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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면 병암리 안소당송선생유허비(加德面 屛巖里 安素堂宋先生遺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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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2021. 6. 15.

 

유허란 유지(遺址)·유적(遺蹟)·구기(舊基)와 같이 ‘남긴 터(자취)’·‘옛터’의 뜻으로, 여기에서는 선현들이 태어났거나 살았거나 임시 머물렀던 곳, 또는 순절(殉節)하거나 귀양살이하였던 곳을 가리킨다.

고려시대까지는 유허비라는 명칭의 비는 보이지 않으나, 조선시대에는 유허비를 비롯하여 유지비(遺址碑)·구기비(舊基碑)라는 명칭의 비가 적지 않게 조성된다. 경기도 개성에 ‘高麗忠臣鄭夢周之閭(고려충신정몽주지비)’라는 문구와 입비연대(1530년, 중종 25)만을 간단히 새긴 비는 유허비의 성격을 띤 초기의 예라고 하겠다.

 

 

송국헌은 본관은 은진()이고, 자는 군식(), 호는 안소당()이다. 청주()출신으로 할아버지는 부호군() 송남수()이고, 아버지는 승정원() 도승지()에 증직된 송희진()이다. 벼슬은 자여찰방()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덕행이 뛰어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백의()를 입고 한양으로 떠났으나 조령()에 이르러 강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돌아왔다. 사후에 이조참판()에 증직되고,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병암리의 검암서원()에 배향되었다. 묘소는 청원군 남일면 두산리에 있다.

 

 

옆에는 은진인 송일기(宋一琦)의 처 영일정씨의 정려문이 있던 자리를 나타내는 정려지비(旌閭址碑)가 서있다.

정려지비의 뒷쪽에는 영일정씨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보호철책을 두르고 있는데 제거하는 편이 보기가 좋게습니다.
길 건너편에 있던 김원근의 구휼비도 옆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