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내고장구석구석살펴보기

안내면 현리 군수황종림 불망비(安內面 縣里 郡守黃鍾林不忘碑)

댓글 0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2021. 10. 23.

비석을 바라보며 좌측의 비석이 황종림의 선정비입니다.

 

안내면 현리에 있는 조선조 옥천군수를 지낸 황종림의 선정비입니다. 군수황종림영세불망비(郡守黃種林永世不忘碑) 라고 써 있습니다. 황종림의 선정비는 옥천읍 교동리와 군북면 증약리에 각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황종림은 자는 천오(千五)이며 창원인입니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순조16년(1816)에 병자년 식년시 생원시에 급제하였습니다. 홍주목사(1857) 가산군수(1858)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승정원일기 2415책 (탈초본 119책) 헌종 9년 6월 25일 정유 30/55 기사 1843년 道光(淸/宣宗) 23년....洪在兢爲監役, 黃鍾林爲沃川郡守, 成載琬爲唐津縣監,....

 

 

 

현리는 본래 신라 때부터 고려때까지 현(縣)의 관아(官衙)가 있던 곳이므로 현리(縣里)라 부르게 되었다. 173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현리(縣里)로 59호가 살았으며, 1891년의 신묘장적(辛卯帳籍)에도 현리(縣里)로 29호가 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리는 창말과 신촌, 탑산이 등 3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창말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안읍창(安邑倉)이란 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읍창은 인근 2㎞지점에 금강(錦江)에 화인진(化仁津)이 있기 때문에 근방에서 거두어들인 각종 조세와 물품을 안읍창에 모아 두었다가 금강물이 많을 때에 금강을 통하여 서울 등지로 운반하지 않았나 사료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창고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창고라 하겠다.

마을의 앞산을 성재(화학산성)라 부른다. 이곳은 삼국시대에 신라에 속해있던 지역으로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 이다. 여기에서는 유명한 관산성과 숯고개가 불과 30여리 거리이니 군사적 요충지이며 국경수비의 주요한 지역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국경방비를 위한 성을 쌓고 이 마을에는 군량미와 군수물자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창고가 있던 곳이 지금의 창터(창말)이고 성의 옛자취가 이직도 남아 있는 산이 바로 성재이다.

신촌(新村) 마을은 근자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촌이라 불렀지만 대청댐 수몰로 위쪽 고지대로 이주하였다.

탑산이는 현리사지(縣里寺址)가 있는 곳이며 1979년 까지 탑(塔)이 있었기 때문에 탑산이라 불렀고 마을 뒷산인 용문재(용목재) 남쪽 산정상에 삼국시대 탑산이 산성터가 있으며, 이곳에는 6·25때 월남한 피난민들이 4~5호 정착하면서 마을이 되었다.
현리에는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각 기관이 위치해 있으며 1920년 5월 20일 개교한 안내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