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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북면 이원리 의사석성국묘지(內北面 泥院里 義士石成國墓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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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

2021. 6. 22.

 

석창문(石昌文) ( 1886. 7. 6.~1908. 9. 10.) 이명으로 석성국(石成國)이라고도 한다.  내북(內北) 이원(泥院) 출신으로 키가 작으나 매우 용맹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어렸을 때 가세가 빈한하여 상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속리산 중에 의진이 형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생업을 버리고 한봉수(韓鳳洙)의 참모장이 되었다. 출전할 때마다 많은 적을 사살하였다. 일병들이 그 를 사로잡으려 하였으나 출입할 때마다 병기로 무장하고 있어서 어찌할 수 없었다. 1908년 5월 의병장 한봉수, 김규환(金奎煥)과 함께 약 40명을 인솔하고 청주 산외일면 초정동(椒井洞)에서 일인기병 2명이 우편물을 호위하고 오는 것을 확인하 고 좌우의 산기슭에 매복하였다가 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려 석창문이 선두의 일본병을 저격하여 사살하고 접전 중 나머지 일인이 퇴각하자 우편물과 현금 이천여 원 을 탈취하여 군자금에 썼다. 그해 봄에 석창문이 적정을 탐색하기 위하여 홀로 의진을 떠나 오대산(五臺山) 에 이르렀을 때 적 수십 명에게 창졸간에 포위되었다. 대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틈 을 보아 도주하였으나 적의 추격을 받아 주머니칼을 꺼내 들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체포당하였다. 적은 그를 심문하여 의진의 근거지를 알아내고자 하였다. 이에 석창문은 “이미 사로잡혔으니 내가 죽을지언정 남을 끌어들이겠느냐.” 하며 혀를 깨물며 자백하지 않았다. 적이 보은군으로 그를 끌어내려서 살해하였다. 일설에는 스스로 신낭(腎囊)을 끊어 자결하였다고 전하기도 하는데 순국 당시 그의 나이 24세에 불과했다. 시신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온 집안이 놀라고 슬퍼 하였으나, 그의 처는 태연히 예로써 장례를 지내었다. 그 사흘 후 부인마저 20세의 나이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