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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석조보살입상(鎭川郡 梨月面 老院里石造菩薩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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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

2020. 7. 11.

궁골마을 표지석

 

관심은 행복입니다

누군가의 기억에 잠재된 기억을 다시 현실로 이끌어 냄으로서 감정을 실어주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준다면 그것이 관심일것입니다

제블로그를 찾으시는 분의 기억속에 각인된 궁골마을의 보살입상을 조금더 애뜻하고 깊이가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 어제 다시 궁골마을을 찾았습니다

 

생거진천 궁골마을이라는 벽화가 있는 궁골마을창고벽화

 

그동안은 시간에 쫒기 듯 사진 몇장 찍기에 바빳지만 오늘은 여유있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마을창고에 벽화를 그려놓았습니다 

궁골마을에는 기황후의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궁골석불옆에 자리한 장승

 

 

오랫만에 찾아서 그런지 주위풍경이 낯설어집니다

주위로는 전원주택들도 들어서고 앞으로도 더 들어설모양인지 택지를 조성해 놓았습니다.

 

궁골마을 차원에서 해놓았는지 석조보살입상 주위를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노원리 궁골 석조보살입상입니다.

 

궁동마을 옥녀봉 동쪽 기슭에 있다. 전체 높이는 203㎝로 지상으로 드러난 부분의 크기를 보면 불두와 상체 부분이 1대 2.5 정도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 부분의 형태는 거의 정사각형이며, 머리에는 짧은 보관을 쓰고 있습니다. 눈썹 사이에는 백호공(白毫孔)의 흔적이 남아 있고, 미간에는 눈·코·입의 윤곽이 또렷하게 살아 있으며, 눈과 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으나 단정하고 소박한 인상을 풍깁니다

 

앞면과는 달리 후면에는 아무조각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살입상전면에는 이쁜 나비매듭이 두군데 있습니다.

몸체는 굴곡이 없는 기둥 형태이고, 두 팔과 손은 빈약하고 어색하게 표현되었다. 법의의 주름은 음각되어 있는데 마멸이 심해 윤곽을 파악하기 어렵고, 가슴 부분과 몸체의 하단에 장식된 나비매듭은 뚜렷하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손목에는 이쁜팔찌모습이 보입니다 수인은 아미타구품입니다.

 

양 손목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수인은 조각의 빈약함과 마멸 때문에 뚜렷하지 않으나 오른손은 가슴 부분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잡고 인지는 뻗은 형태이며, 왼손은 왼쪽 어깨까지 치켜 올려 엄지와 인지를 잡고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아미타여래의 구품인 가운데 한 형식을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 수법이 낮게 새겨진 돋움식이어서 몸의 양감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편이며, 몸체의 뒷면은 전혀 조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머리에는 보관의 모습이 보입니다 백호공의 모습도 보이구요

 

미간에는 눈·코·입의 윤곽이 또렷하게 살아 있으며, 눈과 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으나 단정하고 소박한 인상을 풍깁니다
전후좌우로 보살입상을 살펴보았습니다.

 

노원리 석조보살입상(老院里 石造菩薩立像) 앞에 공양석이 놓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랫동안 마을에서 모셔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둥근 형태의 상호(相好)가 대부분이던 전대의 유형에서 벗어나 후대의 방형(方形)으로 변화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가슴과 몸체의 하단에 각각 양각으로 새겨진 나비매듭이 이채롭다.

동쪽을 향한 불상과 넓은 대지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불상 주변 일대가 절터로 보이지만 지표 조사 결과 기와 조각이나 주춧돌과 같은 절터로 추정될 만한 유물은 나오지 않았고 단지 자기 조각만 수습되었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배례석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불상의 형태나 조각 수법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미륵불의 한 유형이다. 주변 곳곳에 비슷한 불상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는 이 지역에 미륵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살입상 주위에 있는 엣우물입니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민초들의 바램을 먹고 계신 듯 합니다.

잘 정리되어 있는 우물이 있고 촛불등을 피을수 있는 제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보살입상에서 산쪽으로 조금 오르면 기도처등이 있습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듯 보살상 옆에 나무도 수세가 약해졌습니다.

 

보살입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입니다

붉은 접시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위에 풍경을 담아 보았습니다.

 

궁골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아스라한 전설 끄트머리입니다.

원나라 세조(世祖) 홀필렬(忽必烈)[쿠빌라이칸]은 중국에서 황후감을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고려의 한 지역에 아름다운 서기(瑞氣)가 어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홀필렬이 이상히 여겨 측근에게 물어보니 귀인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홀필렬이 부하를 데리고 서기가 어린 옥녀봉 아래에 와 보니 서기가 기골이 장대하고 아름다운 기씨 처녀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홀필렬은 기뻐하며 기씨 집에 찾아가 부모에게 절을 올리고 사위로 삼아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하였다. 부모는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하였으나 기씨가 은근히 바라는 기색이라 마지못해 허락하였다. 기씨 처녀를 황후로 맞이한 홀필렬은 황후의 부모를 위해 기씨가 탄생한 지역에 웅장한 궁궐을 세웠다. 그 궁궐을 세운 곳이 바로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궁골마을이다. 지금은 묵정밭이 되어 버렸지만, 지금도 땅을 파면 부서진 기왓장이 나온다고 한다.

이와는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어느 날 아침 홀필렬이 세수를 하고 있는데, 공중에서 까치가 두어 번 울더니 세숫대야에 단추 한 개를 떨어뜨리고 갔다. 그 단추는 옥으로 만든 것이었고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홀필렬이 세수를 다한 후에 의관을 정제하려다 보니 옥관자(玉貫子)가 보이지 않았다.

한편 기씨가 세수를 할 때 까치가 두어 번 울고 갔는데, 세수를 한 후에 저고리를 입으려고 보니 단추가 없어져 있었다. 또 며칠 후 세수를 하는데 또 까치가 울더니 세숫대야에 옥관자를 떨어뜨렸다. 기씨가 이상히 여겨 옥관자를 비단 헝겊으로 쌌는데, 이상한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홀필렬은 옥관자를 찾으려고 점성가를 불러 알아보았다. 점성가가 하는 말이 동쪽 어느 처녀가 옥관자를 가지고 있는데 황제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며, 동쪽으로 서기가 어린 곳을 찾아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점성가의 말을 들은 홀필렬은 기씨를 찾아갔다. 홀필렬은 기씨의 단추를 자신이 가지고 있고, 자신의 옥관자를 기씨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홀필렬은 그동안 중국 여자와 수차례 결혼을 했으나 첫날밤이 지나면 여자가 어김없이 죽고 말았었다. 그러던 중 육척 장신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행동이 호걸남아와 같은 기씨를 보고서 홀필렬은 기씨가 자신의 천생연분임을 깨닫고 기씨를 배필로 맞이하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기황후릉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http://blog.daum.net/king6113/4933

 

무슨생각을 하고 계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