게 속삭인다.


“넌…이제 떠나지만…너의 모습 아직도 남아 나의 이 가슴 속에서 나와 함께 숨쉬고 있는 거야.”


오늘따라 노래가사가 더욱더 맘에 와 닿는다. 영운의 목소리가 작게 떨린다.


“…먼 훗날 눈감을 때 반겨줄 니 모습 떠올릴게. 못 다한 우리 인연이 하늘 저편에서 이뤄지게.”


사랑을 하면 모든 노래가사가 제 마음 같다고 했던가. 영운은 마치 제 마음을 고대로 옮겨놓은 듯한 가사에 마음이 아팠다. 물기로 젖어 들어가는 목소리가 슬픔에 잠식된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에 발음이 엉킨다. 성민이 베고 있는 제 팔이 축축하다. 내려다본 성민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영운은 모른 척 한다.


“…날 기다려줘.”


진심을 담아 영운은 노래했다. 성민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래 너무 슬프다.”

“……”

“형…한번만 다시 불러줘요.”


영운은 울지 않았다. 부를 수 없었다. 목이 메어와서 도저히 부를 수가 없었다. 최악이야. 이딴 곡을 고르다니… 결국 낮은 허밍으로 불렀다. 슬픈 음성은 급격하게 꺾이다가 나중엔 울음소리 비슷하게 변하고 말았다. 영운은 이를 꽉 다물며 끝까지 불렀다. 날 기다려줘. 간단한 단어들의 나열이 왜 이다지도 서럽게만 느껴질까… 성민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와…우리 형…노래 되게 잘한다.”

“……”


영운은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코가 시큰거렸다. 뜨거운 아픔이 코를 통해 눈으로 올라온다. 입안가득 그리움으로 채워지는 이름을 꾹꾹 눌러 담으며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성민의 젖은 속눈썹과 얇은 눈꺼풀이 깜박거린다. 그의 따스한 숨결이 가슴을 간질인다.


“혀엉…나…가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성민의 말에 영운이 젖은 눈을 밑으로 내리 깐다. 성민은 아무 표정변화도 없이 그저 자신의 가슴팍만 응시한다. 멋대로 갈라진 목소리가 공간위에 균열을 내어 놓는다. 의도하지 않은 독한 말이 칼이 되어 그의 심장으로 날아간다.


"보고 싶긴. 개뿔."

“진짜?”


치.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막상 이런 반응이니 섭섭하고 속상하다. 다시 성민이 입을 연다.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불만을 표하자 한참의 정적 뒤에 영운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조용히 하구 잠이나 자.”


제발…그런 우울한 말 따윈 하지마. 제발 더 이상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지 말아줘.


“혀엉….”

“거 참. 말 참 많네.”

“형 나 많이 밉겠지만 내 부탁 하나만 더 들어줄래요?”

“……”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불안하다. 음울하게 돌아다니는 여러 암담한 예감들이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모든 것을 잃을 것만 같다. 제발 잊어달라는 말만 아니었으면…그러면 좋겠는데…. 영운은 문득 손바닥을 틀어 쳐다본다. 성민이 말한다.


“형…후회 마요.”

“……”

“난 형 만난 거 후회 안 해. 그러니까…”


만약에 나중에 나 하늘 저 멀리 떠나고 나서 너무 힘들어서 형이 나 원망하면 어떡하지? 형이 나 만난 거 후회 한다 그러면 나 어떡해? 나는 형한테 갈 수도 없고 형한테 말 할 수도 없는데, 형도 나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데…그런데 형 힘들어하면 성민이는 어떡해. 나 원망하는 것보다 형 힘들어하는 거 성민이는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우니까…그러니까…


“…형도 후회하지 마.”


성민의 말에 심장이 툭하고 떨어진다.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은 언젠가 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새까만 연기를 내며 타버릴 것처럼 그렇게 뛰기 시작한다.

-후회하게 될 지도 몰라

희철의 메마른 목소리가 머릿속을 뱅뱅 돈다. 터져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한 이름만 부른다. 영운은 타버릴 것만 같은 마음과는 반대로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자. 피곤하다.”


하지만 성민에게 내어 준 팔을 둥글게 말아 성민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검은색의 머리칼이 이마에 어지럽게 달라붙었다가 이내 부스스 떨어진다. 따스했다. 그걸로 대답은 충분하다 성민은 생각했다. 영운의 넓은 품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외롭지 않아. 조금의 지루함도 필요 없을 만큼 머릿속에 꽉꽉 들어찬 형 생각 때문에 나는 외롭지 않아.

혀엉…나는 형 품에 안기면 죽어도 사는 거야.

 

 

제 품에 안긴 성민은 미약하지만 규칙적인 숨을 새근새근 뱉으며 잠이 들었다. 검지손가락으로 성민의 볼을 쿡 찔러도 그는 아무 반응이 없다. 제 품에 안겨 잠든 성민은 너무나도 예뻐 손가락하나만 대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한 숨이 나올 정도로 그는 예뻤다. 그래서 더욱더 보내기 싫었다.


-형…나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응.”


영운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어깨서부터 묵직한 아픔이 심장을 타고 내려와 발끝에서 뭉그러진다. 동그랗게 깍지를 낀 손가락 사이사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
 

네가 눈을 감은 지금마저도 너무나도 그리워 죽을 것만 같아. 성민아.


“이성민…”


서늘하게 식은 손가락으로 잠든 그의 볼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콧망울에 내려앉은 후끈한 아릿함은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져나간다. 역류하기 시작해 눈가에 내려앉은 아픔은 지탱하기 힘들만큼 괴로워서 차라리 눈꺼풀을 질끈 감아버린다.

아프다. 아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마지막 화

선물

 

 


손이 아팠다. 손바닥과 엄지 뼈 뿌리부근의 신경을 건드리는 통증에 영운은 미간을 잔뜩 모으며 상체를 반 정도 세웠다. 널따랗고 판판한 손바닥은 시퍼렇게 죽어 탱탱 부어있었다. 며칠 새 잔디 같은 수염이 자라 까칠한 턱 부근을 북북 긁으며 영운은 꽤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제 성민을 끌어안고 불꽃을 피하면서 바닥에 잘못 디딘 손바닥의 뼈가 금이 가다 못해 완전히 뒤틀린 것 같았다. 멤버들이 걱정할까 부러 붕대까지 풀고 왔는데 말짱 도루묵이었다.

산의 차가운 공기가 비스듬히 열린 창문 새로 들어온다. 축축하고 아주 무거운 공기였다. 쌉쌀한 흙냄새를 담고 있는 공기는 영운의 코를 한번 휘어 감고 방 안에 흩어진다. 뿌연 안개로 빈틈없이 채워진 하늘에선 늦은 비가 추적추적 땅을 적셨다. 밤새 내리던 눈이 어느새 비가 되었나 보다. 창문의 유리를 토독… 맞히며 튕겨 들어오는 투명한 물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던 영운이 침대에서 내려서 기지개를 한번 켜더니 이내 창문을 닫는다. 희뿌옇게 낀 안개 너머로 황금색 미명이 터온다. 달을 등지고 떠오르는 태양은 찰나였지만 아름다웠다.


“넌 어떻게 된게 아침 댓바람부터 담배질이냐.”


그의 등은 쓸쓸하다. 몸을 웅크린 채 무릎을 가지런히 모은 희철을 보며 영운은 생각했다. 거실 전면에 넓게 나 있는 와이드창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 위로 하얀 연기가 꼬리를 그리며 사라진다.


“남이사.”


기다랗고 예쁜 검지와 중지 사이에 제 손만큼이나 하얀 담배를 낀 채 희철이 말한다. 정 없는 놈. 영운이 씹퉁대며 그 옆에 주저앉는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는 담배곽에서 담배 한개피를 꺼낸다. 에게… 돛대네. 영운이 아쉬운 듯 말하자 희철이 너 가지라는 듯 귀찮은 손짓을 한다. 쌩유. 짧게 말한 영운이 급하게 담배에 불을 붙인다. 문드러져 가는 가슴엔 니코틴이 제격이다.


“아야….”


습관처럼 오른손에 담배를 끼우는데, 멍이 든 손바닥이 또 다시 문제다. 얼른 담배를 입에 물며 영운이 왼손으로 손바닥을 어루만진다. 아우 아퍼…. 눈물이 찔끔 다 난다. 그러자 그 형편없는 몰골을 힐끔 보던 희철이 파랗게 질린 손을 제 쪽으로 끌어당긴다.


“빙신.”


퉁명스런 그의 말투에 영운은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그건 희철도 마찬가지였다. 추리닝을 툭툭 털며 일어선 희철이 TV 및 서랍장에서 구급약상자를 꺼내온다. 크림으로 된 파스를 덕지덕지 바르고 하얀 붕대를 얼기설기 감는다. 무자비한 손길이었지만 걱정이 묻어나는 그의 표정에 영운은 조금 웃었다.


“또 빙신같이 엎어지면 죽는다.”


단단히 쏘아붙인 희철은 느릿하게 방으로 들어간다. 영운은 그의 말에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는 희철의 그런 점이 좋았다. 희철 앞에서는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편안했다. 눈치가 빠르고 직설적인 희철은 헛된 위로를 하지 않았다. 올곧이 현실적인 말만 뱉어냈다. 가끔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런 점이 희철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똑같은 모양새로 느릿하게 걸어 들어온 영운은 침대 맡에 걸터앉았다. 밖은 우당탕탕 난리가 났다. 영운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는 성민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일어나.”


하지만 성민은 아무 반응이 없다. 영운은 그의 어깨를 조금 더 세게 흔든다.


“야…일어나라고.”


여전히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을 뿐이다. 손바닥에 닿는 그의 몸이 차갑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서…성민아-!”


쿵쾅대던 심장이 그대로 멈춘다. 영운의 눈이 공포로 파랗게 질려간다. 그의 작은 어깨를 잡은 손이 달달달 떨린다.


“…이…일어나-!!”


공중으로 흩어지는 숨이 격한 울림을 토해내며 퍼져나간다. 고집스럽게 꾹 다문 입새가 조금씩 떨린다. 성민의 어깨를 쥔 손의 마디에 짙은 음영이 들어간다. 마주 닿은 손가락 사이에 힘이 들어간다. 차마 건들이지 못하고 영운이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른다.


“정신 좀 차려봐-!!”


영운의 새된 외침에 잠에서 덜 깨어 부스스한 모습의 멤버들이 급하게 방안으로 들어온다.


“무슨 일이야.”


종운이 영운의 팔을 잡으며 묻는다. 하지만 영운은 반쯤 혼이 나간 모습으로 요지부동이다.


“제발 정신 좀 차려봐!!”


안돼…안돼…머릿속이 하얗게 번져나간다. 헝클어지는 공기에 숨통이 막혀온다. 관자놀이에서부터 묵직한 아픔이 심장을 긁고 내려간다. 꽉 틀어 막힌 목을 쥐어짜냈다.


“제발…”


성민의 몸 위로 지탱하고 있던 팔에 얼굴을 묻으며 영운이 그대로 무너진다. 그때…


“형…”


들릴까 말까 한 작은 목소리가 영운의 귓가를 때린다. 힘주면 부서져버릴 것 만 같은 미약한 목소리는 분명 성민의 목소리였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그가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었다가 놓는다. 그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그의 어깨에서 손을 빼내었다.


“성민아!”


그의 이름을 부르며 나르듯 침대위로 올라선 혁재는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손으로 성민의 머리를 가만 쓸어 넘겼다.


“…걱정했잖아.”


잔뜩 젖어있는 그의 말에 성민이 작게 웃는다.


“난 괜찮아…”


성민의 목소리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득 찼던 기분 나쁜 긴장감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손대면 베일 듯이 날카롭게 조율돼있던 손끝의 신경은 무더위에 늘어진 아스팔트처럼 순식간에 느슨해져왔다.

감사합니다… 동해는 두 손을 모은 채 기력이 다한 듯 고개를 바닥으로 꺾었다. 침대 밑에 주저앉은 려욱은 침대시트를 쥐어뜯을 듯 한 손에 잡아 쥔 채 입을 틀어막고 끅끅대며 울음을 삼켰다. 후……. 길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종운은 가만히 성민의 손을 꾸욱 잡았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성민의 손은 차가웠지만 미미하게나마 따스했다. 그것은 뜨겁지 않았지만 또한 미지근하지 않았다.


“왜 걱정시키구 그래.”


미칠 듯한 긴장감이 넘실대며 공중을 떠다녔다. 멤버들은 이제 더 이상 방심하지 않았다. 하얗게 일어난 입술을 끌어올리며 성민은 괜찮다는 듯이 생긋 웃었다. 그래도 우울하고 슬픈 시선들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희철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얌전히 걸려있는 커튼을 걷었다. 노란색과, 흰색이 묘하게 섞인 밝은 빛이 부수어져 들어온다. 성민은 눈을 조금 찡그렸다. 저에게 꽂히는 열 하나의 시선을 마주하며 누구보다도 밝게 말했다.


“…죽을 뻔 했다.”


그 말에 옆에 앉아있던 혁재가 피식 웃는다. 왜 웃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웃음이 나왔다. 성민의 장난스런 말은 묘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슬픔의 겉과 속은 같다 했지만, 지금은 눈물보단 미소가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나오자 전염병처럼 하나 둘씩 웃기 시작한다. 


“씨발…”


헛한 웃음을 가만히 듣던 영운이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었다. 밝은 빛을 등진 그가 붉은 눈을 감추곤 걸어 나갔다. 그의 등 뒤로 눈부신 햇살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온 몸을 땅으로 늘어뜨린채로 한참을 걷던 영운은 끝내 바닥에 엎어졌다. 거칠게 부딪힌 무릎이 쓰라려온다. 그대로 엎어져선 영운은 미처 삼키지 못한 울음을 게워냈다. 마구 악을 질러대며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건 뿌리 채 뽑힌 옅은 색의 어린 잡초와 매캐한 먼지만 토해내는 흙이다.

성민아… 형 너무 무섭다. 형 너무 무서워…

마치 성민의 죽음을 본 것 마냥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 온 몸의 근육은 스물스물 풀리는데 이상하게 입과 손아귀만은 여전히 뻣뻣하게 굳어있다. 영운은 떨리는 손을 둥글게 말아 잡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들어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만든다.


“…싫어!…싫어.”


바닥으로 힘껏 내려친 바닥은 붉은 황토를 드러낸채 흉하게 벌어진다. 영운은 쉴 새 없이 외치며 주먹질을 계속했다. 손 따위는 아프지 않았다. 알이 굵은 모래에 긁힌 손에서 피가 새어나와 붕대를 벌겋게 물들인다.

너무 싫어…싫다. 성민아.
매일 아침 이렇게 눈 떠서…너 아직 내 곁에 있나 확인하는 거…너무 싫어.


“무섭다. 성민아…응…?”


영운의 아픈 말이 웅얼대듯 흘러나온다. 왠지 무거운 빗방울이 얼굴을 때린다.


“…흐윽…성민아……”


얼굴은 어느새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로 흠뻑 젖었다. 불러도 불러도 그의 이름은 그립기만 하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의 그림자에 영운은 미칠 듯한 그리움을 느꼈다.

성민아…이대로 흙이 되어 너와 함께 영원히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납작하게 엎드린 영운은 조심스레 흙을 쓸어보았다.

이대로 흙이 되어 땅속 깊이 아무도 없는 곳에 우리 둘만 함께하면 좋을 텐데…

오돌토돌한 흙이 손바닥 밑에서 제멋대로 굴러간다. 축축한 흙내가 코를 유영해 허공으로 사라진다. 은행나무와 상수리나무 잎사귀가 우거진 초록빛 요람 안에서 영운은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어느새 심장은 다시 뛰고 있었다.

 

 

 

 


“혁재야….”


성민의 미약한 음성이 혁재를 부른다. 얼른 고개를 돌리자


“물 한잔만 떠다줄래?”


성민이 말했다. 기다려. 비호같이 대답한 혁재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간다. 그를 내보내자 다른 멤버들도 군말 없이 따라 나간다. 성민은 이불에 고개를 파묻었다. 눈께까지 차오른 눈물이 이제야 물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흐읍…새어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형…나 정말 가야할 때가 됐나봐….

서럽다. 서러웠다. 성민은 눈이 일찍 떠졌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영운이 제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죽어라 제 이름을 외친 것도 다 알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금세라도 그의 부름에 열렬하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제 몸엔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서러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와 더 재미나게 보내고 싶었는데…


“성민아…물 떠왔어.”


혁재의 손이 가볍게 성민의 어깨를 누른다. 재빨리 눈물을 닦고 이불을 거뒀다. 하지만 한번 터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걱정스럽게 제 어깨를 그러쥐는 혁재의 손을 잡으며 성민은 맘껏 울음을 토해냈다.


“성민아…약줄까?…응?…도대체 어디가 아픈 거야.”


혁재의 따뜻한 손이 제 손을 꾹 쥐며 묻는다. 그의 목소리엔 울음기가 다분히 배어있었다. 성민은 끅끅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혁재야…”


어깨위에 올라가 있는 혁재의 손을 가슴께로 끌어당기며 성민이 말했다.


“……나 여기가 너무 많이 아파….”


나 가슴이 너무 아파.
그래서 곧 죽을 것 같아.

 

 

 

 

오전 내내 내리던 비는 조금씩 그 세기를 약하게 하다 공기 중으로 사라져갔다. 벌건 물이 든 하얀 남방을 툭툭 털며 영운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옷차림새를 경악스런 눈으로 훑어보던 종운은 찢어져라 벌어진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했다. 종운이 뭐라 말을 걸려하자 피곤하다. 귀찮은 듯이 말한 영운이 그의 입을 손으로 닫아주며 어깨를 툭툭 친다.


“나 샤워하고 온다.”


무척 지친 듯한 그의 노곤한 음성에 종운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며 소파에 앉았다. 지겹도록 따라 붙는 시선을 그대로 무시하며 영운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그 누구에게라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영운은 무척 피곤했다. 다행히도 안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축 늘어진 어깨를 바로 펴며 팔을 몇 번 휘두른 영운이 화장실 앞으로 다가간다. 그런데…


“lying beside you here in the dark.”


익숙한 음성과 함께 찰랑찰랑 흔들리는 청명한 물소리가 들린다. 성민이다. 그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영운은 헉. 숨을 들이키며 곧장 뒤로 돌아섰다. 그리곤 문쪽으로 잘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혁재야…”


성민의 맑은 음성이 혁재를 부른다. 무시하고 문손잡이를 돌리려고 하는데…


“혁재야…밖에 없니?”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안방 문고리를 걸어 잠궜다. 그리곤 문 앞으로 조심히 다가가 정중하게 노크했다.


“혁재니?”


다정한 그의 목소리에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었다. 뿌연 수중기로 가득 찬 화장실은 꼭 사방에 안개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것 같았다. 제 어깨까지 푹 잠기는 따뜻한 물에 부드러운 거품을 가득 풀고 앉아있는 성민의 머리 쪽으로 더운 김이 영혼처럼 사라진다. 문을 등지고 있는 성민의 우유색 피부가 곱다 생각하며 영운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달콤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으로 찰박찰박 물장난을 치던 성민이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혁재야…나 등 좀 밀어주라.”


다른 사람이 들어왔는데 걱정도 안 되는지 제 눈앞에 있는 성민의 모습은 너무나 무방비하다. 원래 성민과 혁재가 형제 같은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하니 질투심이 솟아오른다.


“어?!”


성민의 머리위로 큰 그림자가 드리워질때까지 다가간 영운이 막상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자 이상함을 느낀 성민이 뒤돌아본다. 그러다 영운임을 알자 눈을 동그랗게 뜨곤 영운이형… 하며 앓는 소리를 낸다. 영운은 그런 성민을 내려다보며 소매를 팔뚝까지 걷었다.


“등 밀어달라며.”


꽤 심통이 났는지 무뚝뚝한 영운의 말에 당황한 성민이 두 손을 마구 휘저으며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다가 결국 비눗물에 첨벙 미끄러져 빠진다. 귀여운 그의 모습에 피식 웃은 영운이 욕조 가장자리에 올려져있는 보드라운 스폰지를 말없이 집어 들었다. 겨우 거품사이로 고개만 빼꼼히 내민 성민이 저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영운이 다정하게 말한다.


“가만히 있어. 눈 맵다.”


그러면서 적당한 온도로 맞추어진 샤워기를 성민의 머리위로 조심스레 뿌려준다. 눈에 들어간 비눗물이 매워서 눈을 꼬옥 감고 있던 성민이었다. 따끔하게 눈을 찌르는 고통에 줄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는데 형은 다 알고 있었나보다.


“진짜로 괜찮은데…”


세운 무릎을 감싸 안으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볼멘소리를 하는 성민의 등을 말없이 문질렀다. 방금 막 쪄낸 호빵같이 통통하고 뽀얗던 그의 몸은 어느새 말라 가죽만 남아있었다. 요즘은 살짝만 부딪혀도 멍이 들어 목덜미, 팔뚝, 등허리, 무릎 어디한곳 할 데 없이 하얀 대리석 같은 등에는 온통 시퍼런 멍자국이 가득했다.

참 고왔던 너였는데…

툭 불거져 나온 척추뼈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영운은 조금 웃었다.

이렇게 고통 받을 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니…

가죽만 남은 등 위로 솟아오른 척추뼈가 미웠다. 차마 볼 수 없어서 영운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시선을 돌린 곳에선 커다란 거울이 영운을 마주 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은 건강했다. 눈앞의 사랑하는 이는 이토록 고통 받고 있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제 자신은 너무나도 건강해 보여서 화가 나고 미웠다. 아랫입술을 이 끝으로 꽉 깨물며 차오르는 눈물을 참았다. 그런 제 모습도 모르고 계속해서 몸을 둥그렇게 말고 긴장하던 성민이 제 오른손을 부여잡으며 놀란 듯 소리쳤다.


“형. 이거 어디서이랬어요!”


하얀 붕대가 감겨있는 손이었다. 붉게 물들어있던 붕대의 피는 물에 흐물하게 젖어 주홍색으로 변해있다. 그 손을 조심스레 빼내려는데 아픈 애가 힘은 왜 이렇게 센지 도저히 놓아줄 생각을 안 한다. 마른 두 손으로 제 오른 손을 꽉 쥐며 이리저리 살피던 성민이 속상한 듯 빽 하고 소리 지른다.


“이거 언제 그랬냐구요!”

“…괜찮아.”


난 괜찮아 성민아. 영운은 가만히 성민의 손을 어루만지며 제 손을 빼내었다. 그러자 다시 붙잡으며 잔뜩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괜찮긴! 이렇게나 많이 부었는데.”

“정말로 괜찮아…형은 괜찮다 성민아.”


물에 젖은 동그랗고 까만 머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아직도 잡혀있는 제 손을 가슴께에 가져다댄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울림이 손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진다.


“제발…아프지 마요. 형.”

“……”

“아프지 마….”


나, 가면 이렇게 형 안고 보듬어 줄 사람도 없는데…제발 아프지 마.

성민은 영운의 손을 끌어안고 울었다. 남겨질 영운이 가여워서, 그를 더 이상 아껴줄 수 없는 제 자신이 불쌍해서 그래서 울었다.

영운은 대답대신 조심히 성민의 등을 문질렀다. 드러난 작은 등은 안쓰럽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눈부시게 하얀 목덜미를 지나 한 쌍의 대리석 조각 같은 날개뼈가 등 위로 튀어나와있다. 이 뼈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날개가 솟아나올까 무서웠다. 세모난 모양으로 솟아올라있는 그 날개뼈를 손바닥 안에 얌전히 채워 넣었다. 한 치의 공간도 허비하지 않고 손바닥에 딱 맞게 들어찬 작은 뼈는 따스했다.

 

 

 


삼일이라는 시간은 짧기만 했다. 꿈만 같았던 여행은 오늘부로 끝이었다. 이젠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정들었던 펜션의 문을 나서며 성민은 아련하게 문을 한번 만져보았다. 이 곳에서 있었던 많은 기억들을 차곡차곡 눈에, 머리에, 그리고 가슴에 담았다.

이것저것 빠트린 것 없나 둘러보는 멤버들을 뒤로하곤 성민은 먼저 벤에 올라탔다. 차에는 아무도 없었다. 성민은 문득 핸드폰을 꺼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영운의 사진이 새겨진 작은 액정에는 배터리 눈금 하나가 위태롭게 돋아있었다. 성민은 익숙한 번호를 꾹꾹 눌렀다. 그리고 조심히 귀에다 가져다 댔다. 통화음은 짧았다. 통화음이 채 다섯 번도 되기 전에 상대편에서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반가운 목소리였다.


“성진아….”

[형 맞아? 진짜 형이야?]


하나뿐인 동생 성진이었다. 성진은 전화기에 대고 계속해서 존재를 물어왔다. 성민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은 듯한 음성이었다.


“응…진짜 형이야. 우리 성진이 잘 있었어?”

[…혀엉.]


성진은 대답대신 늘어지게 성민을 불렀다. 애교스런 동생의 모습에 성민은 그저 웃음 지었다. 못 본지 일년이 다 되가는 그리운 동생의 모습이었다.


“그래그래. 밥은 잘 먹구?”

[……]


저의 말에 성진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마도 전화기를 붙잡고 눈물이나 쏟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바보…. 성민은 쓸쓸하게 읊조렸다. 형제는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 숨소리만 들어도 편안했다. 제 목소리를 판에 박은 듯한 똑같은 음성을 하고 성진이 말했다.


[형…. 엄마 바꿔줄까?]


엄마……생각만 해도 그리운 단어였다. 성민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단호하게 대답한 성민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성진아…”

[응?]

“우리 성진이 잘 할 수 있지?”


성민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성진이 격하게 소리쳤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 성진이……잘 할 수 있지?”

[……]

“우리 성진이…나중에 근사한 사람 되서 예쁜 아가씨 손 붙잡고 장가 가야해?”


성진은 대답이 없었다. 조그마한 흐느낌만이 전파를 타고 전해졌다.


“그래서…우리 성진이 꼭 닮은 예쁜 아가 낳아서 어머니 품에 꼭 안겨드려…”


못난 형은…더 이상 그럴 수 없으니까…


“커서…꼭 훌륭한 사람 되서 부모님께 효도해…아부지 많이 늙어서 힘없으시면, 그 손 니가 꼭 잡아드려…알겠지?”


못난 형은…부모님과 함께 늙어갈 수 없으니까…그러니까…


“형 말…꼭 지켜주는거야…?…알겠지?”


못난 형 몫까지 꼭 그리 해줘야 해…


“우리 예쁜 동생…형이…참 많이 사랑해……”

[형…!…형…!!]


무너질 듯이 위태로운 목소리의 성진을 무시한 채 무작정 플립을 닫아버렸다.

엄마…아부지…성진아…….

어렸을 적 행복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성민은 손에 꼭 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아픈 눈을 감았다. 하얀 눈물 한 줄기가 얼굴선을 따라 흘러내린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바닷가에 들르기로 했다. 조금은 슬픈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벤 안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그건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성민의 이별을 털어버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었다.


“와…바다다…”


창가쪽에 앉은 성민이 작게 말했다. 창밖으로 푸른 바다가 가득 넘실대고 있었다. 성수기가 지난 해수욕장은 한적했다. 모래사장 한켠에 차를 대고 멤버들이 서둘러 내렸다.


“바다다-!!!!”


어린아이같이 소리 지르며 멤버들이 우다다다- 바다 쪽으로 뛰어간다.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신발을 저 멀리 던져두고 오랜만에 보는 바다에 자유를 만끽했다. 성민은 그 모습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나가고 싶었지만 나갈 수 없었다.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몸은 더 이상 걷기조차 힘들었다. 지금까지 버틴게 용하다고 성민은 스스로 생각했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앉아있는 성민의 눈앞에 영운이 손을 내밀며 말한다.


“뭐해? 안 내려?”


크고 투박한 그 손을 쳐다보며 성민은 고개를 설레 저었다.


“졸려서…잘래요….”


성민은 입꼬리를 살포시 끌어당겼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영운은 그런 성민을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등을 돌린다. 그 널찍한 등을 보며 성민이 말했다.


“재밌게 보다 와요.”


하지만 영운은 그대로 자리에 쭈그리고 앉는다. 성민이 당황해서 가만히 있자 고개만 뒤로 빼꼼히 돌린 영운이 퉁명스럽게 그런다.


“뭐해? 안 업히구.”

“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자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차더라.’ 옆에 놓여있는 담요까지 꼼꼼히 둘러주며 그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여기까지 와서 안 보고가면 좀 억울하잖아.”


그런 영운의 목에 성민이 조심히 손을 둘렀다. 영운의 등은 따스했다.

 

 

 

영운의 말 대로 소금기를 머금고 있는 바닷바람은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찼다. 성민은 주먹에 움켜쥐고 있던 려욱의 MP3를 꺼내어 play버튼을 눌렀다. 곧 은은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영운은 모래사장을 느리게 걸었다.

성민은 영운의 반질반질한 뒷통수를 바라다보며 문득 눈물이 났다. 정말 떠나기 싫은데…이젠 떠날 때가 되어서였다. 죽음은 조용히 자신을 기다렸다. 제가 준비만 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도록… 성민은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떠날 수 없었다. 아직…영운에게서 그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손 더 꽉 졸라매. 떨어지겠다.”


영운이 말했다. 성민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영운의 목을 꼬옥 껴안았다.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쏴아- 하고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성민은 어렸을 적 엄마가 불러주었던 노래가 생각이 났다.


“엄마가 섬 그늘에…굴 따러 가면…”


저도 모르게 성민은 무심결에 나오는 노래 한 소절을 불렀다. 아련하고 아득한 느낌의 노래였다. 아무 말 없이 제 다리를 쥐고 걷던 영운도 노래를 낮게 읊조리며 걸었다.


“아기가 혼자 남아……집을 보다가…”


형… 나 너무 졸려. 눈앞에 하얀 빛이 쏟아졌다. 아직 가면 안 되는데… 눈이 자꾸 감기면서 졸렸다.


[나, 노래 불러줘요-]


조금은 설레는 듯한 익숙한 음성이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온다. 성민의 눈이 크게 띄어졌다. 그러다 곧 아…하며 긍정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어젯밤 영운의 노래를 두고두고 들으려고 몰래 녹음기능으로 바꿔놓은 저였다.


[넌…이제 떠나지만…너의 모습 아직도 남아 나의 이 가슴 속에서 나와 함께 숨쉬고 있는 거야.]


한참의 공백 뒤에 그의 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낮은 음의 듣기 좋은 음성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먼 훗날 눈감을 때 반겨줄 니 모습 떠올릴게. 못 다한 우리 인연이 하늘 저편에서 이뤄지게.]


가사가 이랬었구나…이렇게나 슬펐구나. 그의 품에 안긴 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끌어안느라 정작 들은 건 달콤한 멜로디뿐이었다.  


[…날 기다려줘.]


팟. 전등이 켜지 듯 그때의 기억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또 다시 눈가가 축축하다. 멀어져가는 정신 속에 선명한 그의 목소리만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돈다. 뭉클한 열덩이가 심장을 아프게 태운다.


[노래 너무 슬프다. 형…한번만 다시 불러줘요.]


그 때의 저도 울고 있었나 보다. 잔뜩 울음기 서린 목소리인 저가 그에게 부탁한다. 성민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추며 영운의 등에 고개를 파묻었다. 잠시 멈칫한 그가 다리를 감싸고 있는 두 팔에 힘을 더 주며 천천히 바다를 걷는다. 음성 속의 그는 차마 노래하지 못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그저 멜로디만을 읊조린다.

성민은 그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더 주며 말했다.


“형…”

“응.”


그가 대답한다. 성민이 씩씩하게 말한다.


“형…꼭 건강해요.”


그는 아무 대답도 없다. 성민은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한다.


“형 맨날 이불 다 바닥으로 던지고 자는 거 모르죠? 맨날 배 아프다고 투정부리지 말고 이불 꼭꼭 덮고 자요.”

“……”

“그리고 형 밥도 엄청 급하게 먹어. 누가 �아오는 것 마냥. 앞으로는 조금 천천히 먹어요.”


영운이 듣는 지 안 듣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민은 계속해서 넋두리 마냥 말을 해나갔다.


“물은 앞으로 규현이나 려욱이 시키지 말구 형이 좀 가져다 마시구. 특이 형은 여름 되면 몸살 한번씩 꼭 겪으니까 잘 좀 챙겨주고, 동해랑 시원이는 겉으론 투덜대도 속은 정많은 애들이니까 형이 잘 도닥여줘요. 희철이 형이랑 종운이 형은 형이 더 잘 알테고, 동희는 겉으로는 신나보여도 속으로는 많이 외로워 하니까 자주 놀아주고, 한경이 형이랑 기범이 너무 많이 괴롭히지 마요. 그리고 우리 혁재는…”


성민은 잠시 망설였다.


“…나 가면 많이 울거에요. 그럼 형이 잘 달래 줘요.”


저를 업고 있는 영운의 등이 불안정하게 떨린다. 제 허벅지를 잡고 있는 그의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목께를 두르고 꼭 마주잡은 두 손위에 뜨거운 물 한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바보 같은 그는 울고 있나보다.


“형…울지 마요.”


영운의 하얀 티셔츠에 동그란 눈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져 내렸다. 이런 말 죽기보다 하기 싫었지만…


“좋은 여자 만나서 꼭 행복하게 살아요. 형.”


제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 것뿐이다. 심장이 소리죽여 운다. 길게 늘어지는 숨이 힘겹게 헐떡거린다. 눈앞을 하얗게 투영하는 강렬한 빛이 몸을 감싸 오는 것이 느껴진다.

형…성민이는 이제 정말 가야하나 봐.

정신이 멍해지고 손에 힘이 점점 빠진다. 아직 가면 안 되는데…아직 들어야 할 말이 있는데…

순간.


[…너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
 

처음 듣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등을 때린다. 성민의 눈이 크게 떠진다.


[이성민…]


수줍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의 목소리가 작게 말한다.

형…고마워. 이제 성민이는 편히 갈 수 있어…

성민은 미약하게나마 남은 힘으로 그의 등에 속삭였다.


“형……사랑해.”


성민은 미소 지었다. 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형 품에 안기면 나는 죽어도 사는 거야.

 

 

 

 

 

“성민아…….”


영운은 등 뒤에서 아무 미동도 없는 성민을 멈칫멈칫 불렀다. 조금만 건드려도 공기 중에 흐뜨러질까 무서워서였다. 성민의 다리를 감싸고 있는 손가락 마디에서 저릿한 아픔이 올라와 심장을 일그러뜨린다.


“서…성민아.”


그는 아무 대답도 없다. 제 손 끝에 닿는 그의 다리가 점점 식어간다는 걸 느꼈을 때 영운은 그대로 힘을 잃고 모래밭에 제 무릎을 박아 넣은 채 무너졌다. 그럼에도 성민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다.


“성민아…성민아…”


영운은 정신없이 성민의 이름을 불렀다. 등 뒤에 고이 업은 성민을 끌어내려 무릎위에 조심스레 얹었다. 작게 미소 지은 채 눈을 감고 있는 그는 금방이라도 깨어날 듯 보인다. 영운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바닥으로 성민의 볼을 메만졌다.


“성민아…일어나봐…응?”


길게 늘어지는 그의 음성이 점차 무겁게 가라앉는다.


“일어나 봐--!!”


그의 어깨를 사정없이 흔들며 외쳤다. 절박한 목소리였다. 숨 한올 한올이 괴로움으로 뭉쳐있는 듯 했다. 어느 새 다가온 멤버들이 성민을 끌어안는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가 온통 울음으로 가득 찬다. 영운은 힘없이 고개를 뒤로 꺾었다. 눈앞에 보이는 새파란 하늘엔 온통 그의 얼굴뿐이다.


“성민아…”


이렇게 부르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데…


“……”


돌아오는 것은 허한 공백뿐이다. 그는… 이제 없다.

 

 

 

 


*
*

 

 

 

성민의 소식은 빠르게 전해졌다. 연예계는 충격으로 발칵 뒤집혔고 성민의 시신은 그대로 서울로 내려와 사람들의 가슴에 눈물로 자리 잡았다.

성민이 가는 날은 어느 날보다도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성민의 작은 관을 화장터로 옮기며 멤버들은 발자국 가득히 눈물을 쏟아내었다. 성민의 부모님은 친자식 같은 혁재의 어깨를 자꾸만 쓰다듬었다. 혁재는 울면서도 괜찮을거라 끊임없이 되뇌었다.
성민의 영정사진은 영운이 들게 되었다. 잇몸이 다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고 있는, 멤버들이 참 많이도 좋아하던 사진이었다. 까만 상복과 귓가를 맴도는 곡소리와는 반대로 사진속의 성민은 너무나 행복한 웃음을 띠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어쩌다가 저한테까지 넘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영운은 아무 말 없이 하얀 두 손에 성민을 담았다. 그런 그의 뒤를 멤버들이 울며 따라왔다.

하얗디하얀 한줌의 재로 변한 성민은 아직 여리고 작은 리기다소나무에 뿌려졌다. 수목장이니 뭐니 주위에서 가타부타 말이 많았지만 영운은 그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다만 아직 낫지 않은 오른 손으로 영글어가는 연녹빛의 보드라운 잎새를 매만졌다.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성민의 장례식장 앞은 팬들과 취재 나온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성민의 어머니는 결국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성민의 동생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뚝뚝 눈물만 흘렸다.

멤버들은 모두 잔뜩 부은 눈으로 장례식장을 지켰다.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그들은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럽게 울었다. 그런 멤버들의 표정을 기자들이 달려들어 찍어댔고, 멤버들은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일 이면 연예인 결혼식장에 가서 방긋방긋 웃어댈 기자들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일었지만 연예인이라는 신분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제 자신이 무능력해지는 순간이었다.

새벽녘쯤 되서야 조용해진 장례식장에는 멤버들과 가족들만이 함께 했다. 다들 피를 토한 듯 붉은 눈이었지만 영운만은 멀쩡했다. 영운은 울지 않았다.


“후……”


깊은 한 숨을 뽑아내며 영운은 운전석에 올라탔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제가 입고 있는 검은 양복도… 손끝에 아로새겨진 보드라운 잎의 느낌도… 제 옆에 놓인 하얀 영정사진도…

이상하리만큼 침착하고…이상하리만큼 멀쩡했다. 영운은 제 자신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흔한 눈물도 나오질 않는다. 차라리 뽑아버릴까… 아무 쓸모도 없는 제 눈이 미웠다.

검은 정장의 속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꺼냈다. 찰캉- 주홍빛 불이 솟았다가 이내 하얀 연기가 유령처럼 긴 꼬리를 그리며 사라진다. 적적해진 영운은 느릿하게 손을 놀려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선 때늦은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상 이변에 대한 내용이었다.

[강원도 속초 산근지방에 계절을 초월한 이른 눈이 내려 화제입니다. 그저께 저녁부터 조금씩 내리던 눈은 어제 아침부터 진눈깨비로 변해 그쳤는데요. 기상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엘리뇨의 영향으로……]

딱딱한 아나운서의 멘트가 신경에 거슬린다. 영운은 신경질적으로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튜너를 사정없이 눌러대던 영운의 손가락이 그대로 굳는다.

[Wise men say. only fools rush in…]

둥…둥…익숙한 반주가 흘러나오고…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달콤한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멍한 표정의 영운이 그대로 머리를 핸들에 세게 박는다.

빵------!

자동차 클락션이 고막을 찢어놓을 듯 날카롭게 고함을 지른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차로 다가오지만 영운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머리를 핸들에 세게 박았다. 새된 소리와 함께 달콤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성이 비비꼬여 머릿속을 자극한다.

어디를 가도…온통 성민과의 기억뿐이다…
잠시 후 슬그머니 고개를 든 영운은 옆자리에 곱게 놓여있는 영정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속의 성민은 영운을 보고 환히 웃는다. 하지만 영운은 웃어줄 수 없다. 미간을 찌푸리며 억지로 웃어 보인 영운이 떨리는 손으로 살며시 성민의 볼을 쓸어본다. 영운이 푹 젖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성민아……나…눈물이 안 난다……아마도……이게 끝이 아닌가봐………”

 

 


*
*

 

 


“으…춥다.”

 

영운은 두 손을 비비며 얼른 차에 올라탔다. 매서운 칼바람에 코끝이 빨개져 있었다. 뒷자석에 올라탄 영운을 힐끔 돌아보며 매니저가 묻는다.


“강인이 숙소 갈거냐?”

“아니. 희철이 오피스텔. 희철이가 오늘 술 쏘기로 했거든.”


신난 영운의 음성에 매니저가 녀석…하며 시원하게 웃는다. 영운은 창 밖을 바라봤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가로수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렸다. 완연한 겨울이었다. 룸밀러만 힐끔거리며 운전하던 매니저가 유쾌하게 말한다.


“오늘 눈 온다더라.”

“눈?”

“응. 아까 라디오에서 나오던데?”


그러면서 이리저리 주파수를 맞춰보는 매니저다. 영운은 눈이라… 읊조리며 자켓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넌 잘 지내고 있니? 서울은 눈이 온대…”


네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눈. 영운은 얌전히 사진 속의 성민을 쓸어보았다. 한참 사진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들어 창밖의 물빛하늘을 가만히 바라본다.

 

 

-

 

“밥 먹을래?”


악몽과도 같았던 장례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영운이 제일 먼저 멤버들에게 한 말이었다. 멤버들은 기가막히다는 눈으로 영운을 쳐다봤고 악에 받친 동해가 빽하고 소리를 질러왔다.


“저 씨발놈. 넌 성민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지? 이 씨발새끼야.”


뒷통수를 강타하는 네모진 티슈곽에도 불구하고 영운은 아무 소리 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밥그릇에 밥을 한 사발 고봉으로 담은 영운은 숟가락을 찔러 넣다 피식 웃었다. 웃기다. 이 엿같은 상황이 너무 우습다. 한 놈은 해바라기처럼 죽어라 저만 바라보다 졌는데, 저라는 새끼는 살겠다고 밥을 뱃속에 집어넣는다. 볼을 따라 올라간 입술이 이내 파르르 떨리더니 잔뜩 일그러진다.


“성민아…형아 너 없는데 밥 먹는다? 웃기지…? 그렇지…?”


입술새에 반쯤 걸쳐져있던 숟가락이 바닥으로 챙강-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영운의 메인 소리가 부엌을 가득 울린다. 그 울림에 가슴께가 먹먹해진다.


“성민아…나… 너 없는데 잔다? 너 없는데 화장실도 가고 너 없는데 배도 고파.……너 없는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너 없는데 라디오도 하고……”


넋두리 같은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입속에서 반쯤 씹히다 만 밥풀들이 입술 틈을 가르며 비어져 나온다.


“…너 없는데…너 없는데……자꾸만…시간이 간다…….”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영운은 메마른 두 눈을 깜박였다. 떨어진 수저도 줍지 않고 손가락으로 꾸역꾸역 밥을 집어삼킨 영운이 제 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방안이 왠지 모르게 낯설다. 이질적인 느낌에 침대로 다가가 풀썩 드러누운 영운이 주머니에서 담배 한가치를 꺼낸다. 불을 켜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씨발……”


라이터가 없다. 대충 몸을 돌려 침대 옆 테이블 서랍을 열었다. 온갖 잡동사니가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유흥업소에서 나눠 줬을만한 형광분홍의 촌스러운 일회용라이터를 본 영운의 눈이 작은 사진 한 장에 가서 멈춘다.


“이게……”


무슨 사진이지? 뒤집혀져 있는 사진을 꺼내어들었다. 담뱃불을 붙이는 것도 잊고 영운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저와 성민의 사진이었다. 아마도 1집 팬미팅 때였던 것 같다. 노란색 병아리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진이다.


“언제 이런 사진을 찍었지?”


소파 아래에 앉아있는 성민과 그보다 조금 높이 앉아 있는 저의 모습. 무서운 표정의 저와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의 성민. 영운은 사진을 바라보며 조금 웃었다.

내가 이때 성민에게 뭐라 말을 했었지? 분명 사진속의 저와 성민은 눈을 마주대고 이야기 하고 있다. 머릿속이 간지럽다. 기억이 날듯 말 듯…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겠다.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영운은 사진을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었다. 왠지…그래야 할 것만 같은 사진이다.

 

 

-

 

 

“얼~ 김영운 왔냐?”

“그래 이 자식아. 왔다 어쩔래?”


희철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성민이 죽고 난 뒤 슈퍼주니어는 잠정적 휴식에 들어갔고 멤버들은 유닛으로 혹은 개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숙소가 갈리게 되었다. 요새 드라마에서 꽤나 이름값하고 있는 그답게 얼마 만에 보는건지 반가워서 죽겠다. 춥다…하며 문을 재빨리 닫은 희철이 대충 들어와서 앉으라고 한다.


“술은?”

“새끼…섭섭하게 오자마자 술부터 찾기냐?”


눈을 흘기는 희철에 그냥 멋쩍게 웃어 보인 영운이 냉장고를 열어보며 그런다.


“술은 많네. 근데 안주는?”


냉장고 한쪽 벽 가득히 온통 녹색의 소주병뿐이다. 안주거리 할 반찬이라곤 다 쉬어빠진 김치하나다. 에게?! 실망한 목소리로 툴툴대자 티비 삼매경에 빠진 희철이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리키며 그런다.


“거기 전단지 보고 아무거나 시켜먹어.”


아싸! 주먹까지 불끈 쥐며 크게 외친 영운이 가만있어보자…하며 치킨 두 마리를 시킨다. 그런 영운의 뒷모습을 희철이 쓸쓸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래서! 내가 말이야! 이 김영운이가!”


소주 두병에 영운은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희철은 그런 영운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말라붙은 공기가 부스스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쥐죽은 듯 누워있던 영운이 문득 희철을 부른다.


“희철아……”

“왜.”

“참 이상하지?”

“뭐가.”

“성민이가 없는데도…시간은 잘만 간다.”


영운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성민의 이름에 희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영운이 주절댄다.


“진짜 이상하다? 난 성민이 죽으면 백날 천날 울면서 살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더라? 성민이 보내고 오는데 배가 막 고픈 거야? 진짜 웃기지 않아?”


그래…참 웃기다.


“나 말이야…성민이 가고 나서 한번도 안 울었다? 울음은 터져 나오는데 이상하게 눈물은 안나와…”


잔뜩 꼬인 발음으로 어눌하게 뱉어내는 말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그의 말은 모두 다 사실이었다. 그간 영운은 지나치게 태연했고 또 지나치게 명랑했다. 멋모르는 동생들은 인간도 아니라며 영운을 씹어댔지만 희철은 알 수 있었다. 영운의 눈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그 깊은 눈에 얼마나 검은 슬픔을 담고 있는지….


“그래서…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어. 이게 아직 끝이 아닌가 보다…하고 말이야…”


불쌍한 내 친구. 희철이 작게 중얼거렸다. 영운은 주머니에서 그 사진을 다시 한번 꺼냈다. 까맣게 졸음이 몰려와서 눈앞이 흐리다. 희철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영운아…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선물이 뭔지 아니?”


언뜻언뜻 들리는 목소리에 영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따위를 내가 알리 없잖아? 자작하게 오른 취기에 뇌가 녹아 빙글빙글 섞여 들어간다. 희철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선물은 말이야……”

 

그의 목소리가 점점 늘어지더니 곧 모든 것이 검게 퇴색된다. 순간 사진 속 저와 성민의 모습이 반짝 빛난다. 어두웠던 눈앞은 점차 환해져 어느새 사진 속 그때로 돌아가 있다.


난생 처음 하는 팬미팅 이라 성민은 많이 떨렸나보다. 어깨까지 부들부들 애처롭게 떨고 있는 녀석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모른다. 그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물어왔다.

[왜요….]

[그냥 너 많이 떨고 있잖아.]

불편한 듯 녀석이 손을 빼려고 한다. 강당을 울리는 팬들의 목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런 성민의 손에 깍지를 끼며 영운이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빼면 죽어.]

잠시 당황스런 눈으로 쳐다보던 성민이 배꽃같이 화사하게 웃는다. 성민이 손끝에 힘을 주곤 제 손을 감싸 안는다.

어디선가 카메라 세례가 쏟아진다고 생각했을 때…
마주보고 웃으며 영운 역시 똑같은 힘으로 성민의 손을 움켜잡았다.

찰칵.


……찰나였지만 사진 속 우리는 웃고 있었다.

 

 

 

 


에필로그

 

 


오랜만에 스케줄이 없었다. 매니저가 내린다고 했던 눈은 내리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빗물이 대지를 적셨다. 까만 밤을 하얗게 만들도록 쏟아지던 장대비가 정오 무렵이 되자 조금씩 자취를 감추더니 멈췄다.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은 영운은 모자 하나를 깊게 눌러쓰곤 밖으로 향했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거리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만큼 한적했다. 깨끗해진 공기를 코로 들이쉬며 영운은 무작정 걸었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어라?”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본 거리는 눈에 익숙했다. 영운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랜만이다…여기.”


발걸음을 따라 도착한 곳은 예전 숙소였다. 다툴 때도 많았지만 서로 살을 부데끼며 사는게 재밌었는데…잠시 아련한 추억에 잠긴 영운은 고개를 휘젓곤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워낙 오랜만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롭다. 질펀하게 젖은 땅의 물기를 틱틱 쳐내며 걷고 있던 영운이 고개를 든다.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온다.


“와……”


무지개다. 빛의 프리즘을 띠고 있는 무지개는 곱게 접혀 영운을 바라본다. 영운은 무지개를 잠시 아련하게 쳐다보다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어라…?”


제가 잘못 보았나보다. 영운은 재빨리 소매를 들어 눈을 비볐다. 하지만 눈앞의 형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쪽에서도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입을 살짝 벌리곤 저를 쳐다본다. 영운은 천천히 다가섰다.


“최…시원?”


저의 부름에 시원이 픽-하고 웃는다.


“여기서 또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의 목소리엔 아직도 가시가 돋아있다. 동감이야. 한 쪽 입술 끝을 말아올려 웃어보인 영운이 시원을 마주본다. 그러고 보니 이 곳은…저에게 성민이 이별을 고한 곳이다. 순간 영운의 눈동자가 반짝, 하고 물기를 띤다. 시원은 그새 많이 수척해져있다. 살이 빠져서 그런지 키도 더 큰 것 같다. 그의 잘생긴 입술이 영운에게 말을 내어놓는다.


“잘됐어요. 어차피 한번쯤은 만나야 했으니까.”

“……”

“내가 성민이 형 좋아했던 것쯤은 알고 있죠?”

“……그래.”

“그럼 내가 형 무지하게 싫어하는 것도 알고 있겠네요.”

“……”


시원의 목소리는 자신만만하다. 영운은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말을 내어놓는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귀찮은 듯한 그의 음성에 잠시 눈썹 끝을 가늘게 모은 시원이 주먹을 꾹 움켜쥔다.


“내가 지금 여기서 형을 죽이든 줘 패든 형은 아무 할 말 없어. 알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재끼며 시원이 말한다. 결국 그 말이었니? 영운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고개를 들고 확인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을 알 수 있었다. 하나하나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성민이 나오는 그런 쉽지만 말끔하지 못한 문제.

아직까지도 미련을 못 버린 불쌍하고 또 가여운 이런 녀석에게라면 한 대쯤은 맞아줄 수 있다. 영운은 눈을 감았다. 앞에 서 있는 시원이 심호흡 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의 주먹이 다가오는 것도 느껴진다. 하지만 아픔이 없다. 영운은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시원의 손에 들린 건 작은 사진 한 장이다. 그가 분에 겨운 목소리로 말한다.


“이게 뭔지 알아?”


알 리가 있나. 영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민이 형이 죽어가면서까지 손에 쥐고 못 놓던 마지막 물건이야.”


시원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온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 쥐었다.


“안 주려고 했어. 너 따위한테 성민이 형은 과분하니까! 근데 죽어서까지 아파할 성민이형 생각하니까 차마 안 줄 수가 없더라…씨발.”


시원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뱉는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내린 최후의 결론이었다. 영운은 조심히 시원의 손에서 사진을 꺼내었다. 둥글게 말려있는 사진을 핀건지 사진은 온통 구겨져 있다. 영운은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제가 가지고 있는 그 사진이었다. 그런 영운을 쳐다보던 시원은 서서히 뒤 돌아섰다. 널찍한 그의 등은 새파랗게 식어있었다. 한없이 작아 보이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이걸 왜…”


하지만 돌아오는 시원의 대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는 밝게 웃었다. 아주 멀고 먼 예전처럼 그렇게… 오랜만에 보는 시원의 웃음에 아연해진 영운이 할 말을 잃자, 그가 말했다.


“형…”

“……”

“……행복하세요.”


내가 형을 끝까지 미워할 수 있도록. 그는 그대로 걸어갔다. 시원의 마지막 말은 물음표도 마침표도 아닌 그 중간쯤에 가 있는 듯 했다. 영운은 멍하니 시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사진을 뒤집었다.

순간.
영운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하얗게 바랜 사진 뒷면에 꾹꾹 정성스럽게 눌러쓴 단정한 성민의 글씨가 적혀있다. 
사진 뒷면을 온통 까맣게 채운 한마디…


「사랑해」


…봉인 되었던 그 모든 감정들이 추억의 저편에서 되살아난다.

영운은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왜 시원이 제게 이 사진을 주었는지
성민의 눈빛이 무엇을 말했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영운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온통 흐리게 번져 있는 단어 밑에
…급하게 휘갈긴 듯 잔뜩 흘려있는 한 마디…


「기다릴게. 빨리 와」


머릿속에서 오래된 목소리 하나가 뱅글뱅글 맴돈다.

-있잖아요. 무지개 끝에는 보물이 있대요.

영운은 앞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점이 되어버린 시원은 저 멀리 사라진다.

-무지개 끝에 가면 형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려욱의 목소리가 천천히 머릿속에 리플레이되고 영운은 그제야 내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시원 옆에, 무지개 끝에 이제 성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아- 너 였구나…
나의 보물은 바로 성민이 너였어.


영운은 무릎을 꿇고 흩어져 내린 모래성처럼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는 이젠 없다. 저는 이미 너무 늦었다. 못 다한 상실감이 이제야 폭풍우처럼 몰려온다. 이제 정말로 끝이다. 영운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기만 했다. 시야가 흐려졌다. 사랑해…라는 그의 친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진다.

어어…. 당황한 영운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손바닥 틈새를 비집고 나온 눈물은 떨어져 글씨를 까맣게 번진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온 몸을 회오리친다. 팔딱거리는 심장이 한번 펌프질을 할 때마다 검게 변한 그리움이 핏줄을 타고 흘러간다.


“성민아…”


흔들리는 목소리가 강물처럼 흐른다. 검게 타버린 심장이 소리 지른다. 어린아이처럼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영운아…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선물이 뭔지 아니?

희철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메아리친다. 이제야…바보같이 이제야 알았다. 심장이 먹먹해지고 눈앞이 하얗게 변한다. 영운은 사진을 품에 끌어안았다. 그 동안 차마 뱉을 수 없어 가슴 속에 쌓아 두었던 말이 이제야 파도처럼 밀려온다.


“사랑해……으흑…사랑해……흑…사랑해……사랑해……흐흑…사랑해…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선물은 말이야……떠난 이가 남기고 간 사랑이다.

 

 


돌이켜보면 고통이나 슬픔의 기억은 퇴색하고 남은 건 박하사탕처럼 쌉사름하지만 단맛을 띤 투명한 기억뿐이다. 그리고 그 달콤한 기억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 사랑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기억너머로 우리를 데려온다. 한 가지 변한 점이 있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 또한 나를 사랑한다는 것. 우리는 이제 자연스레 말할 수 있다. 사랑한다고. 내게 이런 선물을 가져다준 그에게 감사하다.

 

 

 

 

 

 

 


선물膳物
FIN

 

 

 

 

 


열혈작가
갱스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