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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답양리마을자랑비(安內面 畓陽里마을자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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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2021. 11. 13.

 

괴석을 이용하여 마을자랑비를 만들었습니다. 화강석으로 만든 대석위에 괴석을 올려놓고 괴석에 홈을 파서  마을자랑비를 만들어 홈에 끼워넣었습니다. 오석에 답양리미을자랑비리고 쓰여 있으며 마을의 유래를 설명하였습니다. 

 

답양리는 채운산을 비롯하여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산촌마을이다. 가산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고장이라 하여 옛날에는 아름다울 가佳, 묏 산山을 써서 가산佳山이라 하였다. 답양리 면적은 10.87㎢이며 서쪽 채운산을 비롯 하여 동쪽은 용문산 등 500m급 산들이 둘러싸고 가산천이 북쪽으로부터 답양리 가산계곡을 휘돌아서 북서쪽 보은군 회남면 은운리로 흘러 대청호로 들어간다.답양리는 조선후기 『여지도서』 기록에 따르면 가산리佳山里에 속하였고, 1830년대 『옥천 읍지』에서는 옥천 관문에서 북쪽으로 35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묘장적』에도 가산리 지역으로 기록하고 있다.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가산리는 답양리沓陽里와 용촌리龍村里 2개 리로 분리되어 답양리라 고쳐 지금에 이른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밀양박씨가 양지골에, 경주김씨가 논골에 각각 피난을 와서 정 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답동(논골)의 답沓자와 양지골의 양陽자를 취하여 답양리라 하였다. 답양리 단일이며, 자연마을은 화골, 논골, 위텃골, 양지골 등의 4개 마을이 있다. 농산물은 주로 밭농사를 지으며, 특산물로 가산영지버섯, 표고버섯, 고추, 참깨를 생산한다. 온돌에 쓰이는 구들석재를 생산하며, 가산사가 있다. 주요 성씨로는 병자호란 때 밀양박 씨 국당 후손들이 양지골에 들어와 살고 있고, 논골에 경주김씨가 세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