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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고당리 김연순효열비(靑城面 高堂里 金淵順孝㤠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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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2021. 9. 26.

 

 

청성면 고당리 원당 마을입구에 있는 김연순여사의 효열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경주김씨연순여사효열비(慶州金氏淵順女史孝烈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김연순여사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은 강릉유씨옥천종중에서 2009년 3월에 건립하였습니다.

 

 

 

 

경주김씨 연순여사는 강릉유씨 옥천군 종친회 고당리 월구지 문중의 종부로서 효부요 열부요 장한 어머니 이시다.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경주김씨 병종공의 따님으로 다복하게 자라나 어린 나이에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 강릉유씨 순종공의 아내로 시집오시어 가난한 살림에 노시부모 봉양과 어린 시동생 3남매의 뒷바라지는 너무나 힘에 겨웠고 양식이 없어 굶는 때가 많았다. 이런 역경속에서 4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에 영진,영복,영건,영준이요 딸에 성윤과 근임이라.자식들이 장성하면 가정형편이 나아지리라 믿었지만 사남중에 셋째는 하반신 마비요 넷째는 언어장애로서 형편이 나아지지를 않았다.

 

 

 

 

 

더구나 남편이 49세로 별세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아픔이요 뒤를 이어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시동생이 별세하고 의지할데가 없고 가정은 여사의 책임이 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장애자식들을 돌보고 중풍을 앓는 시어머니의 약을 2시간을 걸어서 읍에 가서 구해다가 8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병수발을 해드리니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생활형편 걱정에 잠들지 못하다가 친정집에서 돈을 빌려 광주리에 생선장사를 시작하였다. 짚신발에 버선도 신지 못하고 이 마을 저 마을을 행상을 할 때 겨울에는 동상에 걸린 발은 퉁퉁부어 아리고 쓰려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세상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식들과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산과 들을 짚신삼아 열심히 행상을 하였다. 그런중에 큰아들이 장가를 갔고 손자를 보았다. 그러나 큰아들이 과음으로 세상을 등지고 셋째가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못쓰게 되자 마음이 타서 재가되고 육체는 타서 숯이 되었다. 이렇게 한많은 세월에도 꿋꿋하게 효도하며 자손들을 보살펴 가정을 지켜내신 김연순 여사에게 하늘에 은총이 있어 셋째 장애아들이 결혼하여 쌍둥이 손녀를 보게되였다.이제는 힘에 겨웠던 지난 세월을 묻어두고 마음을 굳게 먹고 언어장애 아들과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마감하겠다고 잠시도 쉬지않고 일을 한다. 손자 손녀가 있어 보람을 느끼면서도 지난 날을 돌아보고 장애자 아들들을 생각할 때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말씀한다.  

 

 

김연순여사는 저 길을 오르내리며 얼마나 삶의 무게를 느꼈을까?

 

 

파란만장한 김연순여사의 행적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기며 효부요 열부요 장한 어머니로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여 이에 강릉유씨 대종회 유용대 회장이 행적조사를 2007년 3월 20일 전국 孫씨총회 홍효사(弘孝祠)에 제출하여 효부와 열부로 수상을 하였다. 홍효사는 신라의 큰 효자 손순의 후예들이 경로효친과 전통을 계승하고자 설립 운영하며 김연순여사는 제 9회 수상자이다. 2009년 3월 강릉유씨 옥천종중 건립. 이라고 적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