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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도이리 후율당(安內面 挑李里 後栗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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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2021. 11. 5.

후율당옆에 자리하고 있는 재실입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조헌(1544∼1592)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조헌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김경백 등과 의병 1,600여명을 모집하고 승병인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충청도 순찰사인 윤극형의 방해로 의병이 강제 해산되어 700여명으로 금산전투에 참전했으나 모두 전사하였다.

건물 규모는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솟을대문과 돌로 쌓은 담장이 둘러져 있고, 뜰에는 금산전투에서 그를 대신하여 죽으려 했던 그의 아들 조완기의 효자각이 서 있다.

이곳에는 광해군 3년(1621) 판각한 『항의신편(抗義新篇)』125매와 『유림시판(儒林詩板)』10매, 선조가 내렸다는 『조서(詔書)』1매를 보관하고 있다.

 

 

 

도이리는 원래 정곡리(正谷里)에 속하였던 마을이었으나 후에 도이리(桃李里)로 분구되어 현재에 이른다.

1739년 기록에 보면 정곡리(正谷里)에 85호가 살았고, 1891년에는 113호가 살았다고 기록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일제 조정 작업 시 “도리골”을 따로 떼어 도이리(桃李里)라 하였다.

도이리(桃李里)는 “도리골”을 한자화하면서 한글 발음대로 도리(桃里)라 썼다. 그런데 도리(桃里)란 뜻은 복숭아와 오얏이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진 사람을 비유한 말로 1864년 용촌리에서 후율당을 이곳으로 옮긴 후 어진사람이 많이 탄생하라는 뜻으로 도리(桃里)라 칭하게 되었다.

마을의 이름을 “도리골”이라고 불렀는데 원래는 “도리골”이 아니고 “다리골”이란 옛글로 “다리”가 “들”이란 뜻이 되므로 “다리골”은 마을 앞에 “들이 있는 골”이 되며 동대리에서 안내천이 마을앞 들판을 돌아간다는 주장도 있다. 즉 “다리”라 하면 흔히 해석하기를 내를 건너다니는 다리(橋)로 보고 있고 거의가 교(橋)로 쓰고 있으나 잘못된 해석으로 옛글에서 들(野)이 되는 것이다.

자연마을로는 양지말, 음지말, 못안골 등으로 나뉘어 지며 도이소류지가 있다.
후율당은 1584년 중봉 조헌선생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이율곡선생의 뜻을 계승하여 후진들을 가르쳤다 한다.

 

 

조헌의 아들인 조완기의 효자각이 서있습니다.