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앵봉(鶯峰) 2021. 1. 22. 19:29

번암 채제공 초상화

 

조선 정조 때의 충신이자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1799) 선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93년 초대 화성(현재 수원) 유수로 임명받아 수원으로 이주했으며,

수원화성 축성과 '정조대왕능행차'의 모티브가 된 을묘년 원행(1795) 당시에

총리대신(화성 성역을 총재하던 관직)으로 행렬을 이끌기도 했으며,

정조대왕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인 인물의 초상화이다.

 

경기도 수원시 수원박물관

 

채제공 초상, 금관조복본(蔡濟恭 肖像, 金冠朝服本) - 보물 제1477-2호

 

‘금관조복본(1784년작)’은 65세 때 초상으로

왼편에 채제공의 자찬문을 이정운(李鼎運 1743- ?)이 썼다.

서양화법을 따른 명암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장식적인 금관조복을 금박, 선명한 채색, 명암법 등으로 화려하게 표현했다.

사실성과 장식성을 어우러지게 하여 조선 초상화의 뛰어난 수준을 잘 보여준다.

누가 그렸는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입체감이 두드러진 안면과 옷주름의 표현,

그리고 바닥의 화문석 표현기법으로 볼 때 이명기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관조복본은 머리에 금관을 쓰고 붉은색 조복(조정에 갈 때 입는 예복) 차림으로

의자에 앉은 전신의좌상(全身椅坐像)으로,

65세 때의 채제공의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이 드러난다.

 

 

채제공 초상, 흑단령포본(蔡濟恭 肖像, 黑團領袍本) - 보물 제1477-3호

 

‘흑단령포본’은 오사모에 쌍학흉배의 흑단령포를 입은 전신의좌상으로

본래 부여 도강영당(夫餘 道江影堂)에 모셔져 있던 것이다.

그 안면의 기색으로 볼 때 부여본은 앞에 살펴본 73세상과 흡사하다.

안면과 옷주름의 입체감 표현, 투시도법에 의한 화문석과 족좌와 의자의 사선배치는

역시 이명기의 초상화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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