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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면 지경리 경회정지(靑川面 地境里 鏡淮亭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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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

2021. 4. 3.

 

청천면 지경리 신대마을에 냇가에 경회정이라는 정자가 있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몇번이고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수가 없었다. 많은 자료를 접해 보았지만 정자의 모습을 볼수도 없고 나와는 인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경리에 위치한 안동인 김의신의 사적비를 살펴보다가 경애정 이명(異名)으로 사천정이라는 정자를 김의신이 황암천가에 건립했다는 내용을 볼수가 있었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본 결과 경회정은 지금은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아있었다. 시간을 내어 지경리 황암천가에 자리한 경회정터를 찾아 보았다.

 

경회정이 자리하고 있던 냇가입니다.

 

경준정은 청천면 지경리 신대마을의 동구 대로(大路)에서 약 100m 지점에 있다. 후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서 사천현감(泗川縣監)이 된 김의신(金義臣)이 조선 정조 7년에 건립하여 향당청소년(鄕堂靑少年)들과 함께 독서연학(讀書硏學)하였고 관직을 사양하고 만년(晩年)에 음풍음월(吟風吟月)로써 자오(自娛)하고 또한 고우(故友)의 자제들에게 강학훈도(講學訓導)하였는데 동학란(東學亂)에 소실되었다. 그 후 6세손인 김상묵(金相默)이 1962년에 재건(再建)한 것이다. 원래는 이 정자 아래 준수(准水)가 유일(流溢)하였으므로 경준정(鏡准亭)이라 명명(命名)한 것이다. 건물 구조는 목조와가(木造瓦家)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八作)집이다.(문화재청)

 

경준정(鏡准亭)이라 표기하였는데 제 생각에는 한자의 오류로 경회정(鏡淮亭)으로 생각이 듭니다.

 

 

황암천이 흐르다 바위와 만나는 곳에 안동인 김의신이 정자를 만들었습니다.

 

몇 번이고 찾은 청천면 지경리 입니다

지경리 옆을 흐르는 냇물의 이름은 황암천입니다. 황암천이 흐르다 암벽과 만나는 곳에 나름대로 경치가 좋은곳이 있습니다. 조선조 정조시절 안동인 김의신이 이 곳에 정자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세월을 읊던 정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정자는 없어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물이 흐르다 암벽과 만나는 곳 윗 쪽에 자그마한 정자터가 있습니다. 

 

 

 

문화재청에서 설명한 정자의 이름이 경준정(鏡准亭)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준정이라는 이름보다는 경회정(鏡淮亭) 또는 사천정(泗川亭)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한자의 표기오류로 인하여 준(准)자와 회(淮)자가 병행되어 사용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괴산군지에는 경애정(鏡涯亭)으로도 표기하고 있습니다.이 또한 오류가 아닌기 하는 생각입니다

괴산군지에는 경애정이라 표기하였고 괴산문화원이 제공하는 괴산의 정자라는 곳에서는 경준정이라고 표기하였습니다.

경준정과 경애정이 그리고 경회정이 혼용되어 사용하고 있는데 올바른것으로 하나를 사용해야 할거 같습니다.

 

 

 

 

 

지경리에 자리한 김의신의 사적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자의 존재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적비의 글도 후세에 김의신의 후손에 의하여 작성된 글이지만 경애정(鏡涯亭) 또는 사천정(泗川亭)이라 명명하고 있습니다.

 

안동인 김의신의 사적비에 경애정(鏡涯亭)(사천정/泗川亭)이라는 정자의 명칭을 볼수가 있습니다.

 

정자가 있던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정자가 있던 자리에는 무너진 정자의 흔적으로 보이는 몇개의 썩은 목재들만 보이고 어디서도 또 다른 정자의 흔적은 찾을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정자가 있던 곳에는 인근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기도의 장소로 이용하곤 했다고 합니다. 백일기도 등 민초들의 아픔을 달래주던 장소로도 이용하곤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