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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서대리 민진강 묘소(沃川邑 西垈里 閔鎭綱 墓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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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2021. 11. 11.

 

 

옥천읍 서대리 솔고개에 자리하고 있는 여흥인 민진강의 충효문과 묘소입니다. 묘소에는 비석과 문인석 그리고 망주석과 상석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는 사정士正, 호는 애일당愛日堂,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할아버지는 민광경閔光炅, 아버지는 민덕중閔德重이며 어머니는 성하적成夏績의 딸 창녕성씨昌寧成氏이다. 우암 송시열의 제자로 어릴 적부터 천성이 어질고 검소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상제 노릇을 마치 어른과 같이 하였으며, 끝날 때까지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의 명에 따라 우암 송시열 문하 에서 수업하였으며 스승의 총애를 받았다.
일찍이 과거 공부를 그만 두었다가 늦게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1720 년(숙종 36)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로 승진하고, 1721년(경종 원년)에 군위현감軍威縣監으로 나아갔다. 1725년(영조 원년)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를 제수받고, 곧이어 종묘서령宗廟署令이 되었다가 남원부사 南原府使에 제수되어 부임하였다. 품계는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그는 홀어머니를 섬기는 효심이 남달라 항상 어머니의 뜻을 받들었다. 어머니가 눈 쌓인 겨울에 병으로 누워 계시면서 냉이를 먹고 싶어 하시자 직접 냉이를 캐어 올렸다. 이때 한겨울이라 냉이를 구할 수 없었던 그가 냉이가 나는 밭에 불을 피워 놓았는데, 며칠 뒤에 가보니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냉이가 자라났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가 위독하실 때는 동생과 함께 손가락을 베어 피를 어머니 입에 흘려 넣어 며칠을 더 연명延命케 하였다. 끝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빈소를 떠나지 않고 밤에도 따뜻한 곳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몇 달을 하였는데도 병이 생기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상중喪中에 있는 동안은 하루 종일 질대絰帶를 벗지 않았으며, 3년 동안 병과餠果를 먹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1832년(순조 32) 그의 효행을 기려 효자로 정려하였으며, 1910년(순종 3)에 ‘효간孝簡’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옥천읍 서대리 솔고개에 효자문이 전하고, 그의 묘소는 효자문 좌측에 있다. 효자문 안에는 ‘효자증정삼품자헌대부규장각제학행통정대부남원도호부사남원진병마첨절제사시효간공민진강지려孝子贈正二品資憲大夫奎章閣提學行通訓大夫南原都護府使南原鎭兵馬僉節制使諡孝簡公閔鎭綱之閭’와 ‘효자통훈대부행남원도호부사남원진병마제사애일당민진강지려孝子通訓大夫行南原都護府使南原鎭兵馬制使愛日堂閔鎭綱之閭’라는 편액이 걸렸다.

 

 

민진강묘쇼옆에 있는 민진강의 충효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