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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등 석조유물(長明燈 石造遺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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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구경하기/전주박물관(全州博物館)

2014. 1. 24.

 

전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자리하고 있는 석조부재물이다.

 

 

비단 분묘뿐만 아니라 사찰이나 관가 등의 공공 건축물의 처마 끝에 달거나 마당에 기둥을 세워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장치한 등도 장명등이라고 한다.

분묘 앞의 장명등을 일명 석등룡(石燈龍) 혹은 석등(石燈)이라고도 한다.

분묘 앞에 장명등을 세우게 된 시원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분묘제도에 의하면, 분묘 앞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나 문무신상(文武神像) 등의 석조물을 세우는 데는 피장자의 신분 혹은 품계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제한하였고, 장명등의 경우는 일품재상(一品宰相)에 한하여 세울 수 있도록 한정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와 같은 묘제가 확립된 시기부터 장명등이 세워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무덤 앞이나 사찰의 경내에 세워진 장명등은 받침대와 몸체 부분·지붕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받침대는 대부분 8각형 기둥 모양이며, 이 위에 등을 넣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부분이 얹혀 있고, 몸체 부분 위에는 마치 정자의 지붕처럼 생긴 삿갓지붕을 조각하여 몸체 부분을 보호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 세 부분은 분리하여 축조한 경우도 있고, 하나로 연결하여 조각한 경우도 있다.

장명등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묘역이나 건물의 외부공간을 밝히는 데 있으나, 분묘의 장명등은 이외에도 피장자의 조선시대의 신분을 표상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와 같은 엄격한 분묘제도가 없는 현대에서도 호화 분묘의 경우 장명등을 비롯한 각종의 석조물을 세운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피장자의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후손의 효행이나 사회적 지위, 경제적 계층을 반영할 의도로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