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간 항아리

댓글 0

▣ 세상이야기/☞ 마음양식

2007. 6. 14.


어떤 사람이 양 어깨에 막대기로 만든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하나씩의 항아리가 있었다.
그런데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항아리였다.

물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의 물은 반쯤 비어 있었다.
금이 갔기 때문이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간 나같이 항아리는 버리고 새 것으로 쓰세요."
 

그때 주인이 금이 간 항아리에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안단다.
 네가 금이 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오른쪽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리지 않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니?
 나는 그 생명을 즐긴단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금이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있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 사람들 때문이다.
 

당신은 금이 안 간 아내인가? 그래서 남편이 죽는 것이다.

당신은 금이 안 간 남편인가? 그래서 아내가 죽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명문대를 나온 어떤 학생을 알고 있다.

부모의 완벽함 때문에 그 자식이 죽어가고 있었다.
2등을 해도 만족이 없었다.

심지어 1등을 해도 전교 1등을 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 아이의 심성이 아스팔트 바닥같이 메마른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황무지로 만드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금이 간 항아리같이 부족해도 살리는 사람이 좋은 이웃 아니겠는가? 

좀 금이 가면 어떤가?
틈이 있으면 어떤가?
좀 부족하면 안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금이 간 인생을 좋아하신다.
약할 때 강함 되신다.


영국 의회에 어떤 초선 의원이 있었다.

의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청산유수로 너무나도 완벽한 연설을 했다.


연설을 마치고 난 다음에
연설의 대가인 윈스턴 처칠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기의 연설에 대해서 평가를 해달라고 했다. 

물론 처칠로부터 탁월한 연설이었다라는 평가와 칭찬을 기대하는 질문이었다.
 

윈스턴 처칠의 대답은 의외였다.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나!"
 

너무 완벽함은 정떨어진다.

한 방울의 물도 떨어뜨리지 않는 항아리는 황무지를 만든다.

탁월함은 완벽함이 아니다.

약함과 부족함과 누수 되는 물이 주는 생명력이다.
 

금이 간 항아리들 때문에 생명이 충만한 세상을 보고 싶다.

 

금이 간 항아리... 최 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