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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면 청용리 고천군사우,재실(加德面 靑龍里 高川君祠宇,齋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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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2021. 8. 5.

 

고천사는 조선 말기에 성종대왕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책록되고 고천군(高川君)에 봉해진 이조판서(吏曹判書) 신정(申瀞, 1442∼1482)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고령신씨(高靈申氏)의 사당으로 일명 "청룡사(靑龍祠)"라 하였다.

 

 

후에 화재를 당하여 폐사되었다가 1959년에 다시 세우고 매년 3월 10일에 향사하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59년에 중건한 건물로 정면3간, 측면 1간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분합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고 유리창 미닫이를 달았으며 "고천군사당(高川君祠堂)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마당 앞으로 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현재 고령 신씨(高靈申氏)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고천군 신정(申瀞)은 조선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언유(彦游). 참의 포시(包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제학 장(檣)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숙주(叔舟)이며, 어머니는 사재부정(司宰副正) 윤경연(尹景淵)의 딸이다. 태종의 아들 후령군(厚寧君) 간(衧)은 그의 장인이다. 1466년(세조 12) 종친부전첨(宗親府典籤)으로 있으면서 춘시문과(春試文科)에 3등으로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직제학에 초천(超遷)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년) 호군에서 병조참지·병조참의를 거쳐 1469년 성종이 즉위한 직후에 동부승지가 되었다. 1471년(성종 2) 좌부승지가 되고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었으며 이어 좌승지를 거쳐 1474년 도승지가 되었다. 1477년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대간으로부터 청간(淸簡 : 깨끗하고 검약함)하지 못하다는 탄핵을 받고 공조참판으로 체직되었다. 그간에 다른 사람의 재산을 탈취하였다는 혐의로 쟁송(爭訟)에 자주 거론되어 인품이 청렴하지 못하다는 세평을 들었다.

1479년 고천군(高川君)에 봉하여졌고, 1481년 평안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4월, 왕의 인신(印信 : 왕의 도장)을 위조하여 남의 재산을 탈취하였다는 혐의로 사사(賜死)되었다. 신정 [申瀞]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천군사당(高川君祠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재실앞에 서있는 모과나무가 지난세월을 말해줍니다.

 

고천군사우 밑에 자리하고 있는 재실의 모습입니다. 재실앞에 있는 입간판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재실은 1890년 3월17일 13대손인 승구(1850-1932)공이 마련하였고 단재 신채호(1880-1936)선생이 17-8세 때 수학한 장소이기도 하다. 재실주위에는 수령이 지정당시 200년 이상된 은행나무와 모과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2008년 3월29일 부터 고령신씨 고천군파 종약회에서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고령신씨 고천군사우 재실의 모습입니다.

 

지붕등 여러가지의 모습이 원형을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