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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면 비암사 삼층석탑(全義面 碑岩寺 三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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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방방곡곡/세종특별자치시

2021. 7. 25.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 경내 극락보전(極樂寶殿) 앞에 위치한다.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碑岩寺)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단층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1982년에 복원 공사를 하면서 망실된 기단부를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에 비하여 2~3층 탑신의 체감률이 크고, 옥개석 하단 받침이 4단인 점 등을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1960년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 꼭대기에서 계유명전씨 아미타불삼존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三尊石像)[국보 제106호], 기축명 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己丑銘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보물 제367호], 미륵반가사유석상(彌勒菩薩半迦石像)[보물 제368호]이 발견되어 유명하여졌다. 비암사가 행정구역상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되어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다른 곳에 위치한 것을 1982년에 뒤집혀 있던 상대갑석을 바로잡고 유실된 면석과 우주 및 탱주를 새로운 화강암 부재로 대체하여 지금의 극락보전 앞으로 복원하였다. 기단부는 상대갑석 이하의 모든 부재가 신부재로, 바닥에 4장의 판재로 이루어진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도 4장의 석재를 짜맞춰 각형 2단의 기단받침을 구성하였다. 면석 모서리에는 각각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가운데에 탱주를 조출하여 상대갑석을 받치고 있다. 상대갑석은 2장의 판석으로, 하단에 1단 받침 역할을 하는 부연을 표현하였다. 갑석은 정면 우측 모서리가 훼손되어 떨어져 나갔으며, 상단에 흔히 표현되는 탑신 받침이 없다. 탑신부의 탑신과 옥개석은 별석으로, 탑신 각 면에는 우주가 있다. 옥개받침은 4단이다. 1층 탑신은 2층 탑신과 3층 탑신에 비하여 매우 긴 편이다. 양 측면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면석에는 특별한 문양이 조식되어 있지 않다. 1층 옥개석은 완만한 낙수면에 우동마루 전각 끝이 살짝 반전되어 있으며, 하면에 4단의 옥개받침과 상면에 각형 2단의 2층 탑신 받침을 조출하였다. 2층과 3층의 탑신 및 옥개석 세부 형태는 1층과 거의 유사하지만 크기를 급격하게 줄여 체감률이 심해서 안정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상륜부는 대부분 유실되었고 노반석만 남아 있다. 노반석의 하부 받침은 호각형 2단으로, 3층 옥개석의 상단 굄석과 맞붙어 있다. 근래에 제작한 연봉형 보주를 올려 마무리하였다.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은 비암사 극락보전 앞마당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 높이는 405㎝이다. 1960년에 삼층석탑 꼭대기에서 국보 제106호인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 보물 제367호인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 보물 제368호인 미륵보살반가석상이 발견되었다. 1982년 복원계획을 수립하여 기단부를 복원하고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은 1985년 7월 16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 지정되었으나 연기군이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되면서 2012년 12월 31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지정이 해지됨과 동시에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초기에 건립된 전형적인 2단 받침의 3층 불탑 규범에서 벗어나 간략화되고 형식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규모가 더욱 축소되고 사용된 석재의 수도 줄어 건축적인 구조는 약화되었다. 새로 복원하였지만 기단부의 탱주도 하나로 줄었으며 상대갑석 위에 탑신 고임석도 조출하지 않아 간략화된 형태를 보인다. 옥개석은 전각이 날카롭고 층급받침이 4단으로 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높은 단층 기단에 탑신부를 좁고 길게 만들어 안정감은 없지만 비교적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 조성 수법을 잘 보여 주는 탑으로 비암사의 역사를 방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