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전의면 비암사 소조아미타불좌상(全義面 碑岩寺 塑造阿彌陀佛坐像)

댓글 0

전국방방곡곡/세종특별자치시

2021. 7. 26.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 비암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조선 전기 아미타여래좌상입니다.  전의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비암사 극락보전에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단독의 대형 소조여래좌상이다. 상호(相好)[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 표현이나 착의법, 신체 비례 등을 살펴보면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함께 눈을 옆으로 길게 처리하면서 그 끝부분을 위로 올려 이국적인 인상을 준다. 코는 크고 입은 작은 편이며, 양쪽 볼의 양감은 풍부하고, 귀도 크고 두껍게 조각하였다. 목에는 삼도(三道)[세 개의 줄]가 있고, 어깨는 넓어 건장하다.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변형편단우견식이다. 왼쪽 어깨로 넘어가는 대의(大衣)[설법을 하거나 걸식할 때에 입는 승려의 옷. 삼의 가운데 가장 큼] 자락이 어깨선에서 한 번 접혀 반전한다. 오른쪽 어깨에 걸쳐진 반달 형태의 옷 주름은 편삼(偏衫)[승기지와 부견의를 꿰매어 붙이고 옷섶을 단, 승려의 옷] 착용 여부와 관계없이 등장한다. 조선 전기인 16세기에 조성된 불상에서는 가슴과 맞닿은 가장자리 부분에서 반전된 옷 주름이 간략해지고 의습선(衣褶線)[옷의 주름이나 늘어진 모양을 표현하는 필선]의 굴곡이 심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신체와 밀착된 대의가 겨드랑이에서 오른팔의 팔꿈치를 돌아 나와 왼쪽 대의 속으로 삽임됨으로써 대의 자락 동선에 따라 팔꿈치에서 복부 사이에 폭이 넓은 옷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착의법과 옷 주름 표현은 16세기 이전의 상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 시기부터 17세기 이후 조성된 상에서는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16세기에 이르러 정착된 새로운 표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슴에는 승각기(僧脚崎)[불상의 드러난 가슴을 가리는 속옷]를 표현하였고, 두 손의 경우 오른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둔 다음 엄지와 중지를 살짝 구부린 설법인(說法印)[부처가 설법 교화함을 보이는 손가락 모습]을 결했다.

 

 

전의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극락보전에 단독으로 봉안하고 있으며, 신체에 비하여 머리가 큰 비례를 보인다. 나무로 골격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흙으로 조성한 소조불로, 개성 있는 얼굴과 유난히 낮게 표현한 무릎이 특징이다. 머리 위에는 모자를 쓴 것처럼 동그란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자리하고 있으며, 촘촘한 나발과 함께 정상계주(頂上髻珠)[육계 위에 있는 둥근 구슬]와 중간계주(中間髻珠)[정상계주와 이마 사이, 육계 중간에 있는 둥근 구슬]도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길쭉한 타원형이다.

 

 

 전의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전반적으로 보존 상태가 좋은 편으로, 그 사례가 드문 조선 전기에 조성한 대형 소조불이다. 특히 불상에서 양감이 더해진 얼굴과 눈꼬리가 올라간 눈, 크고 두툼하게 표현한 코 등에서 전체적으로 이국적인 인상을 준다. 팔 아래쪽으로 무겁게 늘어지는 변형편단우견식 대의와 낮은 무릎은 조선 전기에 조성한 불상의 시대성을 반영하는 요소로 여겨진다.

 

 

조선 전기 16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례가 매우 드문 대형 소조불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고려 후기부터 이어진 15세기 불상의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16세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표현들도 확인된다. 또 조선 후기 17세기에 조성한 상들과도 양식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들이 있어 조선시대 불상 양식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