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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곡면 노천리 매한손효자문(梅谷面 老川里 梅漢孫孝子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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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영동군

2013. 6. 7.

 

 

영동군 향토유적 제 53 호 매한손(梅漢孫)은 조선초의 사람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말하기를 그의 선조(先祖)는 원래 중국사람으로 고려말 우리나라로 귀화하여 이곳 황간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그 이후부터 자손들이 이곳 매곡면 노천리에서 살았다고 하였다. 매한손은 원래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공손하며, 품행이 바른 사람으로 부친이 중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롭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병을 낫게 하였으며, 추운 겨울에 강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병석의 부친을 받들어 모셨다. 중종 14년(1519년) 매한손의 효성을 전해들은 조정에서 그에게 충순위(忠順衛)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정문을 세워 후손들이 본받도록 하였다. 세월이 흘러 정문이 퇴락하고 무너지자 노천리 주민들이 그의 효행을 영원히 기리고자 1946년 3월 중건 하였다. 건물은 1칸, 목조기와 팔작집이다. ※ 관 향 : 시조가 난 땅, 본(本) ※ 정 문 : 충신, 효자, 열려 등을 표창코자 그 집 앞에 세우는 붉은 문 ※ 충순위 : 조선시대 때 오위(중, 좌, 우, 전, 후)의 하나인 충무위에 속했던 군대

 

 

 

 

 

 

 

 

 

 

 

 

 

매한손은 16세기 초엽의 사람으로 부모님에게 효성이 지극한 효자로 이름난 충주 매씨의 시조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착하고 인정이 많으며, 신의도 몹시 두텁고, 의리가 깊으며 한번 마음 먹으면 기필코 해내는 강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매한손의 가정은 항상 웃음꽃이 필 정도로 명랑하며 우애가 깊고 화목하였다. 특히 자신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말씀을 한번도 거역하지 않고 늘 순종하며 바른 행실을 하였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께서 갑자기 병석에 눕자 웃음꽃이 피고 평안했던 매한손의 가정은 하루아침에 근심과 걱정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는 자나깨나 아버지의 병간호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병환에 좋다는 약은 모두 구하여 아버지께 드렸다.

이처럼 온갖 정성을 다 쏟았으나 아버지의 병환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버지의 혈색은 좋지 않았으며 피가 모자라서 수혈을 받아야만 할 형편에 이르렀다.
아버지를 위해 온갖 병간호를 해 오던 어느날 매한손은 목욕을 한 후, 스스로 오른손의 손가락을 끊었다.

그는 오직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자신의 아픔보다 아버지이 병환이 빨리 낳기만을 갈망하였다.

그 때 매한손의 잘린 손가락에서는 시뻘건 피가 줄줄 흘렀다. 그는 흘러내리는 피를 그의 아버지 입 안에 넣어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시뻘건 피를 천천히 잡수시었다.

그 후, 그의 아버지께서는 악화되었던 병이 차츰차츰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아들인 매한손의 기쁨은 켰다.

이처럼 지극한 그의 효행은 인근 마을까지 널리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우리 고장에도 하늘이 내린 효자가 탄생했다고 모두들 기뻐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금이 계신 조정에서도 매한손의 지극한 효성을 알고 충순위라는 벼슬까지 내렸다. 또 그의 아름다운 효행을 후손들이 본받음으로써 효가 넘치는 고장을 만들라는 취지에서 1519년(조선 중종 14년)에 매한손의 효자문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이 효자문은 매곡면 노천리에 목조로 된 기와집이 아담하게 서 있어 이곳을 찾는 후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효자문은 건물이 낡아 1979년 3월에 매곡면 노친리 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재보수를 하여 지금의 효자문으로 치장을 했다.

이 고장에 매한손의 효행 사실이 전파된 이 후, 충과 효가 겸비된 충신, 열녀들이 이곳 저곳에서 많이 탄생하였다.

지금도 어떤 사람이든 효성이 지극했던 매한손의 묘를 벌초하면, 그 사람의 가정에는 한 해 동안 질병이 생기지 않게 된다는 옛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벌초 시기가 다가오면 어느 누가 하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말끔하게 벌초를 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지고 있고 효의 산실로 활용되고 있다.

< 참고문헌> : 「영동군지」, 「고장을 빛낸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