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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고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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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0.



청주시 내덕동과 율량동에 있는 밤고개에 얽힌 전설.

조선 영조 때 조원의(趙元宜)라는 유생이 간(諫)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충청도 회인(懷仁)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조원의를 유배지까지 호송하는 책임을 맡은 금오랑(金吾郞)은 유배지에 도착하거든 하룻밤을 묵은 뒤 그의 목을 베라는 명을 받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조원의는 유배 길에 올랐다.

일행은 사흘을 걸어서 청주성 동북쪽에 있는 율봉역원에 도착하였다. 일행이 쉬고 있는데, 역원(驛員)이 삶은 밤 닷 되 가량을 내놓으면서 먹으라고 권했다. 그를 호송하는 사람들이 밤 한 알을 먹어 보니, 맛이 아주 좋았다. 일행은 밤을 먹다 보니 해가 저물었으므로, 그 날 밤을 거기서 묵기로 하였다. 일행은 밤나무가 울창한 역사(驛舍)에 달빛 아래 앉아 밤을 먹으며 밤을 보냈다. 조원의도 역원이 주는 밤을 받아 반은 까먹고 반은 주머니에 넣었다.

이튿날 아침, 일행은 다시 회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여 문의현(文義縣)으로 들어가는 고분터에 당도하였다. 조원의는 호송원들에게 피곤하기도 하고 출출하니 술이나 한 잔 마시자고 하였다. 유배지에 들어가 하룻밤을 자고 나면 죽게 되어 있는 것을 아는 금오랑은 이것이 조원의의 마지막 소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승낙하고, 객점에 들어가 술을 청하였다. 술상을 받은 일행이 첫 술잔을 기울이려고 할 때, 말을 탄 사람이 급히 달려오더니 어명이라면서 문서를 내밀었다. 금오랑이 이를 받아서 보니, 조원의를 아직 죽이지 않았거든 살려주라는 어명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면한 조원의는 북쪽 대궐을 향해 절을 하고 나서 주머니에서 밤을 꺼내 들고, ‘밤이 내 목숨을 구해 주었구나!’ 하며 기뻐하였다. 어명을 전한 사람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하니, 그가 말했다.

“율봉역"에서 밤을 내놓지 않았다면, 어명이 전달되기 전에 내가 죽었을 것이다. 천행으로 율봉역에서 밤을 먹다가 늦어 하룻밤을 거기서 묵는 바람에 내가 살았으니, 내가 산 것은 오로지 밤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율봉역의 밤나무 고개는 ‘구명고개[救命峙]’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고개를 ‘밤고개’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조원의의 일 이전부터 율봉역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단순히 밤나무가 많았으므로 ‘율량’이라 했고, 그곳이 고갯마루였기에 ‘밤고개’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밤고개는 지금 청주에서 오창, 진천으로 나가는 길목이다. 내덕동성당이 밤고개 위에 있고, 고개 마루에 시내버스 승강장이 있는데, 조그만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