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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면 조곡1구 마을표지석(懷南面 鳥谷1區 마을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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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2021. 6. 12.

 

회남면사무소에서 지방도를 따라 회인으로 향하면 거교리 다리를 건너며 우축으로 길을 들어서 처음마나는 동네가 조곡1리 새실이다. 조곡2리 마전사는 조곡1리에서 좁은 고갯길을 자동차로  10여분 더 들어가야 한다.

 

조곡리는 국사봉에서 부터 회인천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북으로 금곡리, 동으로 국사봉 너머 수한면 노성리, 남으로 판장리, 서로 회인천 건너 거교리와 접해있다. 본래 회인군 남면 지역이다. 노성산과 호점산성 사이가 되므로 새실 또는 조곡 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곡리라 하고 보은군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대청댐 담수로 일부가 수몰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사실(새실), 마전사가 있으며, 지명으로는 가는골, 건너들, 굽은딩이, 구수샴골, 남산골, 느름싱이, 달기봉, 도람말, 독박골, 동대골, 때골, 매봉, 방아다리, 벼락바우, 산건너, 새청, 서고개, 아리랑고개, 아망골, 여수구미, 이팥재, 잿마당, 찬물샘께, 허궁다리 등이 있다.

 

 

사실마을(조곡1리)은 거교삼거리에서 안내회남로로 접어든 곳에 있다. 삼거리 입구에 마을유래비가 있어 마을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마을자랑비에는 ‘돼지가 누워 9마리의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형상이라 전하며, 마을 전면에서 보면   새조(鳥)자 모양으로 보여 조곡이라 하였다.’고 적혀있다. 거교리로 가는 거신교 앞에 회남치안센터가 위치한다. 조곡1리 사실마을은 회인천을 사이에 두고 회남면 소재지 마을과 마주 보고 있 다. 사실마을은 1970년대 초반에는 60여 가구가 살아가던 큰 마을이었으나, 1980 년 대청댐 담수가 시작되고 나서 아랫마을에 살던 20여 호 정도가 고향을 떠났다. 대청댐 담수로 기름진 논이 물이 잠겼기 때문에 현재는 밭농사와 과실수를 주로 재배한다. 현재 행정구역을 보면 면 소재지 마을과 공유하고 있는 회인천 대부분이 조곡리에 속해 있다. 달리 말하면 대청댐 담수로 인해 삶의 터전 대부분을 잃은 셈이다. 예전 마을 앞들은 군량을 제공하였을 정도로 넓었다. 현재는 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인데, 대부분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어 농사짓기도 수월치 않다. 이런 어려움은 대청댐 담수로 농경지를 잃은 마을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사실마을은 원래 웃마을과 아랫마을로 이루어졌었다. 현재 남아 있는 마을이 웃마을이고 수몰로 사라진 마을이 아랫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수몰로 사라진 아랫마을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주막거리, 군량들, 방앗간, 공회당, 빨래 터 등 당시 마을의 풍경은 너른 군량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물에 잠기지 않은 웃마을은 예전과 큰 변화 없이 회인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 을에는 200년 된 배나무, 호두나무우물 등이 마을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조곡2리 마전사는 사실에서 재너머고개를 지나 국사봉 400m 고지까지 올라야 만날 수 있다. 마전사는 사실에서도 직선거리 1.7km 정도 떨어진 오지에 위치한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밖으로 나오는 유일한 길도 차량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겨울철 눈이라도 내리면 동네는 완전 고립된다. 마전사 남쪽 아래로 내려가면 판장리 큰골로 이어져 있지만, 사람의 왕래도 없고 조그만 저수지가 막고 있어 길도 사라졌다. 마전사는 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국사봉 남쪽에 마전사란 절터가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세조가 속리산에 왔다가 돌아갈 때 이 절에서 3일간 머무르며 베옷을 빨아 말린 일이 있어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기우제를 지내던 스님이 비에 젖은 베옷을 말려 입고 갔다 하여 마전사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또한 세조가 이곳에서 사슴사냥을 하였다 하여 마록사라고도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전사는 산 중턱 평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고, 물결치는 산줄기를 굽어보고 있다. 절터는 흔적도 없지만, 전해지는 이야기만 봐도 마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절터로 추정하는 곳에 서 있는 500년 된 은행나무(보호수, 1982)는 둘레가 1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목이다.  그 옆으로 크기가 좀 작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자리하고 있는데, 암수 짝을 맞추어 가을이면 실한 은행을 맺는다 한다. 은행나무는 절의 지주가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마을의 생성 유래와도 관계가 있다. 절에 암수 두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주지승이 은행나무 잎이 떨어져 지저분하다고 은행나무를 베어버렸다. 은행나무에서는 우윳빛 백색물이 나왔고 주 지승은 피를 쏟고 죽었다. 이 뒤로 절은 타락하게 되었고 이후 마을이 생기기 시작 했다는 이야기다

 

조곡1구 마을자랑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