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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1리 여생이길(方城1里 如生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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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2021. 7. 25.

 

 

본래 괴산군 남하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갈골 윗여생이과 방성골(方城골)을 병합(倂合)하여 방성리(方城里)라 하여 문광면(文光面)에 편입(編入)되었다. 이곳 웃여생이은 청천면 아랫여생이에 인접하여 다같이 여생이라고 부른다. 행정구역이 다를 뿐이다.

  • 갈 골(盧洞) : 방성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쪽에 청천면 대전리 서쪽에는 청천면 토성마을이 인접하고 있고 구 괴산읍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방성리에서 제일 오래된 마을이다. 옛날에 갈대밭이 있었던 마을이라 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 웃여생이(웃如思旺里) : 방성골마을에서 남서쪽에 잇는 마을로 전에는 청천면 여사왕리와 한 마을이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방성리에 병합(倂合)되었다.
  • 방성골(方城골) : 일명 원방성이라고도 하면 사방이 성과 같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하여 방성골이라고 한다.

 

 

 

마을 유래비와 표지석과 함께 연자방아 맷돌을 하나는 눞히고 하나는 세워 놓았습니다. 오래전 동네에서 사용하던 맷돌이라고 합니다.

 

 

 

여생이 마을유래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조24년 의병대장 이세림(李世琳)공이 진천군 덕산면에서 국난을 예측하던 중 삼실중(三室中)에 살아야 난을 피한다고 하여 문광면 양곡리(바느실) 청천면 부성리(집실) 청천면 여사왕리(좌실)의 중간 지점인 이 곳을 찾아 정착하게 되었다. 이세림공은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전투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왜장의 칼에 목이 떨어져 뒹구는 것을 처남 되는 경주김씨공이 말안장에 묶어 보내어 목메여 울며 달려온 말이 이 곳 산39번지 무덤자리에서 함께 죽어 그 곳에 공의 묘소와 함께 말묘가 함께 안치되어 있다. 마을은 지대가 높고 날이 일찍 밝는 곳으로 첫닭 우는 소리를 듣고 여사왕 중대전에 가면 가는곳마다 그때서야 첫닭이 울었다 하여 여생리(如生里)라 하였고 거북혈을 한 마을로서 동서로 300년이 넘는 느티고목과 앞 뒷산 장승같은 참나무는 일곱번이나 겪은 국난을 예시하였으며 몹시 추운 겨울에도 신경통에 좋다는 겨우살이가 파랗게 돋아나곤 했다. 성안에 모가진 방과 같다 하여 1914년에 방성리(方城里)로 명하였고 물을 찾아 앞을 바라보는 거북혈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 곳에 보호숲과 유래비를 세운다.   1995.5.  여생리 주민일동 이라고 씌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