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화.용역과 시장원칙 - 이승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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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siness/☞ 경영경제

2009. 10. 22.

1. 재화.용역과 수요.공급원칙

 

사람들의 생활에는 자원이 필요하다. 기본적 의식주는 물론이고 더 편하고 안락하게 살기 위하여 사람들은 물자를 원한다. 이 물자를 재화라고 한다.
영화나 여행처럼 손에 잡히는 물자가 아니면서 생활에 긴요한 형체 없는 것들도 많다.

이것들을 용역 또는 서비스라고 부른다.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원이다.

각종 지하 자원과 임수산 자원,그리고 인적 자원에 이르기까지 자원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러나 모든 자원은 특정 시점에서는 항상 그 수량이 유한하다.

사람들에겐 재화와 용역이 많을수록 좋은데 자원은 항상 유한한 것이다. 이러한 자원의 특성을 희소성이라고 한다. 희소한 만큼 자원은 가장 필요한 용도에 알뜰하게 써야 한다.

자원을 알뜰하게 쓰는 개인은 헤프게 쓰는 사람보다 윤택하게 산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자원을 필요한 곳에 알뜰하게 쓰도록 된 나라는 번영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쇠락한다.

같은 자원을 쓰더라도 더 필요한 일을 하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원을 더 절약하면 일을 더 잘하는 것이다.

자원의 희소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원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하여 그 용도를 선택하게 만든다.

그런데 정해진 수량의 자원을 사람마다 자신이 선택한 용도에 쓰겠다고 나서면 그 수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모자랄 수밖에 없다.
필요에 비하여 자원의 수량이 모자라면 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모자라는 자원을 용도별로 배정해야 하는 것이다.

계획경제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자원을 배정하지만 시장경제에서는 경쟁에 맡긴다.

사람들은 서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자원의 희소성은 사람들이 그 용도를 잘 선택하도록 몰아가고 부족은 경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경쟁에 아무 규칙도 없다면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이 지배할 것이다.

시장 경쟁은 호가 경쟁의 규칙을 따른다. 남보다 더 높은 값을 지불하는 사람이 그 상품을 가져간다.

자기 소득을 더 많이 포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이기도록 안배하는 것이 시장 경쟁의 규칙이다.

상품이 모자라 초과 수요가 발생하면 사려는 사람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경쟁한다.

반대로 초과 공급이 발생하면 부족한 것은 상품이 아니라 판매 기회다.

기업은 판매 기회에 대하여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서,즉 상품 값을 인하하면서 경쟁한다.

만약 수요와 공급이 완전 일치하여 부족 사태가 나타나지 않으면 경쟁은 없어지고 상품은 그 가격에서 거래된다. 소위 수요ㆍ공급의 법칙 이다.

호가 경쟁의 질서가 유지되는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니다. 그러나 호가 경쟁의 경쟁력은 결국 각자의 소득이다. 그렇다면 시장의 경쟁 규칙은 결국 부자가 강자로 군림하는 규칙이다.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시장이라면 정글과 무엇이 다른가?

 

 

2. 시장원칙

 

시장의 자원배분 원리는 '1인1표' 아닌 '1원1표'의 원칙에 따른다.

이 원리를 영어로는 달러 보팅(dollar-voting)이라고 한다. 이처럼 시장경제는 분명히 부자들이 더 큰 힘을 쓰도록 된 경제다.

시장경제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1인1표'를 버리고 황금만능주의에나 어울릴 법한 '1원1표'의 원칙을 따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장에서 부자가 더 큰 힘을 쓰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함께 가난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현대는 분업의 시대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필요한 물자를 각자 스스로 생산 조달하는 자급자족시대가 아니다.

사람마다 생업으로 소득을 얻고 그 돈으로 시장에서 필요한 물자를 구입해 생활한다. 더 많은 물자를 구입하려면 소득이 그만큼 더 많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업으로부터 얻는 소득의 크기는 각자 무슨 일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내가 하는 일의 성과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시장은 내 일을 비싼 값에 사가고, 나는 높은 소득을 얻는다.

내 일을 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내 소득도 낮다. 시장에서 높은 소득을 얻고 싶으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람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남을 위해 일해야 내가 이익을 얻는 곳이 바로 시장인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시장에서는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 남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익을 얻을 수 없다면 남들을 위해서 일할 까닭도 없다.

시장이 '1원1표' 대신 '1인1표'의 민주적 원칙을 따른다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남들이 원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해준 사람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나 시장경쟁에서 우열이 없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원하는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도 유리한 점이 없다면 누가 남을 위해 일할까. 민주주의적 '1인1표'의 원칙을 시장에 강요하면 사람들이 남을 위해 일할 유인을 잃는다.

 

'1원1표'의 시장원칙은 경제를 부자중심으로 운용한다.

부자가 재산을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축재했다면 이 원칙은 분명히 문제다.

그러나 시장에서 재산을 모으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찾아서 수행하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부정축재자가 많다면 그것은 허술한 법치가 책임져야 할 일이지 시장원칙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1원1표'의 원칙이 문제가 아니라 부정축재를 방치하는 치안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을 잘못 파악해 부자중심의 '1원1표'를 폐기하고 민주적 '1인1표'의 원칙을 채택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근로유인이 소멸한다. 그리고 모든 시민이 근로유인을 잃은 사회는 함께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