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05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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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의 창가에서/photo 에세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강아지가 반긴다. 나한테 매일 구박 받는 놈. 그래도 내가 좋다고 꼬리를 흔든다. 양말을 벗는다, 슬슬 배가 고프다. 아내가 밤새 잠 모잘라도 담그어 놓은 열무김치가 맛나다. 열무김치에 흰 쌀밥 나는 행복하다. 어린이날인데 챙겨줄 아이없어 좋타. 솔직히 아이는 난데 말이다. 구피 가득한 어항에 사료를 던져주며 너희들은 행복하겠다 생각을 해본다. 구피가 나는 아닐까? 밀린 숙제를 한다. 몇번이고 보면서 고개 끄덕이던 "미생"이란 드라마를 다시 본다. 그리고 다시 고개 끄떡이며 눈물을 흘린다. 시간이 흐른다. 세상은 올바른 듯 정렬이지만 가끔씩은 삐뚤어진 모습도 보인다. 아내도 잠들고 아이들도 잠들고 나는 뭔지 모를 현실에 꼭두각시. 탈피하고 싶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속으로......

04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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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흥덕구(興德區) 강내면 태성리 면장민영학송덕비(江內面 台城里 面長閔泳學頌德碑)

태성리는 본래 청주군 西江內 二下面의 지역으로 三國鼎立 시대에 백제가 청주 上黨山城을 쌓고 그 衛城을 恩積山에 石城을 쌓으면서 錦江(美湖천)을 따라 領土를 경계 하게 되고 哨城을 흙으로 쌓았는데 지금의 궁현에서부터 台城里 끝까지이니 토성의 尾 가 된다고하여 토성미라 부르다가 日帝때 마을 명칭을 개정할 때 태성리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三山洞, 華亨里, 궁현里, 蓼谷里, 大溪里 일부를 병합하 여 台城里로 江內面에 편입하였다. 1975년에 요곡, 행절, 진등올 1리로 하고 원태성, 삼산, 용실을 2리로 분구하였다. 강내면 태성리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강내면 면장을 지낸 민영학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면장민공영학송덕비(面長閔公泳學頌德碑)라고 음기되어 있읍니다. 민..

04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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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현도면시목리오상진효자각(賢都面枾木里吳尙晉孝子閣)

오상진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효자각으로 1695년(숙종21년)에 세웠다 시목1리 동리길을 따라가다보면 오른쪽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효자각안에 정려비가 세워져있다 이 효자각은 조선 숙종 21년(1695)에 보성인(寶城人) 오상진(吳尙晋, 1611~1643)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효자각은 1970년에 중건하고 1990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효자문 편액을 걸었다.

03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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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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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현도면 중척리 보성오씨초산문중 금선사(賢都面 中尺里 寶城吳氏樵山門中 錦仙祠)

현도면 중척리에 자리하고 있는 보성오씨초산문중(寶城吳氏樵山門中) 사당인 금선사(錦仙祠)입니다. 현대식 건물오 새로 조성하였으며 현판과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중척리는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에 있는 리(里)이다. 금강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다. 이 지역은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가 모두 통과하고 있는 평야지대이다. 자연마을에는 강정, 다박골, 고퉁이, 말근이, 비득재, 등고비, 정골, 호링개가 있다. 강정은 앞에 금강이 흐르고 지방 문화재 제111호인 지선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호링개는 마을 뒷산의 지형이 대호형으로서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 통합 출범으로 청원군에서 청주시로 편입되었다.

02 2021년 05월

02

02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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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흥덕구(興德區) 오송읍 서평리 고억효자비(五松邑 西坪里 高億孝子碑)

동평들, 서평들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서쪽으로 조천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들말, 서평, 효자문이 있다. 들말은 서평 동남쪽 들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평은 마을이 들 서쪽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효자문은 효자 고억의 효자문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억의 효자각은 보영아파트 옆에 자리하고있다. 효자문을 빙 둘러친 철책 때문에 가까이 볼수가 없는 흠이 있다. 고억은 조선중기의 효자로서 청주 출신이며, 양민으로서 효행이 극진하였다. 어머니가 개가를 하였는데, 모친과 이부(異父)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었다. 나이 17세에 형을 대신하여 요동(遼東)의 역(役)에 나갔다. 이때에 봉림대군(鳳林大君)[뒤에 효종 임금]도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 요양에 있었다. 조선과 청나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