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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발원문비(東鶴寺 發願文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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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24.

 

동학사는 724년(성덕왕 23)상원(上願)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懷義)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淸凉寺)라 하였고, 920년(태조 3)도선(道詵)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936년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東鶴祠)를 지었다. 그리고 사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東學寺)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1394년(태조 3)고려의 유신(遺臣) 길재(吉再)가 동학사의 승려 운선(雲禪)과 함께 단(壇)을 쌓아서 고려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1399년(정종 1)고려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이 절에 와서 정몽주·이색(李穡)·길재 등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해 이정한(李貞翰)이 공주목사로 와서 단의 이름을 삼은단(三隱壇)이라 하고, 또 전각을 지어 삼은각(三隱閣)이라 하였다.

1457년(세조 3)김시습(金時習)이 조상치(曺尙治)·이축(李蓄)·조려(趙旅) 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다. 다음 해에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제단을 살핀 뒤 단종을 비롯하여 정순왕후(定順王后)·안평대군(安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정분(鄭奔) 등과 사육신, 그리고 세조 찬위(簒位: 임금의 자리를 빼앗음)로 원통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였다. 인신(印信: 도장)과 토지 등을 하사하였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하고 승려와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1728년(영조 4)신천영(申天永)의 난으로 이 절과 초혼각이 모두 불타 없어졌고, 1785년(정조 9)정후겸(鄭厚謙)이 위토(位土: 묘에서 지내는 제사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던 논밭)를 팔아버리자 제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1814년(순조 14)월인(月印)이 예조에 상소하여 10여 칸의 사옥과 혼록봉장각(魂錄奉藏閣)을 세웠다. 1827년홍희익(洪羲翼)이 인신을 봉안하는 집을 따로 지었으며, 충청좌도어사 유석(柳奭)이 300냥을 내고 정하영(鄭河永)이 제답(祭畓)을 시주하여 다시 제사를 베풀었다.

1864년(고종 1) 봄에 금강산에 있던 만화 보선(普善)이 이 절에 와서 옛 건물을 모두 헐고 건물 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는데, 초혼각은 1904년 숙모전(肅慕殿)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뒤 만화에게서 불교경론을 배운 경허(鏡虛, 1849∼1912)가 9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1871년(고종 8)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었고, 1879년에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