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앵봉(鶯峰) 2021. 6. 13. 04:14

불국사 대웅전(佛國寺 大雄殿) - 보물 제1744호

 

대웅전의 동·서측면에는 익랑(翼廊)이 놓여 동·서 회랑과 연결되고

남회랑의 동측 모서리에는 좌경루(左經樓)가 있고, 서측 모서리에는 범영루(泛影樓)가 배치되어 있다.

자하문 남측에는 청운교와 백운교의 석계를 마련하여 대웅전으로 진·출입 할 수 있도록 꾸몄다.

불국사에 대한 문헌은 삼국유사와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

대웅전중창단확기(大雄殿重創丹雘記) 등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경덕왕 10년(751,辛卯)에 처음으로 불국사을 창건하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甲寅) 12월 2일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공사를 마쳤다(...景德王代 大相大城以

天寶十年辛卯始創佛國寺,歷惠恭世,以大歷九年甲寅十二月二日大城卒,國家及畢成...)’는

기록이 있어 경덕왕 때(751)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불국사고금창기에 의하면 조선 세종 18년(1436)에 중수하였으며, 성종 21년(1490)과

명종 19년(1564)에 중수가 있었으나,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

그 후 효종 10년(1659)에 중창된 후 숙종 3년(1677) 번와 보수, 숙종 34년(1708) 서쪽 기둥 교체,

영조 5년과 영조 6년(1730), 영조 7년에 개와(蓋瓦)를 보수하였다.

조선 영조 41년(1765, 乙酉)에는 대웅전을 중창하고, 영조 41년(1767) 단청이 완료되었으며,

이후 대웅전의 삼존불과 후불탱(後佛幀)을 영조 45년(1769)에 완성하였다.

그 후 퇴락된 것을 일제 강점기인 1918년부터 1925년까지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개수한바 있으며,

이어 1934년부터 1936년 사이에도 개수되었다. 그 뒤 또 다시 심하게 퇴락되어 가던 것을

1970년대에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지시로 중창되었다.

불국사 대웅전 전면의 동측에는 다보탑이 배치되어 있고, 서측에는 석가탑이 배치되어 있다.

또, 대웅전 전면에는 팔각을 기본으로 한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등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동서가 약간 긴 장방형의 평면으로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며,

조선 후기의 다포계 형식을 가지고 있다. 대웅전의 외관은 중앙의 어칸을 협칸(8.7尺)이나

퇴칸(8.2尺)보다 배이상 넓은 주칸(17.7尺)으로 꾸며졌다.

공포는 다포로 어칸에 3구의 공간포가 배치되었고, 협칸과 퇴칸에는 1구의 공간포가 배치되어 있다.

살미첨차에는 초화문양(草花文樣)과 봉황(鳳凰) 머리를 조각하였고,

평방에서 돌출된 용머리 조각 등은 매우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대웅전 정면의 어칸은 사분합꽃살문이고, 협칸과 퇴칸은 쌍분합교살문이며,

양측면의 문은 삼분합띠살문으로 꾸며졌으며, 후면의 어칸은 사분합정자살문이며,

협칸은 벽체로 막았고 퇴칸은 분합정자살문으로 20칸중 10칸은 문을 설치하여 개방 했다.

기단은 면석에 우주(隅柱)와 탱주(撐柱)가 설치되어 있고,

상부에 갑석(甲石)을 덮은 통일신라시대의 가구식 기단(架構基壇)이다.

기단의 사면 중앙부에는 계단이 놓여 있고,

계단 양측의 소맷돌은 측면을 삼각형 문양으로 가공하였다.

천정은 우물 천정인데 층단식으로 중앙이 높게 꾸며졌다.

불국사 대웅전은 창건당시 기단과 석등 등의 석조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창건 당시의 유구 위에 영조 41년(1765)에 중창된 건물로 중창기록과

단청에 대한 기록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다포계 건물로 기둥을 생략한 내부 공간 구성 및

살미첨차의 초화문양(草花文樣)과 봉황(鳳凰) 머리 조각, 평방에서 돌출된 용머리 조각 등

내·외부를 매우 화려하게 장식한 우수한 불전으로 그 가치가 크다.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15-1) 대한불교조계종 불국사

자료출처:불국사 www.bulguksa.or.kr/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
불국사 대웅정 연등들이 빛이 나네요^^
감사함 전하며
인사 드립니다^^
많이 더운 날 계속이어지는데"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빕니다"
앵봉님♡♡♡
앞으로도 수원화성을 화폭에 멋지게 담으세요~ 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지금 강릉시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며,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 각종 행사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단오제의 유래를 중국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한국
단오제(端午際)와 중국 단오절(端午節)은 기원부터 다릅니다.

단오 전문가인 강릉대 국문과 장정룡 교수는 단오의 유래와 관련해 “중국 단오절은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을 추모하는 데서 비롯됐지만, 강릉단오제는 신라 김유신 장군,
신라말 고승 범일국사, 대관령의 여신이 된 정씨 처녀의 제사를 모시는 데서 유래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연히 풍습도 다르지요. 강릉 단오제 때는 수리취떡 만들어 먹기, 그네뛰기. 씨름, 농악,
다리밟기놀이, 관노가면극을 즐기지만. 중국 단오절에는 쭝쯔(米+宗 子)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용선(龍船)놀이를 즐긴답니다. 장 교수는 “한국의 단오제는 원래 순수 우리말인 ‘수릿날’로
불렸지만 음력으로 5월5일을 뜻하는 한자식 명칭으로 바꾸는 바람에 오해가 생겼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명절이라 일컬어지며 머리가 맑아지고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 하여 창포물에 머리
감고 산언덕에 올라가 그네도 뛰고 심신의 나래를 펴는 날입니다. 쑥과 수리취로 떡을 만들어
수릿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새로 수확한 앵두를 천신하고 단오고사를 지내 집안의 평안과 풍년,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였습니다. 단오에는 임금이 신하들에게 부채를 나누어주기도 하고,
군현 단위의 큰 단오제가 지역마다 행해졌으며 대표적인 것이 강릉 단오제인 셈이지요.

단오인 음력 5월 5일은 6월 14일이며 강릉 단오제는 17일까지 계속됩니다.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감사합니다.
강릉단오제를 알려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