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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면 송현리 고인돌지석묘(馬老面 松峴里 고인돌 支石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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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2019. 3. 20.



마로면 송현리에 있는 지대석입니다.




지석묘()라고도 부른다.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고인돌은 크게 나눠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도 있는데, 이를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한다.



고인돌의 연구에서는 지하의 묘실 구조와 축조방법을 중시하는데, 연구자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렇게 북방식·남방식·개석식 등의 3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북한 학계는 고인돌에는 한 구역 안에 2~3기의 고인돌을 나란히 세우고 상석 높이까지 돌을 덮어 묘역을 구성한 형식의 고인돌과,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의 두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각각 침촌리형과 오덕형 고인돌로 부르며 전자가 시기적으로 더 이르다고 본다.

고인돌 각 형식 간의 시간적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북방식이 앞선다는 설과 남방식이 앞선다는 설이 있으나, 시간적 관계 판단에 필요한 유물이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단언하기 힘들다.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점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혹자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치를 근거로 신석기시대에 이미 고인돌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기원전 8~7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거나, 아무리 이르게 보아도 기원전 5세기를 넘을 수 없다는 주장 등을 하여 이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움무덤[]이 등장하기 이전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고인돌이 만들어진 문화적 연원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하에 설치된 돌널무덤[]이 지상화되어 고인돌로 발전하였다는 자생설, 만주지방에 분포한 대석붕()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는 설, 남아시아의 거석문화()의 유입으로 발생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나, 황해도·전라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한 곳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어 분포한 경우도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전라북도 고창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이 최남단의 것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밀집 분포하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많이 보인다. 한편, 개석식()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일본 규슈[]지방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조몬[]시대 말기에서 야요이[]시대 초기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한국계 유물과 함께 발견되고 있어, 일본 야요이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고인돌에서는 간돌검과 돌화살촉이 주요 부장품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민무늬토기와 붉은간그릇 등 토기류와 청동기가 부장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고인돌에서는 유물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매우 미미해, 고인돌이 세골장() 혹은 이차장()용의 무덤일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고인돌 축조에 필요한 거대한 돌의 운반에는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로 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것이 족장() 등 지배계급들의 묘()라는 주장도 있다.


송현리의 고인돌은 현재 8기가 존재하고 있다

아주신씨들의 묘역을 중심으로 민묘사이와 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은 안내판이라도 세워 놓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자꾸만 잊혀져가는 고인돌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할때 입니다





[보은신문에서 발췌한 사진입니다]



마로면 송현리에는 8기의 고인돌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고인돌중 하나를 '칠성바위' 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원래 7개의 고인돌이 있어 칠성바위라 불리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추가로 2개가 더 발굴되면서 모두 9개가 되었다. 9개의 고인돌중 현재는 고인돌 하나가 없어서 8개가 남아 있다.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받침이 있는 고인돌과는 달라 이 고인돌은 받침이 없었다. 이런 받침이 없는 고인돌은 '지석' 이라 부른다고 한다. 송현리 고인돌 주변에는 현재 무덤들이 보인다. 이 무덤들이 있던 곳에서 고인돌이 함께 분포하고 있었다.


우리 보은군의 생생하고 살아있는 역사 체험장이 될 수 있는 고인돌을 그냥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주변 사람들도 이 고인돌(지석) 에 대해 모르다 보니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알리려는 노력도 없이 방치되고만 있는듯해 안타까웠다.
보은군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고인돌(지석)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이라도 적은 표지판을 설치한다면 우리 고장 보은의 문화적 가치도 높아지고 아이들의 지식을 더 늘릴 수 있는 배움의 터전도 될 수도 있으니 빠른 조치를 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고인돌이 있는 땅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보은군에서 땅 소유주와 협상하여 문화유적지로 만들었으면 한다.  [보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