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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화성리 이천서씨세거지지비(靑城面 和城里 利川徐氏世居之地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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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

2018. 1. 16.





청성면에 있는 화동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이천서씨세거지비입니다.

화동리는 이천서씨들이 대성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청성면은 본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까지 청산현 및 청산군에 속해 있던 곳으로서 청산의 남서쪽에 위치한 관계로 청산군 남면과 서면 두 개의 행정구역이었다. 1739년 여지도서에 보면 남면은 서평리를 비롯하여 4개리 463호에서 15세 이상 된 남녀가 2,029명이 살았고, 서면에는 황음리를 비롯하여 4개리 475호에서 15세 이상 된 남녀가 2,106명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4월 1일 군 통폐합과 동시에 청산군이 없어지고 옥천군에 합병됨에 따라 남면을 청남면, 서면을 청서면으로 고쳐 부르고 옥천군에 속하게 하였다.
1929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청남, 청서 두개 면을 합병하면서 청산의 “청(靑)” 자와 산성의 “성(城)” 자를 따내어 청성면(靑城面)이라 고쳐 부르게 된 후 현재에 이른다.

청성면의 면적은 80.9㎢이며 동쪽은 청산면, 서는 동이면과 안남면, 남쪽은 영동군 심천면, 북은 보은군 삼승면과 접하고 있다. 2007년말 현재 28행정리에 1,318호 2,656명이 살고 있다.



화성리(和城里)는 원래 청산현 서면 석성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서, 후에 화동마을을 합하여 화성리라 이름 지어 오늘에 이른다.


1739년 기록이나 1891년 기록에 다같이 청산현 서면 석성리로 99호가 살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의 일제정비 때 청산현이 없어지고 옥천군에 소속되면서 청서면으로 되고 이때 석성리가 화동과 합하여 화성리가 되었다. 2007년말 현재 화동에 41호 88명, 석성에 75호 141명이 살고 있다.


화성리(和城里)라 부르게 된 것은 두 마을이 합하면서 한 이름으로 될 때 화동(和洞)의 화(和)자와 석성(石城)의 성(城)자를 한자씩 취하여 화성리라 하였다. 석성은 마을 뒤 산계리와 경계되는 산위에 저점산성인 석성이 있기 때문에 석성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19번 국도가 가로질러가는 교통요지로 2008년 화성진료소가 새로 들어섰으나 농촌인구의 급감으로 1946년 9월 30일에 개교한 화성초등학교가 1999년 8월 31일 폐교한 지역이다. 석성, 거포, 구음, 무회, 만명방면으로 이어지는 한두레마을이 시작되는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뒤애기, 돌자시(석성-돌잣), 양짓마(양촌), 음지마(음촌), 교촌, 유문골(유문거리) 등이 있으며 1967년 화동저수지가 축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