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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충동 연최적충효양정문(慕忠洞 延最績忠孝兩全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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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2018. 3. 10.



청주사람들에게는 효자문거리 하면 귀에 익은 곳이다.

충신,효자 연최족의 정려문이 있어 이 곳을 효자문 거리라 불리우고 있다.

연공충효양전문(延公忠孝兩全門)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으며 안에는 충신,효자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비석에는 충신효자 유명조선증이조판서행사헌부감찰연최적지문(忠臣孝子 有名朝鮮贈吏曹判書行司憲府監察延最績之門)이라고 적혀있다.



연최적(延最績: 1662∼1693)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무경(茂卿), 호는 치당(痴堂), 시호는 의민(毅愍),본관은 곡산이다. 현종 3년(1662)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택로(宅老)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우암 송시열의 문인(門人)이다. 숙종 8년(1682) 20세의 나이로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그후 감찰(監察)이 됐으나 정국의 변화로 관직을 물러나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후에 다시 관직으로 나갔으나 숙종이 구언교(求言敎)를 내리자, 오두인(吳斗寅)·박태보(朴泰輔)와 함께 인현왕후 폐위의 부당성과 당시 화를 입은 사람들의 용서를 상소했다가 도리어 화를 입어 숙종 19년(1693)에 32세의 젊은 나이로 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다시 서인(西人)이 집권하고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추증됐다.
숙종 21년(1695) 순무사 송광연(宋光淵)이 지방을 순시할 때, 이 지역의 선비 수십명이 지난날 그의 효행과 행적을 알려 정려문이 내려졌다.

그후 이조판서·대제학에 추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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