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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백면 유희원효자문(文白面 柳希源孝子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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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

2013. 8. 23.

 

 

 

 

 

유희원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다.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유학원(柳学源)의 형이다.

유희원(柳希源)[176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책을 보면서 밤을 밝힌 채 잠시도 곁을 비우지 않고 간병을 하였다. 엄동설한에도 하늘에 기도하여 잉어를 구해다 봉양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죽과 채소만으로 연명하고, 너무나 슬퍼하며 곡을 한 까닭에 수척해져 보는 사람들마다 안타까워하였다. 어머니가 병환 끝에 실명을 하자 따로 집을 지어 침소로 삼아 옆을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봉양했다.

그런데 유희원을 모함하는 사람이 불효막심한 사람이라며 관청에 유희원을 고발하였다. 때마침 유희원의 집 앞을 지나던 암행어사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봉양하는 행동을 보고 크게 감복하여 왕에게 사실을 고해 고발은 없던 일이 되었다.

유희원이 죽은 뒤 유림들이 효자문 건립을 상소하였으며, 1843년(헌종 9) 효자문의 허락을 받아 1846년(헌종 12)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파재마을 산1-7번지에 효자문이 세워졌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희원(柳希源)의 정려각이다.

유희원(柳希源)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라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고, 부모가 노환으로 병석이 눕자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뒷바라지를 하였다. 또한 엄동설한에도 앙천기도(仰天祈禱)하여 잉어를 구해 봉양하였다. 하지만 유희원(柳希源)을 모함하는 자들이 그가 불효막심하다고 관청에 거짓을 고하였다. 때마침 지나던 암행어사가 그의 집을 몰래 살피니 그가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감탄하여 임금께 그 사실을 고하여 정려되었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문화로를 따라 화랑관을 지나 진천상업고등학교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원덕로 107번 길을 타고 원덕로 로터리를 끼고 직진하면 약 200m 지나 파재로에 이르게 된다. 파재로에서 좌회전한 후 약 2.2㎞를 더 가면 왼쪽에 유희원 효자문이 자리하고 있다.

 

유희원 효자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사방을 홍살로 막아 놓았다. 내부 편액에는 ‘효자학생유희원지려헌종계묘려정상지십년계묘이월명정(孝子學生柳希源之閭憲宗癸卯閭旌上之十年癸卯二月命旌)’이라고 쓰여 있다.

유희원 효자문은 접근이 용이하다. 목조 건물이다 보니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보존상태는 양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